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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제목 사람을 사랑한 시선
전시기간 2015. 2. 10 ~ 2. 15
전시장소 류가헌 Ryugaheon, Seoul
갤러리 주소 서울 종로구 통의동 7-10 / 3호선 경복궁역 4번 출구(02-720-2010)
갤러리 홈페이지 http://www.ryugaheon.com
문화정책 연구자 목수정의 저서 [월경독서]에는 “김대중은 내게 뼈아픈 실망의 이름이 되고 말았다.… 그러다가 그를 다른 눈으로 보게 된 것은 노무현 대통령의 영결식장에서였다. 권양숙 여사의 손을 잡고 아이처럼 엉엉 울던 김대중, 그것은 내가 목도한 한국 현대사의 순간들 가운데 가장 슬픈 장면이었다…”라는 구절이 있다. 한 장의 사진이 주는 울림과 여운은 긴 글이 주는 것보다 강력하다. 역사의 순간마다 그 현장을 가장 가까이서 목격하고, 진실을 전하는 사람은 ‘사진기자’이다. 예리한 눈빛으로 쉬이 지나가버릴 수 있는 순간을 포착하여 기록하는 것이 바로 사진기자의 역할이기 때문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 영결식 현장에서 ‘아이처럼 엉엉 울던’ 김대중 전 대통령의 비통함을 순간적으로 포착함으로써 한국 현대사의 ‘가장 슬픈’ 한 장면을 기록해 전한 이는 사진기자 김종수이다.
  • ⓒ김종수 Kim, Jong Soo, 28*20cm. inkjet. 2009.
    2009년 5월 29일 노무현 전대통령 국민장 영결식장을 찾은 김대중 전대통령이 권양숙 여사를 위로하며 통곡하고 있다.
  • ⓒ김종수 Kim, Jong Soo, 28*20cm. inkjet. 2007.
    2007년 5월에 평양 방문 취재 시 촬영한 북한 군인들.
  • ⓒ김종수 Kim, Jong Soo, 28*20cm. inkjet. 2007.
    2007년 5월에 평양 방문 취재 시 촬영한 평양 신발공장의 노동자들
  • ⓒ김종수 Kim, Jong Soo, 28*20cm. inkjet. 2006.
    2006년 9월 중국 베이징에서 라싸까지 이어지는 칭짱철도 취재차 방문 했던 티베트에서 만난 천진난만한 아이들.
  • ⓒ김종수 Kim, Jong Soo, 28*20cm. inkjet. 2005.
    2005년 여름에 촬영한 김종수 기자의 두 아이(딸 여경이와 아들 보건이)
  • ⓒ김종수 Kim, Jong Soo, 28*20cm. inkjet. 2005.
    2005년 4월 27일 오후 서울 종로4가 종묘공원에서 열린 ‘빈곤 해결을 위한 2005년 전국빈민대회’에 참석한 한 여성이 깨진 손톱과 반창고를 붙인 두 손을 모은 채, 비정규직 관련법 개악안을 폐지하고 강제 철거 등 빈민들의 주거권 위협을 중단할 것을 촉구하는 연설을 듣고 있는 사진.
사진으로 기억되는 시선

- 김종수 기자 3주기 추모 사진전 [사람을 사랑한 시선] 2월 10일부터 갤러리 류가헌

문화정책 연구자 목수정의 저서 [월경독서]에는 “김대중은 내게 뼈아픈 실망의 이름이 되고 말았다.… 그러다가 그를 다른 눈으로 보게 된 것은 노무현 대통령의 영결식장에서였다. 권양숙 여사의 손을 잡고 아이처럼 엉엉 울던 김대중, 그것은 내가 목도한 한국 현대사의 순간들 가운데 가장 슬픈 장면이었다…”라는 구절이 있다.

한 장의 사진이 주는 울림과 여운은 긴 글이 주는 것보다 강력하다. 역사의 순간마다 그 현장을 가장 가까이서 목격하고, 진실을 전하는 사람은 ‘사진기자’이다. 예리한 눈빛으로 쉬이 지나가버릴 수 있는 순간을 포착하여 기록하는 것이 바로 사진기자의 역할이기 때문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 영결식 현장에서 ‘아이처럼 엉엉 울던’ 김대중 전 대통령의 비통함을 순간적으로 포착함으로써 한국 현대사의 ‘가장 슬픈’ 한 장면을 기록해 전한 이는 사진기자 김종수이다.

