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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07

박종우 Park Jongwoo

by PhotoView posted Jun 24, 2018
Extra Form
전시제목 <Guard Posts> 비무장지대 경계초소
전시기간 2018. 6. 27 ~ 7. 29
전시장소 계남정미소 서학동사진관
작가와의 만남 2018. 6. 30일 토. 4시
갤러리 주소 전북 전주시 완산구 서학로 16-17(자동차 길찾기 서학로16-5) 063-905-2366
작가 홈페이지 http://parkjongwoo.net
“비무장지대 내부에 존재하는 남, 북의 최전방 경계초소 GP. 원래 비무장지대는 ‘비무장’이라는 용어 그대로, 무장 인원이 주둔해서는 안 되는 곳이다. 정전협정에 따라 비무장지대에 들어오는 인원은 자동소총이 아닌 개인용 소화기만 휴대할 수가 있다. 그러나 남한과 북한은 모두 DMZ 안에 요새를 만들어서 무장된 인원들을 주둔시키고 있다. 애초 정전협정에서는 비무장지대의 출입을 ‘민사행정 및 구제 사업을 위한 목적’으로 한정하고 ‘출입자는 양쪽이 각각 1천명을 넘지 않아야 한다’고 합의했기 때문에 군인 신분의 인원은 들어갈 수가 없다. 하지만 남한은 ‘민정경찰’이라는 이름으로, 북한은 ‘민경’이라는 이름으로 각각 군인을 투입하고 있다. 결국 남과 북 모두 정전협정을 위반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전쟁 이후 비무장지대 내부에 무장인원을 먼저 투입한 측은 북한이었다. 북한은 자기들이 관리하고 있는 비무장지대 지역 내에 민경초소들을 건설하기 시작했고, 군인들을 민경대라는 이름으로 이곳에 주둔시켰다. 이에 남한에서도 군사분계선 이남의 남측 비무장지대 지역 내에 GP들을 건설하고 역시 병력들을 주둔시켰다. 남한의 GP는 직경 100미터 정도의 콘크리트 요새이다. 3~40명 정도의 1개 소대병력이 근무한다. 남과 북의 GP는 엄청나게 가까이 위치한 곳도 많고 대부분 고립된 지역인 데다, 하나같이 한국전쟁 당시의 격전지들인 탓에 땅만 파면 총알과 포탄이 무더기로 쏟아져 나오고 수색로 근처에서는 대전차지뢰나 대인지뢰가 발견되기도 한다. 정해진 진출입로와 인근에 연결된 수색로를 빼놓고는 누구도 다가설 수 없는 위험지대이다. GP는 비무장지대 안에 떠있는 섬과도 같은 곳이다. 콘크리트로 지어지고 3중 철조망으로 둘러쳐져 있어 외형 자체가 외부의 접근을 차단하는 듯한 모습이다. 웬만한 대포에도 버틸 정도로 철옹성 같은 견고한 구조물에 긴장감이 감돈다. 내부의 공간 구조는 구불구불 미로에 가까운 폐쇄형이다. 반면 북한 GP는 구분이 어렵다. 형태도 남한 GP와 많이 다르다. 북한 GP는 봉우리나 언덕 위에 초소 하나 달랑 있는 경우가 흔하다. 간혹 콘크리트 구조물로 되어 있는 경우라도 사람이 겨우 몇 명 들어설 수 있는 정도의 크기다. 그러나 초소 아래 지하에는 견고한 시설이 구축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막사를 비롯해 무기와 장비도 전부 지하에 배치되어 있다. 생활도 대부분 지하에서 한다. 남과 북이 함께 평화를 향해 나아가게 되면 가장 먼저 이뤄져야 할 일은 비무장지대 내의 GP를 철거하는 작업이다. 60년이 넘는 오랜 세월을 서로 적대적으로 노려보고 있는 GP의 철거야말로 진정한 남북평화시대를 여는데 있어서의 시금석이 될 것이다.“ 작가의 노트에서 박종우는 말하고 있다. 지금까지 남북 분단의 상징인 DNZ는 60년 동안 우리의 발목을 잡아왔다. 그 과정에서 전쟁 촉발직전의 긴장을 수없이 경험하는 가운데 우리는 종전의 평화를 마음속으로 깊이 기대했고 염원해 왔다. 격변하는 정세 속에서 2018년 4월 27일 판문점에서 남북정상회담과 함께 종전의 기대가 현실로 다가오고 6.12 북미정상이 얼굴을 맞대고 악수를 하면서 한반도 평화가 본격적인 화합의 괘도에 오르게 되었다. 종신형의 족쇄와도 같던 DMZ, 그 중에서도 최전방 경계초소 GP(Guard Posts)는 일반인들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는비무장지대 내에서도 고립된 이념의 섬으로서 존재해왔다. 박종우가 이 사진을 찍을 때에는 꿈도 못 꾸었던 남북평화의 희망을 눈앞에 바라보며 이 사진을 보게 된 것은 감격할 만한 일이다. 그러기에 박종우의 사진은 암흑의 분단 현실을 뼈아픈 기억으로 삼는 선지자의 지도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 ⓒ박종우 Park Jongw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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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무장지대 내부에 존재하는 남, 북의 최전방 경계초소 GP. 원래 비무장지대는 ‘비무장’이라는 용어 그대로, 무장 인원이 주둔해서는 안 되는 곳이다. 정전협정에 따라 비무장지대에 들어오는 인원은 자동소총이 아닌 개인용 소화기만 휴대할 수가 있다. 그러나 남한과 북한은 모두 DMZ 안에 요새를 만들어서 무장된 인원들을 주둔시키고 있다. 애초 정전협정에서는 비무장지대의 출입을 ‘민사행정 및 구제 사업을 위한 목적’으로 한정하고 ‘출입자는 양쪽이 각각 1천명을 넘지 않아야 한다’고 합의했기 때문에 군인 신분의 인원은 들어갈 수가 없다. 하지만 남한은 ‘민정경찰’이라는 이름으로, 북한은 ‘민경’이라는 이름으로 각각 군인을 투입하고 있다. 결국 남과 북 모두 정전협정을 위반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전쟁 이후 비무장지대 내부에 무장인원을 먼저 투입한 측은 북한이었다. 북한은 자기들이 관리하고 있는 비무장지대 지역 내에 민경초소들을 건설하기 시작했고, 군인들을 민경대라는 이름으로 이곳에 주둔시켰다. 이에 남한에서도 군사분계선 이남의 남측 비무장지대 지역 내에 GP들을 건설하고 역시 병력들을 주둔시켰다.
남한의 GP는 직경 100미터 정도의 콘크리트 요새이다. 3~40명 정도의 1개 소대병력이 근무한다. 남과 북의 GP는 엄청나게 가까이 위치한 곳도 많고 대부분 고립된 지역인 데다, 하나같이 한국전쟁 당시의 격전지들인 탓에 땅만 파면 총알과 포탄이 무더기로 쏟아져 나오고 수색로 근처에서는 대전차지뢰나 대인지뢰가 발견되기도 한다. 정해진 진출입로와 인근에 연결된 수색로를 빼놓고는 누구도 다가설 수 없는 위험지대이다. GP는 비무장지대 안에 떠있는 섬과도 같은 곳이다. 콘크리트로 지어지고 3중 철조망으로 둘러쳐져 있어 외형 자체가 외부의 접근을 차단하는 듯한 모습이다. 웬만한 대포에도 버틸 정도로 철옹성 같은 견고한 구조물에 긴장감이 감돈다. 내부의 공간 구조는 구불구불 미로에 가까운 폐쇄형이다. 반면 북한 GP는 구분이 어렵다. 형태도 남한 GP와 많이 다르다. 북한 GP는 봉우리나 언덕 위에 초소 하나 달랑 있는 경우가 흔하다. 간혹 콘크리트 구조물로 되어 있는 경우라도 사람이 겨우 몇 명 들어설 수 있는 정도의 크기다. 그러나 초소 아래 지하에는 견고한 시설이 구축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막사를 비롯해 무기와 장비도 전부 지하에 배치되어 있다. 생활도 대부분 지하에서 한다. 남과 북이 함께 평화를 향해 나아가게 되면 가장 먼저 이뤄져야 할 일은 비무장지대 내의 GP를 철거하는 작업이다. 60년이 넘는 오랜 세월을 서로 적대적으로 노려보고 있는 GP의 철거야말로 진정한 남북평화시대를 여는데 있어서의 시금석이 될 것이다.“ 작가의 노트에서 박종우는 말하고 있다.

