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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3.08 15:14

김진희 JinHee Kim

조회 수 366 추천 수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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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제목 다시, 봄
전시기간 2018. 3. 8 ~ 3. 29
전시장소 갤러리 구 Gallery Koo, Seoul
오프닝 2018년 3월 8일 오후 5-8시
갤러리 주소 서울특별시 강남구 압구정로 461 네이처포엠 211호 (02-514-1132)
작가 홈페이지 http://www.jinheekim.net
갤러리 홈페이지 http://gallerykoo.com
관람시간 Monday ~ Saturday 11am ~ 6pm
여전히, 꾸준히, 지지 않겠다는 말 매끈한 풍경에 구멍을 뚫는다. 구멍을 통해 바늘이 빼꼼 고개를 내밀면 이윽고 깊고 부드러운 색상의 실이 뒤따라온다. 작지만 무수히 많은 구멍들 사이로 빠짐없이 바늘과 실이 통과하고 나면 사진 위에는 한 편의 다른 그림이 모습을 드러낸다. 작가는 사진 속 풍경을 바느질로 가리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것을 그려낸다고 했다. 실제로 보이지 않는 기억이나 흔적, 때로는 상처가 담긴 풍경들을 포착하고, 그 곳에서 작가가 본 감정들을 형상화한다. 그리고 소소한 일상처럼 반복하는 바느질로 그 감정들을 풍경 위에 단단히 붙들어 맨다. 정제된 시선과 차가운 표면을 가진 사진이라는 매체에 물성을 더하는 행위다. 작가는 이것을, 사진으로는 온전히 전달할 수 없는 그 순간의 감정을 담기 위해 흔적과 과정을 남기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일상적 행위의 강력한 힘 거대한 사회와 넘쳐흐르는 정보 속에서 수시로 무력을 느끼며 살아가는 우리는 몸으로 직접 느끼는 감각을 그리워한다. 현대인들이 컬러링북이나 액체괴물 만들기 같은 소소한 취미 거리에 열광하는 이유는 다름 아닌 감각적 경험이다. 존재를 짓누르는 지식과 정보로 가득 찬 머리를 비우고 직접 손을 움직여 실재하는 무언가를 만들거나 만지면서, 거꾸로 내가 실재한다는 것을 확인한다. 복잡한 일은 잊어버린 채 맛과 향기에 집중하거나 아름다운 것을 보고 들을 때 머릿속이 맑아지고 안정과 행복을 느끼는 것도 비슷한 경우다. 감각을 환기하고, 흔적을 남기면서 나의 존재를 확인하는 것 자체가 바로 치유의 과정이기도 하다. [카모메 식당]의 감독 오기가미 나오코의 또 다른 영화 [토일렛]에서는 한때 콩쿠르를 휩쓸던 신동이었지만 지금은 공황장애로 인해 피아노를 칠 수 없는 인물이 등장한다. 그를 집 밖으로 이끈 것은 바로 바느질이었다. 죽은 어머니가 남긴 재봉틀로 엉성한 옷을 끊임없이 만들던 그는 어느 날 자신이 만든 괴상한 치마를 입고 피아노를 다시 치는 데 성공한다. 무의미해 보이는 바느질을 반복하는 사이에 불안과 두려움이 사라진 것이다. 사람을 치유로 이끄는 것은 아주 특별한 무엇이 아니라 아주 평범한 일상의 감각이다. 일상을 반복해서 쌓는 것은 생각보다 강력한 힘을 지닌다. 일본의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의 삶을 다룬 다큐 [후쿠시마의 어머니들]에서, 79세의 에이코 칸노 여사는 여전히 후쿠시마의 집으로 돌아가지 못한 채 가설 주택에 살고 있다. 몇 년 째 모든 것이 임시인 삶이 어쩌면 남은 삶의 전부일지도 모른다. 너무도 커다란 재난의 겉모습에 압도된 우리는 그 곳에 촘촘하게 자리 잡고 있었던 평범한 일상들이 허물어졌다는 사실은 간과한다. 슬프게도 개인은 스스로 이 엄청난 재난을 해결할 수는 없다. 그녀는 불안과 외로움을 잊기 위해 몸을 움직여 농사를 짓고, 쓰러지지 않기 위해 거르지 않고 식사를 하고, 지역명물인 된장을 만드는 법을 젊은이나 타지인들에게 전수한다. 아주 특별한 것은 아닐지라도,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반복하는 일상적 행위들이 모여 매일 살아 있다는 감각을 확인시켜준다. 상처가 클수록 한 번에 치유하기는 어렵다. 