한겨레신문 사진기자였던 김종수의 사진은 이외에도 평양 신발 공장 노동자들의 엄중함, 빈민대회에 참가한 여성의 애절함을 담고 있다. 사회에 대한 비판적인 시선과 피사체에 대한 뜨거운 공감이 만들어 낸 사진들이다. 한편으로 그의 사진은 티베트 어느 골목에서 만난 아이들의 천진난만함, 호박잎을 쓰고 있는 아이의 웃음 속 발랄함을 보여준다. 꼿꼿하고 날카로운 눈빛 속에 사람에 대한 이해와 사랑이 들어있는 까닭이다. 김종수 기자는 국내부터 해외까지 여러 현장을 다니며, 카메라 건너편에서 다른 사람들이 보지 못했던 따뜻한 미소를 무시로 지어보였을 것이다.

김종수 기자는 3년 전 병환으로 유명을 달리했다. 3주기를 추모하며 열리는 [사람을 사랑한 시선]展의 사진들은, 그러나 살아서 현장을 말한다. 추모 사진전의 전시작을 정리했던 한겨레신문 강재훈 사진기자는 김종수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설사 자신이 꺾일지언정 휠 줄 모르던 사람, 순금 같고 올곧은 나무 같던 사람, 털털한 막걸리와 고향의 흙냄새 같은 사람 김종수.”

김종수 기자가 세상을 떠나고 3년이라는 시간 동안 수많은 기사들이 보도되었고, 수많은 순간들이 사진으로 기록되었다. 하지만 그가 사진으로 보여준 ‘시선’은 이후의 수많은 기록에 의해서도 덮어지지 않았다. 김종수 기자의 ‘사람을 사랑한 시선’은 사진으로 남아 그를 그리워하는 이들에게 기억될 것이다. 한겨레신문 사진부 기자들이 기획하여 열리는 이번 사진전은 2월 10일부터 15일까지 갤러리 류가헌에서 계속된다.

전시 문의 : 류가헌 02-720-2010
김종수 기자 추모 사진전을 준비하면서

2012년 2월 19일 김종수 기자가 영면에 들고 어느새 3년 이라는 시간이 훌쩍 지났다. 그를 보낸 뒤 안타까운 마음에 "종수앓이"를 하던 한겨레신문 사진부 동료 기자들은 회의를 거쳐 2015년 2월 19일 3주기 추도식을 앞두고 김종수 기자가 생전에 남기고 간 사진들을 다시 추려 그를 기리고 추모하는 사진전을 열기로 뜻을 모았다.
추모 사진전 준비를 위해 그가 남긴 사진들을 열어보는 책임을 맡은 강재훈은 김종수 기자가 한겨레신문 사진부 기자로 근무한 19년 동안 남긴 사진들 중 그를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사진은 역시 "인간에 대한 사랑의 시선이 담긴 사진"들이라고 생각해 그런 느낌의 사진 위주로 전시작을 골랐다. 기자 생활을 한다 해도 평생 한 번 가보기 어렵다는 평양 방문(2007년 5월)사진들을 또 한 보따리로 묶었으며 2006년 9월 중국 베이징에서 라싸까지 이어지는 칭짱철도 취재차 방문 했던 티베트 사진 속에 드러나는 인간 김종수의 시선들, 그리고 자신의 가족과 함께한 예쁘고 정겨운 사진들을 묶어 냈다. 이번 추모 사진전의 사진들은 "종수앓이"로 아직도 그를 잊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 곁으로 다가와 다시 한 번 씨익 웃으며 서 있게 될 것이다. 어떤 사진을 골라도 그의 사진에서 느껴지는 가장 큰 느낌은 사람에 대한 사랑의 시선이 아닌가 싶다.
김종수 Kim, Jong Soo

1966년 전북 남원에서 태어난 김종수 기자는 산동초등학교, 용성중학교, 완산고등학교를 거쳐
1992년 고려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였다.
