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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2.07 01:39

박선교 사진전

조회 수 480 추천 수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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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제목 그 집의 아침
전시기간 2014. 11. 28. ~ 12. 10.
전시장소 사진공간 배다리 BAEDARI Photo Gallery
갤러리 주소 인천광역시 동구 금곡동 14-10 (070-4142-0897)
갤러리 홈페이지 http://www.uram54.com/
  • ⓒ박선교 Park, Seon Gyo
  • ⓒ박선교 Park, Seon Gyo
  • ⓒ박선교 Park, Seon Gyo
  • ⓒ박선교 Park, Seon Gyo
  • ⓒ박선교 Park, Seon Gyo
  • ⓒ박선교 Park, Seon Gyo
  • ⓒ박선교 Park, Seon Gyo
그 집의 아침

박선교

• 내가 사는 지역에는 유명한 집창촌인 청량리 588이 있다. 이 지역은 이르면 내년부터 도시재개발사업으로 인해 철거에 들어가기 시작한다.
이곳은 1950년대 6․25전쟁 중에 동부전선으로의 병력수송요충지인 청량리역에 접해 있다. 그때 생사를 예측할 수 없는 군인들과 함께 태동하였다. 그후 서울의 근대화 과정을 함께 거쳐 왔으나 더불어 사는 이웃으로는 받아들여지지 못했다. 배척과 멸시의 시선만이 이곳에 주어졌다. 엄연히 현실 속에 존재하지만 존재 바깥으로 밀려난 초현실적인 지역이다. 이곳이 완전히 사라지기 전에 그동안 준 적 없는 시선을 주기로 한다. 어쩌면 처음이자 마지막일 것이다. 그렇다면 그들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2014년 봄부터 여름에 걸쳐 내가 사는 한 지역에 대한 발견과 함께 진지한 탐구를 시도한다.

가게 안에서 뿜어져 나오는 밤의 유혹적인 불빛, 자극적인 의상과 외모. 이 모든 것은 보여주기 위해서 의도적으로 꾸며낸 설정들이다. 그 안에 분명 보여주지 않은 다른 것이 있지 않을까. 인공의 빛은 허상과 환상을 유발하지만 강한 아침 햇살은 그 모든 것을 압도한다.
그것은 허위와 가식을 벗겨내고 진실에 좀더 접근해 가는 힘을 준다. 햇살 앞에서 모든 것은 제자리에 위치하게 된다. 모든 것이 무장해제된다. 강한 흰색 햇살 아래서 겹겹이 숨기고자 했던 자신의 진짜 맨몸이 드러난다. 그 안에 과연 무엇이 들어 있을까.

부재를 통해 강화되는 묘한 존재감. 사람을 배제했을 때 이곳을 방문하는 사람들이 결코 보지 않았을 것들이 눈에 들어온다. 거기 그렇게도 다양한 사물들이 있었다니.
채도를 높여 그들에게 존재감을 준다. 그랬더니 저마다 생명체처럼 살아난다. 그리고 앞다투어 증언하기 시작한다.
화인더 너머에는 두 부류의 사람들이 발견되어진다. 현실 속에 있지만 존재로서 받아들여지지 못하고 초현실의 세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마치 다른 종인 양, 다른 인류인 양 배척되어지고 또 베일에 가려져 있다. 그러나 화인더 너머에서 발견되어지는 그들의 삶의 이면은 놀라우리만큼 나와 유사하다.
또 하나는 그들의 반대편에서 있는 자들이다. 이 사람들은 높은 편견의 장벽을 쌓고 다른 사람들을 밀어내지만 정작 자기 스스로 갇혀 있는 부류이다. 그들은 눈에 보이는 것만 믿는 사람들이고 자신의 고정관념을 결코 깨고 싶어하지 않는다. 거기에서 나를 발견한다.

• 날마다 아침잠을 설친다. 일어나면 창문부터 본다. 햇살이 좋기만을 바란다.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시간은 1시간 남짓. 흐린 날은 공친다.
좁은 골목이라 사진 찍을 수 있는 공간이 나오지 않는다. 그리고 까다로운 빛 조건을 맞추기가 참 어렵다. 작업조건도 안 좋은 환경에서 여간 끈기가 없으면 하기힘든 작업이다.
아침이라도 볼일 보고 가는 손님들이 적지 않다. 일부러 얼굴을 안 본다. 아는 사람을 만나면 나야 괜찮지만 그 쪽이 얼마나 당황스러울까.

