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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제목 삼 천 원의 식사
전시기간 2014. 12. 9 ~ 12. 21
전시장소 류가헌 Ryugaheon, Seoul
갤러리 주소 서울 종로구 통의동 7-10 / 3호선 경복궁역 4번 출구(02-720-2010)
갤러리 홈페이지 http://www.ryugaheon.com
  • ⓒ김지연 Jiyeon Kim
    #1 행운집국수. 전북 임실. 2012. 80*53cm. inkjetprint
  • ⓒ김지연 Jiyeon Kim
    #2 계란 2014. 전북 완주. 80*53cm. inkjetprint
  • ⓒ김지연 Jiyeon Kim
    #3 국밥 2014. 전북 진안. 80*53cm. inkjetprint
  • ⓒ김지연 Jiyeon Kim
    #4 돼지고기. 2014. 전남 구례. 135*90cm. inkjetprint
  • ⓒ김지연 Jiyeon Kim
    #5 백양국수. 2014. 전북 임실. 80*53cm. inkjetprint
  • ⓒ김지연 Jiyeon Kim
    #6 김치수제비 2014. 전주.80*53cm. inkjetprint
  • ⓒ김지연 Jiyeon Kim
    #7 꼬막
  • ⓒ김지연 Jiyeon Kim
    #8 막걸리
‘삼천 원’이라는 단위의 삶의 무게에 관하여
- 김지연 사진전 [삼천원의 식사], 12월 9일부터 류가헌


사진가 김지연의 9번째 개인전 제목이 ‘삼천 원의 식사’라고 했을 때, 그 제목만 듣고도 ‘역시 김지연 답다’라는 말들이 돌았다. 사진작가이자 아키비스트로서 정미소, 이발소, 낡은 방 등 우리 삶에서 잊혀지고, 소멸돼 가는 것들을 기록하고 함께 공유하는 작업을 통해 ‘추억을 찍는 사진가’로 불리는 그녀이기 때문이다. 그리고는 미처 사진을 보기도 전에, 누군가 '삶은 국수가닥을 찬물이 뚝뚝 떨어지는 손가락에 둘둘 말아서 입에 덥석' 넣어 준 것처럼 물컹 그리운 감정에 휩싸이는 것이다. 12월의 찬 공기를 뚫고, 갤러리 류가헌으로 김지연 사진전 [삼천원의 식사]를 보러 가는 이유다.

전시장 안에서는, 양은그릇에 담긴 국수를 들고 선 전북 임실 행운국수집 주인 할머니, 그 장터국수의 주재료인 면 건조대 앞에 선 백양국수집 여주인, 국수의 고명으로 쓰이는 계란 한 판을 들고 선 전북 완주의 노점 주인, 돼지고기를 파는 전남 구례의 정육점 주인이 관람객을 맞는다. 모두 ‘삼천 원 짜리’ 식사를 만들어내는 사람들이다.

“이번 작업은 우리 삶에서 쉽게 접근하는 서민생활의 기본적인 물가 단위가 얼마나 무겁거나 혹은 가벼운지, 쉽게 지나치는 그런 것이 아니라 우리 삶 속에서 어떻게 각인되어지는 숫자인지를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다. 또한 현시점에서 체감하는 숫자는 세월이 지나면 어떤 무게로 기억 될지 알고 싶다. 그것은 단순한 숫자가 아니라 서민들이 삶의 무게며 단위 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김지연 작가의 말이다.

사진 속 대상들을 촬영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사진을 찍어내기까지 ‘삼천 원의 식사’를 직업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가게 문턱을 닳도록 넘어 다녔고 결국은 그들의 마음의 문까지 열고 들어가 삶을 나누고, 기다림 속에서 찍어 낸 사진인 것이다. 뜨거운 국 사발을 나르는 늙은 주인장에게는 단 2초의 촬영 시간을 할애 받기도 했다. 그들은 피사체로서 자존심을 세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국물이 식을까봐, 국수가 부르틀까봐 저어하고 재촉했다. 삼천 원의 식사가 온전한 모습을 갖도록 만드는 이들에게 그것은 생계이고 투쟁이기 때문이다. ‘존재의 일반경제’*라는 말처럼 이들은 존재하기 위해 삼천원에 의존한다. 또 다른 누군가는 존재하기 위해 삼천 원의 식사로 한 끼니를 때우듯이.