1993년 11월 한겨레신문사 공채 6기로 입사한 김종수 기자는
19년의 기자생활 동안 한겨레신문사내에서 다수의 특종상과 노력상을 받았으며
2006년 한국보도사진전에서 우수상을 수상하였다.
국회와 청와대 등의 출입처를 거쳐 2010년부터 한겨레신문 사진부 섹션팀장으로 일하던 중
2011년 3월 췌장암 진단을 받고 1년 가까이 투병해오다 2012년 2월 19일 영면했다.
김종수 기자의 장례식 이틀째 밤이었다. 나이가 지긋한 한 노신사가 문상을 한 뒤 나를 찾았다. “정성진이라고 합니다. 나는 김종수 기자의 얼굴을 본 적은 없어요. 신문에서 본 내 사진을 떠올리고 국회 출입 기자로 나를 촬영한 김종수 기자와 전화통화 한 게 전부입니다. 당시 내 저서에 김 기자님의 사진을 싣고 싶다며 나눈 대화가 무척 인상적이었는데 갑자기 부고 기사를 보고 이렇게 달려왔답니다.” 노신사가 건네준 명함을 보니 노무현 정부 시절 법무부장관을 지낸 정성진 전 국민대 총장이었다. 일면식도 없던 그가 추운 겨울밤에 김종수기자의 안식을 빌러 온 것이다.
2008년 촛불집회 기록집 [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습니다 ]의 책장을 넘기다 한 장의 사진이 내 마음을 붙잡았다. 2008년 6월10일 오전 8시5분에 김종수 기자가 찍은 사진에는 한 여성이 붉은색 우비를 입고 ‘국민이 준 힘으로 누구를 지키는가’라고 쓰인 붉은색 손팻말을 든 채 서 있었다. 여타의 촛불집회 사진과 별반 다를 것 없어 보이는 사진이 왜 내 시선을 붙들었을까.
2012년 3월 큰아이 담임이 한 통의 편지를 보냈다. “김종수님의 사진 기사는 제 삶 속에 의미 깊은 메시지를 심어주었어요. 현장에 직접 가지 못해도 애절한 모습과 생생한 염원, 가식되지 않은 진실이 한 장의 사진 속에 올곧게 담겨 제 마음을 울리곤 했죠. 제가 세상을 바라보는 마음의 눈이 깊어질 수 있었던 계기가 되었거든요.” [한겨레] 사진기자 김종수를 알고 있다는 것이었다. 선생님은 그동안 인권수업 자료로 김종수 기자의 사진을 주로 썼다. 처음엔 독도 사진을 찾다 우연히 김종수 기자의 사진이 마음에 들어 수업자료로 쓰기 시작했고 이후 아예 그의 사진만 찾았다고 한다. 2005년 전국빈민대회에 참여한 어느 아주머니의 새까맣고 깨진 손톱, 그리고 밴드를 붙인 주름진 손을 담은 사진은 6학년 미술 데생 수업 자료로 활용했다. 비록 손만 나온 사진이지만 아이들에게 얼굴 모습까지 연상하며 스케치를 하도록 했고 이울러 빈곤문제까지 토론해보는 시간을 가졌다고 한다. 6년 넘게 그의 사진을 수업자료로 이용하던 어느 날 선생님은 신문에서 부고 기사를 봤고 무척 아쉬웠다고 한다. 학기 초 학부모 상담을 하면서 나는 큰아이의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한 달밖에 안 됐다는 사실을 선생님에게 말씀 드렸다. 아동기초조사서에는 살아 계신 것으로 기재해 아이들의 마음을 달래주고 있노라 털어놓았다. 상담을 마친 선생님은 뭔가 뒤숭숭한 마음이 가라앉지 않아 그날 밤 잠을 설친 채 다음날 출근하자마자 아동기초조사서를 펼쳐 부모란에 기재된 김종수 기자의 이름을 확인한곤 전율을 느꼈다고 전했다. 당시 부고 기사에는 아이들 이름도 있었다. 이후 우리 가족은 선생님과 많은 시간을 함께하며 김종수 기자를 추억했다.