다만 매일같이 상처를 들여다보며 일견 무의미해 보이는 치료를 반복하다보면 어느 날 새 살이 돋아난다. 삶에서는 그 치료가 바로 일상을 이어가는 것이고, 이것은 질기게 이어갈수록 더욱 강력한 힘을 지닌다. 희망은 그 힘에서부터 피어난다. 김진희 작가가 바느질 하는 과정은 이와 비슷하다. 작가 역시 치유와 공감이 단지 생각만으로는 이루어질 수 없다고 생각한다. 커다란 움직임이 아닐지라도, 매일같이 반복해서 움직이는 행위가 결국 치유로 이어질 수 있다고, 그래서 손을 움직이는 행위나 노동의 가치가 매우 중요하다고 말한다. 이것은 김진희가 만드는 작품의 의미이기도 하고, 그가 작업을 대하는 태도이기도 하다. 삶을 잇는 김진희의 바늘 사진 위를 반복하며 오가는 실의 모습은 켜켜이 쌓이는 일상의 힘이다. 작가는 삶을 잇듯 실을 잇는다. 반복하는 행위로서의 바느질도 중요하지만 조금 더 눈길을 주고 싶은 부분은 그 실이 시작되는 바늘구멍이다. 마음의 상처나 트라우마를 치유할 때, 지속과 반복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시작이다. 상처가 깊은 사람들은 마음을 드러내고 이야기하는 것이 쉽지 않다. 하지만 어떤 계기에 의해서 참았던 숨을 내뱉듯 상처를 꺼내어 이야기하고, 그것을 밖으로 소리 내어 말하길 반복할 때 비로소 자신의 마음과 마주하고 그 가여운 얼굴을 끌어안아줄 용기가 솟아난다. 김진희의 바늘구멍은 그런 의미다. 규칙적이고 반복적으로 뚫린 작은 구멍들은 상처의 기억을 드러내고자 시도하는 시작의 숨구멍이자 치유의 계기다. 작가는 그 숨구멍 사이를 드나들며 바느질 한 번에 위로의 호흡 한 번을 더한다. 바늘구멍과 실이 지나간 방향은 우리 삶의 기억들처럼 고스란히 사진 위에 남는다. 지난 세월의 모든 표정을 기억하고 있는 얼굴의 주름살이, 인생과 온전히 하나인 것처럼 말이다. 김진희는 그런 과정과 흔적의 중요함을 소중히 남긴다. 숨고르기, 다지기 김진희는 그 동안 사진에 바느질을 더한 방식으로 다양한 주제의 작업을 해왔다. [She]시리즈에서는 20대 여성들의 기억과 상처를, [April] 시리즈에서는 우리가 모두 기억하고 있는 세월호의 상흔을 담았고, [Letter to Her]과 [Labor of Love]에서는 빈티지 엽서에 남겨진 마음을 주목했다. 그리고 작년 말 송은 수장고에서 열린 개인전(2017.11.16.-12.31.)과 공간291의 그룹전(2017.11.28.-2018.1.7.)에서 선보인 설치 작품을 통해 액자를 넘어선 공간적 확장을 시도하며 작업에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이번 전시는 작가에게 전혀 새로운 시도라기보다는, 기존에 작업했던 시리즈들을 다시 돌아보고, 더 깊은 시선으로 보완한 신작들을 선보이는 자리다. 잠시 숨을 고르고 발 딛은 곳을 단단하게 다지는 작업으로, 김진희의 심호흡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Letter to Her]과 [Labor of Love]시리즈에서는 해외에서 수집한 빈티지 엽서를 촬영하고 익명의 발신자가 쓴 메시지들을 수놓는다. 누군가의 삶의 흔적이기도 한 그 메시지 사이에서 작가는, 누구에게나 공통적으로 와 닿을 수 있는 일상적인 언어들을 골라낸다. ‘삶은 계속되리라’는 뜻의 비틀즈 노래 가사를 인용한 ‘Ob-la-di, ob-la-da, life goes on brah’([Labor of Love])와, 안부를 묻는 인사말([Letter to Her])들은 특별하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진부할 수도 있지만, 보는 이에게 언제나 위로와 치유를 건네는 마법의 말이다. 신작에서는 안부인사보다 조금 더 구체적인 위로의 말을 골랐다. ‘hope you are not lonesome(나는 네가 외롭지 않길 바라)’, ‘so I thought you may want this(네가 이걸 원할 거라고 생각해)’, ‘the annual apples have turned up(올해의 사과가 열리기를)’, ‘another wonderful day(또 다른 멋진 날)’ 등, 빛바랜 엽서 위를 수놓은 고운 말들로 여전히 유효한 위로가 가능한 것은 우리 삶의 디테일이 서로 다를지라도, 울고 웃고 서로를 끌어안으며 사랑하는 진부한 플롯을 누구나 갖고 있기 때문이다. 한편 [April]시리즈에서 작가는 모두가 기억하는 4월에 관한 이야기를 한다. 