지금까지 남북 분단의 상징인 DNZ는 60년 동안 우리의 발목을 잡아왔다. 그 과정에서 전쟁 촉발직전의 긴장을 수없이 경험하는 가운데 우리는 종전의 평화를 마음속으로 깊이 기대했고 염원해 왔다. 격변하는 정세 속에서 2018년 4월 27일 판문점에서 남북정상회담과 함께 종전의 기대가 현실로 다가오고 6.12 북미정상이 얼굴을 맞대고 악수를 하면서 한반도 평화가 본격적인 화합의 괘도에 오르게 되었다. 종신형의 족쇄와도 같던 DMZ, 그 중에서도 최전방 경계초소 GP(Guard Posts)는 일반인들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는비무장지대 내에서도 고립된 이념의 섬으로서 존재해왔다. 박종우가 이 사진을 찍을 때에는 꿈도 못 꾸었던 남북평화의 희망을 눈앞에 바라보며 이 사진을 보게 된 것은 감격할 만한 일이다. 그러기에 박종우의 사진은 암흑의 분단 현실을 뼈아픈 기억으로 삼는 선지자의 지도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2009년 가을, 나는 1953년 한국전쟁 휴전 이후 최초의 민간인으로 비무장지대 내부에 들어가 그 모습을 기록으로 남겨달라는 프로젝트 제의를 받았다. 이때부터 2년 동안 집중적으로, 그리고 다시 5년간 간헐적으로 이어진 나의 DMZ 작업은 비무장지대에서 내가 마주쳤던 사실과 풍경에 대한 사진 르포르타쥬다.