목수정의 저서 [월경독서]에는 “김대중은 내게 뼈아픈 실망의 이름이 되고 말았다.… 그러다가 그를 다른 눈으로 보게 된 것은 노무현 대통령의 영결식장에서였다. 권양숙 여사의 손을 잡고 아이처럼 엉엉 울던 김대중, 그것은 내가 목도한 한국 현대사의 순간들 가운데 가장 슬픈 장면이었다…”
이 부분을 읽던 나는 2009년 5월 29일 경복궁 앞뜰에서 열린 노무현 전 대통령 영결식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이 통곡하는 모습을 포착한 김종수 기자의 사진이 떠올랐다. 그 사진이 신문에 실린 뒤 주변 지인들로부터 인상적이었다는 얘기를 많이 들은 터였다.
사람마다 흔적을 남기는 방법은 다양하다. 김종수 기자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사진이다. 그의 사진을 그냥 묻어 두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는 누구보다 열혈 기자였고 마음이 따뜻한 사진기자였다. 그를 다시 찾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단순히 보도사진만 나열한 의례적인 행사가 아니라 김종수 기자의 따뜻한 마음이 묻어나는 자리였으면 좋겠다는 막연한 생각으로 묵직한 숙제 하나를 시작하려 한다.
정희경
남원골 촌놈과 함께한 20년

  오늘 효창공원 길을 걸었다. 늘 점심 식사 뒤 효창공원을 걸을 때면 함께하는 종수가 있었지만 췌장암 투병 생활이 시작된 후에는 그럴 수 없었다. 너무 많은 그와의 추억이 회사 생활 동안 있었지만 어느덧 하나 둘씩 희미해져만 간다. 나는 그와 입사 동기이자 동료 사진기자다.
1993년 10월 어느 날,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신문사 면접대기실에서 그를 처음 만났다. 당시 2명을 뽑는 면접전형에서 4명의 지원자 중 그와 내가 최종 합격했다. 나중에 알았지만 탈락한 2명 중 1명은 그와 언론사 시험공부를 같이한 아주 친한 대학친구였다. 어쩌면 종수는 그 대신 합격한 나를 살짝 미웠했을 수도 있겠다. 그렇게 시작된 인연은 20 여년이 넘는 사진기자 생활을 같이 하는 것으로 이어졌다. 불과 3년 정도 시사주간지 [한겨레 21] 사진부 파견(내가 2년 정도 했고 그는 1년여를 근무)때를 제외하고는 늘 붙어다녀야 했다.
1993년 11월 중순 늦가을. 다소 쭈뼛쭈뼛해 선배들에게 잘 인사할 줄도 모르는 나와는 달리 종수는 차렷자세로 90도 가까이 머리를 숙이며 인사하는 예의 바르고 씩씩한 스타일이었다. 당시 선배들의 말을 빌리자면 나는 이른바 반드시 군기를 잡아야 하는 ‘요주의’ 인물이었고 종수는 기대되고 촉망받는 후배였다. 하지만, 우리 둘은 다른 듯 같았다. 찰떡궁합을 자랑했다. 공교롭게도 그와 나는 나이도 같고 학교만 다를 뿐 대학입학 학번도 같았다.
당시 사진부에서는 만 3년 만에 후배를 뽑아, 선배들의 우리 둘에 대한 사랑이 분에 넘쳤다. 매일 우리 둘을 불러다 술을 사주는 선배가 끊이지 않았다. 당시 편집국 분위기(당시에는 사진을 현재의 디지털 방식이 아닌 필름으로 찍었다.)도 지금과는 많이 달라서 부원들은 1판 마감이 끝나기 무섭게 회사 앞 분식집으로 정육점으로 맥주집으로 달려가기 일쑤였다. 빈대떡으로 시작한 저녁 일과가 아침 해장국으로 이어지기가 부지기수였다. 당시 사진부 야근용 잠자리는 2층 침대였다. 아침에 눈을 떠보면 1층에서는 선배가 자고 있고 늘 그와 나는 좁은 침대 2층에서 껴안은 채 깨어나곤 했다.
