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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제목 창신동 이야기 Story of Changsin village.
전시기간 2015. 1. 26~ 2. 17
전시장소 사진‧미술 대안공간 SPACE22, Seoul
갤러리 주소 서울시 강남구 강남대로 390번지 미진프라지빌딩 22층
갤러리 홈페이지 http://www.space22.co.kr
관람시간 월~토 11:00~19:00 |일요일, 국경일 휴관
기타 작가와의 만남 : 2015년 1월 26일 (월) 4~6시 | SPACE22 세미나룸
<엄상빈의 사진 이야기 - 한금선이 풀고, 엄상빈이 짓다.>
  • ⓒ엄상빈 Eom, Sangbin
    창신동 및 동대문 일대 야경, 2014, Archival pigment print, 74✕50cm
  • ⓒ엄상빈 Eom, Sangbin
    봉제공장들이 몰려있는 창신동 647번지 일대의 겨울풍경, 2014, Archival pigment print, 74✕50cm
  • ⓒ엄상빈 Eom, Sangbin
    창신동 골목길 어귀에 ‘1970년대, 유신독재 짙은 어둠 속 희망을 일군 선구자들’ 글귀가 새겨진 석판,
    2014, Archival pigment print, 150✕100cm
  • ⓒ엄상빈 Eom, Sangbin
    돌산 일대의 가파른 급경사지에 세워진 한 건축물,
    2014 Archival pigment print, 59✕40cm
  • ⓒ엄상빈 Eom, Sangbin
    남방셔츠공장의 내부 모습, 2012, Archival pigment print, 74✕50cm
  • ⓒ엄상빈 Eom, Sangbin
    판매장으로 가기 위한 마무리 작업으로 단추달이, 세탁, 다림질이 한창인 완성공장 모습,
    2014, Archival pigment print, 74✕50cm
  • ⓒ엄상빈 Eom, Sangbin
    지하 계단에 놓인 원단, 2014, Archival pigment print, 150✕100cm
  • ⓒ엄상빈 Eom, Sangbin
    창문을 괸 실깍지들, 2014, Archival pigment print, 59✕40cm
  • ⓒ엄상빈 Eom, Sangbin
    다림판, 2014, Archival pigment print, 59✕40cm
‘사진・미술 대안공간’ SPACE22의 2015년 첫 번째 전시로 엄상빈 개인전 [창신동 이야기]를 기획한다. 그동안 [청호동 가는 길], [생명의 소리], [학교 이야기], [들풀 같은 사람들], [평창 두메산골 50년], [아바이마을 사람들] 등 사진집 출판과 전시를 통해 열정적인 작업을 해 온 엄상빈이 이번에는 [창신동 이야기]로 사진책과 전시를 펼치게 되었다. 서울시 동대문에 위치한 창신동에는 6,70년대부터 현재까지 40여 년을 버텨온 봉제 공장들이 남아 있고, 엄상빈은 창신동 봉제 공장 중에서 공장주와 근로자 등 40여 명을 만나 그들의 봉제와 더불어 살아온 이야기를 풀어낸다. 어려운 섭외와 촬영, 긴 인터뷰를 진행하며 창신동의 이야기를 인류학자처럼 정리해 낸 작가의 공들임이 높은 작업이다. 전시와 함께 그의 아홉 번째 사진책이 될『창신동 이야기』도 출판된다. 묵묵히 웅숭깊은 눈으로 오랜 시간 다큐멘터리 사진작업을 해 온 엄상빈의 사진 이야기가 설 명절을 앞두고 따뜻하고 애잔한 공명의 시간을 선사하리라 기대된다.
한 번도 말해지지 않았던 [창신동 이야기]

글 : 최연하 (SPACE22 큐레이터)

엄상빈의 사진에는 수많은 이야기가 녹아들어 있다. 동시대의 풍경과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말을 걸고, 물음을 던지는 그의 사진은 엄숙하거나 관념적이거나 도덕주의자의 교훈에 치우쳐 있지도 않다. 사라져 가는 애잔한 공간과 사람들 사이를 배회하면서 자신이 서 있는 현재적 삶에 대하여 성찰적 자세를 견지하고 있기에, 목과 어깨에 힘을 빼고 최대한 눈과 귀는 열어둘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어쩌면 남의 이야기를 잘 듣고 기록하는 일이 다큐멘터리 사진의 몫일지도 모른다. 들풀 같은 이야기에 귀 기울여 온 작가는 저마다의 이야기를 잘 전달하며 꼼꼼하고 성실하게 장거리 주자의 역할을 다해왔다. 여덟 권의 사진집을 펴내는 사이, 어느덧 서른 해가 지났다. 과작(寡作)이었고 멈춤이 없었다. 바깥세상의 빠른 변화와는 아랑곳없이 무모할 정도로 우직하게 ‘사진길’을 열어 온 그의 아홉 번째 사진집,『창신동 이야기』는 그동안의 무모함이 더해져 이루어진 책이다.

