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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가가 들려주는 쉰다섯 편의 이야기


사진가이자 전시기획자인 김지연은 오십대 초반의 나이에 사진을 시작했다. “중년의 삶을 힘겹게 살아냈다. 쉰이 되면서 드디어 찾아낸 것이 사진이었다.”(「안개 속 같았던 삶」 중에서) 올해로 일흔이 된 그가 이번엔 사진집이 아닌 산문집을 내놓았다.

그동안 「정미소(精米所)」 「나는 이발소에 간다」 「묏동」 「낡은 방」 등 수차례의 개인전을 열며 그가 보여 준 사진 속에는 머리를 쪽진 할머니가 홀로 지키는 낡은 방, 제주도 바다를 배경으로 현무암 울타리에 둘러싸여 있는 무덤, 글자가 몇 자 떨어져 나간 간판의 이발소, 짙푸른 녹색 지붕의 정미소 들이 담겨 있다. 이렇듯 일견 낡고 특별하지 않은 대상들을 통해 작가가 전달하고자 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건 아마도 사진가 김지연의 또 다른 호칭인 ‘아키비스트(archivist)’에서 엿볼 수 있듯이, 사라져 가는 것을 기록함으로써 ‘정겨운 기억의 징표들’이 ‘다음 세대에게 오롯이 전해졌으면 하는 간절한 마음’이었을 것이다.

김지연은 현재 전북 진안에 위치한 마을 문화 커뮤니티 공간인 ‘공동체박물관 계남정미소’를 운영하고 있다. 전국의 정미소를 찾아다니면서 사진을 찍다, 정미소를 하나 사들여 다양한 문화 활동을 하면 좋을 것 같다는 발상이 그 시작이었다. 또한 그는 전주 서학동예술마을에 있는 전시공간 ‘서학동사진관’을 운영하며 「꽃시절」 「우리 동네」  「버려진 일상」 등 독특한 주제의 기획전시를 선보인 바 있다. 이러한 저자의 행보는 근대문화를 되살리는 문화운동가의 그것이기도 하다. 이번에 출간된 산문집 『감자꽃』에는 그 여정에서 비롯된 진실한 생각들이 담백한 목소리로 담겨 있다.

“정말 한 순간도 멈추지 않고 대상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며 살아온 일생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자신을 숨기지 않고 있는 대로 드러내는 환한 글이기도 했다. 문장마다 넘쳐나는 한 사진가의 예술적 열정은, ‘아하 이 정도의 뜨거움이라서 우리 시대 공동체의 쇠락과 소멸을 기록하는 역할을 감당할 수 있었겠구나’ 하고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감자꽃』에 등장하는 한 분 한 분의 주인공은 쇠락의 시간을 배경으로 살아온 사람들이기에 민중이라고 불러도 괜찮을 것 같다. 글을 읽어 가는 동안 작가가 그들의 삶을 어떤 눈으로 바라보며 어떤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지를 눈여겨보기를 권하고 싶다.”


—김영춘 시인의 발문 「정미소 앞에서 걸음을 멈춘 사진가」 중에서


『감자꽃』은 사진가 김지연의 첫 산문집이다. 지금까지 출간해 온 여러 사진집에도 특유의 담백한 글이 실려 있지만, 이 책은 단순히 사진을 뒷받침하는 토막글이 아닌, 사진을 찍게 된 동기, 그가 일관되게 기록하고자 하는 대상들에 대한 사유, 개인의 내밀한 기록까지 담고 있어, 김지연이라는 한 인간의 총체적 모습을 만날 수 있다. 또한 젊은 시절부터 품어 온 글쓰기에 대한 미련을 수줍게 내보이는 자리이기도 하다. 시인 김영춘은 만약 젊은 날에 만났다면 ‘이제 사진 그만하고 글이나 쓰자’고 권할 뻔했다며, 그의 꾸밈없는 글 솜씨를 높이 평가했다.