일종의 상차림처럼 [삼천원의 식사]를 감상하는 것은 관람객의 몫이다. 사진가 김지연의 작업 방식과 앞으로의 행보에 관해서는 시인 김영춘의 시어 같은 평이 들려준다. “우리 스스로가 보잘 것 없다고 여겼기에 사라지고 마는 존재들을 향해서 슬픈 척 하지 않고 쉼 없이 홀로 셔터를 눌러왔다. 그리움을 우리들의 기억 속에 기록하고 저장하기 위한 그의 남은 생애는 지금껏 그래왔듯이 또한 늘 그러하리라고 믿는다.”
사진가 김지연이 우리 곁에 있다는 것이 얼마나 고맙고도 다행한 일인지.

전시는 12월 9일부터 2주간 이어지면, 전시 기간 중에는 사진책전문출판사 눈빛에서 발행된 [삼천원의 식사] 책을 현장에서 작가 사인본으로 구매할 수 있다.
전시 문의 : 류가헌 02-720-2010

* 존재하는 자는 존재함을 유지하기 위해 먹어야 한다. 그래서 노동을 하고 대가로, 먹을 것을 구입할 수 있는 봉급을 받는다. 그러니까 ‘존재함’이란 불가결하게 봉급에, 바로 돈에 의존한다. 그래서 존재론은 돈에 대한 성찰을 빠뜨릴 수 없으며, 같은 이유에서 어떤 철학자들은 존재론이란 말 대신 ‘존재의 일반 경제’라는 표현을 쓰기도 하는 것이다.
삼천 원짜리 국수장사를 30년을 해온 사람이나 한 끼 식사를 삼천 원 주고 먹는 사람에게나 삼천 원은 절대 수치인 것이다. 삼천 원을 받아서 떼돈 벌겠다는 생각은 아예 없었을 것이며 또한 현실적으로 가능한 일도 아니다. 삼천 원을 주고 사먹는 식사는 허기를 면해주고 나름 서민생활의 구수한 정취를 느끼게 하지만 소위 성공한 사람들의 정찬에서 즐기는 스스로를 만족하게 하는 인생의 성취감 같은 것은 느끼지 못 할 것이다. 천원어치 붕어빵을 사면서, 혹은 이천 원짜리 두부 한 모를 사면서 그들에게 모델을 서 줄 것을 간청했다. 미안한 마음이 크다. 장사를 방해하지는 않았는지, 마음을 불편하게 하지는 않았는지, 때로는 뜨거운 국 사발을 나르는 늙은 주인장 앞에서 단 2초의 시간을 할애 받는다. 그들은 카메라 앞에서 지체 할 때 자존심을 세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국물이 식을까봐, 국수가 부르틀까봐 걱정을 한다. 나에게도 이런 단순하고 명료한 삶의 명분이 있을까?

어떤 장사꾼이든 장사를 취미나 재미로 하는 사람은 없다. 이들은 본인은 물론 가족의 생계를 걸고 매일매일 삶 속에서 투쟁을 한다. 카메라 앞에 선 이들의 표정 속에는 "참, 세상살이가 쉽지 않네요." 하는 것과 "이것 한 번 드셔봐요"하는 것과 "아이고, 나 참, 쑥스럽네요."하는 여러 감정들이 뒤섞여있다. 이것은 개개인의 각기 다른 표정이라기보다 모든 장사하는 사람들의 깊은 속내가 섞여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임실 강진장날 머리에 보따리를 인 할머니를 만나 사진을 찍다가 이야기가 길어졌다. 겉보리와 옥수수를 이고 와서 뻥튀기를 하려는데 사람이 너무 많아 저녁나절까지 어디서 기다려야하나 걱정을 하고 있었다. 겨울의 시골 장터는 띄엄띄엄 장꾼들이 전을 열고 있지만 바람은 난전의 천막을 휘갈기며 지나가고 있었다. 할머니는 점심때가 지났는데도 밥을 사먹을 생각도 않고 있었다. 애당초 점심값은 계획에 없는 듯했다. 나는 같이 국수나 사먹자고 권했다. 할머니는 처음 사양하더니 이네 보따리를 이고 따라왔다. 그이는 뜨거운 장터국수 국물을 마시며 “아, 맛있네!”하고 중얼거렸다. 양은 국수그릇을 움켜든 두 손은 손톱이 닳고 살결은 거칠었다. 삼천 원짜리 식사가 이런 것일 수도 있구나 하고 나는 가슴이 뭉클했다.