『학교 이야기』(눈빛, 2006),『들풀 같은 사람들』(눈빛, 2008),『아바이마을 사람들』 (눈빛, 2012) 에서 보여준 그의 지향점은 사진적 탐구의 궤도를 조금도 벗어남이 없이 아름다운 군무로 이뤄진 야생의 밭이었다. 그동안 사진계의 한쪽에서는 더러 사진을 신비화하고, 의도적으로 난해를 덧씌우거나 얕은 정치 지향 등등 사진의 현란한 꽃밭도 있었지만, 엄상빈이 추구해온 길은 처음부터 진정성의 길이었다. 감각적이지도 않고 건조하게 정확함을 지켜나가며 강박적일 만큼 사진의 근원적 본령에만 충실한 것이다. 그렇기에 그의 사진은 보기에 힘들다. 그러나 판소리를 들을 때처럼, 인내와 함께 보다보면 사진 속의 인물들의 너름새도 보이고 사진가의 소리와 함께 고수의 북소리도 들린다. 숯검정이 된 사람들의 이야기로부터 여린 이파리가 간지럽게 돋아나는 사연까지, 엄상빈이 풀어낸 주인공들은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정지용, [향수]) 소박한 사람들이다. 그런데 공통점이 있다면 개인이 갖고 있는 저마다의 상처가 사회적 상처와도 분리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세상을 깊숙이 살아보고 찍어낸 다큐라서 그럴까. 발견되지 못한 채 간과해버린 우리의 초상들이 엄상빈의 사진 속에서 보석처럼 반짝거린다. 그러므로 한 사진작품을 떠받치는 사진가의 진지한 생애의 형식은 매우 중요해진다. 작품이 생성되는 선험적 조건은 화려하고 강한 주제에 대한 전략적인 탐구보다, 사진가의 존재적 위치가 우위이기 때문이다. 이번 사진집『창신동 이야기』또한 거의 벗어남이 없다. 다만 그동안 사진의 무대가 대부분 강원도였다면 이번엔 서울의 한 복판, 종로구 창신동이다.

잘 정리된 낡은 사진첩 같은『창신동 이야기』를 열어보면, 1970년대부터 40여 년의 시간이 고스란히 봉합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엄상빈은 곧장 사회적 현실의 쓸쓸하고 곤란한 부분으로 침투해 들어갔다. 6,70년대 이농과 상경으로 우리의 누이들이 간신히 찾아든 동대문시장 주변의 신산한 삶, 그 흔들리는 고단한 세월은 사진 속에서 전경화 된다. 서울의 기억은 그 안에 퇴적되어 있고 그 중심에는 쪼들리는 삶들이 도시를 지탱하는 지하의 배관처럼, 혈관으로 흐르고 있다. 우리의 부모 세대가 살아온 삶-시간-세계는 닳고 닳은 다리미판과 해독 불가능한 봉제 기호들과 함께 어둡고 깊은 지하나 가파른 언덕의 쪽방에 놓여 있었다. ‘공순이’라고 불렸던, 어린 나이부터 일을 해 온 그 시대 우리들의 언니를 찾아 조심조심 한결같은 보폭으로 오르내리기를 3년. 엄상빈은 이 동네에 깃들인 생의 이야기들을 정갈하게 포착할 수 있었다. 동대문역 1번 출구에서 낙산공원 쪽으로 올라가다 보면 각종 문구류와 함께 실, 심지, 초크, 지퍼 등 재단과 봉제에 쓰이는 다양한 부자재들을 판매하는 곳이 보인다. 창신 1동과 2동을 지나며 대형 비닐봉투에 담긴 자투리 천들이 담벼락에 기댄 광경이 익숙해질 무렵, 좁고 가파른 골목길로 원단을 실은 오토바이들이 휙휙 오르내리는 모습에 멈칫 놀라기도 한다. 청년 전태일이 “근로기준법 준수”를 외치며 분신한 지 45년이 지난 이 거리에서 외국인 노동자의 모습도 쉽게 눈에 띈다. 겉모습만 보면 서울의 흔한 산동네 주택가지만 대다수의 건물 지하층과 1층에는 영세한 봉제 공장들이 대기발령상태에 놓인 것처럼 조금씩 부서지고 내려 앉아 있었다.