나는 이 보고서 작업을 통해 남북 대치의 숨막히는 풍경에 내재되어 있는 가슴 아픈 현실을 주관적으로 재해석하거나 판단하지 않고 그저 눈에 띄는 대로 기록하는데 주안점을 뒀다. 비무장지대에 대한 사진작업이 과거에 전혀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그에 대한 즉물적인 기록이야말로 어설픈 작가적 해석보다 훨씬 가치를 지니게 될 것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국방부가 휴전 후 최초로 민간인에게 DMZ 내부를 공개한 이유는 한국전쟁 발발 60주년을 맞아 ‘비무장지대의 현재’를 기록해두자는 취지였다. 60년간 민간인 출입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했기 때문에 DMZ 기록물이 존재하지 않는 것은 당연했지만 놀라운 것은 군에서도 그때까지 비무장지대에 대한 정기 또는 비정기적인 사진 기록을 하지 않고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비무장지대 작업은 쉽지 않았다. 매번 DMZ 안으로 발을 들여놓을 때마다 유엔군사령부 군사정전위원회, 국방부, 합동참모본부, 육군본부, 해당 지역 사단의 허가를 동시에 받아야 했다. 방문 일정은 몇 달 전부터 짜여져 분 단위까지 계획이 수립되었고, 갑작스런 기상 변화 등 외부적 요인에 의해서 미리 정해진 스케줄이 뒤바뀌는 것은 용납되지 않았다.

어렵게 진입한 비무장지대 안에서 나는 무엇을 보았나. DMZ와 바깥세상 사이에는 남방한계선의 3중 철책만이 서 있을 뿐 경계의 안과 밖은 그 모습에서 별반 다르지 않았다. 카메라를 들이댈 마땅한 대상 또한 없었다.
아름다운 자연풍경을 살벌하다고 느끼는 것은, 또 그 풍경에 서려 있는 긴장감을 떨쳐내지 못하는 것은, 다만 나의 선입견 때문이었다. 밤새 경계근무를 선 병사들은 모두 취침 중이었고 가끔 인기척에 놀라 뛰어오르는 고라니를 제외하면 움직이는 생명체도 거의 보이지 않았다.

주로 평야지역인 비무장지대의 서측에는 원래 사람이 살던 곳이 많았다. 60년이 넘는 세월이 흐르면서 비무장지대에서 인간의 흔적은 지워지고 땅은 서서히 다시 자연으로 되돌아갔다. 이 세상 어디서도 그렇게 시간이 거꾸로 흐른 곳은 많지 않을 것이다. 비무장지대 수색로를 다니다보면 주변엔 아직까지도 사람이 살던 흔적이 많이 남아 있었다. 일제 강점기 시대에 만들어진 수리시설, 금강산을 오가던 전기철도의 잔해가 옛 모습 거의 그대로이고 숲 속에선 무너진 대문 기둥, 깨진 항아리가 눈에 띄는가 하면 전쟁 전 어느 집 마당을 장식했음직한 작은 정원 연못의 흔적도 있었다.

땅에서 제대로 느끼지 못한 비무장지대를 진정 가슴으로 느낀 것은 하늘에서였다. 헬기를 타고 서부전선의 평원지대와 동부전선의 산악지대를 교차로 오가면서 내려다본 비무장지대에는 찢기고 할퀴어진 자국이 선명했다. 그런 자국은 남북이 설치한 철조망과 그 주변의 수풀을 제거한 시계청소 작전에 기인한 것이었다. ‘국토의 배를 갈랐다’ 라는 표현이 정말 딱 들어맞았다. 비로소 이곳이 ‘분단의 현장’이라는 실감이 났다.

남과 북의 경계는 매우 뚜렷했다. 숲이 우거진 남쪽과 헐벗은 북쪽의 산은 자연스레 서로의 경계를 드러냈고 그 사이에 세워진 철책선이 끊이지 않고 동서로 내달렸다. 지상에서의 철책은 무척 견고하고 통과불가능하게 보였으나 하늘에서 내려다본 철책은 그저 보잘 것 없는 장애물에 지나지 않았다. 동부전선 험준한 산악지대에서는 산이 높고 골이 깊어 헬기가 능선을 따라 이어지는 남방한계선에 거의 스치듯 날았고, 아득한 계곡 밑으로 한없이 뻗어 내려간 계단을 오르내리는 병사들이 마치 개미처럼 보였다. 수직 절벽에 가까운 산비탈에 위험스럽게 세워진 남방한계선의 철책은 ‘우리 국토에도 저런 곳이 있었나’ 하는 감탄을 자아내게 했다.

험준한 산악지대, 울창한 수풀과 늪지를 대표 이미지로 갖고 있는 비무장지대를 말할 때 가장 흔히 쓰는 표현이 ‘자연생태계의 보고’라는 수식어다. 하지만 실제 DMZ는 동식물의 낙원, 자연생태계의 보고가 아니었다. 원시림이 가득 들어차 있을 것이라는 기대와는 달리 수시로 일어나는 산불로 인해 나무들은 제대로 자라지 못했다.