• 할 수 있는 대로 깊이 들여다보고 싶다. 어떻게 하면 깊이 들여다 볼 수 있을까.

다양한 프레임을 사용한다.
- 넓은 프레임으로 전체를 본다. 거리를 두고 주변 환경과 함께 살핀다.
환경은 곧 배경이다. 배경을 이해한 후에 주연과 접촉할 수 있다. 이곳은 역사적 의미와 기록적 중요성도 있는 지역이다. 곳곳에서 서울의 성장과 함께 진화해오며 2014년 동시대에 적응하고 있는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마치 합창단의 조화된 하모니를 듣는 것처럼 주변의 모든 요소를 연관지어서 바라본다.
- 좁은 프레임으로 다가가서 본다. 거기 있는 사물들이 속삭이는 작은 말들도 놓치지 않고 들어본다. 개별자들의 다양한 사례와 이야기를 모두 들어주고 싶다. 누구나 하고 싶은 말을 다하도록 경청의 자세로 앞에 있어주는 것, 그것만으로도 어떤 자들은 한이 풀릴 것이다.
- 액자 프레임으로 당당히 볼 수 있게 한다. 의도적으로 시선을 유도하는 곳이지만 아무도 이곳을 당당히 들여다 본 적은 없을 것이다. 내 사진에서는 그것이 허용된다. 당당히 보되 자세히 보고 무언가 발견할 수 있다면 의미가 있지 않을까.

가급적 중립적, 중성적 시선으로 본다.
내가 가진 선입관이 강하면 깊이 들여다 볼 수 없을 것이다. 때론 긴 시선으로, 때론 아무런 사전지식 없는 자로서 담담하게 보고 싶다. 관람자의 감성과 지성을 존중하며 그것을 사용하도록 나는 한 발 뒤로 물러나 있고 싶다. 나는 그들에게 이미지 정보를 제공해주고 그들이 이미지와 소통하고 교류하는 가운데 무언가 듣고 발견하게 되기를 바랄 뿐이다. 그들이 거기서 무엇을 발견하더라도 그것은 이 작업의 소중한 소산이 될 것이다.
따라서 이미지의 특정한 요소에 시선을 유도하기보다는 화면 전체에 골고루 빛을 나누어준다. 사진 속의 모두가 시선을 받을 수 있게 해주고 골고루 발언의 기회를 준다. 그래서 차분히 긴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다. 강한 콘트라스트나 톤을 절제하고 이미지를 차분하게 구성한다.

• 이 작업이 내가 살고 있는 지역에 대한 진지한 탐구에서 시작하여 사람의 보편적 가치와 삶의 소중함에 대한 발견에 이르기를 바란다. 지역과 사람을 보는 새로운 방법론을 제시하고 그것이 담론을 유발할 수 있다면 이번 나의 작업은 의미를 얻게 될 것이다.
프레임 밖에서 부르는 소리

이 영 욱

그는 늘 다니던 길을 잃어 버렸다. 자신이 익숙한 좁고 꼬불꼬불한 길에서 불현듯 낮선 대로변으로 나왔을 때 갑자기 새로운 세상을 만났다는 기분에 사로잡힌다. 벤야민(Walter Benjamin)이 베를린의 유년시절에 길을 잃고 헤매다 게토의 거리에서 창부와의 우연한 만남처럼, 그도 어쩌면 우리 곁에 늘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는 내면 깊은 성적욕망의 무의식처럼 현대도시 한구석에 자리 잡은 꿈틀거리는 도시의 욕망과 그 속살을 보았을지 모른다. 바르트(Roland Barthes)는 진열장 쇼 케이스에 스포트라이트를 받아 모든 것이 드러나 반짝이는 보석처럼 포르노사진은 에로틱하지 못하다고 했다. 마찬가지로 보도사진도 모든 것을 까발리면서 의미를 확정하지만, 정작 대상의 존재론적 현상에 대해서는 말하지 못한다. 그래서 보도사진은 생각에 여지없이 뻣뻣하고 폭력적이다. 하지만 박선교의[그 집의 아침]은 언론보도사진과는 다르게 차마보지 못했던 흔적들이 사후에 드러나는 에로틱함이 있다. 그것은 사진이미지가 지시하는 대상의 부재에서 오는 감정, 가려진 시야 밖에서 생각에 잠길 때에만 가능하다. 이처럼 박선교의 [그 집의 아침]은 보석이 없는 텅 빈 쇼 케이스만 보이지만, 오히려 그 텅 빔이 어제 밤 이곳 홍등가에 있었을 수많은 사연들과 유혹의 불빛을 발산했던 그 현장을 묵도하게 만든다.

