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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03
2017.03.12 17:40

고정남 Jungnam Ko

조회 수 213 추천 수 0 댓글 0
Extra Form
전시제목 Song of Arirang_호남선
전시기간 2017. 3. 10 ~ 3. 18
전시장소 갤러리 브레송
갤러리 주소 서울시 중구 퇴계로 163 B1(허주회관) 02)2269-2613
갤러리 홈페이지 http://cafe.daum.net/gallerybresson
서대전에서 목포까지 261.5Km를 잇는 호남선 본선은 일제가 호남지방의 곡물 수탈을 목적으로 만든 철도로 1914년 완공되었다. 기차가 다니지 않은 전남의 어촌에서 자란 나는 전북지방을 거의 모르고 살았다. 일본유학 시절 도쿄에서 만난 오래된 일본 가옥들은 놀랍게도 고향 전남 장흥에서 보던 집들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2002년 첫 개인전 <집.동경 이야기>는 그 내용을 담고 있다. 이번 작업은 2011년부터 사진 강사로 전국을 떠돌면서 예술이란 삶 일부가 되어야 하는 것처럼 익산~김제~군산~정읍~영산포~목포까지 호남선(湖南線) 주변의 모습을 담은 것이다. 수확기에 접어든 김제평야의 노란 벼를 따라 지평선의 광활면에 가 보았다. 빈센트 반 고흐가 자살하기 직전에 그려진 그림 <까마귀가 나는 밀밭> “성난 하늘과 거대한 밀밭, 불길한 까마귀 떼, 어디로 가야 할지 알 수 없는 세 갈래 갈림길의 전경에서 그의 강한 절망감을 느낀다.”는 고흐의 그림으로부터 작업을 시작했다. 고흐는 밀밭에 반사된 강렬한 노란색과 가로로 긴 캔버스를 사용해 밀밭의 광활함을 강조했다. 나의 작업에서도 그의 프레임과 몇 개의 오브제를 차용하였다. 호남선주변 소박한 풍경과 고요해 보이던 마을 곳곳에는 한 세기가 지난 세월에도 일제강점기의 가옥과 곡물창고들이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우리의 삶과 닮아 있는 시간의 무게와 무상함, 그곳의 풍경과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막막하고 절망했을 시대의 장소를 찾아 단순한 풍경이 아닌 쌀쌀한 풍경을 삶에 대한 성찰과 저항으로 탐닉한 것이다.
  • ⓒ고정남 Jungnam Ko
  • ⓒ고정남 Jungnam Ko
    2016-김제-1
  • ⓒ고정남 Jungnam Ko
    2016-김제-2
  • ⓒ고정남 Jungnam Ko
    2016-김제
  • ⓒ고정남 Jungnam Ko
    2017-나주
  • ⓒ고정남 Jungnam Ko
    2017-익산

Song of Arirang_호남선


서대전에서 목포까지 261.5Km를 잇는 호남선 본선은 일제가 호남지방의 곡물 수탈을 목적으로 만든 철도로 1914년 완공되었다. 기차가 다니지 않은 전남의 어촌에서 자란 나는 전북지방을 거의 모르고 살았다. 일본유학 시절 도쿄에서 만난 오래된 일본 가옥들은 놀랍게도 고향 전남 장흥에서 보던 집들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2002년 첫 개인전 <집.동경 이야기>는 그 내용을 담고 있다.

이번 작업은 2011년부터 사진 강사로 전국을 떠돌면서 예술이란 삶 일부가 되어야 하는 것처럼 익산~김제~군산~정읍~영산포~목포까지 호남선(湖南線) 주변의 모습을 담은 것이다. 수확기에 접어든 김제평야의 노란 벼를 따라 지평선의 광활면에 가 보았다. 빈센트 반 고흐가 자살하기 직전에 그려진 그림 <까마귀가 나는 밀밭> “성난 하늘과 거대한 밀밭, 불길한 까마귀 떼, 어디로 가야 할지 알 수 없는 세 갈래 갈림길의 전경에서 그의 강한 절망감을 느낀다.”는 고흐의 그림으로부터 작업을 시작했다. 고흐는 밀밭에 반사된 강렬한 노란색과 가로로 긴 캔버스를 사용해 밀밭의 광활함을 강조했다. 나의 작업에서도 그의 프레임과 몇 개의 오브제를 차용하였다.

