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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08
2018.03.21 01:05

박노해 팔레스타인 사진전

조회 수 288 추천 수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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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제목 올리브나무의 꿈
전시기간 2018. 3. 2 ~ 8. 29
전시장소 라 카페 갤러리 Cafe Ra Gallery, Seoul
갤러리 주소 울 종로구 백석동1가길 19 (부암동 44-5) 02-379-1975
갤러리 홈페이지 http://www.racafe.kr
관람시간 오전 11시 - 오후 10시 * 매주 목요일 휴관
서울 종로구 부암동에 위치한 ‘라 카페 갤러리’의 15번째 전시, 박노해 팔레스타인 사진전 <올리브나무의 꿈>展이 개최된다. 비영리사회단체 <나눔문화>가 운영하는 ‘라 카페 갤러리’에서는 박노해 시인의 상설 전시가 열리며, 수익금은 평화나눔 활동에 쓰인다. 2012년 파키스탄 사진전을 시작으로 티베트, 에티오피아, 페루 등 12평 공간에 세계를 담아온 ‘라 카페 갤러리’의 누적 관람객은 18만 명을 넘었다. 2018년 첫 전시는 팔레스타인이다.
  • ⓒ박노해 Park Nohae
    올리브나무의 꿈 Hebron, Palestine, 2008.
  • ⓒ박노해 Park Nohae
    팔레스타인 분리장벽 Bethlehem, Palestine, 2005.
  • ⓒ박노해 Park Nohae
    고향 땅에서 쫓겨난 팔레스타인 여인 Jerusalem, International Regime, 2005.
  • ⓒ박노해 Park Nohae
    “우리는 팔레스타인인이다” ‘Ain Al-Hilweh’ Palestine refugee camp, Saida, Lebanon, 2008.
  • ⓒ박노해 Park Nohae
    간절한 기다림 ‘Ain Al-Hilweh’ Palestine refugee camp, Saida, Lebanon, 2007.
  • ⓒ박노해 Park Nohae
    어린 올리브나무 전사들 Ramallah, Palestine, 2008.
  • ⓒ박노해 Park Nohae
    올리브 농부의 일생 Salfit, Palestine, 2008.
  • ⓒ박노해 Park Nohae
    십자가의 길 Jerusalem, International Regime, 2007.
  • ⓒ박노해 Park Nohae
    예루살렘 감람산의 묘지 Jerusalem, International Regime, 2007.
  • ⓒ박노해 Park Nohae
    헤브론 고원의 봄 Hebron, Palestine, 2008.

푸른 올리브나무 숲을 거닐며


“기쁨의 날은 짧았고 어둠의 밤은 길었으나
그래도 우리는 살아왔고 삶은 나아가리니
저 광야에 파수꾼처럼, 믿음의 파수꾼처럼,
천 년의 올리브나무는 푸른 꿈으로 살아있으니”
박노해


서울 종로구 부암동에 위치한 ‘라 카페 갤러리’의 15번째 전시, 박노해 팔레스타인 사진전 <올리브나무의 꿈>展이 개최된다. 비영리사회단체 <나눔문화>가 운영하는 ‘라 카페 갤러리’에서는 박노해 시인의 상설 전시가 열리며, 수익금은 평화나눔 활동에 쓰인다. 2012년 파키스탄 사진전을 시작으로 티베트, 에티오피아, 페루 등 12평 공간에 세계를 담아온 ‘라 카페 갤러리’의 누적 관람객은 18만 명을 넘었다. 2018년 첫 전시는 팔레스타인이다.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점령 70년, 트럼프의 ‘예루살렘 이스라엘 수도’ 선포
지구상에서 가장 첨예한 분쟁 지역인 팔레스타인.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의 역사는 수천 년을 거슬러 올라간다. 유대인들은 기원전 11세기경 지금의 팔레스타인 땅에서 토착민을 몰아내고 최초의 유대국가‘이스라엘 왕국’을 세웠다. 그 후 기원전 6세기경 바빌로니아 왕국에 멸망한 뒤 기원전 63년 로마제국의 정복을 거치며 나라를 잃고 흩어져 살아왔다. 그리고 1948년 5월 14일, 마침내 이스라엘은 수천 년간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살아온 이 땅에 일방적인‘건국’을 선포했다. 팔레스타인‘나크바(재앙)’의 시작이었다.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을 점령한 지 70년이 되는 올해,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은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2017년 12월 6일,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예루살렘은 이스라엘의 수도”라고 발표한 데 이어, 올해 2월 23일 미국 정부가 “텔아비브에 있는 미 대사관을 이스라엘 건국 70년인 5월 14일에 맞춰 예루살렘으로 이전하겠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의 무차별 사격과 진압 속에서 팔레스타인 아이들조차 돌멩이를 들고 저항하고 있다. 팔레스타인의 고통에 세계의 관심이 필요한 지금, 이 전시를 주목해볼 이유다.