정전협정상 비무장지대의 너비는 4킬로미터이지만 양측에서 철책선 앞에 또 따른 전진철책을 설치하여 점점 공간이 좁아진 곳이 많았고 그 너비가 2킬로에 채 미치지 못하는 곳도 있었다. 우리 GP 옥상에 올라 북쪽을 바라보면 불과 수백 미터 앞에 북한 초소가 있는 곳들도 있었다. 크게 소리 지르면 대화가 가능할 정도였다. 그런 너비는 야생동물들에겐 너무나 비좁은 공간이다. 그러다보니 동물들도 생각만큼 많지 않았고 가끔 마주치는 고라니와 산양, 멧돼지 정도가 전부였다.

그러나 비무장지대는 한없이 아름다웠다. 늪지에서 아침 안개가 피어나면 한반도 어디서도 만나지 못했던 선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남북대치의 시설물과 철책이 있음에도 DMZ의 산하는 그 모든 것들을 표시나지 않게 품에 안을 만큼 넉넉했다.

또 비무장지대는 고요했다. 때론 남방한계선 외곽에서 군인들이 연습 사격을 하는 총소리나 포 소리가 들리기도 했지만 그밖에는 언제나 무거운 정적 속에 침잠해 있었다. 가끔씩 그 정적을 깨는 고라니의 울음소리는 그래서 더더욱 크게 들렸다.

하지만 DMZ를 벗어나면 곧바로 크고 작은 소음이 귀를 파고들었다. 개발의 손길은 DMZ 턱밑까지 뻗어있다. 민간인출입통제선(CCL)과 남방한계선(SLL) 사이의 민통선구역(CCZ)은 이미 개발의 여파로 신음 소리가 드높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과 단체, 지자체들이 ‘평화’와 ‘친환경’ 구호로 포장된 DMZ 개발 이슈를 끊임없이 꺼내든다. 그나마 한반도에서 인간의 발길이 닿지 못하는 자연환경을 오롯이 간직하고 있는 이 특이한 공간마저 훼손되고 사라진다면 우리 환경의 미래는 밝지 않을 것이다. 비무장지대는 건드리지 말고 그대로 두어야 한다. 언젠가 다가올 통일의 시대에 그 오랜 시간 동안 민족의 한을 담고서 지켜온 그 모습 그대로를 후손들이 영원히 기억할 수 있도록.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에서 살고 있는 사람으로, DMZ 사진작업을 진행해 오면서 나는 침묵의 땅 비무장지대와 민통선 구역을 사유하는 여러 가지의 코드를 읽었다. 지뢰로 뒤덮인 채 인간의 접근을 거부하면서 독특한 분위기를 지니게 된 숲, 국토의 다른 곳에선 마주치기 어려운 낯설고 어색한 분단의 풍경들, 현실적으로 남과 북을 가로막고 있음은 물론 모든 한국인들의 사고에까지 분단을 강요하는 철책, 위험을 경고하고 위협하는 지뢰 경고표지판, 콘크리트로 만들어진 대전차방벽인 용치 등이 그것이다. 전쟁은 이미 지나간 역사가 되었지만 분단은 현재진행형이다.

DMZ에서 나의 지각에 영향을 미친 여러 코드들은 앞으로 계속 이어질 나의 분단현실에 대한 작업에서 중요한 모티브가 될 것이다.

1. 분단풍경 (Bundan-scape)
민통선 초소를 지나면서 새삼 분단의 풍경을 떠올린다. 주변의 온통 낯설고 어색한 풍경 속에서 분단을 생각한다. 영어로는 Divide이지만 ‘나눌 분, 끊을 단’이라는 두 글자로 이루어진 이 단어는 영어로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느낌을 우리에게 강요한다.
나뉘어지고 또 끊어진 나라에서 평생을 보내는 우리들. 전후 세대로, 분단 체제 속에서 태어난 내가 전쟁이 치러졌던 바로 그 현장에서 만나게 된 각양각색의 분단 오브제들은 저마다의 아우성으로 분단의 현실을 드러내고 있었다.
전쟁의 결과로 생겨난 분단의 풍경들은 나라 전체가 매우 빠른 산업화의 과정을 거치면서 우리 사회에서 대부분 사라져갔다. 그 과정에서 미처 사라지지 않은 분단의 풍경들이 아직 박제처럼 남아있는 곳이 바로 비무장지대와 민통선 지역이다.

