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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제목 겹겹-지울 수 없는 흔적
전시기간 2018. 5. 7 ~ 5. 13
전시장소 서울시민청 (서울시청 지하 1층)
갤러리 주소 서울시 중구 세종대로110
작가 홈페이지 http://juju-project.net
관람시간 10:30- 19:30
기타 - 피해여성들 사진 : 90점
- 피해 여성 75명
- 위안소, 각국의 상황, 피해자 지도 : 20점
- 증언 영상 : 8명, 30분, 한일어 자막
- 매일 17시 사진가 도슨트 있음
- 단체 관람시 별도 도슨트 가능(예약 필수)
- 피해 여성에게 엽서쓰기(상시)
주최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시민청 , 겹겹프로젝트
20여 년 전 한국의 나눔의 집에서 처음 만난 일본군 성 노예 피해자들의 가슴속에서 묻어 나오는 한 맺힌 눈빛과 말을 잊을 수 없었다. 그것이 지금까지도 내가 그분들을 만나고 사진을 찍는 원동력이다. 2001 년에는 전쟁이 끝나고서도 척박한 중국에 버려져야만 했던 조선인 피해 여성들을 만나면서 나는 가슴 깊이 그녀들의 고통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아시아 여러 나라의 피해자들까지도 만날 수 있었다. 제2차 세계대전, 일본이 전쟁을 일으킨 아시아 태평양 연안의 나라 어디든 수 많은 여성들은 일본군으로부터 성폭력을 당해야만 했다. 2013년부터는 한국, 중국, 필리핀, 인도네시아, 동티모르에서 90 여 명의 생존자들을 만났다. 중국 내륙의 오지에서부터 인도네시아, 동티모르의 변방 깊숙이 이르는 곳에서까지 살아있는 역사의 진실을 엿볼 수 있었다. 낯선 이방인의 방문에도 그녀들은 스스럼없이 나를 맞아 주었고, 가슴속에 묻어 두었던 눈물과 고통을 보여 주었다. 팔뚝에 문신으로 새겨진 일본식 이름, 토막 난 기억 속에서도 그녀들의 증언은 생생하게 전해져 왔다. 80-90 대의 고령이 되어 버린 그녀들의 가슴속에 고스란히 남아 있는 응어리는 더 이상 지울 수 없는 흔적이 되어 버렸다.
  • ⓒ안세홍 Sehong Ah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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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세홍 Sehong Ahn
오는 5월 7일(월)부터 13일(일)까지 서울 시민청(서울시청 지하) 갤러리에서 아시아의 일본군 성노예 피해 여성들의 기록인 <겹겹-지울 수 없는 흔적> 사진전을 개최한다.

일본군 성노예 문제는 한일간만의 문제가 아닌 아시아에 여러 나라에 걸친 전쟁과 인권의 문제이며, 잊어서는 안되는 모두의 역사이다. 겹겹프로젝트는 강제징집, 감금, 성폭력, 버려짐 등 이 모든 만행과 반인권적인 도발이 피해자들의 가슴속에 여전히 지울 수 없는 흔적으로 남아 있음을 확인하고 사진으로 기록하는 작업이다.

사진가 안세홍은 2013년부터 최근까지 중국의 오지 산시성에서부터 한국, 필리핀, 인도네시아, 동티모르 변방에서 잘 알려 지지 않은 90여 피해 여성을 찾아다녔다. 제 2차 세계대전이 끝난지 73년이 지났지만, 그녀들은 일본군의 만행을 생생히 기억하고 증언해주었다.

‘일본군이 왜 나를 이렇게 했는지 알고 싶다’
‘일본의 높은 사람이 직접 와서 나를 보고 사과해야 한다’ 등 이중 통역을 통해서 들을 수 있었던 이구동성의 증언에는 한 맺힌 가슴이 낱낱이 드러났다. 현지에서 살아가는 피해 여성들은 이웃의 차가운 시선, 종교적 차별, 가해국과 피해국의 책임회피로 고통은 겹겹이 쌓이고 있다.

그 동안 아시아의 기록을 재원 마련을 위해 한국에서의 스토리펀딩, 해피빈, SBS나도펀딩,스브스뉴스, 같이가치펀딩과 후원자를 통해, 일본에서는 모션갤러리 펀딩과 800여 지원자들의 후원으로 사진 작업을 진행 할 수 있었다. 또한 한번 만난 피해 여성들의 조금이라도 편안한 삶을 위해 집고치기, 의료지원, 복지용품, 생활지원 등 피해 여성들의 정의와 평화를 위한 기록과 지원을 끊임없이 하고 있다. 이번 사진전은 한국과 일본 시민들이 마련하고 겹겹프로젝트, 시민청,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가 공동으로 주최하는 사진전이다.

지난 중국에 남겨진 조선인 피해 여성들의 사진이 흑백의 대비로 보여 주었다면, 이번 사진은 색이 뚜렷한 컬러 사진을 통해 아시아의 피해 여성들의 고통이 일본군 성노예로서 지울 수 없는 흔적으로 계속해서 이어져 오는 현재 진행형임을 보여준다. 또한 화려한 색채 속에서도 그녀들의 어두운 표정의 대비를 통해 풀리지 않는 현실과 국제 사회의 무관심을 이야기한다.