그도 나도 집에서는 막내로 자랐지만 둘만 비교하자면 내가 좀 더 막내다웠다. 늘 챙기는 쪽은 종수였다. 1996년 여름이었나? 여름휴가를 냈지만 애인이 없었던 그와 나는 지리산으로 배낭을 메고 떠났다. 지금은 제한 탐방제가 실시되고 있는 칠선계곡으로 코스를 잡았다. 설악산의 천불동 계곡, 한라산의 탐라계곡과 함께 한국 3대 계곡의 하나로 꼽힌다. 지리산 등산로 중 가장 험난한 코스인 칠선계곡 길을 오르며 힘들어하던 나의 등을 밀어주던 그는 어느새 앞서가 점심과 간식을 준비했다. 친구가 아니라 형과 같이 등산한 느낌이었다. 종수는 늘 입버릇처럼 칠선계곡에 가자면 힘들어 아무도 안 따라오는데 뭘 모르고 따라온 창광이었기에 가능했다며 놀렸다.
둘이 붙어다니기에 지쳤는지 1998년에는 내가, 1999년에는 종수가 따로따로(?) 결혼했다. 신혼의 단꿈에 젖었던 이 즈음, 앞서거니 뒤서거니 출판사진부에도 발령났다. 이때 3년 정도가 그와 가장 오래 떨어진 시기인 것 같다.
결혼 전까지 홀어머니와 단둘이 살았던 종수는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면 늘 애틋해했다. 집에 들어가지 못할 일이 생기면 오로지 어머니 걱정이었다. 늦둥이로 태어난 종수이기에 더욱 그랬나 보다. 어머니를 모시지 못하는 것을 늘 아쉬워했다. 그런 어머니가 암으로 돌아가시자 그는 펑펑 울었다. 자식 된 도리로 효도를 다하지 못함을 아쉬워했다. 낮고 굵은 목소리로 어머니~ 어머니~하는 소리가 귓전에 아직도 맴돈다.
회사 앞 건널목에서 교통사고가 나 입원한 경우를 빼고는 늘 건강을 자신했던 종수가 2010년 여름께 자주 소화가 안 된다고 말했다. 둘이 사진부 팀장으로 내근을 하던 처지였기에 늘 점심을 같이했는데 속이 불편하다며 거르기도 했고 식사를 해도 더부룩하다는 말을 자주 했다. 큰 병이 있을 줄은 상상도 못했고 단지 회사 건강검진을 가능하면 일찍 받는 것으로 했다. 건강검진을 마치자마자 2010년 11월 초 광저우 아시안게임 취재차 중국으로 갔다. 한 달 가까이 이어진 취재로 아마 몸도 마음도 많이 지쳤을 것이다. 아시안게임 사진취재 특성상 식사도 거르기 일쑤고 잠도 충분히 자치 못한 채 하루의 피로를 술로 달랬을 것이다. 돌아오자마자 검진을 받은 결과 믿기 어려운 진단이 나왔다. 췌장암.
그는 수술과 항암치료 대신 자연요법을 선택했다. 하루가 1년 같았을 몇 날 며칠을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이었다. 그의 선택이 성공하기를 기원했다. 하지만, 기적이 일어나는 대신 차츰차츰 야위어만 갔다 . 길게는 한 달, 짧게는 1주일 만에 만나는 나에게 그는 늘 식사는 했냐?고 물었다. 마치 집에 찾아온 손님처럼. 죽음의 그림자가 점점 다가오는 상황에서 죽음을 이야기할 수 없는 답답함이 가슴을 짓눌렀다. 암 진단 초기를 빼고는 종수는 눈물을 보이지 않았다. 의도적으로라도 담담해지려는 모습이 느껴졌다. 하지만, 고통의 눈물은 참지 못했다. 어느 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중 한참 동안 눈을 감고 동작을 멈추더니 눈물을 흘렸다. 너무 아파서, 참을 수 없는 고통에 흘리는 눈물이었다. 내 앞에서는 흘리지 않을 작정이었는지 아무 소리도 내지 않았다. 나는 속으로 참지 말라고 소리 내 울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저 바라볼 뿐이었다.