2. 갈 수 없는 숲 (The Forbidden Forest)
남방한계선 철책 너머 펼쳐진 비무장지대의 숲을 본다. 갈 수 없어서 더욱 아름다워진 곳이다. 이 기이한 풍경, 이 쓸쓸한 풍경. 처연하고 음산하면서도 더없이 아름다운 풍경. 그러나 그 안에선 보이지 않는 남과 북의 군인들이 서로를 정조준하고 있다.
남방한계선의 통문을 열고 수색로를 따라 비무장지대 내부로 들어서면 언제나 적막감이 흐른다. 60년 전, 한국 전쟁의 포성이 그치면서 인간의 발길이 끊긴 비무장지대에는 세월의 흐름과 함께 서서히 자연의 생명력이 퍼져나갔고 겉으로는 본래의 모습을 되찾은 것처럼 보인다.
남과 북이 겹겹이 설치한 철책선은 곧 환경보호특별구역의 울타리였다.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비무장지대의 비경이 처녀림으로 가득 들어차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실제 비무장지대는 뜻밖에 산림이 빈약하다. 수 십 년 동안 자연적 산불과 함께 북한이 산불을 놓으면 남한은 맞불을 놓아왔고 또 서로 상대방의 침투를 막으려고 시야 확보를 위한 수목 제거 작업을 자주 한 결과이기도 하다.
너비 4km라지만 사실은 그에 훨씬 못 미치는 남과 북 사이의 비좁은 비무장지대는 야생동물들에겐 너무도 갑갑한 활동공간이다. ‘생명의 낙원, 생태계의 보고, 민족의 환경유산, 한반도의 허파’라는 상투적 수식어는 그래서 맞는 표현이 아니다.
하지만 비무장지대는 신비롭다. 비록 원시림은 아니나 판타지 영화에서나 나올 것 같은 낯선 풍경이 끝없이 이어진다. 가장 극심했던 접전 지역이었다가 이제는 세상에 존재하면서도 존재하지 않는 듯한 비현실적인 풍경을 간직하게 된 비무장지대의 숲. 그 숲에 인간의 손길이 닿게 된다면 지금의 신비는 아침햇살을 받은 안개처럼 한순간에 사라져버릴 것이다. ‘갈 수 없는 숲’에 모두들 가보고 싶어하지만 지금의 모습 그대로 두어야할 이유가 거기에 있다.

3. DMZ 경계초소 (Guard Posts)
비무장지대 내부에 존재하는 남, 북의 최전방 경계초소 GP.
원래 비무장지대는 ‘비무장’이라는 용어 그대로, 무장 인원이 주둔해서는 안 되는 곳이다. 정전협정에 따라 비무장지대에 들어오는 인원은 자동소총이 아닌 개인용 소화기만 휴대할 수가 있다. 그러나 남한과 북한은 모두 DMZ 안에 요새를 만들어서 무장된 인원들을 주둔시키고 있다. 애초 정전협정에서는 비무장지대의 출입을 ‘민사행정 및 구제 사업을 위한 목적’으로 한정하고 ‘출입자는 양쪽이 각각 1천명을 넘지 않아야 한다’고 합의했기 때문에 군인 신분의 인원은 들어갈 수가 없다. 하지만 남한은 ‘민정경찰’이라는 이름으로, 북한은 ‘민경’이라는 이름으로 각각 군인을 투입하고 있다. 결국 남과 북 모두 정전협정을 위반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전쟁 이후 비무장지대 내부에 무장인원을 먼저 투입한 측은 북한이었다. 북한은 자기들이 관리하고 있는 비무장지대 지역 내에 민경초소들을 건설하기 시작했고, 군인들을 민경대라는 이름으로 이곳에 주둔시켰다. 이에 남한에서도 군사분계선 이남의 남측 비무장지대 지역 내에 GP들을 건설하고 역시 병력들을 주둔시켰다.
남한의 GP는 직경 100미터 정도의 콘크리트 요새이다. 3~40명 정도의 1개 소대병력이 근무한다. 남과 북의 GP는 엄청나게 가까이 위치한 곳도 많고 대부분 고립된 지역인 데다, 하나같이 한국전쟁 당시의 격전지들인 탓에 땅만 파면 총알과 포탄이 무더기로 쏟아져 나오고 수색로 근처에서는 대전차지뢰나 대인지뢰가 발견되기도 한다. 정해진 진출입로와 인근에 연결된 수색로를 빼놓고는 누구도 다가설 수 없는 위험지대이다. GP는 비무장지대 안에 떠있는 섬과도 같은 곳이다. 콘크리트로 지어지고 3중 철조망으로 둘러쳐져 있어 외형 자체가 외부의 접근을 차단하는 듯한 모습이다. 웬만한 대포에도 버틸 정도로 철옹성 같은 견고한 구조물에 긴장감이 감돈다. 내부의 공간 구조는 구불구불 미로에 가까운 폐쇄형이다.
반면 북한 GP는 구분이 어렵다. 형태도 남한 GP와 많이 다르다. 북한 GP는 봉우리나 언덕 위에 초소 하나 달랑 있는 경우가 흔하다. 간혹 콘크리트 구조물로 되어 있는 경우라도 사람이 겨우 몇 명 들어설 수 있는 정도의 크기다. 그러나 초소 아래 지하에는 견고한 시설이 구축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막사를 비롯해 무기와 장비도 전부 지하에 배치되어 있다. 생활도 대부분 지하에서 한다.
남과 북이 함께 평화를 향해 나아가게 되면 가장 먼저 이뤄져야 할 일은 비무장지대 내의 GP를 철거하는 작업이다. 60년이 넘는 오랜 세월을 서로 적대적으로 노려보고 있는 GP의 철거야말로 진정한 남북평화시대를 여는데 있어서의 시금석이 될 것이다.