이번 작업은 우리 삶에서 쉽게 접근하는 서민생활의 기본적인 물가 단위가 얼마나 무겁거나 혹은 가벼운지, 쉽게 지나치는 그런 것이 아니라 우리 삶 속에서 어떻게 각인되어지는 숫자인지를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다. 또한 현시점에서 체감하는 숫자는 세월이 지나면 어떤 무게로 기억 될지 알고 싶다. 그것은 단순한 숫자가 아니라 서민들이 삶의 무게며 단위 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버리고 떠나보낸 것들을 그리움으로 기억하게 하리라
-사람들의 땀과 꿈 그리고 다정한 밥을 위하여


함께 숨 쉬며 마음을 나누던 소중한 존재들마저 언젠가 우리 곁을 떠나가고 말 것이다. 그런데도 이 평범한 소멸의 일상까지도 잊은 채 살아가고 있었다는 사실을 누군가의 사진 한 장을 통해 문득 깨달았을 때, 우리들의 가슴은 얼마나 덜컥 내려앉고 마는가. 전혀 아름답지 않기를 작정하고 나선 듯한 김지연의 사진집을 읽어가는 동안 나는 내 몸에서 나의 국과 밥이 얼마나 멀리 사라져버렸다가 겨우 겨우 길을 찾아 돌아오고 있는지를 아프도록 오래 경험해야만 했다. 아직은 우리 곁에 남아 있지만 점점 외곽으로 밀리면서 사라져 가는 ‘삼천 원의 식사’들. 매끼 끼니를 때우며 살고 있으니 우리에게서 밥 먹는 일이 통째로 사라져 버렸다고 잘라 말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우리가 오늘 먹고자 꿈꾸는 밥이 더 이상 ‘삼천 원의 식사’는 아니며 그 밥을 먹으며 함께 나누고 싶은 마음 또한 옛날과는 서로 다른 마음이리라는 사실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이번에도 어김없이 김지연은 ‘삼천 원의 식사’를 데리고 먼 길을 돌아 우리에게 되짚어 오지 않았을까. 때로는 사골 떡만두국이나 소머리국밥, 어묵우동이나 김치수제비를 들고 오기도 하고, 팥죽을 끓이거나 국수를 삶아서 쟁반에 곱게 받쳐 들고 올 때도 있다. 삶은 국수가닥을 찬물이 뚝뚝 떨어지는 손가락에 둘둘 말아서 입에 덥석 넣어주고는 어린 시절의 할머니나 어머니가 뜨거운 것을 끓여내던 어두컴컴한 부엌으로 우리를 성큼 데려가기도 한다. 따라서 ‘삼천 원의 식사’는 꼭 삼천 원을 주고 사 먹을 수 있는 한 끼의 밥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어떤 때는 꼬막 한 되 털신 한 켤레로 그 모습을 바꾸기도 하고 황석어젓 한 바가지나 나무줄기를 파들어 갈 목도장이 되기도 하는데, 여기에 이르면 ‘삼천 원의 식사’는 드디어 단순한 밥을 넘어서서 이제는 쫓겨 사라져가야 할 사람들의 애타는 땀과 소박한 꿈으로 그 의미망을 넓혀 나가게 되는 것이다.
사진 속 주인공들은 뒤틀린 손마디나 굵은 주름살을 통해 그들이 감당해 온 삶의 애환을 간간히 우리에게 보여주기도 하지만 작가는 그동안에도 늘 그래왔듯이 의도적으로 그들의 고된 노동에 초점을 맞추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들을 외곽으로 몰아붙이고 사라질 수밖에 없도록 강요하는 카메라의 저쪽 세계를 응시하며 나는 아직도 괜찮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하는 듯하다. 결국 작가는 자본의 흐름 속에서 사라져가는 우리들의 땀과 밥과 꿈과 돈에 관한 소박한 기억들을 인간의 총체적인 그리움으로 살려내겠다는 작정을 하고 있으며, 그 자리를 대신 차지하고 있는 오늘의 땀과 밥과 꿈과 돈의 욕망들을 향해 솔직담백한 맨 얼굴로 되묻고 있다. 도대체 얼마치의 꿈을 꾸기 위해 우리는 밥을 먹고 있으며 삼천 원은 어떤 가치와 꿈을 담을 수 있는 그릇이었기에 아무 것도 아닌 존재로 사라져가야 하는 가를. 그러나 작가는 그 자신이 그동안 천착해 온, ‘사라지는 것’의 중심부에 놓여 있었던 민중들의 삶’에 대한 자신의 목소리를 끝내 드러내지 않은 채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주는 일에만 열중하려고 애를 쓴다. 삶의 그물망으로 촘촘하게 이어진 인간의 그리움을 기억 안에서 살려내는 일이 행여 자신의 목소리로 인해 훼손될까봐 몹시 걱정하고 있는 사람처럼.

