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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10

임수식 LIM Soosik

by PhotoView posted Sep 29,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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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제목 바벨 Babel
전시기간 2018. 9. 28 ~ 10. 28
전시장소 계남정미소 서학동사진관
갤러리 주소 전북 전주시 완산구 서학로 16-17(자동차 길찾기 서학로16-5) Tel 063-905-2366
갤러리 홈페이지 http://blog.naver.com/jungmiso77
관람시간 (월. 화 휴관 10:30-17:00)
책은 좋은 책이던 나쁜 책이던 일단 책(冊)이라는 단어에서 그 주제를 벗어나기는 힘들다. 책은 말로 흘러 보내기 아쉬워서 엮어두고자 하는 공통된 의지가 깃들어 있다. 그것이 얼마나 공정하고 가치가 있고 재미가 있는지에 대한 판단은 독자들의 몫이지만, 때로는 사적인 명예욕이나 자기 포장을 위해서 만들어진 책 등 필요치 않는 책 또한 적지 않다보니 책에 절대적인 가치를 둘 수는 없을 것이다. 이렇듯 책의 가치여부에 이견이 있다 해도 책을 관람하는 도서관이나 책으로 공부를 하는 학교는 여전히 신성한 장소로 여긴다. 이런 논제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여러 전제를 뛰어 넘는다. 옛날 봉건시대에는 양반과 상놈의 구별이 책을 읽고 안 읽고의 차이로 여겼다고 볼 수도 있다. 그래서 근대에 와서는 벼락부자가 되면 제일 먼저 거실에 들여놓는 것이 책장과 세계문학전집류였다. 돈 뿐만이 아니라 ‘지식도 있다’는 것을 꾸미기 위해서였다. 그래서 ‘책가도’는 흔히 조선시대 사대부가의 전유물이나, 근현대 벼락부자들의 서가를 연상시킨다. 임수식은 어렸을 때 책을 구하기 힘든 개인사정 때문에 책에 대한 경외심이 있었다고 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처럼 임수식의 ‘책’은 진리의 탐구를 위한 도구였다. 그는 10년 동안 타인의 400여 곳의 서가를 찾아다니며 사진을 찍었다. 그동안 그는 모든 서가가 주인의 지성과 품격을 나타내고 있음을 알았다. 그는 그러한 특징을 잡아냈고 프린트 역시 한지에 손바느질로 이미지를 이어가는 더딘 작업을 했다. 그가 이제 바벨 Babel 작업을 들고 나왔다. 그는 ‘보르헤스의 바벨의 도서관’에서 그 미궁을 벗어나려고 하는지 모르겠다. 책장은 들로 산으로 바다로 포구로 나왔다. 하얀 책장의 책들은 다 흰 포장을 해서 책의 단서를 읽을 수 없다. 누구(소유) 것이었는지, 무슨 책인지, 누가 쓴 책인지 알 수 없다. 이제 책이 의미가 없어진 것인가? 인쇄술이 발달한 이래 책은 수많은 진리와 지식을 토로해냈다. 수많은 위대한 석학이 나왔고 과학이 발전했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유식’해졌다. 심지어 신을 부정할 만큼 ‘분별력’을 갖는다 해도 인간의 행복은 그 해답을 찾을 수 없다. 아니 오히려 더 깊은 절망 속에 빠지게 되었다. 지식만으로 행복해질 수 없는 사회의 한계에서 사람들은 절망한다. 임수식의 ‘바벨’의 서가는 지혜의 눈을 외부(타인의 지식과 명성)에서 찾지 않고 마음 안에서 찾고자 하는 의지의 표출이라고 생각한다. 바벨탑은 생과 사 천국과 지옥, 행과 불행을 인간의 의지로 해결 할 수 없음을 말한다. 그러나 인간의 뜻이기에 비로소 가능한 그 무엇을 찾아나서는 것이 작가의 작업이다. 그는 비바람 치는 땅 위에서 지혜의 근본이 무엇인지 찾아 가고 있다. 이것은 열린 마음에 대한 염원이며 근원에 대한 모색과 성찰이라고 본다.
  • ⓒ임수식 LIM Soosik
  • ⓒ임수식 LIM Soosik
    b005_Archival Pigment Print_75cm×100cm_2011
  • ⓒ임수식 LIM Soosik
    b012_Archival Pigment Print_75cm×100cm_2012
  • ⓒ임수식 LIM Soosik
    b015_Archival Pigment Print_75cm×100cm_2012
  • ⓒ임수식 LIM Soosik
    b024_Archival Pigment Print_75cm×100cm_2014
  • ⓒ임수식 LIM Soosik
    b026_Archival Pigment Print_75cm×100cm_2014
책은 좋은 책이던 나쁜 책이던 일단 책(冊)이라는 단어에서 그 주제를 벗어나기는 힘들다. 책은 말로 흘러 보내기 아쉬워서 엮어두고자 하는 공통된 의지가 깃들어 있다. 그것이 얼마나 공정하고 가치가 있고 재미가 있는지에 대한 판단은 독자들의 몫이지만, 때로는 사적인 명예욕이나 자기 포장을 위해서 만들어진 책 등 필요치 않는 책 또한 적지 않다보니 책에 절대적인 가치를 둘 수는 없을 것이다.

