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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3.03 14:14

이상엽 Sang-Youp LEE

조회 수 479 추천 수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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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제목 변경의 역사 THE HISTORY on FRONTIER
전시기간 2016. 2. 25 ~ 3. 30
전시장소 일우 스페이스 제 1, 2 전시장 ILWOO Space, Seoul
갤러리 주소 서울시 중구 서소문동 41-3 대한항공 빌딩 1층 (T. 02_753_6502)
작가 홈페이지 http://blog.naver.com/inpho.do
갤러리 홈페이지 http://www.ilwoo.org
한진그룹 산하 일우재단은 대한항공 서소문 빌딩 1층 로비에 위치한 일우스페이스(一宇SPACE)에서 제6회 일우사진상 수상자인 이상엽(49) 작가의 수상기념 [변경의 역사 (THE HISTORY on FRONTIER)] 전시를 개최한다. 이상엽 작가는 일우사진상에서 ‘올해의 특별한 작가’ 다큐멘터리 부분에 선정되었으며, 수년전부터 우리 사회 ‘변경’에 주목해 땅의 개발과 변화, 인간과 노동이 소외되는 신자유주의적 풍경을 찍고 여러 매체에 글도 연재하는 다재다능한 작가이다. 2월 25일(목)부터 3월 30일(수)까지 일우스페이스(02_753_6502)에서 진행되는 이번 전시는 이상엽작가 강화도 ‘돈대’를 소재로 한국의 현재와 과거, 미래를 시간의 씨줄과 공간의 날줄로 엮은 신작 34점을 감상 할 수 있다.
제6회 일우사진상 ‘올해의 특별한 작가’ 다큐멘터리 부분에 선정된 이상엽 작가는 건국대학교에서 정치학을 전공하고 1991년 [[사회평론 길]]에서 글을 쓰며 사진을 작업을 시작했다. 1996년부터 전업 작가로 활동하며 [[한겨레 21]] 등 국내 시사 매체와 일본 아사히신문이 발행하는 [[아에라]] 등 해외 매체에 사진과 글을 기고하며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한 이상엽 작가는 『실크로드 기행』, 『레닌이 있는 풍경』, 『변경 지도』 등의 출판작업과 ‘이상한 숲, DMZ' 등의 사진전을 열었으며 2013년 ‘중국 다리 국제사진전 최우수 전시상’을 수상하기도 하였다. 수년전부터 우리 사회 ‘변경’에 관심을 가지고 땅의 개발과 변화, 인간과 노동이 소외되는 신자유주의적 풍경을 찍고, 그 이야기들을 꾸준히 대중매체에 싣고 알리고있다.
이상엽 작가의 [변경의 역사]展은 강화도 ‘돈대’를 소재로, ‘중심과 변경’, ‘지배와 복종’, ‘권력과 배제’라는 측면에서 한국의 현재와 과거, 미래를 시간의 씨줄과 공간의 날줄로 엮어 본 전시이다. 조선의 변경이었던 강화도 돈대의 지리적 상황을 현재의 시간에 빗대어 재구성한 이번 전시는 1871년 조선과 미국 사이에 벌어진 신미양요를 모티프로 삼았다. 서구 문명과의 격전지였던 강화도 돈대의 미해군 의 아카이브 사진에 대한 리서치에서 시작해서 현재 일부 군사지역으로 사용되기는 하지만 사실상 유명무실해진 돈대와 변방지대를 두루 살피고 기록하여 다큐멘타리 사진연작을 구성하였다.