호남선주변 소박한 풍경과 고요해 보이던 마을 곳곳에는 한 세기가 지난 세월에도 일제강점기의 가옥과 곡물창고들이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우리의 삶과 닮아 있는 시간의 무게와 무상함, 그곳의 풍경과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막막하고 절망했을 시대의 장소를 찾아 단순한 풍경이 아닌 쌀쌀한 풍경을 삶에 대한 성찰과 저항으로 탐닉한 것이다. --

예술로 역사를 말하는 어떤 한 방식


이광수 (부산외국어대 교수. 사진비평가)


‘역사’란 지나간 과거이기도 하고, 그 지나간 과거를 기록해 놓은 것이기도 하다. 전자에 있어서는 이견이 없지만 후자에 있어서는 그 성격과 방법론에 대해 끊임없이 논쟁이 이어져 오고 있다. 기록으로서의 역사란 인간을 중심으로 과거의 여러 사실(事實)들 가운데 일부를 취사선택하는 일이다. 그 기록을 하는 사람의 기준이 따를 수밖에 없으니 애초에 절대적 객관성이란 불가능한 것이다. 기록자는 여러 사실들 가운데서 자신이 판단할 때 역사적 가치가 있다고 하는 것들을 골라 사실(史實)로 선택해 시간적 순서에 따라 재구성한다. 이때 대부분의 역사가는 주어진 사료를 종합적으로 이해하고 검증하고 판단하는 일련의 과정을 거친 후 논리적으로 서사를 구축 하여 재구성한다.
문제는 여기에서 발생할 수 있다. 모든 사람이 동일하게 가치 부여를 할 수 있는 건 있을 수 없다. 설사 그런 것이 있다손 치더라도 다수의 가치가 어떤 특정인 소수의 가치보다 더 우월하거나 우선해야 한다고 평가할 수는 없다. 또 아무리 논리적으로 재구성한다 할지라도 그것이 분명한 인과 관계를 설명하는 과학과 같을 수 없는 것은 분명하다. 그래서 역사의 재구성을 반드시 이성과 산문으로만 해야 한다는 말에 대해 토를 다는 사람들이 생긴다. 왜 감성과 시(詩)로는 할 수 없다는 말인가? 이런 몇 가지 점을 고려해 볼 때, 지금까지 우리에게 널리 인정되어 온 ‘역사’는 여러 역사들 가운데 그저 어떤 하나일 수밖에 없다. 이 사실은 어떤 특정 개인이 갖는 혹은 그에게만 해당하는 어떤 역사성이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특정 개인에게만 해당되는 역사성. 그 위에서 재구성하는 역사는 결국 예술의 태도와 가까워진다. 객관적 사실로부터 멀어지고 주관적 감성의 해석을 향해 가는 것이다. 당연히 널리 일반적으로 공유될 수 없는, 나만의 예술 방식으로 말하는 역사다.
사진가 고정남이 ‘호남선’이라는 제목으로 묶은 수 십장의 사진으로 과거 일제 강점기 역사를 말하는 것이 이러한 역사다. 그는 일제 강점기 때로 거슬러 올라갔다가 어렸을 적을 지나 현재에 이르는 역사를 말하고자 한다. 기억의 흐름 위에서 하는 재구성이다. 그 안에서 고정남은 국가나 민족 혹은 사회라는 거시의 틀도 중요하지만 '나'의 관점도 중요하다는 사실을 말하려 한다. 그 안에서 거시가 아닌 일상의 미시를 말하는 것이 하찮은 것이 되지 않는다. 글로 하는 기록이라 할지라도 정치와 사회 변동을 기록한 것은 가치 있는 일이고, 사고와 관념 혹은 손에 쥘 수 없는 어떤 세계를 기록한 것은 기록으로서 가치가 떨어진다고도 할 수 없다. 역사를 말하려 함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나'는 어떤 역사를, 어떤 방식으로 기록할 것인가의 문제일 뿐 어떤 것이 어떤 것보다 더 정확하고, 의미 있는 가치를 갖는가에 대한 평가를 할 수 없다. 바로 이 점에서 사진이라는 예술로 말하는 고정남이 하는 역사 말하기의 개념이 성립한다.
어차피 소위 이성과 객관을 바탕으로 산문이나 수치를 이용하여 쓰는 과학적 기록의 관점이라 할지라도 모든 시간과 장소와 대상에 대한 것을 다 기록할 수는 없다. 과학과 통계라는 아주 촘촘한 그물코의 힘을 빌린다 할지라도 그 그물코 사이로 빠져나가 버리는 그 개인들의 ‘하찮은’ 과거는 많을 수밖에 없다. 이들이 누락되지 않도록 막을 수 있는 장치는 있을 수 없다. 글이 아닌 기록적 다큐멘터리 사진으로 하는 역사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사진가란 좋은 미장센의 이미지를 만들어낼 수 있는 여러 조건이 만들어질 때 셔터를 누르는 법이기 때문에 결국 그 사진이라는 것은 고작 장면이 될 만한 곳 혹은 소재를 찾아다니면서 이른바 채집을 한 순간의 재현일 뿐이다. 그러니 모든 장면을 그것도 사진가의 관점이나 느낌을 배제한 채 객관적인 이미지를 만들 수도 없고, 그것들로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기록을 남길 수도 없는 것이다.