혈당 수치가 급격히 떨어져 며칠 째 입원해 있던 어느 일요일 날 휴일근무를 마치고 병문안을 갔다. 도착해보니 상태가 급격히 나빠져 있었다. 가족이 다 모였고 동의하에 생명연장 기기를 떼내었다. 임종의 순간이 다가온 것이다. 오전까지만 해도 가능했던 아무런 의사 표시도 할 수 없는 상태였다. 이만 모든 것을 내려놓고 좋은 세상으로 가라는 누님의 말에 종수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아 ~. 그는 듣고 있었다. 눈물의 의미를 알 것 같았다. 30분이 지났을까? 그는 영원히 떠났다. 언제나 따뜻함을 품에 앉은 속 깊은 사진 기자가 말이다.
3주기다. 옆에 있다면 나의 고민을 언제 어디서든 늘 들어줬을 종수가 보고 싶다. 여기 전시된 사진을 통해, 앞으로 나올 사진집을 통해, 종수와 이야기를 나눠야겠다.

영원한 벗이고 픈 창광이가.(한겨레 사진부장)
한겨레신문이 한창 지면을 늘려가느라 사진부가 새 식구에 목말라하고 있던 1993년 겨울, 김종수! 그가 우리 앞에 나타났다. 사진부에 배치되기 전 수습기자로 경찰서를 출입하고 있는 동안 편집국을 오가다 눈이라도 마주치면, 그 질박한 얼굴로 부지런히 다가와 허리를 90도 가까이 숙여 인사를 하곤 했다. “참 공손한 막내가 들어왔구나”라는 일방적 안도감이 선후배들 사이에 퍼졌던 것으로 기억한다. 개인적으론 신문방송학과 출신이 주류를 이루고 있던 사진부에 같은 국문학을 전공한 후배가 들어오는 것이 못내 반갑기만 했다.
막상 그가 부서 배치를 받아 사진취재에 대한 도제식 교육을 받게 된 1994년 봄, 그를 가까이서 마주하곤 눈매가 꽤 날카롭다는 것을 비로소 알았다. 또 “예의바르다”와 “순종적이다”는 전혀 다른 뜻의 표현이란 것도….
김종수 기자는 기자로서의 비판의식이 충만한 이였다. 이제 막 수습을 떼고 단독취재를 나선 5월6일, 서울 한남동 단국대 앞에서 민주화를 요구하는 학생들의 시위를 취재하던 중 강경진압 상황에 대한 취재를 막으려는 경찰에게 김종수 기자가 집단구타를 당했다. 이 사실을 데스크에게서 전해 듣고 증거자료를 수집하러 단국대 방송국으로 간 나는 학생기자들이 찍어놓은 영상 안에서 그가 수많은 백골단(경찰기동대 체포조)에 둘러싸여 취재를 방해받고 있는 모습을 확인했다. 곧 폭력이 뒤따를 것이 감지되는 위협적 상황이었지만 사진을 계속 찍으려던 그는 얼굴이 돌아갈 정도의 힘찬 가격을 수차례 당했다. 주저앉을 법도 한데, 아주 꼿꼿하게 선 채로 맞고 있었다. 화가 끓어올라 다시 보기도 어려운 화면을 정지시켜 가며 몇 차례 돌려보고 카메라로 찍어 기사와 함께 신문에 실어야 했다.
신문 제작에 있어서도 그는 비판의식과 주인의식을 여지없이 드러내곤 했다. 특히 신문의 얼굴인 1면 사진이 사회적 메시지보다 볼거리 위주로 갈 때 이를 바로잡으려 애썼다. 행여 이런 일이 있고 나면 부서 회의 때‘1면 사진의 연성화’를 경계하자며 이는 한겨레신문의 연성화를 부른다고 목소릴 높이곤 했다. 이럴 때 그는 “이건 아니라니까”는 표현을 자주 썼다. 해서 가까운 선배들은 “어이, 아니라니까~”라고 그를 부르며 놀리기도 했다.