사진전에는 아시아의 75명의 피해 여성들의 사진90점, 아시아 지역에 남아 있는 위안소 건물, 각국의 상황 등 사진 20점, 모두 110점을 전시하며, 그 동안 기록해 왔던 피해 여성들의 증언 영상을 최초로 공개한다. 매일 오후 5시에는 관람객들에게 사진가가 직접 도슨트(에피소드 그리고 사진설명) 진행한다. 또한 관람객들과 피해 여성들과 소통을 위해 엽서쓰기를 진행하며 다음 취재때 피해 여성들에게 전달할 예정이다.

피해 여성들이 과거의 아픔을 들추어내면서 증언과 사진 찍는 것을 허락한것은 많은 사람들이 알기를 바라고, 자신과 같은 고통이 되풀이 되지 않기를 바람이다. 그녀들의 증언은 70여년전 과거가 아닌 우리가 함께 풀어야 할 미래의 메시지이다.

겹겹-지울 수 없는 흔적


20여 년 전 한국의 나눔의 집에서 처음 만난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들의 가슴속에서 묻어 나오는 한 맺힌 눈빛과 말을 잊을 수 없었다. 그것이 지금까지도 내가 그분들을 만나고 사진을 찍는 원동력이다. 2001년에는 전쟁이 끝나고서도 척박한 중국에 버려져야만 했던 조선인 피해 여성들을 만나면서 나는 가슴 깊이 그녀들의 고통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아시아 여러 나라의 피해자들까지도 만날 수 있었다.
제2차 세계대전, 일본이 전쟁을 일으킨 아시아 태평양 연안의 나라 어디든 수많은 여성들은 일본군으로부터 성폭력을 당해야만 했다. 2013년부터는 한국, 중국, 필리핀, 인도네시아, 동티모르에서 90여 명의 생존자들을 만났다. 중국 내륙의 오지에서부터 인도네시아, 동티모르의 변방 깊숙이 이르는 곳에서까지 살아있는 역사의 진실을 엿볼 수 있었다. 낯선 이방인의 방문에도 그녀들은 스스럼없이 나를 맞아 주었고, 가슴속에 묻어 두었던 눈물과 고통을 보여 주었다. 팔뚝에 문신으로 새겨진 일본식 이름, 토막 난 기억 속에서도 그녀들의 증언은 생생하게 전해져 왔다. 80-90대의 고령이 되어 버린 그녀들의 가슴속에 고스란히 남아 있는 응어리는 더 이상 지울 수 없는 흔적이 되어 버렸다.
일본군에 의해 강탈 당한 인간으로서의 인생은 되돌릴 수 없는 현실이 되어 버렸다. 이중 통역 속에서도 낱낱이 드러나는 그녀들의 한 맺힌 가슴과 거친 숨소리는 70여 년 전의 과거가 아닌 지금까지도 이어져오는 현재 진행형이었다. 주변의 차가운 시선, 종교적 차별, 가해국과 피해국의 외면 등 이 모든 것에 그녀들의 고통은 겹겹이 쌓여만 가고 있다. 이렇게 그녀들과 함께 울고 웃으며 보내는 시간 속에서도 사진가로서 그녀들을 피사체로 바라봐야만 하는 경계에서 눈물을 흘려야만 했다. 눈물이 눈물만을 가져오는 현실을 뒤로하고 피해자들의 과거에서 현재에 이르는 삶의 내면을 카메라의 렌즈에 담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그녀들은 병들고 , 혼자서는 무엇조차 할 수 없는 몸인 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있다. 더 이상 누군가의 기억과 눈물이 아니라 이제는 모두의 역사와 인권으로 남아야 한다. 아시아의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들의 증언은 70여 년 전 과거가 아닌, 우리가 풀어야 할 미래의 메시지이다.

안세홍

마르티나(B.1930-) 동티모르카사바우크 생, 1942년, 12세, 3년간동원
부모님을 협박하고 때리며 피해자를 끌고 갔다.비슷한 시기 다른 곳에 살던 언니도 끌려갔다.
아파도 치료도 약도 안 주고, 밥만 주었다. 당시의 일을 생각만 해도 머리가 아프다.


리메이진 (B.1923-) 중국 하이난성 생, 1940년, 16세, 3개월간동원.
당시 ‘위안부’라는 말을 몰랐다.낮에는 비행장을 만드는 일을 했고,
밤에는 다른 사람들과 200미터 떨어진 곳에 5-6명의여성들을머물게 했다.
매일 2-3명의 일본군이 찾아왔다.


루시아 루리즈(B.1930-) 필리핀 아라얏 생, 1942년, 12세, 2개월간동원
3명의 일본군에게 잡혀 당시 위안소로 사용하는 아랴얏 중앙 학교로 갔다.
지금도 일본말이 들릴때면 악몽에 빠진다.
일본 정부는 전쟁 중에 일어난 일에 대해 책임을 져야한다고 말한다.


이사 다인테네(B.1925-) 인도네시아 술라웨시 생, 1945년, 20세 정도, 6개월간동원
매주 일본군 2명이 와서 데려갔다. 일본군이 화를 내며 ‘빠게로’라고 할때는 무서워 따를 수 밖에 없었다.
6개월 후 도망쳐 네덜란드인 집에 숨어 지내다 전쟁이 끝나 집으로 돌아 왔다.


이수단(B. 1922-2016)북한평안남도 생, 1940년, 18세, 5년간 중국 아청,시먼즈 위안소로 동원
중국에 남겨진 조선인 이수단 피해자는 당시의 상처로 자신의 아이를 임신할 수 없었고,
2016년 95세의 나이에 홀로 경로원에서 외로운 사투를 벌이다 운명을 달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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