멀리 있던 우리는 뉴스의 사고 장면으로 그 사건을 기억하지만, 진도에서 직접 그 일을 겪은 사람들의 기억은 가지각색일 것이다. 대부분의 거대한 사건들이 그렇다. 멀리서, 그리고 한참을 지나서 사건을 바라보면 하나의 장면이나 맥락으로 압축이 가능하지만, 현장에는 언제나 다양한 색깔의 감정과 기억들이 얽혀 있다. 작가는 진도에 남은 그 흔적들을 읽는다. 아주 평범한 진도의 풍경 곳곳에는 조금씩 다른 모습의 상흔이 남아 있다. 진도의 사진에 숨구멍을 트고 바느질을 반복하는 작가의 행위는 치유와 동시에 잊지 않을 흔적을 남기겠다는 다짐이기도 하다. 지지 않겠다는 말 ‘한 땀, 한 땀’ 만들었다는 표현은 그만큼 공들여 노력했다는 뜻일 테다. 평생을 바느질로 살아간 여자들의 이야기를 담은 김숨의 소설 [바느질하는 여자]에서는 누비 바느질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 한다. ‘만약 어머니가 한 땀 떠 넣을 때마다, 한 땀, 한 땀마다 복을 빈다고 가정을 할 경우, 천 땀이면 천 번 복을 빌어 지은 저고리를 입는 것이었다. 만 땀이면 복을 만 번 빌어 지은 옷을 입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바느질 하는 사람들은 ‘한 땀’마다 마음과 숨을 불어 넣는 것이다. 김진희의 작업도 그렇다. 기쁨과 슬픔과 사랑과 상처가 차곡차곡 쌓여 한 자락의 삶을 이루기에, 그리고 오늘의 내가 어제보다 나은 것은 경험과 감각이 축적되어 더욱 단단해졌기 때문이기에, 상처의 흔적이라도 매끈히 지울 필요는 없다. 과거를 끌어안고 앞으로 나아가는 과정이 중요하다. 또한 다채로운 인생의 흔적들이 만들어낸 새로운 국면은 무대의 막이 오르듯 극적으로 등장하지 않는다. 다만 꾸준한 일상으로 삶을 잇다보면 슬며시 새로운 빛이 보일 것이다. 그래서 김진희는 흔적을 외면하지 않은 채, 한 땀에 따스한 위로와 촘촘한 치유, 또 다른 한 땀에 조심스런 희망을 담아 느리지만 꼼꼼한 바느질을 지속한다. 기억하고 위로하고 기원하는 작가의 제의적 움직임을 통해 가느다란 실들이 꾸준히 모이면, 마침내 사진만 보아서는 보이지 않던 것, 작가의 시선으로 본 것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그렇게 보이던 풍경과 보이지 않던 감정의 흔적이 한데 어우러져 완성된 이미지는, 원래 그 자리에 존재했던 것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전에 없던 새로운 것이기도 하다. 이 과정은 어쩌면, 천천히 잔잔하게, 그러나 지지 않겠다는 말의 다른 표현인지도 모른다. 글. 김지연 (independent writer)
  • ⓒ김진희 JinHee Kim
  • ⓒ김진희 JinHee Kim
    April-054, 120 x 153cm, Embroidery on Digital Pigment Print, 2018
  • ⓒ김진희 JinHee Kim
    April-055, 120 x 153cm, Embroidery on Digital Pigment Print, 2018
  • ⓒ김진희 JinHee Kim
    April-063, 56 x 56cm, Embroidery on Digital Pigment Print, 2017
  • ⓒ김진희 JinHee Kim
    April-077, 76 x 76cm, Embroidery on Digital Pigment Print, 2018
  • ⓒ김진희 JinHee Kim
    labor of love-003, framed-34 x 201cm, Embroidery on Digital Pigment Print, 2017
  • ⓒ김진희 JinHee Kim
    Letter to her_All I do is to sleep, work, eat & dance & dance, framed-67 x 54cm, Embroidery on Digital Pigment Print, 2018
  • ⓒ김진희 JinHee Kim
    Letter to her_Hope you are not lonesome, framed-67 x 54cm, Embroidery on Digital Pigment Print, 2018
  • ⓒ김진희 JinHee Kim
    Letter to her_So I thought you may want this, framed-67 x 54cm, Embroidery on Digital Pigment Print, 2018