‘변경’은 사진가로서 ‘잔인한 현장’을 마주하며 있는 그대로 기록하는 입장과 현실에 개입하고 변혁을 꾀하는 입장 사이에서, 사진가인 이상엽이 해법이기도 했다. 유동하는 자본 논리와 지배문화에 따른 중심과 주변의 경계는 그의 사진 속에서 끊임없이 그어지는 변경의 선이며, 이는 눈앞에 보일 수도 보이지 않을 수도 있는 풍경과 같은 것이다. 이전까지 그의 사진이 우리 사회의 개발과 욕망에 따른 ‘변경’에 주목했다면 [변경의 역사]는 ‘시간’이란 선상에서 역사성을 회고하며 주변부로 밀려난 한국 근현대사의 흔적을 발굴하는 것에서 출발하였다. “사진이 정치적인 힘을 가지려면 이념보다는 사실에 충실해야 한다”고 말하는 이상엽은 동시대 사진가로서 현실을 개입하는 사회적 책무에서 벗어나 역사학자의 기록적 태도를 동시에 취함으로써 그만의 사진 정치학과 미학적 긴장감을 흥미롭게 엮어내고 있다.
일우재단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신수진 교수(연세대학교 인지과학연구소)는 “방대한 작업량과 지속적인 헌신으로 아시아 국가들이 반복적으로 체험해온 사회변동의 단계들을 관찰하고 기록해온 지점이 독창적이다. 그의 사진가로서의 관점은 냉정하지만 작업에 임하는 자세는 열정적이다.” 며 이상엽 작가의 작품의 수상이유를 설명하였다.
일우사진상은 뛰어난 재능과 열정을 지닌 유망한 사진가들을 발굴해 국제적 경쟁력을 지닌 세계적인 작가로 육성하고자 2009년에 처음 제정되었으며, ‘일우’는 한진 그룹 조양호 회장의 호다. 올 초 진행된 제7회 일우사진상 공모에는 국내의 열정적인 사진작가들이 대거 응모하여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 심사는 현대미술 분야의 유력인사들이 참여한 국제심사위원단이 24인의 1차 심사 통과자들을 일대일로 개별 포트폴리오 리뷰를 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이 자리를 통해서 참가 작가들은 자신의 작품세계를 발전시키는데 도움이 되는 조언을 들을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고, 국제심사위원단에게 한국의 역량 있는 작가들을 알릴 수 있는 자리가 되었다.
  • ⓒ이상엽 Sang-Youp LEE
  • ⓒ이상엽 Sang-Youp LEE
    이 돈대는 연미정이라는 양반집 마당에 세워졌다. 국가가 징발한 것이다. 그 돈대 여장 너머로 근무하는 초병과 조강, 그리고 황해도가 보인다. 눈에 보이지 않는 여러 겹의 경계가 존재한다. 월곶돈대 강화도 2015
  • ⓒ이상엽 Sang-Youp LEE
    강화도 최남단. 멀리 인천 송도가 보인다. 이 돈대에 서면 사방이 훤히 내려다보인다. 한강으로 진입하는 모든 사물들을 관찰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전에도 지금도 요충지다. 아래서 보면 중세의 요새가 지닌 미학적인 설계마저 읽는다. 분오리돈대 강화도 2015
  • ⓒ이상엽 Sang-Youp LEE
    초지돈대 외벽의 포탄 자국. 미해군의 군함이 선상에서 쏜 것이다. 선명하게 페인트칠을 해두었다. 초지돈대 강화도 2015
  • ⓒ이상엽 Sang-Youp LEE
    돈대 포구로 본 염하와 김포의 풍경이다. 이곳에서 청나라 군사를 봤고, 프랑스 군함을 봤을 것이다. 그렇게 경계를 서던 초병은 배는 주리지 않았을까 궁금하다. 밥이 있어야 생명이 있고, 가족이 있고, 이웃이 있을 터인데, 당시 변경은 이를 충족치 못했다. 용당돈대 강화도 2015
  • ⓒ이상엽 Sang-Youp LEE
    아주 오래전 해병들의 초소였을 곳이 낡아간다. 지평선 먼, 사건의 경계에선 무슨 일이 있었을까? 어떤 사건들은 저 경계너머로 사라졌고, 어떤 사건은 튀어나왔을 것이다. 둘은 상쇄되어 사라진 것일까? 아니면 여전히 충돌하고 있는 것일까? 북일곶돈대 강화도 2015