이스라엘군의 총구를 헤치며 기록해온 팔레스타인 전역의 사진
<올리브나무의 꿈>展에는 박노해 시인이 2005년부터 2008년까지 매년 팔레스타인을 찾아가 이스라엘군의 총구를 헤치며 기록해온 26컷의 작품이 전시된다. “인류의 수치이자 최악의 건축물. 팔레스타인을 둘러싼 세계 최대의 분리장벽”(박노해), “쫓겨난 팔레스타인 여인이 검은 눈물방울로”(박노해) 걸어가는 유대인 정착촌 지역, “날마다 ‘테러범’으로 몰리며 인생의 1/3을 보내는 체크 포인트”(박노해) 사진은 “내 나라 내 땅에서, 나는 걸어 다니는 수인囚人입니다”라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고난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예루살렘의 황금돔 사원 아래 ‘통곡의 벽’과 유대인 공동묘지가 한 프레임에 담긴 사진은, 이스라엘의 아픈 성찰을 직면하게 한다. “이스라엘을 생각하면 눈물이 난다. 그렇게 긴 수난과 고통을 겪고서도 똑같은 죄업을 되풀이하는 자들. 고난과 상처를 승화시키지 못한 자는 자기 영혼과 산 목숨을 잡아먹는다.”(박노해) 오래전 유대민족의 수난 그대로, 오늘도 고향집 열쇠를 간직한 채 귀향을 꿈꾸는 난민촌 사진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고향 집 열쇠야말로 인류 평화의 문을 여는 열쇠”(박노해)라는 강력한 평화의 모티브로 이어진다.

‘전시 그 이상’의 전시, 팔레스타인 난민을 위한 관람객들의 평화나눔 실천
박노해 사진전은 관람객들의 표현대로 언제나 “전시 그 이상”이었다. 강인한 애정으로 세계의 진실을 전하는 박노해의 사진은 처음부터 실천적이었고, 그 사진들이 내면의 깊은 울림을 불러 일으키는 동시에 우리의 존재를 인류로 확장시키며 변화와 실천의 불씨가되어주기 때문이다. 이번 전시에서 주요 서사를 이루는 레바논 최대의 팔레스타인난민촌 ‘아인 알 할웨’의 작품들이 더 특별히 전해지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2006년 ‘아인 알 할웨’를 찾은 박노해 시인은 팔레스타인 난민 아이들을 위해 <자이투나 나눔문화학교>를 설립했다. 올해로 12년째, <나눔문화> 회원들의 후원으로 현지 연구원 자이납Zainab(38) 교장이 100여 명의 아이들을 가르치며 살아가고 있다. 난민촌에서는 유일하게 팔레스타인 역사와 전통춤을 가르치는 곳이기도 하다. 이국 땅을 떠돌면서도 “나는 팔레스타인인이다” 라며 자유의 저항을 이어가고, 폭격 더미 속에서도 쓸고 닦으며 삶을 포기하지 않는 이들에게 이번 전시가 작은 희망이 되고 있다. 전시 첫날부터 관람객들의 <자이투나 나눔문화학교>를 위한 평화나눔 후원이 이어지고 있고, 무엇보다 이번 전시로 팔레스타인 문제를 처음 알게 되었다는 어린 학생들의 참여가 눈에 띈다.

팔레스타인의 저항과 평화의 상징, 올리브나무의 꿈
팔레스타인 인구의 70%가 올리브 농사로 살아갈 정도로, 올리브나무는 팔레스타인 사람들과 인생의 희로애락을 함께해왔다. 박노해 시인의 사진 속에는 올리브나무 아래 평화로웠던 시절을 추억하는 할아버지 농부의 사연부터, 비록 내일이면 작은 돌멩이를 쥐고 이스라엘의 탱크를 향해 달려갈지라도 올리브나무 아래 기대 앉아 꿈을 키우는 아이들의 모습, 이스라엘의 불법 점령지 확장을 막기 위해 빈 땅마다 올리브나무를 심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저항이 담겨 있다. ‘올리브나무의 꿈’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오랜 꿈이며, 자유와 평화를 바라는 모든 이들의 꿈이기도 하다.
21세기 인류 분쟁의 중심지가 된 중동. 오늘도 팔레스타인, 시리아, 쿠르드 등지에서는 소리 없는 학살이 벌어지고 있다. 이는 인류의 양심과 정의에 대한 도전이다. 그러나 강대국의 복잡한 이권이 얽혀 해결의 실마리조차 보이지 않고, 무력감과 피로감으로 세계 저편의 분쟁은 어느 순간 익숙한 것이 되고 말았다. 그곳의 사람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건 침묵이고 가장 필요로하 는 건 관심이다. 누군가 이 불의한 고통에 함께 분노하며 지켜보고 있다는 간절한 믿음이다. 그들을 향한 ‘눈길’, 눈이 길을 낸다는 믿음의 걸음으로 <올리브나무의 꿈>展에 많은 관람을 기대한다.