저임금 노동의 착취구조가 한국 산업화의 배후이듯, 창신동은 불야성이 된 한국 패션산업의 메카, 동대문의 배후이다. 하루 20~30만 명이 몰려드는 관광객과 의류도매업자들에 의해 동대문 일대는 24시간 시끄럽고, 그 뒤 하청업체와 하청인생들이 모여서 이뤄진 창신동은 종일 재봉틀 소리로 분주하다. 화려한 동대문 시장과 고졸한 동대문 너머의 산동네 창신동은 한때 3000여 개가 넘을 정도로 소규모 봉제 공장이 밀집해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대기업이 의류시장에 진출하고 값싼 임금을 찾아 동남아 등 해외에서의 주문생산이 많아지면서 창신동 봉제 공장들은 점차 쇠락해갔다. 지금은 700여 개 남짓일 뿐이다. 게다가 의류시장의 흐름이 소품종 대량생산에서 다품종 소량생산으로 바뀌면서 일감은 턱없이 줄어들었다. 중학교 2학년 때 상경하여 봉제를 시작한 이필호씨는 소품종 다량생산으로 갈 수 밖에 없는 현실을 걱정한다. 50여 년 동안 봉제 일을 해 온 공재록씨는 이 와중에 놀지 않고 일할 수 있음이 다행이라고 한다. 엄상빈이 채록한 봉제 공장을 따라 이어진 한 가족사는 우리의 근대사의 맥락으로 읽어도 무방할 것 같다. 가족의 온기로 충만한 기억의 처소-재봉틀에서 풀어낸 이야기들은 착잡하고 애잔하고 의연하다. 40년이 넘게 봉제일을 하다가 현재는 여성복 바지를 위주로 제작하는 ‘이브랑’의 주인, 홍순선은 첫 월급으로 받은 3천원을 고향으로 고스란히 내려 보냈다고. 그러니까 전라도 산골 어디 어디에서 태어나 중학교 때 상경하여, 시다로 일하다가 창신동에 봉제 공장을 차려 평생을 미싱을 돌린 우리의 엄마 그리고 ‘엄마’라는 보편적 삶은 한 개인의 이야기에서 끝나기를 멈추고 보편적 진실로 전이되는 과정 그 자체이다. 사랑이고 희생이고 지혜인 우리의 부모의 이야기는 그리하여 손을 뻗으면 닿을 수 있는 지극히 인간학적인 공간에 놓인다. 하지만 이 이야기들이 누대에 걸쳐 전해질 리는 없다. 그렇기에 오롯한 실제의 경험담, 그 경험으로부터 길어 올린 엄상빈의 사진이 상투와 감상에 젖을 위험에도 불구하고 헤진 다림판에 남은 미열처럼 그 온기라도 필요한 이유이다.

창신동의 바깥과 안을 주밀하게 살피면서 개별의 생의 이력들을 기록한 엄상빈의 사진은 많은 품을 팔아야 한다는 이유로 다들 마다하는 고전적인 다큐멘터리 기법이다. 사회 의식과 현실 인식이 구조적 동형체를 이루는 그의 사진 양식은 눈에 확 띄는 참신한 사진은 아니지만 평범해 보이는 이 사진들을 다 보고나면 자꾸 뒤를 돌아보지 않을 수 없게 한다. 사진의 프레임이 아니었더라면 알지 못했을 보통의 이야기들이 긴 여운을 남기는 건 왜일까. 사물을 왜곡하지 않고, 일상의 치장을 최소화 한 인물사진은 찍기에 어렵다. 그러나 엄상빈은 헤질 때마다 덧대어 입은 오랜 작업복처럼, 아픔과 상처의 자리가 한 땀 한 땀 봉제되어 있어 자칫 비장한 단조로 흐르기 쉬웠을 사진에 의뭉스럽고 질박한 여백을 만들었다. 사라지고 잊히는 것들, 서둘러 폐기와 망각의 영역 속으로 밀려나는 것들에 대한 애틋하고 지긋한 응시는 엄상빈 사진의 중요한 바탕이다. 현재와 미래보다 과거로 향하고, 과거의 눈으로 현재를 길항시키며 세세하게 기록하는 것. 모두에게 속한 가족사적인 서사를 창신동이라는 공간 안에 이접시키며,『창신동 이야기』는 또다시 잃어버릴 시간에 대비해 우리가 준비해야할 것은 무엇인지 안타깝게 묻고 있다.
숨을 몰아쉬게 할 정도로 가파른 언덕과 계단들, 거리 곳곳에 나붙은 ‘시다구함’, ‘객공구함’과 같은 사람 구하는 쪽지들, 그리고 열린 문틈으로 내려다보이는 지하 공간의 공장들, 골목마다 어김없이 버티고 서 있는 오토바이들 …. 이런 모습들이 우리나라 봉제산업의 1번지, 창신동 현재의 얼굴이다.

