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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4.18 1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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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기간 2018. 4. 20 ~ 4. 29
전시장소 소금 항아리갤러리
작가와의 만남 2018. 4. 24. 6시 (박상우중부대사진영상학과교수)
갤러리 주소 경기도파주시탄현면헤이리마을길 76-67 (031. 957. 0325)
참여작가 고정남, 손이숙, 이영욱, 조은용
장외 영역 ​ 사진의 장외 영역은 결국 찍혀지지 않은 것들이다. 프레이밍을 통해 잘려진 공간과 시간, 가시적으로 드러나는 시각적 형태는 보이지 않는 것들을 위한 자리다. 촬영 당시에 사진가의 프레이밍은 비교적 자유롭고 작가의 의도를 개입시키는 행위라고 한다면, 주어진 사진 프로그램 장치의 포맷은 바꿀 수가 없다. 그에 비해 촬영 후 작업들은 비교적 포맷을 자유롭게 변경할 수 있으나 촬영 중 프레이밍 효과는 변경할 수 없다. 물론 포토샵을 이용한 변형은 작가의 의식을 의도적으로 개입하는 자유로운 공간을 만들지만, 그 또한 입출력의 프로그램임을 상기한다면, 자유롭다고 생각되는 작가의 의도와 그 프레이밍조차 학습된 의식과 각인된 혹은 주입된 기억들의 작용에 의해 이미 결정 되었는지 모른다. 물론 통제 불가능한 어떤 우연과 무의식의 작용이 전혀 배제된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사진 작업 행위에 개입하는 사진가의 의식은 마치 전원 스위치를 껐다_켰다 점멸하는 순간처럼 분절되고 접속하고, 이어지는 사이 간극을 결코 매울 수 없다. on_off_on 그 사이에 주체적으로 개입하는 것은 차라리 관객이다. 조은용의 <환경 친화적 레이어> 시리즈 작업은 결코 사진처럼 보이지 않는다. 마치 몬드리안의 기하학적 추상화를 보는 것 같다. 왜 이런 결과가 만들어졌을까? 그것은 발전소 외벽과 연돌에 새겨진 일정한 패턴을 클로즈업해서 촬영하고 이를 다시 전개하고 재조합했기 때문이다. 시각적인 착시효과도 아닌 것이 잘 못된 지각을 일으키는 것은 습관적 의식과 접속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발전소를 찾아가 건물의 전체를 본다 한들 또 사진으로 사실적으로 기록한다 하더라도 그 위험성을 자세히 알 턱이 없다. 이미 환경 파괴 원인을 제공하는 이들 장소는 친환경적 색상과 패턴으로 디자인되어 위장하고 있어 실재 경험도, 사진도 그것을 재현하기 어렵고 그 실체를 보기 어렵다. 아름답게만 보이던 패턴이 핵발전소였다는 사실을 알고 나면 불쾌하게 느껴진다. 그것은 상투적인 의식작용이 만든 위험 신호에 대한 반응이다. 우리의 지각 작용과 인식 판단의 오류를 범하도록 유도하는 그의 작업은 사진적 행위의 과정으로서의 흔적이자 증거 없는 사진의 장외 영역이다. 고장 난 스위치 회로가 꺼졌다 켜지는 것처럼 의심스러운 의식 상태를 지각하는 것과 같다. ​ 손이숙은 촬영 당시부터 포맷의 한계를 직시하면서 구도를 잡고 그 결정을 최대한 존중한다. 이후 착화 단계에서 크로핑도 하지 않는다. 셔터를 누르는 순간은 그것이 갑작스러운 우연이라도 세밀하게 계산되어진 감각적 과정을 거친다. 그것은 훈련된 눈, 시각심리작용에 의한 무의식이 선택된 포착이다. 장소와 대상은 도시의 관심으로부터 눈 밖에 난 외곽 지대, 그녀가 <평평한 땅>이라 부르는 곳이다. 그렇다고 이곳이 특정한 장소를 가리키는 것도, 그 지역을 객관적으로 재현하기 위함도 아니다. 그때 그 장소에서 자신의 마음을 사로잡았을, 우연히 마주친 시선을 잡아끄는 것들이다. 주목받지 못한 그 평범한 것들에서 자신이 선택한 포맷과 프레이밍에서 빛나는 구도를 형성할 그런 대상들이다. 크기도 다르고 프레임도 제각각이지만, 정방형의 포맷을 일정하게 유지한다. 그것은 각각의 장면들이 단독적으로 시각적인 완결미를 가지면서도 이웃하는 다른 사진들과 마치 단어가 조합된 짧은 문장처럼 보인다. 정방형이지만, 엄격하거나 경직되지 않고 소소하게 아무것도 결정된 의미는 없다는 듯이 제시된다. 사진은 말할 줄 모른다는 것을 보여주듯이. ​ 고정남은 평소에 알고 지내는 지인들을 어떤 장소에서 촬영할지 끊임없이 생각한다. 오가다 본 그 장소를 결정하면 그곳의 배경이 될 상태에 맞추어 의상을 선택하고 소도구를 준비한다. 