80년대 중반이후 서울을 버리고 내려와 지역에서 희망을 찾고자 하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끊임없이 이어져 왔다. 인간의 삶에 대한 참된 지평을 가진 그들의 실천이야말로 이 지경에 이른 이 땅의 천박한 삶 속에서도 요만큼이라도 우리를 견뎌내게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할 때가 많다. 그들이 남긴 실천의 핵심은 사라져가는 공동체적 가치를 살려내서 과거와 현재를 소통하게 하는 것이었으며, 이를 통해 비로소 살아나 자존을 지켜나가게 된 작은 존재들은 우리로 하여금 인간 하나 하나의 보잘 것 없는 삶의 흔적조차도 별처럼 반짝일 수 있다는 인식에 이르게 하였다.

2000년대에 들어와서 김지연이 시도해 온 수많은 사진작업들도 이와 맥을 같이하는 것으로서 그의 사진을 처음 발견하던 순간 나는 정말 눈을 크게 뜨고 바라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동안 공동체의 가치를 살려내고자 했던 대부분의 활동은 부문별 운동이나 지자체의 생활 정치를 통해 집단적으로 이루어져 왔다. 하지만 사진작가로서, 전시기획자로서, 아키비스트로서 보여준 김지연의 작업들은 사진공부를 통한 이론과 깨달음을 담담하게 실천해오는 과정을 반복해 냄으로써 개인 스스로 뿌리를 내려 왔다는 점에서 큰 차이를 보인다. 집단적 사고의 도움 없이 아무도 가지 않았던 길을 걸어가며 이루어 낸 한 사진작가의 지역적 성취는 반드시 평가되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무자비한 문명이라는 이름의 질주 앞에서 공동체의 가치를 살려내기 위한 한 개인의 노력은 얼마나 가엾고 무모하면서도 또한 당당하고 아름다운가. 현장에 들어가 나 스스로 공동체가 되어 살며 그 자신이 그들의 아픔이 되어 있을 때야 비로소 시작이라도 가능한 것이 아니었겠는가.

이번에 만나는 사진집에는 이러한 그의 사상과 실천이 고루 관철되어 있다. 한 작품 한 작품을 찍어내기까지 ‘삼천 원의 식사’를 직업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가게 문턱을 닳도록 넘어 다녔을 것이며 결국은 그들의 마음의 문까지 열고 들어가 이 사진들을 찍어 냈으리라는 사실을 느끼게 될 때 우리는 가슴이 저려오지 않을 수 없다. 대상의 마음을 열고 들어가 삶을 나누고 기다림 속에서 찍어 낸 사진 앞에서만 우리의 그리움은 온전히 살아날 수 있는 것이라는 생각을 이 순간에 다시 해본다.

