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cannot see this page without javascript.

메뉴 건너뛰기

조회 수 1438 추천 수 0 댓글 0
Extra Form
전시제목 째르빼니_ 우즈베키스탄의 고려인
전시기간 2014년 8월 19일(화) ~ 2014년 8월 31일(일)
전시장소 류가헌
갤러리 주소 서울 종로구 통의동 7-10 / 3호선 경복궁역 4번 출구 02-720-2010
갤러리 홈페이지 http://www.ryugaheon.com

uzbekistan_강라이사_일상생활_yik ota_031_hangeumsun_020613.jpg

uzbekistan_강라이사_일상생활_yik ota_031_hangeumsun_020613


uzbekistan_림리하르드_namangan_094_hangeumsun_140613.jpg

uzbekistan_림리하르드_namangan_094_hangeumsun_140613


uzbekistan_박알렉산드로_시온고_150_hangeumsun_010613.jpg

uzbekistan_박알렉산드로_시온고_150_hangeumsun_010613


uzbekistan_양니꼴라이_김병화농장 ТАШ_071_hangeumsun_030613.jpg

uzbekistan_양니꼴라이_김병화농장 ТАШ_071_hangeumsun_030613


uzbekistan_풍경_시온고_213_hangeumsun_040613.jpg

uzbekistan_풍경_시온고_213_hangeumsun_040613


  전시소개

우즈베키스탄에서 살아가는 고려인들의 오늘

한금선 사진전 <째르빼니> 819일부터 갤러리 류가헌

 

러시아어 째르빼-, 우리말로 괜찮아혹은 참아야 해라는 뜻이다.

1937년 스탈린의 강제이주 명령으로, 연해주에 살던 고려인들이 목적지도 모르는 채 기차에 몸을 실었다. 우즈베키스탄으로, 카자흐스탄으로... 6천 킬로미터가 넘는 긴 여정이었다. 이 강제이주 기간 동안에만 1만 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죽었다. 어린 자식이 죽으면 열차 미닫이문 밖으로 시신을 버리며 갔다. 도착해서도 굴을 파고 살거나 마구간에서 살며 굶주림을 견뎠다. 간신히 살려 온 자식을 이리가 물어가기도 했다.

 

기차에서도 죽지 않고, 이리에게도 물려가지 않고 살아남은 아이들이 우즈베키스탄에 살고 있는 지금의 고려인 1세대들이다. 이주에서 정착까지의 험난한 시간들을 지나오는 동안, 이들은 째르빼-, 째르빼-라고 스스로를 다독이고 서로를 부축했다. 그것은 2세대들에게도 유전되어, 지금도 우즈벡의 고려인들은 삶의 어느 힘겨운 순간과 마주치면 째르빼-, 째르빼-라고 말한다.

 

사진가 한금선의 4번째 개인전 <째르빼니>, 바로 이 우즈벡의 고려인들에 관한 것이다. 그녀는 2013년 초여름, 대구 인문사회연구소와 함께 구술 기록과 사진 기록을 위해 우즈벡의 고려인들을 만났다. 양 니꼴라이, 강 라이사, 박 알렉산드로.... 성명에서 알 수 있듯이, 몸은 우즈베키스탄에 두고 살지만 여전히 적은 조선에 둔 사람들, 근현대사의 아픈 기억들을 지닌 채 살아가는 그들의 현재를 사진에 담았다.

 

이번 전시작들은, 한금선의 이전 전시 <집시 바람새 바람꽃><꽃무늬 몸뻬, 막막한 평화>를 비롯한 국가인권위 사진집 <눈 밖에 나다> 등에서 보여준 바 있는 사진적 접근 방식과는 다른 면모를 드러낸다. 인물이 직접적으로 정면에 노출되는 인물 중심 다큐멘터리 사진에서, 공간과 사물에 더 많은 시선을 할애하는 사진으로 옮겨왔다. 또한 주관적 개입을 강하게 드러냈던 흑백사진에서 벗어나 강렬한 컬러 사진으로 일관한 것도 흥미롭다. 우즈베키스탄 고려인들의 일상 풍경에 나타나는 독특한 색감이 생생하게 전달된다.

 

우즈벡의 고려인을 통해 우리나라에서 가장 활발하게 활동 중인 여성 다큐멘터리 사진가 중 한명인 한금선의 사진적 변이 과정을 볼 수 있는 것도 이번 전시의 흥미로운 관람 요소 중 하나이다. 사진들은, 우선 아름답다. 어딘가에서 조용히 음악이 들려오듯, 애잔한 정서가 바탕에 흐른다. 밖의 역사에 관해 비통하게 쓰인 서사시가 아니라, 제 몸과 삶 안에 역사의 부침을 새기고 있는 사람들에 관한 서정시다.

 

사진가 한금선은 말한다.

내 사진을 통해 째르빼-란 단어를, 그렇게 말하지 않고는 살아낼 수 없었던 사람들을 기억하고, 그들이 우리 곁에 있음을 떠올릴 수 있기를 바란다.”