정면을 응시한 모델은 카메라 앞에서 마치 연출되지 않은 듯, 자연스러움으로 평소에 늘 그랬던 것처럼 그런 표정과 몸짓으로 과장되지 않는다. 그 모습은 무표정하지만 편안하다. 눈에 거슬리는 불필요한 시각적 요소는 철저하게 배제하면서도 그림자조차 얼굴에 생기를 불어넣는 미묘한 미소와 반짝이는 눈빛처럼 화면에 없어서는 안될 요소로 포착한다. 아주 작은 것들도 그 각도와 기울기, 세부적인 디테일을 놓치거나 빠트리지 않는다. 하나의 사진이 만들어지기까지 그가 선택하는 시각적 구성 요소들은 사실상 의식 속에서 그려진 것들이다. 그러니까 촬영 전 미리 선택한 배경은 모델이 있을 자리를 위한 무대이고, 인물은 의상과 소도구와 마찬가지로 그 배경과 어울리는 미장센이 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사진에서 사진가의 훈련된 뛰어난 감각과 경험으로 습득된 의식의 산물임을 잘 보지 못한다. 그만큼 그의 사진은 연출을 숨긴 듯 드러나지 않는 빼어난 평범함에 있다. 또 관객은 사진을 볼 때 습관적으로 사진가를 배제한 채로 대상을 보기 때문이다. 이영욱은 인천의 섬을 답사해서 촬영했다. 얼핏 보기에 그 사진들은 전통적인 풍경 사진이나 지역을 기록한 다큐멘터리 사진처럼 보이지만 특정한 메시지를 읽어내기 어렵다. 극적인 사건도, 스펙터클도, 장식성도 없는 사진들은 차분하지만 무엇을 말하려는지, 무엇을 보여주고 싶은지, 작가의 의도를 간파하기 어렵다. 어쩌면 가장 사진적인 이미지 그 자체일지도 모르겠다. 사진은 하나하나의 대상을 재현하는데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무제한의 귀납적인 과정에 의해 구체적이고 특수한 사실을 종합하여 그것으로부터 일반적인 원리를 추론하는 더 이상 프레이밍 될 수 없는 것을 나타낸다. 그러나 그것이 의미화 되지 못할 때 상징적이지도, 객관적 재현의 결과물도 아닌 사진 앞에 서면 우리는 더 이상 사진에서 메시지를 읽는 것이 아니라 비로소 보게 된다. 문제는 이런 사진들이 관객의 눈을 어떻게 사로잡을 지가 걱정이다. 그것은 사진의 이미지와 텍스트의 도입, 병치로 관객의 피상적인 접근과 습관화된 의식을 교란하고 즐거운 상상을 줄지가 관건이다. 따라서 이영욱의 사진은 사진의 장외 영역을 의식적으로 지향하는 게임을 하는 중이다. 사진가에게 숙명적으로 주어진 카메라 장치 포맷과 프레이밍 과정에서 발생하는 제한된 것, 주체 소멸을 경험할 수 밖에 없는 통제 밖의 사진의 장외 영역들을 메우는 것은 고정되지 않은 관객의 의식과 무의식의 작용이다. 여기 참여하는 작가들은 물론 그런 의식을 경험하겠지만, 당장에 사진의 장외영역을 자신의 작업 주제로 선택한 것은 아니다. 이것은 기획자의 의도로 던져진 키워드 ‘장외 영역’을 작가들이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에 대한 호기심과 평소 그들의 작업을 알고 지켜보면서 흥미로운 작업을 하고 있다는 전적으로 기획자의 취향이 반영된 것이다. 뭐 특별할 것 없는 전시 하나 세상에 던지면서 함께 고민하고 생각을 정리하는 또 계속 작업하는 동력을 얻고자 하는 것, 그게 즐거움이라면 소득이다.
  • ⓒ조은용
    ’환경 친화적 레이어 시리즈' 중 <고리원자력 발전소>, archivalpigmentprint, 131x100 cm, 2017
  • ⓒ조은용
    ’환경친화적레이어시리즈' 중<부천자원순환센터>, archival pigment print, 131x100 cm, 2017
  • ⓒ조은용
    ‘환경친화적레이어시리즈' 중<월성원자력발전소>, archival pigment print, 131x100 cm, 2017
  • ⓒ손이숙
    ‘평평한땅’ 시리즈중<중단된공사>_디지털 c- print,_70x70 cm_2014
  • ⓒ손이숙
    ’평평한땅’ 시리즈중<개나리>_디지털 c- print,_30x30 cm_2016
  • ⓒ손이숙
    ’평평한땅’ 시리즈중<도관>_디지털 c- print,_90 x112.5 cm_2018
  • ⓒ고정남
    바람의 봄 #01_Archival pigment print_24x16inch_2017
  • ⓒ고정남
    바람의 봄 #06_Archival pigment print_24x16inch_2017
  • ⓒ고정남
    바람의 봄 #07_Archival pigment print_24x16inch_2014
  • ⓒ이영욱
    ‘섬’_가변 사이즈_ archival pigment print, 2018
  • ⓒ이영욱
    ‘섬’_가변사이즈_archival pigment print, 2018
  • ⓒ이영욱
    ‘섬’_가변사이즈_ archival pigment print,2018