김지연의 사진에 다가가기 위해서 ‘사라져버렸다’는 표현을 여러 번 쓰게 되었다. 하지만 솔직하게 말한다면 ‘사라졌다’기보다는 제대로 정신도 차리지 못했을 때 그들을 ‘떠나보냈거나 쫓아 보내려’ 하고 있기에 우리는 일그러진 얼굴을 하고서야 ‘삼천 원의 식사’안에 들어 있는 사진들을 읽어낼 수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야만 겨우 무너지는 스스로의 양심을 감당할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이러니 무엇인가가 사라진다는 것은 사실 얼마나 슬픈 일인가. 그런데도 어떤 사람은 우리 스스로가 보잘 것 없다고 여겼기에 사라지고 마는 존재들을 향해서 슬픈 척 하지 않고 쉼 없이 홀로 셔터를 눌러왔다. 그리움을 우리들의 기억 속에 기록하고 저장하기 위한 그의 남은 생애는 지금껏 그래왔듯이 또한 늘 그러하리라고 믿는다.

김 영 춘(시인)
김지연

사진가
공동체박물관계남정미소 관장
서학동사진관 관장

개인전
2013 정미소, 그리고 10년(류가헌. 서학동사진관)
2012 낡은 방(류가헌)
2010 근대화상회(쿤스트독. 공동체박물관계남정미소)
2009 봄날은 간다 (공동체박물관계남정미소)
2008 우리동네 이장님은 출근중 (갤러리룩스. 봄갤러리)
2007 묏동 (갤러리룩스, 봄갤러리)
2004 나는 이발소에 간다 (갤러리룩스, 옵스갤러리)
2002 정미소 (갤러리룩스. 경원아트 홀)

사진집 출간
정미소(2002. 아카이브북스).
나는 이발소에 간다(2005. 아카이브북스)
우리동네 이장님은 출근중(2008. 아카이브북스)
진안골 졸업 사진첩(2008. 아카이브북스)
근대화상회(2010. 아카이브북스)
용담 위로 나는 새(2010. 아카이브북스)
정미소와 작은 유산들(2013.눈빛출판사)
삼 천 원의 식사(2014. 눈빛출판사)

대표단체전
2014 파국 이후의 삶(서울 NPO지원 센터)
2012 실낙원(고은사진미술관)
2011 풍수지인 (류가헌. 공동체박물관계남정미소)
2010 서울 포토 2010
2009 서울 포토 2009
2007 대동산수(문화일보갤러리)
2006 대동산수(공평아트홀)
2004 다큐먼트전(서울시립미술관)

전시기획
2013 우리 동네(서학동사진관)
(공동체박물관계남정미소)
2112 할아버지는 베테랑-6.26 참전용사
2012 보따리
2011 계남마을 주변사람들의 삶과 흔적
2011 농촌을 지키는 사람들
2011 풍수지인
2011 낡은 잡지와 음악에 말 걸기
2010 진안골 졸업사진첩(진안군청)
2010 우리학교-전라북도 근대학교 100년사
2010 용담댐, 그리고 10년의 세월
2010 잃어버린 장날의 축제
2010 시어머니 보따리를 펼치며
2009 시간의 향기
2008 진안골 졸업 사진첩
2007 지역 살리기와 공공미술전 (전북도립미술관)
2007 ‘계남정미소에 사진 찍으러가요’ 청소년사진 체험 학습 및 전시
2007 작촌 조병희 선생을 기리며
2006 마이산으로 가다
2006 계남마을 사람들

수상
2004 중앙대학교 DCRC-다큐멘터리사진 기록상 특상 [나는 이발소에 간다]
2008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지원금수상 [우리 동네 이장님은 출근 중]
2014 전라북도 문화예술 지원금 [삼 천 원의 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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