[변경의 역사] 이상엽 | 제6회 일우사진상 수상기념전 TRAILER from Eugene Mok on Vimeo.



한진그룹 산하 일우재단은 대한항공 서소문 빌딩 1층 로비에 위치한 일우스페이스(一宇SPACE)에서 제6회 일우사진상 수상자인 이상엽(49) 작가의 수상기념 [변경의 역사 (THE HISTORY on FRONTIER)] 전시를 개최한다. 이상엽 작가는 일우사진상에서 ‘올해의 특별한 작가’ 다큐멘터리 부분에 선정되었으며, 수년전부터 우리 사회 ‘변경’에 주목해 땅의 개발과 변화, 인간과 노동이 소외되는 신자유주의적 풍경을 찍고 여러 매체에 글도 연재하는 다재다능한 작가이다. 2월 25일(목)부터 3월 30일(수)까지 일우스페이스(02_753_6502)에서 진행되는 이번 전시는 이상엽작가 강화도 ‘돈대’를 소재로 한국의 현재와 과거, 미래를 시간의 씨줄과 공간의 날줄로 엮은 신작 34점을 감상 할 수 있다.
제6회 일우사진상 ‘올해의 특별한 작가’ 다큐멘터리 부분에 선정된 이상엽 작가는 건국대학교에서 정치학을 전공하고 1991년 [[사회평론 길]]에서 글을 쓰며 사진을 작업을 시작했다. 1996년부터 전업 작가로 활동하며 [[한겨레 21]] 등 국내 시사 매체와 일본 아사히신문이 발행하는 [[아에라]] 등 해외 매체에 사진과 글을 기고하며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한 이상엽 작가는 『실크로드 기행』, 『레닌이 있는 풍경』, 『변경 지도』 등의 출판작업과 ‘이상한 숲, DMZ' 등의 사진전을 열었으며 2013년 ‘중국 다리 국제사진전 최우수 전시상’을 수상하기도 하였다. 수년전부터 우리 사회 ‘변경’에 관심을 가지고 땅의 개발과 변화, 인간과 노동이 소외되는 신자유주의적 풍경을 찍고, 그 이야기들을 꾸준히 대중매체에 싣고 알리고있다.
이상엽 작가의 [변경의 역사]展은 강화도 ‘돈대’를 소재로, ‘중심과 변경’, ‘지배와 복종’, ‘권력과 배제’라는 측면에서 한국의 현재와 과거, 미래를 시간의 씨줄과 공간의 날줄로 엮어 본 전시이다. 조선의 변경이었던 강화도 돈대의 지리적 상황을 현재의 시간에 빗대어 재구성한 이번 전시는 1871년 조선과 미국 사이에 벌어진 신미양요를 모티프로 삼았다. 서구 문명과의 격전지였던 강화도 돈대의 미해군 의 아카이브 사진에 대한 리서치에서 시작해서 현재 일부 군사지역으로 사용되기는 하지만 사실상 유명무실해진 돈대와 변방지대를 두루 살피고 기록하여 다큐멘타리 사진연작을 구성하였다.
‘변경’은 사진가로서 ‘잔인한 현장’을 마주하며 있는 그대로 기록하는 입장과 현실에 개입하고 변혁을 꾀하는 입장 사이에서, 사진가인 이상엽이 해법이기도 했다. 유동하는 자본 논리와 지배문화에 따른 중심과 주변의 경계는 그의 사진 속에서 끊임없이 그어지는 변경의 선이며, 이는 눈앞에 보일 수도 보이지 않을 수도 있는 풍경과 같은 것이다. 이전까지 그의 사진이 우리 사회의 개발과 욕망에 따른 ‘변경’에 주목했다면 [변경의 역사]는 ‘시간’이란 선상에서 역사성을 회고하며 주변부로 밀려난 한국 근현대사의 흔적을 발굴하는 것에서 출발하였다. “사진이 정치적인 힘을 가지려면 이념보다는 사실에 충실해야 한다”고 말하는 이상엽은 동시대 사진가로서 현실을 개입하는 사회적 책무에서 벗어나 역사학자의 기록적 태도를 동시에 취함으로써 그만의 사진 정치학과 미학적 긴장감을 흥미롭게 엮어내고 있다.
일우재단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신수진 교수(연세대학교 인지과학연구소)는 “방대한 작업량과 지속적인 헌신으로 아시아 국가들이 반복적으로 체험해온 사회변동의 단계들을 관찰하고 기록해온 지점이 독창적이다. 그의 사진가로서의 관점은 냉정하지만 작업에 임하는 자세는 열정적이다.” 며 이상엽 작가의 작품의 수상이유를 설명하였다.
일우사진상은 뛰어난 재능과 열정을 지닌 유망한 사진가들을 발굴해 국제적 경쟁력을 지닌 세계적인 작가로 육성하고자 2009년에 처음 제정되었으며, ‘일우’는 한진 그룹 조양호 회장의 호다. 올 초 진행된 제7회 일우사진상 공모에는 국내의 열정적인 사진작가들이 대거 응모하여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 심사는 현대미술 분야의 유력인사들이 참여한 국제심사위원단이 24인의 1차 심사 통과자들을 일대일로 개별 포트폴리오 리뷰를 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이 자리를 통해서 참가 작가들은 자신의 작품세계를 발전시키는데 도움이 되는 조언을 들을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고, 국제심사위원단에게 한국의 역량 있는 작가들을 알릴 수 있는 자리가 되었다.
[변경의 역사]에 대한 자연사적1 기술