장외 영역


기획 / 글 : 이영욱


​ 사진의 장외 영역은 결국 찍혀지지 않은 것들이다. 프레이밍을 통해 잘려진 공간과 시간, 가시적으로 드러나는 시각적 형태는 보이지 않는 것들을 위한 자리다. 촬영 당시에 사진가의 프레이밍은 비교적 자유롭고 작가의 의도를 개입시키는 행위라고 한다면, 주어진 사진 프로그램 장치의 포맷은 바꿀 수가 없다. 그에 비해 촬영 후 작업들은 비교적 포맷을 자유롭게 변경할 수 있으나 촬영 중 프레이밍 효과는 변경할 수 없다. 물론 포토샵을 이용한 변형은 작가의 의식을 의도적으로 개입하는 자유로운 공간을 만들지만, 그 또한 입출력의 프로그램임을 상기한다면, 자유롭다고 생각되는 작가의 의도와 그 프레이밍조차 학습된 의식과 각인된 혹은 주입된 기억들의 작용에 의해 이미 결정 되었는지 모른다. 물론 통제 불가능한 어떤 우연과 무의식의 작용이 전혀 배제된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사진 작업 행위에 개입하는 사진가의 의식은 마치 전원 스위치를 껐다_켰다 점멸하는 순간처럼 분절되고 접속하고, 이어지는 사이 간극을 결코 매울 수 없다. on_off_on 그 사이에 주체적으로 개입하는 것은 차라리 관객이다.

조은용의 <환경 친화적 레이어> 시리즈 작업은 결코 사진처럼 보이지 않는다. 마치 몬드리안의 기하학적 추상화를 보는 것 같다. 왜 이런 결과가 만들어졌을까? 그것은 발전소 외벽과 연돌에 새겨진 일정한 패턴을 클로즈업해서 촬영하고 이를 다시 전개하고 재조합했기 때문이다. 시각적인 착시효과도 아닌 것이 잘 못된 지각을 일으키는 것은 습관적 의식과 접속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발전소를 찾아가 건물의 전체를 본다 한들 또 사진으로 사실적으로 기록한다 하더라도 그 위험성을 자세히 알 턱이 없다. 이미 환경 파괴 원인을 제공하는 이들 장소는 친환경적 색상과 패턴으로 디자인되어 위장하고 있어 실재 경험도, 사진도 그것을 재현하기 어렵고 그 실체를 보기 어렵다. 아름답게만 보이던 패턴이 핵발전소였다는 사실을 알고 나면 불쾌하게 느껴진다. 그것은 상투적인 의식작용이 만든 위험 신호에 대한 반응이다. 우리의 지각 작용과 인식 판단의 오류를 범하도록 유도하는 그의 작업은 사진적 행위의 과정으로서의 흔적이자 증거 없는 사진의 장외 영역이다. 고장 난 스위치 회로가 꺼졌다 켜지는 것처럼 의심스러운 의식 상태를 지각하는 것과 같다.

​ 손이숙은 촬영 당시부터 포맷의 한계를 직시하면서 구도를 잡고 그 결정을 최대한 존중한다. 이후 착화 단계에서 크로핑도 하지 않는다. 셔터를 누르는 순간은 그것이 갑작스러운 우연이라도 세밀하게 계산되어진 감각적 과정을 거친다. 그것은 훈련된 눈, 시각심리작용에 의한 무의식이 선택된 포착이다. 장소와 대상은 도시의 관심으로부터 눈 밖에 난 외곽 지대, 그녀가 <평평한 땅>이라 부르는 곳이다. 그렇다고 이곳이 특정한 장소를 가리키는 것도, 그 지역을 객관적으로 재현하기 위함도 아니다. 그때 그 장소에서 자신의 마음을 사로잡았을, 우연히 마주친 시선을 잡아끄는 것들이다. 주목받지 못한 그 평범한 것들에서 자신이 선택한 포맷과 프레이밍에서 빛나는 구도를 형성할 그런 대상들이다. 크기도 다르고 프레임도 제각각이지만, 정방형의 포맷을 일정하게 유지한다. 그것은 각각의 장면들이 단독적으로 시각적인 완결미를 가지면서도 이웃하는 다른 사진들과 마치 단어가 조합된 짧은 문장처럼 보인다. 정방형이지만, 엄격하거나 경직되지 않고 소소하게 아무것도 결정된 의미는 없다는 듯이 제시된다. 사진은 말할 줄 모른다는 것을 보여주듯이.