고정남의 ‘호남선’ 작업이 사진으로 말하는 역사가 되는 것은 그가 보는 과거가 궁극적으로 기억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기억이란 주체와 객관적 현실 사이에 존재하는 해석이다. 기억은 드러나지 않고 알려지지 않은 것을 드러내고 알리는 것이다. 그것은 구전과 함께 사료의 중요한 형태 가운데 하나임에는 분명하나 그것을 드러내는 주체에 따라 다양하게 나타나고, 그 인과 관계나 전개 과정이 일정하지 않아 모호하고 부정확하기 때문에 그 동안 널리 받아들여진 단일화되고 표준화된 역사로부터는 거부당해 왔다. 그래서 기억은 비(非)근대적인 것이고 비(非)체계적이며 비(非)과학적이다. 역사를 이성과 객관의 차원에서 본다면 기억은 분명히 비(非)역사적이다. 나아가 그 단일화되고 표준화된 역사가 문명의 소산이라는 점에서 보면 기억은 문화의 문제이기도 하고, 문명과 대척점에 서있는 폭력의 문제이기도 하다. 문화는 우(優)와 열(劣)을 구분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리고 해석의 문제라는 점에서 여러 개인의 ‘역사들’을 복원하는데 필요하다는 차원에서의 의미다. 이 점에서 문화는 다시 폭력의 문제로 연결된다. 폭력은 근대성으로 표준화된 하나의 ‘역사’로부터 배제된 자들의 감성과 관련된다. 공공성이라는 이유 아래 배제되어 버린 개개의 이질적이고 감성적인 기억들은 폭력의 관점에서 끌어올리면 또 하나의 역사가 될 수 있다. 그것이 바로 기억의 역사다. 기억은 문화적 맥락에서 의미화의 과정을 거치면서 만들어진다. 다시 말하면 기억은 이미지, 의례, 기념물, 박물관 등을 통해서 유지된다. 그래서 매체의 영향을 받지 않은 기억이란 존재할 수 없다. 이 점에서 사진은 본질적으로 시간의 어느 한 순간을 포착해놓은 것이기 때문에 즉 객관적 맥락과 단절되거나 은닉되기 때문에 기억으로 끌어올리는 역사의 작업에 적절하게 사용될 수 있다. 사진은 본래 인간이 직접적으로 개입하지 못한 상태에서 카메라라는 기계에 의해 만들어진 이미지다. 그래서 그 이미지 혼자로서는 아무 말도 분명하게 할 수 없는 매체다. 사진은 그것을 읽는 사람의 경험이나 지식 혹은 이념에 따라 그 느낌과 의미가 달리 생성되는 매체다. 그 어떤 시각 이미지보다 해석의 여지가 더 넓어서 이질적이고 불규칙적인 기억을 자의적으로 소유하거나 전유할 수 있는 여지가 크다. 그래서 사진은 개인에 따라, 상황에 따라 달리 나타나는 아픔, 분노, 연민, 그리움과 같은 특유의 감성을 자아내게 하는 힘이 강하다.
이런 담론 위에서 과거를 ‘호남선’이라는 일제 강점의 특정 주제로 말하고자 하면서 일부러 맥락을 단절시켜버리고 각 이미지에서 여러 사실성은 은닉해버리고 나아가 각자의 감성에 따라 달리 해석될 수 있는 여러 상징물을 지뢰처럼 숨겨놓는 그러면서 어떤 정해진 내러티브를 구성하지 않는 방식이라면, 그것은 예술로 역사를 말하는 사진가 그 혼자만의 방식이 된다. 그래서 고정남의 ‘호남선’을 읽는 방식은 수백 수천 가지를 넘어서 무한대로 있을 수 있다. 한 때 호남 지역에 있었던 일본 제국 지배자들의 수탈에 대해 말을 하되, 그 전개는 사진가가 개인적으로 갖는 어렸을 적 동네에서 함께 자란 ‘적산가옥’을 매개로 하여 일본 유학을 갔을 때와 돌아 온 이후 대학 시절 몸담았던 반미 자주 통일 농학 연대의 기억들이 물고기가 헤엄치듯 마음대로 자유롭게 다닌다. 그래서 이 사진을 읽는 사람은 굳이 사진가의 의도만을 따라 갈 필요도 없고, 그럴 수도 없다. 사진가 고정남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자신이 예술로 역사를 말하고자 하는 특정한 한 방식일 뿐이다. 그가 그렇게 하듯, 독자들도 자기 마음대로 해석을 하고 느낌을 가지면 될 일이다. 사진가는 세 자루의 낫을 통해 김남주 시인의 주인의 목을 딴 종을 말하고자 했겠지만, 독자는 꼭 그렇게만 읽을 필요는 없다. 낫 속에서 돌아가신 할아버지를 떠올릴 수도 있고, 읍내에서 농기구 장사를 했던 자신의 어린 시절을 기억할 수도 있다. 독자에 따라서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일제강점기의 빛바랜 사진, 철로, 지도, 오래된 악보, 카메라를 든 사람들, 근대문화유산이 된 역사(驛舍)들, 적산가옥, 논과 밭, 지평선 등 비교적 쉽게 사진가의 의도를 알아차릴 수 있는 사진들도 있지만, 어떤 식당에서 이야기 나누는 사람들, 그냥 어딘가에서 서 있는 사람 등 사진가가 숨겨놓은 상징과 복선을 알아차리기가 쉽지 않은 것들도 있다. 그 해석과 느낌 사이에서 독자로서 마음껏 헤엄치는 자유, 그것을 만끽하는 것이 고정남 사진 읽기의 길이다. 지금, 예술로 역사를 말하는 어떤 사진가의 불친절한 세계, 그 앞에 사진하는 사람들이 숨죽이면서 서 있다.
고정남(高正男)은 전남 장흥 출생으로 전남대학교 디자인전공, 도쿄종합사진전문학교와 도쿄공예대학대학원에서 사진을 전공하였다. 건축, 인쇄매체(printed media), 한국적 현상에 관심 갖고 작업하고 있으며 2002년 첫 개인전 <집. 동경이야기>를 시작으로 10여 차례 개인전을 가졌다. 부천대학, 청강문화산업대학, 상지영서대학 등 여러 대학의 강사를 거쳐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사진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고정남_高正男 Ko, jungnam