박종우
인구 1천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거주하는 대한민국 수도 서울에서 불과 60Km 떨어진 북쪽에 남한과 북한의 경계인 비무장지대가 있다.
대도시에서 바쁘게 생활하는 보통의 한국 사람들은 65년이 넘도록 변하지 않는 사실로 남아있는 비무장지대에 대해 익숙해져서 큰 관심을 갖지 않고 매일의 생활을 해나간다.
비무장지대는 동서냉전이 진행되던 시기에 각기 다른 두 세계의 이데올로기가 서로 마주치는 최전선이었다.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기 이전까지 남한과 북한의 경계선은 1945년 크림반도에서 열린 얄타회담에서 미국, 영국, 소련이 합의한 북위 38도선이었다. 1953년 7월 27일 한국전쟁이 휴전할 때 남과 북은 상호 대치하고 있던 전선을 군사분계선으로 정하고 그 선에서 각기 2km씩 후방으로 물러나 남과 북에 남방한계선과 북방한계선을 만들기로 합의하였다. 남방한계선과 북방한계선 사이에는 비무장지대를 두어 완충지대를 유지하기로 했다. 한반도 서해안에서 동해안까지 248킬로를 이어지는 폭 4km의 비무장지대는 이렇게 하여 생겨났다.

군사분계선은 실체가 없는 가상의 선이다. 전쟁 직후 남과 북은 군사분계선을 표시하기 위하여 200미터 간격으로 말뚝을 세우고 노란색 표지판을 설치했다. 1,292개의 휴전선 말뚝 가운데 유엔군사령부가 696개, 북측이 596개를 관리하기로 했다. 그러나 숲이 자라나고 비무장지대 진입이 점점 어려워지면서 이 협의는 유명무실해졌다. 60여년의 세월이 흐르면서 표지판은 하나둘 사라졌고 많은 말뚝이 쓰러지거나 유실되었다. 이처럼 휴전선 상에 눈에 보이는 경계가 없으므로 비무장지대 내에서 남과 북의 정찰병들은 언제나 서로 조우할 수 있다. 이에 따라 남과 북 양 측은 병사들이 기거하는 GP(Guard Post) 외부에 다량의 지뢰를 매설했고 지뢰지대가 점점 늘어나면서 지금은 비무장지대 내에서 자유롭게 다닐 수 있는 장소가 거의 없다.

군사분계선 상에 눈에 보이는 경계선을 만들지 않은 대신 남과 북은 남방한계선과 북방한계선에 여러 겹의 철조망을 두른 견고한 펜스를 설치하여 통과가 불가능하도록 만들었다. 남북방한계선은 군사분계선으로부터 각각 2km씩 떨어져있지만 오랜 세월이 지나면서 남북은 이 철조망을 조금씩 앞으로 전진시켰고 지금은 비무장지대의 폭이 2km에 미치지 못하는 곳도 있다.

남북방한계선의 전진 이동과 함께 비무장지대의 요새화와 무장화도 진행되었다. 북한군이 먼저 1960년대 초부터 군사분계선 북쪽 비무장지대를 요새화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초소를 진지로 구축했으며, 진지와 진지를 잇는 지하터널을 건설하고 그 위를 풀과 나무로 덮어 위장했다. 완성된 지하진지에는 중화기와 전투병력이 대거 투입되었다. 비무장지대 내에서의 소규모 전투와 북한군에 의한 초소 공격이 빈번하게 일어지자 남측은 비무장지대의 초소를 점점 견고한 콘크리트 건물로 만들어나갔다. 현재 남측의 초소인 GP는 중세 유럽의 성채처럼 보이는 반면에 북측의 초소는 대부분 지하에 구축되어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는다.

1968년은 비무장지대에서의 긴장이 최고조에 달했던 해이다. 그해 1월21일 북한군 특수부대원들은 미 24사단의 DMZ 방어철조망을 뚫고 서울까지 이동하여 대통령 공관 기습을 시도했으며, 같은 달 북한은 동해상에서 미국 첩보함 푸에블로호를 나포했다. 가을엔 북한 정예군 120명이 바다를 통해 동해안으로 침투했다. 1968년 한 해 동안 DMZ를 통한 북한의 무장침투는 233건에 달했고 한국군 145명, 미군 18명, 민간인 35명, 북한 침투요원 312명이 사망했다.