그는 리더십도 꽤 강한 편이었다. 1998년 1월 전두환 전 대통령 출소를 앞두고 우린 연희동 사저 주변에 진을 치고 있었다. 사저로 돌아오는 전 전 대통령과 그를 규탄하는 광주민주화운동 유가족들이 기습 시위에 대비하느라 주야로 교대를 하며 지키고 있었다. 이렇게 여러 명의 사진기자가 한 현장에 가게 되면 보통 연차가 가장 높은 기자가 취재위치를 정해 배치하곤 한다. 한데 그는 새벽 댓바람에 현장에 나와 여러 차례 미리 둘러본 뒤 사다리를 곳곳에 배치해 놓고 우릴 기다리곤 했다. 다소 머쓱한 표정을 지으며 “이 선배는 여기, 장 선배는 저기 어떠세요?”라며 이제와 어쩌겠냐는 배짱 섞인 권유를 한다. 취재 포인트를 보는 안목도 있어 보이고, 다른 신문사보다 앞서 자리를 잡아놓은 열성에 딱히 거절할 명분도 없어 그에게 배치당하기를 여러 날 했다.
하지만 그는 무시로 보여준 편안한 미소만큼이나 따뜻하고 여린 남자였다. 앞서 1994년 5월 그를 폭행했던 경찰들은 사건이 기사화되고 언론단체들이 규탄 성명을 내는 등 여론이 나빠지자 중징계를 당할 처지에 놓였다. 이들 중 몇몇은 기자의 집 앞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선처를 호소했다. “노모를 모시고 사는데 파면이라도 당하면 생계가 막막하다”하다며 고소를 취하해 줄 것을 읍소했다. 영상으로만 봤던 내가 더 흥분해 절대 취하하지 말라고 충고했지만 그는 “나도 어머니를 모시고 살지 않느냐”며 고소를 취하해 주었다.
그는 또 사람들과 어울리길 즐겼다. 막걸리로 유명한 학교를 나온 탓인지 불콰해진 얼굴로 탁배기 잔을 든 채 열변을 토할 땐 참 신나 보였다. 그러느라 장가도 늦게 간 그는 두 아이의 아빠인 내가 술자리에서 먼저 일어설라치면 “이 선배는 가족만 챙기는 패밀리스트야!”라고 꾸짖곤 했다. 그런 그가 두 아이를 낳은 뒤 함께 살던 일산에서 둘째 아들 세발 자전거를 밀어주다 우연히 맞닥뜨렸다. 너털웃음을 터뜨리곤 쏜살같이 자전거를 밀며 사라졌다.
취재현장에서나 일상에서나 항상 주인된 삶을 살고자 했던 그가 2010년 광저우 아시아경기대회를 다녀온 뒤 췌장암 판정을 받았다. 말 그대로 날벼락 같은 소식이었다. 2011년 2월 본격 투병생활에 들어간 그는 병마와의 싸움도 김종수 방식대로 펼쳐나갔다. 수술이 거의 불가능한 곳에 종양이 있기도 했지만, 암환자들이 일반적으로 하는 항암치료도 받지 않았다. 이른바 암과 친구하며 자연치유를 하는 쪽을 택했다. 그가 떠난 지금도 김종수다운 선택이었다고 응원을 보내고 싶다. 그를 치명적으로 괴롭혔던 암덩어리에 대해 고백해야 할 것이 있다.
그가 주인된 삶을 살고자 했던 자기확신이 강한 사람인 것처럼, 나또한 내 방식에 대한 신뢰가 강한 편이다. 2005년에 사진부장을 맡아 그에게 취재 또는 관리책임을 지우면서 많은 스트레스를 안겨주었다. 그가 “아니라니까”하면 내가 “맞다니까”하기도 수십 차례였을 것이다. 그 스트레스의 날끝이 나를 향하도록 했어야 했는데…. 미안하기 짝이 없다. 그의 발병을 확인하고, 나도 사진부장 자릴 내려놓았다.
이제 그가 떠난 지 3년이 흘렀다. 그가 남긴 흔적 중 아주 일부인 사진들을 모아 추모사진전을 연다. 그는 사진을 목적으로 삼지 않았다. 그저 사회와 소통하는 수단으로 여겼다. 그래서 자기 손으론 전시회를 열지 않았을 것이다. 잘 알면서도 우린 그를 추억하고 싶어 그의 마음이 오롯이 담긴 사진들을 꺼내든다. 그리고 혼잣말로 되뇐다. “종수, 하늘나란 자네가 먼저 들어갔으니 선배하게. 김 선배, 하늘에도 주막이 있다면 주인장하시고 탁배기 한잔 받아주소!”

이정우 한겨레신문 사진부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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