​ 고정남은 평소에 알고 지내는 지인들을 어떤 장소에서 촬영할지 끊임없이 생각한다. 오가다 본 그 장소를 결정하면 그곳의 배경이 될 상태에 맞추어 의상을 선택하고 소도구를 준비한다. 정면을 응시한 모델은 카메라 앞에서 마치 연출되지 않은 듯, 자연스러움으로 평소에 늘 그랬던 것처럼 그런 표정과 몸짓으로 과장되지 않는다. 그 모습은 무표정하지만 편안하다. 눈에 거슬리는 불필요한 시각적 요소는 철저하게 배제하면서도 그림자조차 얼굴에 생기를 불어넣는 미묘한 미소와 반짝이는 눈빛처럼 화면에 없어서는 안될 요소로 포착한다. 아주 작은 것들도 그 각도와 기울기, 세부적인 디테일을 놓치거나 빠트리지 않는다. 하나의 사진이 만들어지기까지 그가 선택하는 시각적 구성 요소들은 사실상 의식 속에서 그려진 것들이다. 그러니까 촬영 전 미리 선택한 배경은 모델이 있을 자리를 위한 무대이고, 인물은 의상과 소도구와 마찬가지로 그 배경과 어울리는 미장센이 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사진에서 사진가의 훈련된 뛰어난 감각과 경험으로 습득된 의식의 산물임을 잘 보지 못한다. 그만큼 그의 사진은 연출을 숨긴 듯 드러나지 않는 빼어난 평범함에 있다. 또 관객은 사진을 볼 때 습관적으로 사진가를 배제한 채로 대상을 보기 때문이다.

이영욱은 인천의 섬을 답사해서 촬영했다. 얼핏 보기에 그 사진들은 전통적인 풍경 사진이나 지역을 기록한 다큐멘터리 사진처럼 보이지만 특정한 메시지를 읽어내기 어렵다. 극적인 사건도, 스펙터클도, 장식성도 없는 사진들은 차분하지만 무엇을 말하려는지, 무엇을 보여주고 싶은지, 작가의 의도를 간파하기 어렵다. 어쩌면 가장 사진적인 이미지 그 자체일지도 모르겠다. 사진은 하나하나의 대상을 재현하는데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무제한의 귀납적인 과정에 의해 구체적이고 특수한 사실을 종합하여 그것으로부터 일반적인 원리를 추론하는 더 이상 프레이밍 될 수 없는 것을 나타낸다. 그러나 그것이 의미화 되지 못할 때 상징적이지도, 객관적 재현의 결과물도 아닌 사진 앞에 서면 우리는 더 이상 사진에서 메시지를 읽는 것이 아니라 비로소 보게 된다. 문제는 이런 사진들이 관객의 눈을 어떻게 사로잡을 지가 걱정이다. 그것은 사진의 이미지와 텍스트의 도입, 병치로 관객의 피상적인 접근과 습관화된 의식을 교란하고 즐거운 상상을 줄지가 관건이다. 따라서 이영욱의 사진은 사진의 장외 영역을 의식적으로 지향하는 게임을 하는 중이다.

사진가에게 숙명적으로 주어진 카메라 장치 포맷과 프레이밍 과정에서 발생하는 제한된 것, 주체 소멸을 경험할 수 밖에 없는 통제 밖의 사진의 장외 영역들을 메우는 것은 고정되지 않은 관객의 의식과 무의식의 작용이다. 여기 참여하는 작가들은 물론 그런 의식을 경험하겠지만, 당장에 사진의 장외영역을 자신의 작업 주제로 선택한 것은 아니다. 이것은 기획자의 의도로 던져진 키워드 ‘장외 영역’을 작가들이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에 대한 호기심과 평소 그들의 작업을 알고 지켜보면서 흥미로운 작업을 하고 있다는 전적으로 기획자의 취향이 반영된 것이다. 뭐 특별할 것 없는 전시 하나 세상에 던지면서 함께 고민하고 생각을 정리하는 또 계속 작업하는 동력을 얻고자 하는 것, 그게 즐거움이라면 소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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