목적성
지금 나는 책상 앞에 앉아있다. 눈앞에는 모니터가 있고 두 손은 키보드 위에 놓여있다. 조금 전 쓴 문자들이 보이고, 앞으로 쓸 문장들을 고민하고 있다. 하지만 내게 존재하는 문자와 ‘어떻게 쓸 것이다’라고 생각 모두 현재일 뿐이다. 시간이란 뭘까? 우린 늘 “시간이 돈이다”, “시간을 아끼다”, “시간이 유수 같다”라는 말을 한다. 하지만 시간은 형체도 냄새도 그 어떤 느낌도 없다. 정말 존재하기는 하는 것일까? 우리가 시계로 측량하는 것이 정말 시간일까? 그래서 물리학자 줄리안 바버2는 극단적으로 ‘시간’은 없다고 했다. 그저 지금 있는 것이 전부일 뿐이라고. 그래서 우린 과거로 가 볼 수 있는 방법이 없다. 과거가 어떠했는지를 알아낼 수 있는 것도 사실은 지질학, 화석, 유물들의 현재 모습을 통해 상상하는 것뿐이다. 그래도 인류는 언제나 변하고 사라진 것을 추억하고, 역사라는 것을 기술하는 방법을 발명했다. 시간은 비가역적이다. 우리는 결코 미래를 기술할 수 없고 기억할 수 없다.
지금 읽고 있는 진화인류학 책들의 저자들도 인간에게 어제와 오늘과 내일을 구분할 수 있는 능력이 언제쯤 생겨났는지를 증명하긴 어렵다. 지금까지 발굴된 화석기록으로 보아 인간은 약 20만 년 전쯤 동아프리카에서 출현했고, 약 7만 년 전 아프리카를 나와 전 세계로 확산했다. 하지만 이들이 그전에 존재했거나 동시대를 살았던 하이델베르크인이나 네안데르탈인보다 한참 앞선 지성을 갖추고 있었으리라는 증거 또한 없다. 다만 ‘의식의 빅뱅’이 일어난 4만 년 전, 인류는 추상적인 언어 뿐 아니라 그것을 표현한 그림과 조각을 남기기 시작했다. 이 때 하루하루를 기록한 추상적인 기호가 만들어지기 시작했고, 갯벌에서 안전하게 굴을 따기 위해 달의 주기를 관찰하기 시작했다. 한 달이라는 좀 더 긴 시간을 기록해 예측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긴 것이다. 그리고 계절의 변화를 통한 태양의 순환을 관측해 1년을 설정했다. 이것이 다시 큰 순환을 이루는 60년을 설정해 인간 인생의 주기로 삼았다. 아마도 인류가 생애에서 느낄 수 있는 가장 긴 시간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인간은 여기에 멈추지 않고 하늘의 별을 올려다보며 무한에 가까운 시간을 발명했다. 인도인들은 낮과 같은 길이의 밤이 있고, 1년을 360일로 하여, 100년 동안 브라흐마 신에 의한 우주 창조가 반복된다고 했으니, 우주가 크게 한번 대순환을 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311,040,000,000,000년이라 했다. 311조년이라는 이 거대한 시간은 요즘 급진적 물리학자들이 ‘주기적 우주’라 부르는 두 평행한 브래인 세계3가 만났다가 헤어져 다시 만나는 한 주기와 미묘하게 닮아있다.