빛나지 않아도 아름다운 것들

1부는 ‘정미소’ ‘나는 이발소에 간다’ ‘묏동’ ‘근대화상회’ ‘낡은 방’ ‘삼천 원의 식사’ 등 기록자로서의 작업과 연관된 글들이 연도순으로 사진과 함께 수록돼 있다. 여기에는 기존에 발표하지 않은 사진들도 일부 포함된다. 저자는 첫번째 글 「새벽 낯선 곳에서 사과를 먹다」에서 ‘정미소를 찍는다는 것이 과연 목적이 되는가?’ 스스로에게 물으며 책의 문을 연다. 그러곤 목적이 모호할 때 대상에게 더 순수하게 다가갈 수 있고, 건물과 그 앞으로 닦인 길, 마을 뒷산을 함께 담아 엄정한 형식에서 벗어나고자 한 것이 유형학적 사진과 자신의 작업이 구별되는 점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내 ‘밥값은 하고 사는지’ 되뇌며 자기반성의 끈을 쉽게 놓지 못한다.이같은 성찰의 문장이 녹아든 ‘정미소’에 얽힌 글들을 지나면, 공동체박물관 계남정미소의 탄생 일화를 담은 「논에 백 차의 흙을 나르는 일」에 다다른다. 이는 ‘근대유산을 마을 문화 커뮤니티 공간으로 탈바꿈시킨 최초의 사례’로, 우여곡절 끝에 폐정미소가 문화공간으로 거듭나는 과정이 세밀하게 기록되어 있다. 이곳을 운영하며 사귄 동네 할머니의 이야기 「감자꽃」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그래서 더 아름다운 우리 주변의 평범한 모든 것을 상징한다. 이 글 제목이 책 전체를 아우르는 제목이 된 이유이기도 하다. 단골 할아버지들이 세상을 뜨며 문을 닫기 시작한 시골 ‘이발소’ 앞에 서서 저자는 머리 손질 후 오히려 더 도드라지는 남자들의 남루함과, 면도사로 일하며 가족을 부양했던 사촌 여동생을 떠올린다. 전라도 사투리로 묘지를 가리키는 ‘묏동’들을 바라보며 멀고도 가까운 죽음을 읊조리고, 가족의 역사가 깃든 ‘낡은 방’ 안에 앉아 곧 없어질 존재를 향한 조바심을 드러낸다. 이 모든 사진과 글 속의 사람들은 하나같이 엄살 없이 담담한 얼굴을 하고 있고, 풍경 또한 호들갑스럽지 않고 한가하다.

2부는 좀 더 내면을 드러내는 작업, 개인적 경험에서 길어 올린 소소한 사연들로 구성돼 있다. 1부의 작업들처럼 김지연은 성실한 다큐멘터리 작가로 인식되어 왔으나, 2014년 시작한 연작 ‘놓다, 보다’를 통해 마음속에 담아 둔 잠재의식과 불안을 꺼내 놓았다. 사람에게 포커스를 맞추지 않고 그 형태를 무너뜨려 전체적인 움직임이나 느낌을 강조하는 ‘건지산’ 연작도 처음 선보인다. 이 사진들 옆에는 오랫동안 시달려 온 불면증의 고통, 혼자 보내는 생일, 어린 시절의 기억 같은 개인적인 이야기들이 진솔하게 펼쳐진다. 오래된 사진 한 장으로 나이 든 여인의 생애를 돌아보는 「꽃시절에 친우를 부여잡고」와 「꽃은 피어도」 등 서학동사진관을 꾸리며 만난 사람들의 사연도 빠질 수 없다. 낯선 한국 관광객에게 유럽 기차의 역무원이 건네주던 물 한 잔이 지금도 쓸쓸함을 달래 주는 추억의 ‘기호’로 남아 있다는 「일회용 물 잔」, 관대했던 할머니의 넓은 품을 얼레빗에 빗대어 그리워하는 「참빗과 얼레빗」 등, 짧거나 긴 55편의 글이 55점의 사진과 짝을 이루어 한 편 한 편 이어진다.


이처럼 『감자꽃』에 한데 모인 글과 사진은 보통 사람들에게는 흔하고 낡고 곧 사라질 것들을 지금 우리 눈앞에 불러내어 특별한 그 무엇으로 기억하도록 한다.

출간에 맞춰 책에 실린 사진 중 일부를 작품으로 만나는 같은 이름의 전시가 2017년 12월 5일부터 17일까지 류가헌에서 열린다. 작가와의 만남을 겸한 출간기념회와 전시 오프닝 행사가 12월 5일 화요일 오후 6시에 전시장에서 있을 예정이다.


저자 소개

김지연(金池蓮)은 1948년 전남 광주 출생으로, 사진가이자 전시기획자이다. 남들보다 늦게 사진을 시작해 한국 근대사의 흔적과 과정을 담아 재조명하는 작업을 해 오고 있다. 서울예술전문대학 연극과를 수료하고 한국방송통신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했으며, 현재 전북 진안의 공동체박물관 계남정미소 관장 및 전주 서학동사진관 관장으로 있다. 「정미소」(2002), 「나는 이발소에 간다」(2004), 「근대화상회」(2010), 「낡은 방」(2012) 등 십여 차례의 개인전을 가졌고, 「계남마을 사람들」(2006), 「전라북도 근대학교 100년사」(2010), 「용담댐, 그리고 10년의 세월」(2010), 「보따리」(2012) 등 많은 전시를 기획했다. 사진집으로 『정미소와 작은 유산들』(2013), 『삼천 원의 식사』(2014), 『빈방에 서다』(2015) 등 십여 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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