과거 6, 70년대 변변한 중공업 생산이 없을 당시, 대구나 부산지역의 신발산업과 더불어 서울 동대문 일대의 봉제산업이 우리 경제의 근간이었던 적이 있다. 이곳이 바로 그 역사의 현장이라는 사실로부터 다가온 울림이 사진작업의 시작이 된 셈이다. 말로만 듣던 그 봉제 현장은 어떤 모습일까? 열악한 환경 속에서 40여년을 버티어온 면면은 어떤 모습일까? 또 과거에는 어떤 과정을 거쳐 옷이 만들어졌고, 지금은 어떤 모습으로 바뀌었을까 하는 궁금증을 인터뷰와 사진으로 기록한지 3년여 만에 맺은 결실이다.

적게는 3천여 개, 많게는 6천여 개라고 말하는 창신동 봉제공장 중에서 공장주, 종업원, 중국 동포, 네팔 근로자 등 40여 명을 만나 그들의 봉제와 더불어 살아온 이야기를 들었다. 함께 펴내는 책(『창신동 이야기』눈빛출판사)에는 33인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역시 전라도나 강원도 출신이 많았다. 과거 그 지역에 힘을 쓸 만한 공장지대가 없었으니, 그 만큼 일자리가 적었음을 뜻한다. 따라서 생활이 어려운 사람들이 일찍 대처로 나가 돈을 벌어야 했으리라.

특히 봉제의 특성상 많은 수를 차지한 여성 근로자들의 지난 삶에는 더 큰 애환이 묻어있다. 어린 여성 근로자들이 오직 기술을 배우겠다는 일념으로 겪어내야 했던 힘든 과정도 눈물겹다. 그러나 성년이 되고 결혼을 한 이후에도 자식으로서 뿐만 아니라, 아내, 엄마, 직장인으로 1인 4역을 감당해내야 했던 과정은 어린 시절에 비할 바가 아니다. 일방적인 희생을 강요당하고도 당연한 것처럼 취급되던 여성에 대한 우리의 모순된 편견이 곳곳에 드러나 있다. 또 자식을 위해서라면 무던히도 인내하던 여성 근로자들의 삶에는 숙연해지기까지 했다.

이를테면 “처음에는 5,900원 받다가 3개월 지나니까 11,000원으로 올려줬어요. 너무 너무 좋아서 제대로 걸어가질 못했어요.”는 1976년 16살짜리 한 소녀의 이야기다. 그리고 “1월에 가서 2월 10일에 첫 봉급을 탔는데, 기본급 60,000원, 야근하면 주는 특근 수당 64,000원해서 124,000원을 처음 받았어요. 너무 기뻐서 울었어요. 경리 누나들이 왜 우느냐고 달래고 그랬어요.”는 1982년 17살짜리 한 소년의 이야기다. 구술에서 보듯이 어린 나이에 노동으로 얻은 대가에 대한 마음가짐은 요즘과는 사뭇 다르다. 흔히 아르바이트 개념의 용돈벌이가 아니라 가족의 생계와 생존의 문제였음을 알 수 있다. 이런 이야기를 시작으로 재봉틀, 또는 재단판과 더불어 살아온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3년여 이어진 이 작업은 오래도록 가슴에 남을 뿐 아니라, 작업 내내 행복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엄상빈)
엄상빈(嚴湘彬)은 1954년생으로 강원대 사대에서 수학을, 상명대 예술‧디자인대학원에서는 사진(포토저널리즘)을 전공했다. 1980년부터 1999년까지 속초고 등에서 20년간 교편을 잡았으며, 퇴직 후에는 경동대, 동우대, 상명대 등에서 사진을 가르쳤다. 현재는 민예총 속초지부장, 민예총 강원지회장을 역임했고, 현재는 동강사진마을 운영위원 운영위원으로 있다.

[개발지구](1987), [Mt. Mckinley](1988), [신평리 풍경](1995), [고성 오늘 전](1995), [청호동 가는 길](1997), [고성산불](1998), [환경사진초대전](2001), [생명의 소리](2006), [학교 이야기](2006), [들풀 같은 사람들](2008) 등 개인전 10회, 그리고 광화문 갤러리 개관 기념초대전 [서울의 화두는 평양](2000), [한국다큐멘터리사진 33인전](2004) 등 다수의 기획전 및 단체전에 참여하였다.

사진집으로는 『Mt. Mckinley』(대성, 1988), 『히말라야 안나푸르나 팡』(광명, 1993), 『청호동 가는 길』(일, 1998), 『생명의 소리』(눈빛, 2006), 『학교 이야기』(눈빛, 2006), 『들풀 같은 사람들』(눈빛, 2008), 『평창 두메산골 50년』(한상복 ․ 엄상빈 공저) (눈빛, 2011), 『아바이마을 사람들』 (2012, 눈빛) 등이 있으며 동강사진박물관, 속초시립박물관 등에 작품이 소장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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