사실 우리가 시간에 대해 모호한 태도를 취하는 것은 인과론 때문이다. 원인이 있어야 결과도 있다는 것이 우리의 직관이다. 미래는 예측 가능할 뿐 완전히 알 수는 없다. 예를 들면 ‘빅뱅 이론’은 무에서 발생한 점 하나가 폭발해 물질이 생겨나고, 비로소 시간도 시작됐고, 먼 훗날 물질이 소멸할 때 더 이상 시간은 무의미해진다는 인과론을 따른다. 하지만 빅뱅 전에도 시간이 있었고 우주 소멸 후에도 다시 시작되는 무엇인가가 있다면 원인과 결과는 맴을 돌고, 결국 존재의 목적만이 의미 있을 뿐이다. 물론 이 같은 로저 펜로즈경4의 의견에 ‘자유 의지’나 ‘신’이 동원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보자. 우주의 한계 속도라 하는 빛은 최단 거리로 이동한다. 직진이다. 하지만 투명한 물과 같은 물체를 만나면 굴절한다. 이 때 빛은 최단 시간으로 이동한다. 물과 비슷한 렌즈 알을 통과하면서도 빛은 언제나 최단 시간으로 필름 면에 도착한다. 내가 찍은 사진은 그렇게 카메라 안에서 최단 시간에 새겨진다. 이는 원인과 결과라는 인과론에 배치되는 것처럼 보이는데, 이미 빛은 어디로 가야 최단 시간에 도착할 수 있을까를 모두 설계해보고 출발 한 듯 행동하기 때문이다. 빛에게는 출발점과 동시에 도착점이 정해져 있는 것이다. 피에르 페르마5는 빛의 이러한 성질을 ‘최단 시간의 원리’라는 이름으로 증명했다. 그렇다면 인과론이 아니라 목적론이 자연계를 지배한다면 우리의 역사란 무엇일까? 중심과 변경, 지배와 복종, 권력과 배제는 원인과 결과라는 인과론이 아닌 목적에 의해 이미 정해진 것은 아닐까? 어쩌면 우리는 이미 완성된 역사책 한 페이지에만 머물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과거는 흔적만으로 상상하고, 미래는 기억할 수 없는 것이다. 페르마가 살던 17세기, 멀리 조선의 숙종에 의해 돈대가 지어지고 있었다. 나는 강화도 변경에 세워진 돈대를 보며 인간의 인과론적인 역사를 의심해본다. 막고, 봉쇄하라고 만들어진 요새가 열고, 개방되는 통로가 되었으니 말이다.