여전히, 꾸준히, 지지 않겠다는 말


매끈한 풍경에 구멍을 뚫는다. 구멍을 통해 바늘이 빼꼼 고개를 내밀면 이윽고 깊고 부드러운 색상의 실이 뒤따라온다. 작지만 무수히 많은 구멍들 사이로 빠짐없이 바늘과 실이 통과하고 나면 사진 위에는 한 편의 다른 그림이 모습을 드러낸다. 작가는 사진 속 풍경을 바느질로 가리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것을 그려낸다고 했다. 실제로 보이지 않는 기억이나 흔적, 때로는 상처가 담긴 풍경들을 포착하고, 그 곳에서 작가가 본 감정들을 형상화한다. 그리고 소소한 일상처럼 반복하는 바느질로 그 감정들을 풍경 위에 단단히 붙들어 맨다. 정제된 시선과 차가운 표면을 가진 사진이라는 매체에 물성을 더하는 행위다. 작가는 이것을, 사진으로는 온전히 전달할 수 없는 그 순간의 감정을 담기 위해 흔적과 과정을 남기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일상적 행위의 강력한 힘
거대한 사회와 넘쳐흐르는 정보 속에서 수시로 무력을 느끼며 살아가는 우리는 몸으로 직접 느끼는 감각을 그리워한다. 현대인들이 컬러링북이나 액체괴물 만들기 같은 소소한 취미 거리에 열광하는 이유는 다름 아닌 감각적 경험이다. 존재를 짓누르는 지식과 정보로 가득 찬 머리를 비우고 직접 손을 움직여 실재하는 무언가를 만들거나 만지면서, 거꾸로 내가 실재한다는 것을 확인한다. 복잡한 일은 잊어버린 채 맛과 향기에 집중하거나 아름다운 것을 보고 들을 때 머릿속이 맑아지고 안정과 행복을 느끼는 것도 비슷한 경우다. 감각을 환기하고, 흔적을 남기면서 나의 존재를 확인하는 것 자체가 바로 치유의 과정이기도 하다.
[카모메 식당]의 감독 오기가미 나오코의 또 다른 영화 [토일렛]에서는 한때 콩쿠르를 휩쓸던 신동이었지만 지금은 공황장애로 인해 피아노를 칠 수 없는 인물이 등장한다. 그를 집 밖으로 이끈 것은 바로 바느질이었다. 죽은 어머니가 남긴 재봉틀로 엉성한 옷을 끊임없이 만들던 그는 어느 날 자신이 만든 괴상한 치마를 입고 피아노를 다시 치는 데 성공한다. 무의미해 보이는 바느질을 반복하는 사이에 불안과 두려움이 사라진 것이다. 사람을 치유로 이끄는 것은 아주 특별한 무엇이 아니라 아주 평범한 일상의 감각이다.
일상을 반복해서 쌓는 것은 생각보다 강력한 힘을 지닌다. 일본의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의 삶을 다룬 다큐 [후쿠시마의 어머니들]에서, 79세의 에이코 칸노 여사는 여전히 후쿠시마의 집으로 돌아가지 못한 채 가설 주택에 살고 있다. 몇 년 째 모든 것이 임시인 삶이 어쩌면 남은 삶의 전부일지도 모른다. 너무도 커다란 재난의 겉모습에 압도된 우리는 그 곳에 촘촘하게 자리 잡고 있었던 평범한 일상들이 허물어졌다는 사실은 간과한다. 슬프게도 개인은 스스로 이 엄청난 재난을 해결할 수는 없다. 그녀는 불안과 외로움을 잊기 위해 몸을 움직여 농사를 짓고, 쓰러지지 않기 위해 거르지 않고 식사를 하고, 지역명물인 된장을 만드는 법을 젊은이나 타지인들에게 전수한다. 아주 특별한 것은 아닐지라도,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반복하는 일상적 행위들이 모여 매일 살아 있다는 감각을 확인시켜준다. 상처가 클수록 한 번에 치유하기는 어렵다. 다만 매일같이 상처를 들여다보며 일견 무의미해 보이는 치료를 반복하다보면 어느 날 새 살이 돋아난다. 삶에서는 그 치료가 바로 일상을 이어가는 것이고, 이것은 질기게 이어갈수록 더욱 강력한 힘을 지닌다. 희망은 그 힘에서부터 피어난다.
김진희 작가가 바느질 하는 과정은 이와 비슷하다. 작가 역시 치유와 공감이 단지 생각만으로는 이루어질 수 없다고 생각한다. 커다란 움직임이 아닐지라도, 매일같이 반복해서 움직이는 행위가 결국 치유로 이어질 수 있다고, 그래서 손을 움직이는 행위나 노동의 가치가 매우 중요하다고 말한다. 이것은 김진희가 만드는 작품의 의미이기도 하고, 그가 작업을 대하는 태도이기도 하다.