1992 전남대학교 미술학과 졸업
2002 도쿄종합사진전문학교 사진예술학과 졸업
2004 도쿄공예대학교대학원 사진전공 졸업

개인전
2017 Song of Arirang_호남선, Gallery Bresson_Seoul
2016 unlimited_바람의 봄, Gallery Bresson_Seoul
2013 Changing Opinion, 호기심에 대한 책임감_Seoul
2012 동경이야기_Super Normal, Gallery Beansseoul _Seoul
2011 건축적 풍경, Gallery Bresson_Seoul
사각형의 내부의 사각형의 내부의, 김영섭 사진화랑_Seoul
2009 '09진달래, Gallery Bresson_Seoul
2008 unlimited, 김영섭 사진화랑_Seoul
2007 '07진달래, Gallery 호기심에 대한 책임감_Seoul
2005 겨울방학_여행에서 만난 풍경, 김영섭 사진화랑_Seoul
2004 안도타다오의, 콘크리트의, Gallery 목금토_Seoul
2003 여름방학_여행에서 만난 풍경, Gallery Bar FERRARA_Seoul
안도타다오의 YUMEBUTAI, Gallery CREADLE_Yokohama
2002 집, 동경이야기, Gallery Lux_Seoul

주요그룹전
2016 서울사진축제_서울 신아리랑, 서울시립미술관 북서울미술관 _Seoul
2015 기억된 풍경전, Gallery 공간291_Seoul
2014 서울 루나 포토 페스티벌_보안여관_Seoul
간(間)텍스트전_space22 gallery_Seoul
2013 금지된 정원, 가일미술관_Gyeonggido, Berlin, Estonia
2012 공·터프로젝트, 옛 연초제조창 내 특별전시장_Cheongju
평화박물관_10월유신展_space99 gallery_Seoul
제5회 양평환경미술제, 양평군립미술관_ Gyeonggi
실락원(Paradise Lost), 고은사진미술관_Pusan
2011 겸재 오늘에 되살리기, 겸재정선기념관_Seoul
국민국가의 안팎, 화인갤러리_Pusan
Social Photography, gallery illum_Seoul
시인 이상(李箱)의 집, 드로잉전_Seoul
2010 분단미술_눈 위에 핀 꽃, 대전시립미술관_Daejeon
일민시각총서_격물치지, 일민미술관_Seoul
2009 '1990년대 이후의 새로운 정치미술, 경기도미술관_Gyeonggido
일민시각총서_청소년, 일민미술관_Seoul
2008~10 서울포토페스티벌, 코엑스_Seoul
2007 동강사진페스티벌 기획전, 바라보기 상상하기_Yeongwol
달콤 쌀벌한 대선전, 대안공간 충정각_Seoul
2006 depositors meeting, Gallery art &river bank_Tokyo
눈 이야기, 숙명여대 문신미술관 빛 갤러리_Seoul
해외시장 개척 모색전, Gallery on, Knapp Gallery_London UK.
2000 일본유학생사진전 Konica Plaza_Tokyo

Publication
사진집“4”출판_월간 photonet 출판사, 2007
사진집“3”출판_LOVE출판사, 2012

Collection
2012 겸재정선기념관 / 평화박물관
2011 동아일보사 사옥
2010 일민문화재단
2009 일민문화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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