상대성
멀리 아련하게 초지대교가 보이는 염하변 갯벌에 서있다. 그리고 내 뒤로 초지 돈대가 있다. 강화도에 돈대가 들어선 것은 숙종 5년인 1679년이다. 진•보의 하위 방어 시설인 돈대는 요즘으로 치면 소대 급 병력이 주둔 할 수 있는 돌로 쌓은 요새쯤으로 생각하면 된다. 그 해 숙종은 관병과 승려 1만 5천명을 동원해 48개(이후 영조, 19세기 중반 6채 추가) 돈대를 80일 만에 축성했다. 숙종의 조부는 북벌을 논했던 효종이고 증조부는 병자호란의 치욕을 당했던 인조다. 하지만 청이 대륙을 장악한지도 수십 년이 지나 왜 조선의 변경인 강화도를 철통같은 요새로 만들었던 것일까? 그에 대한 자세한 내막을 누구도 알지 못한다. 청나라에 밀려난 남명이 대만에서 계속 구국운동을 하는 사이, 조정은 그들과 밀통을 했던 것일까? 중요한 것은 병자호란 이후 강화도는 더 이상 왕이 도망칠 수 있는 변경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그래서 흥미로운 것이 조선으로 보자면 이 시기가 근대의 시작이다. 가치관이 변하고 정세가 변했다. 근대적 민족국가가 영토의 획정을 수반한다면, 이때부터 조선은 북쪽 변경으로 청나라와 백두산 정계비를 세워 영토를 다투었고(1712년), 동으로는 일본과 변경의 섬 울릉도와 독도를 다퉜다는 점이다.(1699년) 하지만 이는 동아시아를 세계의 모든 것으로 생각한 조선 사람들만의 근대였다. 또 다른 근대가 있었으니 그 근대는 이로부터 2백년 후, 저 먼 바다로부터 왔다.
17세기 조선의 바다에는 이양선들이 출몰했다. 그들은 조선인들이 알고 있던 세계와는 다른 곳의 오랑캐들이었다. 이들은 기계를 작동시키고 등불을 켜는데 막대한 기름이 필요했고, 그것을 바다에서 찾았다. 바로 고래다. 그 고래를 찾아 서양의 포경선들은 대서양과 태평양을 누볐다. 조선의 동해바다는 고래의 서식지로 그들이 이곳을 놓칠 리 없다. 그래서 두 세계는 곧 만난다. 하지만 그들은 동시대를 살았으되 다른 시간대를 살았다. 서양의 시계는 지나치게 빠르게 돌아갔고, 조선의 시계는 거의 멈춰있다시피 했다. 근대는 상대적이었다. 프랑스는 1787년 제주와 울릉도를 탐사하고는 자기들 멋대로 켈파트와 다즐레라는 이름까지 붙였다. 1893년 천주교인들을 박해한 기해사옥이 일어나자 중국에 있던 프랑스 아시아함대는 징벌적 원정을 기획했지만 취소했다. 그 이후로도 꾸준히 접촉을 시도했고 1866년 병인박해를 기회로 전면적인 침공을 하기에 이른다. 40일간 강화도를 점령하고 약탈과 방화를 자행했던 병인양요가 그것이다. 그들은 갑곶 돈대가 있던 자리부터 강화도를 점령하기 시작했고 한강 하구를 막아 한양에서 기근을 일으키고 폭동이 날 정도로 영향력을 미쳤다. 근대 서구는 54개 돈대로 철통같은 방어진지를 구축했다고 생각했던 조선을 소수의 군대와 최신식 무기로 무력화 시켰다. 돈대의 진정한 비극은 1871년 미국과의 만남이었다. 조선 역시 표착한 미국의 포경선 선원들을 통해 그들 나라를 화기국(花旗國)으로 알게 됐다. 당시 성조기를 성화기라 불렀고, 그래서 화기국이다. 그 화기국, 또는 미국은 로저스 제독이 이끄는 1400명의 병력과 남북전쟁으로 강화된 최신예 무기로 구성된 5척의 군함으로 강화도를 침공한 것이다. 그들은 무혈로 초지돈대를 접수했고, 이어 덕진 돈대로 입성했다. 조선군은 광성진 파수 진무중군 어재연과 1000명의 군사, 평안도 출신 범 사냥꾼 수백명과 함께 용두 돈대에 집결했다. 천혜의 요새에서 아래로 공격했지만 미국의 압도적인 화력에 미군 사망 3명, 조선군 사망 243명이라는 완패를 당하게 된다. 그리고 1875년 일본의 운요호가 초지진에 나타나 군민 살상과 약탈을 자행함으로써 돈대의 역할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더 이상 그 것을 지킬 군사도 없었고 사령관도 없었다.
같은 시기, 극동의 조선 반대편인 독일 울름에서 태어난 아인슈타인6은 상대성에 관심이 많았다. 그는 우주 한계 속도인 빛을 빼고는 모든 것이 상대적일 뿐이라고 했다. 고정된 것도 절대적인 것도 없다. 공간도 시간도 말이다. 빛은 언제나 자신의 속도를 유지하기 위해 공간과 시간을 조절했다. 자연이, 그 속에 있는 만물이 그러했다. 1905년, 조선이 을사조약으로 국권을 뺏겼을 때 아인슈타인이 [특수상대성이론]을 발표했다. 역사도 이제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상대적이어야 했다. 변경이라 생각됐던 곳은 중심이고, 중심이라 생각했던 곳이 변경이었다. 각자의 근대들은 변경에서 부딪히고, 하나의 근대가 다른 하나의 근대를 상쇄했다. 초지 돈대 넘어, 멀리 김포로부터 물때를 알리는 파도소리가 들린다. 갯벌에서 나가야 할 시간이다. 갯벌은 이제 바다가 된다.