정전협정 제1조 제6항은 ‘쌍방은 모두 비무장지대 내에서 또는 비무장지대로부터 또는 비무장지대를 향하여 어떤 적대행위도 감행하지 못한다’고 규정한다. 또 제10항은 ‘민사행정 및 구제사업을 위하여 비무장지대에 들어갈 것을 허가받은 군인 또는 사민의 인원수는 각각 1000명을 초과하지 못하고, 휴대무기는 자동화기가 아니어야 한다’고 못박고 있다. 휴전과 동시에 남과 북은 DMZ 안으로 민사행정경찰을 투입해야 했으나 그 인원을 갑자기 준비할 수 없었으므로 군사정전위원회는 우선 ‘군 경찰’인 헌병을 투입했다가 나중에 민사행정경찰로 교체하기로 합의했다. 그러나 이 합의는 이뤄지지 않았다. 양측은 처음 배치했던 사실상의 전투인원인 헌병(북한은 경무라고 호칭한다)을 민사행정경찰로 교체하지 않았고 지금은 군인 가운데 선발된 인원들이 헌병 완장을 차고 비무장지대를 출입한다.

DMZ에서 한국전쟁은 아직도 진행중이다. 겉으로는 평온해보이지만 실상 그 안에는 수많은 병사들이 수많은 무기를 가지고 숨죽이고 있을 뿐인 것이다.

박종우 Park Jongwoo


1958년 서울생.
11년간 한국일보 기자로 근무하며 우리 사회의 다양한 현상을 취재했다. 저널리스트에서 다큐멘터리스트로 전환한 후 세계 각지의 오지 탐사를 통해 사라져가는 소수민족 문화와 그들의 생활을 기록하는데 많은 관심을 기울여왔다. 사진과 영상작업을 병행하여 ‘마지막 마방(2005)’, ‘차마고도 1000일의 기록(2007)’, ‘사향지로(2008)’ 등 차마고도 시리즈와 ‘바다집시(2008)’, ‘에스트라다 헤알(2009)’, ‘인사이드DMZ(2011)', ‘오로라헌터(2013)’ 등의 다큐멘터리를 만들었고 ‘몽골리안루트(2001)’, ‘최후의 제국(2012)’, ‘최후의 권력(2013)’ 등 다수의 TV프로그램 제작에 참여했다. 한국전쟁 휴전 후 최초로 비무장지대 내부에 들어가 60년의 역사를 맞은 DMZ를 기록했으며 [NLL], [임진강] 등 한반도 분단과 관련된 작업을 계속해오고 있다.
'Himalaya Monograph (고은사진미술관, 2009)', 'Origin of the Soul (봄갤러리, 2010)', ‘茶馬古道 (도쿄니콘살롱, 2011)’를 비롯, 여러 차례 개인전을 열었고 사진집 [Himalayan Odyssey](2009, 에디션제로), [임진강](2017, 눈빛), [DMZ](2017, Steidl)를 발간했다.

개인전
2016 [임진강, ‘분단의 강’에 관한 풍경 기록], 스페이스22 갤러리, 서울
2013 [Aurora Borealis], 토포하우스 아트센터, 서울
2011 [茶馬古道], Canon Gallery, 도쿄, 나고야
2010 [꽃이 된 사람들], POSCO E&C 갤러리, 인천
2010 [Origin of the Soul], BOM 갤러리, 서울
2009 [Himalaya Monograph], 고은사진미술관, 부산
2009 [Himalayan Odyssey], ARTO 갤러리, 대구
1997 [Kalinchok], 코닥포토살롱, 서울
1994 [Arctic Sea], 후지포토살롱, 서울