이렇듯 책의 가치여부에 이견이 있다 해도 책을 관람하는 도서관이나 책으로 공부를 하는 학교는 여전히 신성한 장소로 여긴다. 이런 논제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여러 전제를 뛰어 넘는다. 옛날 봉건시대에는 양반과 상놈의 구별이 책을 읽고 안 읽고의 차이로 여겼다고 볼 수도 있다. 그래서 근대에 와서는 벼락부자가 되면 제일 먼저 거실에 들여놓는 것이 책장과 세계문학전집류였다. 돈 뿐만이 아니라 ‘지식도 있다’는 것을 꾸미기 위해서였다. 그래서 ‘책가도’는 흔히 조선시대 사대부가의 전유물이나, 근현대 벼락부자들의 서가를 연상시킨다. 임수식은 어렸을 때 책을 구하기 힘든 개인사정 때문에 책에 대한 경외심이 있었다고 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처럼 임수식의 ‘책’은 진리의 탐구를 위한 도구였다. 그는 10년 동안 타인의 400여 곳의 서가를 찾아다니며 사진을 찍었다. 그동안 그는 모든 서가가 주인의 지성과 품격을 나타내고 있음을 알았다. 그는 그러한 특징을 잡아냈고 프린트 역시 한지에 손바느질로 이미지를 이어가는 더딘 작업을 했다.

그가 이제 바벨 Babel 작업을 들고 나왔다. 그는 ‘보르헤스의 바벨의 도서관’에서 그 미궁을 벗어나려고 하는지 모르겠다. 책장은 들로 산으로 바다로 포구로 나왔다. 하얀 책장의 책들은 다 흰 포장을 해서 책의 단서를 읽을 수 없다. 누구(소유) 것이었는지, 무슨 책인지, 누가 쓴 책인지 알 수 없다. 이제 책이 의미가 없어진 것인가? 인쇄술이 발달한 이래 책은 수많은 진리와 지식을 토로해냈다.

수많은 위대한 석학이 나왔고 과학이 발전했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유식’해졌다. 심지어 신을 부정할 만큼 ‘분별력’을 갖는다 해도 인간의 행복은 그 해답을 찾을 수 없다. 아니 오히려 더 깊은 절망 속에 빠지게 되었다. 지식만으로 행복해질 수 없는 사회의 한계에서 사람들은 절망한다.

임수식의 ‘바벨’의 서가는 지혜의 눈을 외부(타인의 지식과 명성)에서 찾지 않고 마음 안에서 찾고자 하는 의지의 표출이라고 생각한다. 바벨탑은 생과 사 천국과 지옥, 행과 불행을 인간의 의지로 해결 할 수 없음을 말한다. 그러나 인간의 뜻이기에 비로소 가능한 그 무엇을 찾아나서는 것이 작가의 작업이다. 그는 비바람 치는 땅 위에서 지혜의 근본이 무엇인지 찾아 가고 있다.

이것은 열린 마음에 대한 염원이며 근원에 대한 모색과 성찰이라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