[그 집의 아침]은 가리고 숨기지 않는다. 유리문 안에 모든 것이 잘 보인다. 짙은 화장에 얼굴을 가리고 유혹의 홍등에 숨겨진 사물들은 아침에 차가운 빛에 노출된다. 아직도 미련이 남았는지... 덜 꺼진 실내의 붉은 빛 조명은 관객이 빠진 연극무대처럼 애달프다. 그 때 유리문 안에 놓인 일상의 사물들은 말을 하기 시작하고 작은 몸짓들을 드러낸다. 이 사물들은 일상의 여느 가정집에 있어도 무방할 별 다를 것 없는 보통의 사물들이다. 그럼에도 이것들이 특별하게 보이는 것은 장소의 특수성에 놓인 사물이기 때문이다. 그 특별함은 물론 사물에 본질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에 의미를 부여하는 우리들의 인식판단의 문제에서 온다.

박선교의 카메라 시선은 중립적이다. 자신의 감정을 최대한 드러내지 않으면서 사진의 대상이 스스로 말하게 만든다. 그러나 유독 유리문 안에 놓인 사물들의 채도가 눈에 띄게 높다. 약간의 후 보정처리와 프레임 워크로 인적이 없는 청량리 588 홍등가의 유리문 창가에 놓인 사물들에 주목하도록 했다. 그렇다고 해서 박선교의 사진이 리얼리티를 깬 것은 아니다. 어차피 세상의 모든 사진은 자연그대로가 아니다. 노출과 초점의 선택, 프레임 워크 등은 사진이 이미 이 세상을 인위적으로 가공한 증거다. 그럼에도 사진에 믿을 만한 구석이 있는 것은 사진에 찍혀진 그 대상이 존재했었다는 부정 할 수없는 이유 때문이다.

사실 사진은 아무런 말도 없고 그 이미지는 대상에 상상력을 부여하는 힘이 있을 뿐이다. 사진이 지시하는 대상은 또 얼마나 나와 무관한 것들인가! 그럼에도 우리가 사진에 의미를 부여하고 감정에 사로잡히는 것은 그것에서 나를 투영하고 본원적인 나를 만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사진의 객관성이란 얼마나 자의적인가.

박선교의 [그 집의 아침]은 자신 앞에 있었던 대상에 무언가 덧붙이지 않아도 대상 그 자체가 스스로 말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가 촬영시간을 아침시간 때를 선택한 것은 홍등가의 밤의 편견을 역설적으로 아침이라는 상징성으로 무장해제한다. 밤새 누군가를 기다렸을 의자, 꽃무늬 벽지, 열기를 시키던 선풍기, 지루함을 달래주던 라디오, 하트모양의 쿠션, 화장품과 손거울, 그리고 밖에서 잠긴 자물통. 인적 없는 텅 빈 거리의 아침은 박제된 듯이 조용히 숨죽이고 정지되었다. 그리고 비로소 사물들은 말을 건넨다. 내 목소리 좀 들어보라고......사물들이 말을 한다는 것은 결국 내가 그 사물들에 말을 붙이는 일이며, 나의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것이다. 사물의 존재감은 우연히 내게 다가와 너의 목소리를 들으라고 말한다. 그래서 사진에 찍혀진 대상이 소리치는 것이 아니라 [그 집의 아침]사진 프레임 밖에서 부르는 소리를 듣는 일이다.
박선교

학력:
홍익대학교 서양화과 졸업
총신대 신학대학원 졸업

저서:
사진집[나는학교에 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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