한금선 사진전 <째르빼니 _ 우즈벡의 고려인들>819일부터 2주간 사진위주 갤러리 류가헌에서 전시된다. 오프닝인 19일에는 전시 제목과 동일한 제목의 사진집(봄날의 책 발행)의 출판기념회도 열린다. 전시 문의 : 류가헌 02-720-2010



  작가노트

러시아에서 분리 독립된 우즈베키스탄의 고려인들은 대부분 노부부만 살고 있거나 배우자와 사별한 노인들은 홀로 살고 있다. 집단농장시절 특유의 근면함으로 일정 지위를 확보해 여러 개의 방을 가진 큰 주택에서 기거하지만 홀로 사는 노인에게 집은 너무 넓다. 화려한 침대와 커튼이 있는 방은 빈방이 되었고 볕이 잘 들어오는 한쪽 방에서 생활하신다. 베게 밑 화투와 TV리모컨이 나란히 놓여져 있다. 강라이사 할머니의 방이다.


현재 우즈베키스탄의 대부분의 젊은 고려인들은 러시아로 돈을 벌기 위해 일시적 혹은 영구이주를 하였다. 가족을 그리워하는 마음은 고국을 방문하고픈 마음으로 이어졌다. 김나자 할머니는 인터뷰 내내 당신이 언제 고국방문이 가능한지 물어 보셨다.


은퇴를 하신 지금도 림리하르드 할아버지는 농기구를 손에서 놓치 못하신다. 아파트 일층에 위치한 할아버지는 집 뒷문으로 이어진 텃밭치곤 많이 넓은 그곳에 농사를 지어 인근에 홀로 사는 할머님들에게 야채를 나누어 주신다. 림리하르드 할아버지의 농기구는 당신의 손을 닮아 끝이 뭉툭해져 더욱 힘 있어 보인다.


림리하르드 할아버지 텃밭에서 자란 살구와 체리가 예쁘게 손님을 기다린다. 건조한 땅이 선물한 견과류와 언제나 상의 주인인양 자리하는 통밀 빵 리뽀슈카도 함께.


박 알렉산드로 할아버지는 새벽4시 밭일을 시작하신다. 굽힌 허리를 피시면서 이야기 하신다. “이 밭을 둘러 이쪽 집은 큰집, 저편은 작은집, 그리고 저 집 건너 고모네가 살았었지. 그땐 담장도 없었지. 이젠 다 떠나고 다 모르는 사람들이 이사를 왔지. 우즈벡사람들이야. 옛날엔 싹 다 고려인들이 살았는데…….”


타슈켄트에서 멀지 않은 도시, 시온고에 고려인들만을 위한 요양원이 있다. 대한민국의 NGO가 설립하고 운영하고 있다. 거동이 괜찮으신 분들은 자주 고향에 돌아가 지내다 힘에 겨운때가 오면 다시 찾으시기도 한다.


아들을 낳고 심었다는 뒷마당의 호두나무는 니꼴라이 할아버지보다 세월을 더 많이 지낸 듯 할아버지에게 그늘을 내어준다. 


온갖 음식으로 함께 어울릴 단옷날 상차림이다. 접시에 가득담긴 밥은 또 다른 모습의 고봉밥이다. 림리하르드 할아버지 밭에서 온 쌈 채소와 콩나물, 가지무침, 만두, 양배추김치, 장아찌 그리고 보드카, 살구와 체리가 차려진다. 이젠 주방일이 힘드신 나자 할머니는 아끼는 쏘시지를 가지고 오셨다. 너도 나도 한 가지씩 가지고온 음식들이다.
‘와 너무 많은데요.’
‘오늘은 단옷날이라 가짓수가 좀 많아. 일주일에 한 번씩 음식 들고 와서 창가도 부르고 춤도 추고 놀지. 매번 음식이 넉넉하지 그래야 혼자 사는 노인들 일주일 찬거리 싸드리거든.’


멋진 왈츠!  ‘요즘 젊은 사람들은 춤출 줄도 모르고 즐길 줄 몰라.’하시면서 멋지게 춤을 추신다. 고운 한복에 장구채를 잡았던 할머니가 같은 분이셨나 싶다. 양장으로 갈아입고 왈츠를 추기 시작하시면서 할머니표정은 먼 추억 속으로 여행을 하시는 얼굴로 바뀌셨다.


끝없이 펼쳐진 목화밭. 담이나 철조망 대신 뽕나무가 그 경계에 자라고 있다. 그런데 그 경계의 뽕나무는 모양새가 다르다. 긴 가지는 사라지고 나무 몸통에 뽕잎이 자란다. 목화에게 햇빛을 내주기 위해서란다. 때 아닌 비바람에 가지 없는 잎새들이 요동친다.




  작가소개

한금선 Han Geumsun

대학에서 심리학을 전공하고, 파리 이카르 포토에서 사진을 시작했다. '집시 바람새 바람꽃', '꽃무늬 몸뻬, 막막한 평화' 사진전시와 사진집을 출판했다. 국가인권위 사진집'어디 핀들 꽃이 아니랴''눈밖에 나다'에 참여하고, 도서출판 아카이브 사진집 '사진 강을 기억하다''CT85'등에 함께 했다. 현재 국가인권위원회 발행 인권지 사진디렉터로 일하면서 사진작업을 하고 있다.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