삶을 잇는 김진희의 바늘
사진 위를 반복하며 오가는 실의 모습은 켜켜이 쌓이는 일상의 힘이다. 작가는 삶을 잇듯 실을 잇는다. 반복하는 행위로서의 바느질도 중요하지만 조금 더 눈길을 주고 싶은 부분은 그 실이 시작되는 바늘구멍이다.
마음의 상처나 트라우마를 치유할 때, 지속과 반복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시작이다. 상처가 깊은 사람들은 마음을 드러내고 이야기하는 것이 쉽지 않다. 하지만 어떤 계기에 의해서 참았던 숨을 내뱉듯 상처를 꺼내어 이야기하고, 그것을 밖으로 소리 내어 말하길 반복할 때 비로소 자신의 마음과 마주하고 그 가여운 얼굴을 끌어안아줄 용기가 솟아난다. 김진희의 바늘구멍은 그런 의미다. 규칙적이고 반복적으로 뚫린 작은 구멍들은 상처의 기억을 드러내고자 시도하는 시작의 숨구멍이자 치유의 계기다. 작가는 그 숨구멍 사이를 드나들며 바느질 한 번에 위로의 호흡 한 번을 더한다.
바늘구멍과 실이 지나간 방향은 우리 삶의 기억들처럼 고스란히 사진 위에 남는다. 지난 세월의 모든 표정을 기억하고 있는 얼굴의 주름살이, 인생과 온전히 하나인 것처럼 말이다. 김진희는 그런 과정과 흔적의 중요함을 소중히 남긴다.