단체전
2017 [Imaging Korea], 로마 한국문화원
2017 [Spiti], 수원화성국제사진축제, 수원
2017 [Solemn Serenity-자율진화도시], 서울시립미술관, 서울
2017 [Imaging Korea], 카자흐스탄 한국문화원
2017 [Steidl Book Making], Photo Institute of Shanghai, Shanghai, China
2017 [My Divided Homeland], Dali국제사진축제, Dali, 중국
2017 [Imaging Korea], 벨기에 한국문화원
2016 [Imaging Korea], 헝가리국립동아시아미술관, 부다페스트
2016 [DMZ], 우크라이나 국제사진축제, 오데사
2015 [한국건축예찬-땅의 깨달음], 삼성미술관 리움, 서울
2015 [Aropa of Anuata], 리얼리티리더스클럽 전시, 류가헌갤러리, 서울
2015 [Origin of Asian Rivers], 수원화성국제사진축제, 수원
2015 [No Man's Land], 루나포토페스티벌, 서울
2015 [Remote World], 동강국제사진제, 영월
2015 [DMZ], 치앙마이 다큐멘터리 아트 페스티발, 치앙마이, 타일랜드
2014 [House], 리얼리티리더스클럽 전시, 스페이스22 갤러리, 서울
2014 [Living Together], 부르사포토페스트, 부르사, 터키
2014 [Blooming Silk Road], 세종문화회관갤러리, 서울
2014 [Two Lines], LA 코리아센터, 로스엔젤레스, 미국
2014 [Two Lines], 그뤼네스 반트, 베를린 , 독일
2013 [DMZ], 토포하우스 아트센터, 서울
2013 [On Korea], 한국대표사진가전, 탁심갤러리, 이스탄불
2013 [두개의 선], 경기평화센터, 경기도
2012 [시대의 눈], 인사아트센터, 서울
2012 [생각여행, 길 떠난 예술가 이야기], 경기도 미술관 기획전
2011 [온빛 다큐멘터리 사진전], 진선갤러리, 서울
2011 [도시채록], 인사아트센터, 서울
2011 [Faith in Faces], 동강국제사진제, 영월
2010 [환경을 보다], 토포하우스, 서울
2010, [꿈 꾸는 무늬], 구로 아트밸리, 서울
2010, [Inside the DMZ], 신세계 센텀 갤러리, 부산
2010 [Woman, Thy Name Is...], 동강국제사진제, 영월
2010 [Inside the DMZ], 전쟁기념관, 서울
2010 [Present from the Past], 주영한국문화원, 런던
2009 [APCEIU 사진전], 하노이 혁명박물관, 베트남
2009 [울산 국제사진페스티벌], 울산문화예술회관, 울산
2009 [꿈꾸는 교실], 한국국제교류재단 갤러리, 서울
2009 [뉴욕자연사박물관 기후변화체험전], 국립과학관, 서울
2009 [Earth Alert], 주영한국문화원, 런던, 오슬로
2009 [지구를 인터뷰하다], 대림미술관, 서울
2009 [Exposition of Mythology], 백남준 아트센터, 용인
2009 [유네스코 아시아의 봄], M갤러리, 광주
2008 [Sea Gypsy], Angkor Photo Festival, 캄보디아
2008 [Blight and Hope], 주영한국문화원, 런던
2008 [꿈 꾸는 부엌], 한국국제교류재단 갤러리, 서울
2008 [파괴, 그리고 희망], 숙명여자대학교 청파갤러리, 서울
2008 [차마고도], 동강사진페스티발, 영월
2006 [물 오르다], 그린포토페스티발, 서울
2006 [Kham], 대구사진비엔날레, 대구
2004 [Dongba], 한국현대사진의 수평전, 영월

영상 제작 경력
2017 SBS 대기획 [빅퀘스천] 촬영, 라인프로듀싱
2016 서울특별시 [서울 옛길] 영상기록화사업
2016 국립고궁박물관 대한제국실 영상 제작
2015 한국문화재재단 [UHD 이미지 문화유산] 영상 제작
2015 5.18재단 [5.18 국제홍보영상] 제작
2015 삼성미술관 리움 3채널 영상 [Solemn Serenity] 제작
2015 삼성미술관 리움 [한국의 건축 UHD] 제작
2015 극지연구소 홍보영상 제작
2015 2015년 장교합동임관식 영상 제작
2015 국방부 [온라인 홍보영상] 제작
2014 국방부 [국군홍보영상], [군수홍보영상], [의무사령부 홍보영상] 제작
2014 대구MBC [경북 관광문화] 캠페인 제작
2014 서울특별시 [서울 옛길] 영상기록화사업
2014 국립아시아문화의 전당 [아시아의 종교의례] 제작
2013 SBS 대기획 [최후의 권력 5부작] 라인프로듀싱
2013 SBS스페셜 [오로라헌터] 제작
2013 순천만 국제정원박람회 홍보영상 제작
2012 SBS 창사특집다큐 [최후의 제국 4부작] 라인프로듀싱, 촬영
2012 MBC 특집다큐 [국군은 죽어서 말한다 2부작] 제작
2011 TV조선 개국특집 [인사이드 DMZ] 제작
2011 극지연구소 [남극운석탐사] 홍보영상 제작
2010 [3D 비무장지대] 제작
2009 KBS 수요기획 [배병우와 소나무] 연출
2009 KBS 수요기획 [실크로드 석굴벽화의 비밀] 연출
2009 SBS국제공동다큐멘터리 [에스트라다 헤알 4부작] 제작
2008 유네스코아시아태평양국제이해교육원 [다문화 이해교육] 동영상 제작
2009 다큐멘터리 [대장정] 제작
2008 SBS스페셜 [바다집시] 제작
2008 SBS스페셜 [다큐동화, 네팔] 연출
2008 SBS스페셜 [사향지로 2부작] 제작
2008 SBS스페셜 [남극20년, 우리는 대륙으로 간다] 연출
2007 SBS스페셜 [차마고도 2부작] 제작
2006 KBS스페셜 [마지막 불의 전설] 연출
2006 ARTE-TV [The Legend of Fire] 연출
2006 France ARTE-TV [The Caravan] 연출
2005 KBS스페셜 [최후의 샹그릴라] 연출
2005 KBS스페셜 [티베트 소금계곡의 마방] 제작
2004 KBS 일요스페셜 [히말라야와의 약속] 제작
2003 KBS 수요기획 [신의 산 초모랑마] 제작
2001 KBS 일요스페셜 [쿰브멜라] 촬영
1999 KBS [문명다큐 몽골리안루트] 촬영
1998 SBS [문화대탐험 몽골리언루트] 촬영
1997 SBS [어린이날 특집 백두산] 제작
1996 KBS [광복절 특집 마나슬루] 촬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