상보성
한국의 현대사는 어둡고 고통스럽다. 20세기가 막 시작되던 무렵, 조선은 반동적인 대한제국에서 종국에는 일본 제국주의의 식민지가 됐다. 백성들은 천황과 일본국의 국민이 됐다. 제국은 식민지 국민에게 끝없는 충성을 요구했고, 조선의 민중들은 자발적 황국의 신민을 선택한 자들 틈에서 이중의 고통을 당했다. 2차 대전 종전 후 일제는 물러갔지만 동아시아에 대한 세계적인 관심은 결국 내전과 국제전이 혼합된 한국전쟁을 일으켰다. 전쟁과 분단은 한반도 민중들에게 암흑이었다. 그리고 짧은 공화국을 거쳐 군인들의 독재가 시작됐다. 전국에 ‘잘 살아보세’라는 구호가 제창됐고, 외침에 맞선 위대한 한민족이 노래됐다. 전국은 호국의 상징들로 넘쳤다. 한국전쟁에서 멀리 고대 삼국의 전쟁까지 소환됐다. 적들은 도처에 있었다. 북한 공산당, 일본, 여진, 몽골, 거란, 당나라 …. 그리고 미국도 있었다. 신미양요의 현장이었던 광성, 덕진, 초지는 항미의 호국 성지가 됐다. 하지만 그것을 드러내놓고 이야기 할 수 없었다. 한미동맹 앞에 현실의 적인 북한이 있었다. 그들은 돈대에서 바로 보이는 조강 너머에 있었다.
강화도 북단의 민통선 안에서 여전히 그 용도를 유지하고 있는 해병대 초소용 돈대는 가설의 DMZ 앞에서 GOP(general outpost, 일반전초)인 것이다. 월곶 돈대 위에 올린 여장의 틈 사이로 경계근무를 서는 해병대 청년이 보인다. 그가 바라보는 조강 너머 북한 땅을 나도 함께 본다. 슬며시 오래전 있었던 빛에 대한 실험을 떠올린다. ‘이중 틈 실험’이라는 것이다. 1801년 토마스 영7이 가는 틈 두 개 사이로 빛을 비추자 뒤에 있는 막에 간섭무늬가 새겨지는 것을 보고 빛은 물결 같은 파동이라고 결론지었다. 이후 100년 동안 빛은 파동으로 인식되었지만 아인슈타인의 광전효과로 빛은 입자가 됐다. 빛은 파동이자 입자였다. 1927년 클린턴 데이비슨과 레스터 거머8는 알갱이가 분명했던 전자를 이용해서 영의 실험을 재현했다. 문제는 총알처럼 한방씩 날라 가는 전자가 이중 틈을 지나 막에 또 간섭무늬를 새긴 것이다. 이것은 인간의 직관을 뛰어넘는 미스터리로 지금까지 아무도 설명하지 못하는 현상이다. 하나의 입자가 둘로 갈라져 두 개의 틈을 지나 서로 간섭하며 물결무늬를 만든다? 게다가 더 황당한 것은 우리가 그 입자들이 어떤 경로로 들어오는지를 관찰한다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틈 뒤에 일자 흔적만을 남긴다. 닐스 보어9가 이것을 ‘상보성’이라 했다면, 이 현상에 대한 가장 깊은 통찰은 리차드 파인만10이 제시했다. 입자는 공간에서 둘로 갈라지는 것뿐만 아니라 두 개의 시간을 갖고 날라 와 우리가 목격하는 시간과 공간에서 ‘결과’로서 합쳐진다고 했다. 물론 이것을 “이해한다면, 당신은 전혀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라는 단서는 있다.
우리는 ‘자연의 물질세계와 인간의 역사가 다를 것이다’라는 믿음이 있다. 인간은 물질과 분리된 의식을 신봉하기 때문이다. 또는 자유 의지와도 관계된다. 의식과 의지는 대부분 직관적이라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이해 가능하게 수정하려 한다. 편집과 왜곡이 동반된다. 권력, 자본, 계급은 이해하기 쉬운 제도화를 통해 ‘자연’스러운 것이 된다. 매끄럽고 직관적인 역사인 것이다. 하지만 매끄러운 듯 보이지만 불연속적이다. 역사도 파동이자 입자다. 관찰자에 따라 역사는 다르게 기록된다. 어느 한쪽이 틀렸다거나 잘못됐다는 것이 아니라 역사는 모든 것들 중에 하나의 모습만을 우리에게 내보일 따름이라는 것이다. 역사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모든 것이 들끓고 뒤죽박죽인 카푸치노 거품 같은 세상이다. 그래서 나는 강화도 돈대의 대리석 마냥 매끈하게 잘려진 단면 속에서 거칠고 불연속적인 결을 발견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리해 강화도 최남단의 분오리 돈대를 맹렬히 떠도는 바람결에, 최북단 불암 돈대의 고요한 적막에 그 실마리가 있을 것이라 믿으며 54개의 모든 돈대들을 찾아 헤맸다. 300년 전 조선의 어느 절집에서 징발당해 강제 노역에 처해졌을 승려의 손으로 만들어진 이 돌덩어리가 자연의 풍화 뿐 아니라 변경의 오욕을 모두 목격했으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 나는 역사가 인과보다는 ‘목적’을 갖고 있으며, 절대보다는 ‘상대’적이고, 실제와 환영에서 ‘상보’적인 결과를 보여준다고 믿는다.