숨고르기, 다지기
김진희는 그 동안 사진에 바느질을 더한 방식으로 다양한 주제의 작업을 해왔다. [She]시리즈에서는 20대 여성들의 기억과 상처를, [April] 시리즈에서는 우리가 모두 기억하고 있는 세월호의 상흔을 담았고, [Letter to Her]과 [Labor of Love]에서는 빈티지 엽서에 남겨진 마음을 주목했다. 그리고 작년 말 송은 수장고에서 열린 개인전(2017.11.16.-12.31.)과 공간291의 그룹전(2017.11.28.-2018.1.7.)에서 선보인 설치 작품을 통해 액자를 넘어선 공간적 확장을 시도하며 작업에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이번 전시는 작가에게 전혀 새로운 시도라기보다는, 기존에 작업했던 시리즈들을 다시 돌아보고, 더 깊은 시선으로 보완한 신작들을 선보이는 자리다. 잠시 숨을 고르고 발 딛은 곳을 단단하게 다지는 작업으로, 김진희의 심호흡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Letter to Her]과 [Labor of Love]시리즈에서는 해외에서 수집한 빈티지 엽서를 촬영하고 익명의 발신자가 쓴 메시지들을 수놓는다. 누군가의 삶의 흔적이기도 한 그 메시지 사이에서 작가는, 누구에게나 공통적으로 와 닿을 수 있는 일상적인 언어들을 골라낸다. ‘삶은 계속되리라’는 뜻의 비틀즈 노래 가사를 인용한 ‘Ob-la-di, ob-la-da, life goes on brah’([Labor of Love])와, 안부를 묻는 인사말([Letter to Her])들은 특별하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진부할 수도 있지만, 보는 이에게 언제나 위로와 치유를 건네는 마법의 말이다.
신작에서는 안부인사보다 조금 더 구체적인 위로의 말을 골랐다. ‘hope you are not lonesome(나는 네가 외롭지 않길 바라)’, ‘so I thought you may want this(네가 이걸 원할 거라고 생각해)’, ‘the annual apples have turned up(올해의 사과가 열리기를)’, ‘another wonderful day(또 다른 멋진 날)’ 등, 빛바랜 엽서 위를 수놓은 고운 말들로 여전히 유효한 위로가 가능한 것은 우리 삶의 디테일이 서로 다를지라도, 울고 웃고 서로를 끌어안으며 사랑하는 진부한 플롯을 누구나 갖고 있기 때문이다.
한편 [April]시리즈에서 작가는 모두가 기억하는 4월에 관한 이야기를 한다. 멀리 있던 우리는 뉴스의 사고 장면으로 그 사건을 기억하지만, 진도에서 직접 그 일을 겪은 사람들의 기억은 가지각색일 것이다. 대부분의 거대한 사건들이 그렇다. 멀리서, 그리고 한참을 지나서 사건을 바라보면 하나의 장면이나 맥락으로 압축이 가능하지만, 현장에는 언제나 다양한 색깔의 감정과 기억들이 얽혀 있다. 작가는 진도에 남은 그 흔적들을 읽는다. 아주 평범한 진도의 풍경 곳곳에는 조금씩 다른 모습의 상흔이 남아 있다. 진도의 사진에 숨구멍을 트고 바느질을 반복하는 작가의 행위는 치유와 동시에 잊지 않을 흔적을 남기겠다는 다짐이기도 하다.

지지 않겠다는 말
‘한 땀, 한 땀’ 만들었다는 표현은 그만큼 공들여 노력했다는 뜻일 테다. 평생을 바느질로 살아간 여자들의 이야기를 담은 김숨의 소설 [바느질하는 여자]에서는 누비 바느질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 한다. ‘만약 어머니가 한 땀 떠 넣을 때마다, 한 땀, 한 땀마다 복을 빈다고 가정을 할 경우, 천 땀이면 천 번 복을 빌어 지은 저고리를 입는 것이었다. 만 땀이면 복을 만 번 빌어 지은 옷을 입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바느질 하는 사람들은 ‘한 땀’마다 마음과 숨을 불어 넣는 것이다.
김진희의 작업도 그렇다. 기쁨과 슬픔과 사랑과 상처가 차곡차곡 쌓여 한 자락의 삶을 이루기에, 그리고 오늘의 내가 어제보다 나은 것은 경험과 감각이 축적되어 더욱 단단해졌기 때문이기에, 상처의 흔적이라도 매끈히 지울 필요는 없다. 과거를 끌어안고 앞으로 나아가는 과정이 중요하다. 또한 다채로운 인생의 흔적들이 만들어낸 새로운 국면은 무대의 막이 오르듯 극적으로 등장하지 않는다. 다만 꾸준한 일상으로 삶을 잇다보면 슬며시 새로운 빛이 보일 것이다. 그래서 김진희는 흔적을 외면하지 않은 채, 한 땀에 따스한 위로와 촘촘한 치유, 또 다른 한 땀에 조심스런 희망을 담아 느리지만 꼼꼼한 바느질을 지속한다.
기억하고 위로하고 기원하는 작가의 제의적 움직임을 통해 가느다란 실들이 꾸준히 모이면, 마침내 사진만 보아서는 보이지 않던 것, 작가의 시선으로 본 것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그렇게 보이던 풍경과 보이지 않던 감정의 흔적이 한데 어우러져 완성된 이미지는, 원래 그 자리에 존재했던 것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전에 없던 새로운 것이기도 하다. 이 과정은 어쩌면, 천천히 잔잔하게, 그러나 지지 않겠다는 말의 다른 표현인지도 모른다.