“아무리 원시적인 사회다 하더라도 인간 사회가 존재하는 곳에는 우주가 있다. 그리고 형태를 막론하고 우주가 있는 곳에 사회가 있다. 사회와 우주는 함께 존재하며, 어느 것도 다른 하나가 없이는 존재하지 못한다. 우주는 사회를 하나로 만든다. 사회구성원들이 서로 의사소통을 하고 서로의 생각과 경험을 나눌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다. 우주는 우리의 지각체계를 결정하고, 무엇이 타당한 지식인지를 결정한다. 아울러 사회 구성원들은 자신이 지각하는 것을 믿고, 자신이 믿는 것을 지각한다.”11 해지고 어슴푸레한 북일곶 돈대에서 갯벌을 내려다본다. 오래전 이곳에서 외로이 불침번 섰을 병사가 되어본다. 여장 틈사이로 본 ‘변경의 역사’는 그저 저 지평선 너머로 소멸하는 모든 것들의 끝자락마냥 아른 거린다. 하지만 죽어간 모든 것들과 태어날 모든 것들이 이미 이 시공간에 나와 함께 있다.

2016년 1월 11일 고기리에서 이상엽
이상엽 Sang-Youp LEE

(1968~)

주요 개인전
2013 변경, 갤러리 류가헌, 서울
2010 이상한 숲 DMZ, 갤러리 류가헌, 서울
2008 인 투 핫 라이트, 갤러리 루, 서울
2008 청계의 나날들, 대안공간 건희, 서울
2007 레닌이 있는 풍경, 아트비트 갤러리, 서울
2007 중국 1997~2006, 갤러리 나우, 서울/고토 갤러리, 대구/영광갤러리, 부산
2005 아시아 공감, 네이버
2005 아시아, 갤러리 브레송, 서울
2004 머나먼 실크로드, 수유+너머, 서울

주요 단체전
2014 다큐멘터리 스타일, 고은사진미술관 부산
2014 대구사진비엔날레, 대구
2014 사진과 사회, 대전시립미술관, 대전 충남
2013 창원 아시아미술제, 경남 창원시
2012 여수 엑스포 아트페스티벌, 전남 여수
2010 강운구를 핑계삼다, 류가헌, 서울
2010 4대강 기록 사진전-강강강강, 류가헌, 서울
2010 과거로부터 온 선물, 주영한국문화원, 런던
2009 Vietnam-Korea Friendship Photo Exhibition, 혁명박물관, 베트남
2009 Earth Alert: Photographic Responses to Climate Change, 주영문화원, 런던 영국
2009 Earth Alert: Photographic Responses to Climate Change, 대림미술관, 서울
2008 섬, 광주미술관 인사동, 서울
2007 가장 먼 여행, 디자인센터, 부산
2007 전쟁표면, 평화박물관 스페이스 피스, 인사동 서울
2006 얼굴의 시간, 시간의 얼굴, 대안공간 휴
2005 연접지점, 아시아가 만나다, 광주문화예술진흥원 구 전남도청
2004 동강 사진 페스티발, 다큐멘터리사진가 33인전, 영월

주요 저서
2014년 [변경지도] 현암사
2014년 [최후의 언어] 북멘토 2012년 [사진으로 읽는 뉴 실크로드 I II] 한국언론인협회
2011년 [파미르에서 윈난까지] 현암사
2008년 [이상엽의 재밌는 사진책] 이른아침
2008년 [청계의 나날들] 이른아침
2007년 [레닌이 있는 풍경] 산책자 (웅진 임프린트)
2007년 [중국 1997~2006] 눈빛
2006년 [신 실크로드] 한국언론인협회
2005년 [그곳에 가면 우리가 잊어버린 표정이 있다] 동녁

작품 소장
경기문화재단/ 동강사진박물관/ 평화박물관준비위원회/ 전쟁기념관

수상
2015 일우사진상
2014 온빛 올해의 사진가상
2013 중국 다리 국제사진전 최우수 전시상
2006 나우 갤러리 사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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