글. 김지연 (independent writer)

김진희 JinHee Kim


1985 부산 출생
- 2008 중앙대학교 사진학과 졸업
- 2018 홍익대학교 대학원 디자인학부 사진전공

■ Exhibitions
Solo
2018 『다시, 봄』, 갤러리 구, 서울, 한국
2017 『송은 수장고: 화이트 큐브 프로젝트 [She-말을 했지만]』, 송은 수장고, 서울, 한국
2017 『Ob-la-di, ob-la-da』, BMW Photo Space, 부산, 한국
2016 『Love From Mary』, 갤러리 구, 서울, 한국
2014 『이름 없는 여성, She』, 송은아트큐브, 서울, 한국
2012 『whisper(ing) 』, 트렁크 갤러리, 서울, 한국
2012『whisper(ing) 』, Place M Gallery, 도쿄, 일본

Group
2017 291 레포트 - part.1, 공간291, 서울, 한국
2017 HEXAGON : 경계를 넘다, 조선대학교 미술대학 백학미술관, 광주, 한국
2017 2017 서울사진축제 <국가, 성찰의 공동체>, 북서울시립미술관, 서울, 한국
2017 A Research on Feminist Art Now, 스페이스 원, 서울, 한국
2016 제3회 난징 국제 아트 페스티벌 - HISTORICODE: Scarcity & Supply, Baijia Lake Museum, Nanjing, China
2016 2016 Total Support for Total Museum, 토탈미술관, 서울, 한국
2016 10개의 방, 신한 PWM 해운대센터, 부산, 한국
2016 2016 대구사진비엔날레-국제 젊은 사진가전, 봉산문화회관, 대구, 한국
2016 Seoul NewYork Photo Festival 2015 초대작가전, PowerHouse Arena, 뉴욕, 미국
2015 Lies of Lies, HUIS MET DE HOOFDEN, 암스테르담, 네덜란드
2015 Seoul NewYork Photo Festival 2015 초대작가전, DDP, 서울, 한국
2015 Summer Love, 송은 아트스페이스, 서울, 한국
2015 Beyond Landscape, ArtN Space, 상해, 중국
2015 거짓말의 거짓말, 토탈 미술관, 서울, 한국
2015 장면의 탄생, 갤러리 룩스, 서울, 한국
2014 이안과 안목, 류가헌, 서울, 한국
2014 Young Portfolio Acquisitions 2013, 기요사토 사진 미술관, 기요사토, 일본
2013 전주사진페스티발 - new urban scape, 갤러리 옵센, 전주, 한국
2013사진비평상 역대 수상자전, 이어지다_succeeding, 이앙갤러리, 서울, 한국
2011 청년미술프로젝트 포트폴리오 도큐멘터, EXCO, 대구, 한국
2011 제 12회 사진비평상 수상자전, 이룸 갤러리, 서울, 한국
2009 국제사진교류전, 울산아트센터, 울산, 한국
2008 "오늘날의 동화" 서안미술대전, 서안예술학교, 서안, 중국 (Xian Art School, China)
2007 tempering 초대전, 아트센터보다, 서울, 한국
2006 tempering, 몽상스튜디오, 서울, 한국

■ Awards
2017 2016 제3회 난징 국제 아트 페스티벌 아카데믹 어워드 수상, 난징 국제 아트페스티벌, 난징, 중국
2016 대구사진비엔날레 포트폴리오 리뷰 ENCOUNTER 우수작가 4인 선정, 대구사진비엔날레, 대구, 한국
2011 제 12회 사진비평상, 아이포스, 서울, 한국

■ Publications
2016 Love From Mary, GRAPHITE ON PINK, 서울, 한국
2010 whisper(ing), 이안북스, 서울, 한국

■ Collections
기요사토 사진 미술관 Kiyosato Museum of Photographic Arts
고은사진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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