올리브나무의 꿈

Hebron, Palestine, 2008.
광야에 태양이 붉게 타오르고 박토에서 온몸을 비틀며 자란 천 년의 올리브나무는 오늘도 순결한 열매와 기름을 내어준다. 팔레스타인 아이들은 양을 치다가 올리브나무 푸른 그늘 아래서 책을 읽고 담소하다 잠이 들곤 한다. 그리고 다시 광야의 길을 나선다. 강인한 올리브나무의 꿈을 품고.

팔레스타인 분리장벽

Bethlehem, Palestine, 2005.
팔레스타인을 둘러싼 8m 높이 약 700km 길이, 나치의 게토를 닮은 세계 최대의 분리장벽. 2002년부터 이스라엘과 미국이 쌓아 올린 인류의 수치이자 최악의 건축물이다.
‘아득한 분리장벽 앞에서 울어 보았나. 어린 새처럼 머리를 부딪치며 울어 보았나.’ 분리장벽은 모든 것을 갈라놓는다. 마을을 갈라놓고, 올리브밭을 갈라놓고, 일자리를 갈라놓고, 인간성을 갈라놓는다.

고향 땅에서 쫓겨난 팔레스타인 여인

Jerusalem, International Regime, 2005.
이스라엘의 ‘약속의 땅’은 팔레스타인의 ‘빼앗긴 땅’. 쫓겨난 팔레스타인 여인이 검은 눈물방울로 걸어간다. 수천 년 살아온 평화로운 마을에 총성이 울리고 이스라엘군이 탱크와 방탄차를 밀고 들어오면 어김없이 분리장벽과 유대인 정착촌이 들어선다. 팔레스타인 영토와 수자원을 영구 독점하기 위해서다. 저 신성한 태양의 광야, 광야의 길은 이제 팔레스타인의 피와 눈물의 길이 되고 말았다.

“우리는 팔레스타인인이다”

‘Ain Al-Hilweh’ Palestine refugee camp, Saida, Lebanon, 2008.
새해 아침, 팔레스타인 난민들이 함께 모여 조국의 해방을 위해 싸우다 죽은 이들을 추모한다. 아버지를 잃고, 남편을 잃고, 자식을 잃은 여인들이 손바느질로 만든 거대한 팔레스타인 국기를 들고 고향 땅을 바라보며 언 하늘에 외친다. “나는 팔레스타인인이다.” 저항하지 않고서는 살아있는 인간일 수 없는 상처 입은 심장의 박동소리, 고독한 절규. “우리는 팔레스타인인이다.”

간절한 기다림

‘Ain Al-Hilweh’ Palestine refugee camp, Saida, Lebanon, 2007.
인구 12만 명의 레바논 최대의 팔레스타인 난민촌 ‘아인 알 할웨’ 아이들은 태어나면서부터 가난과 전쟁의 공포를 공기처럼 마시며 자란다. 외부인은 허가증 없이 이곳에 들어갈 수 없고, 난민들은 직업의 자유도, 집을 소유할 권리도 없으며, 대다수 아이들은 학교에 가는 대신 밥을 벌어야 한다. 하늘만 뚫린 거대한 감옥 같은 난민촌에서, 총탄 자국이 간판보다도 더 많은 삶터에서, 아이들은 자유와 귀향의 간절한 기다림을 산다.

어린 올리브나무 전사들

Ramallah, Palestine, 2008.
이스라엘의 불법 점령지 확장을 막기 위해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저항은 빈 땅마다 올리브나무를 심어 기르는 일이다. 불볕의 광야에서 올리브나무 한 그루 키우기란 아이를 기르듯 엄청난 공력을 쏟아야 하는 일이다. 거센 모래바람과 염소떼가 갉아먹지 않도록 한 그루 한 그루 양철통으로 감싸 보호하고 3년 동안 보살펴야 푸른 나무로 설 수 있다. 이광야에 뿌리를 굳게 박고 기필코 점령군을 막아 내고야 말겠다는 듯, 태양을 향해 팔을 뻗은 어린 올리브나무 전사들.

올리브 농부의 일생

Salfit, Palestine, 2008.
천 년 된 올리브나무가 푸른 회랑처럼 끝도 없이 아름답게 펼쳐진 살핏 마을. 대대로 올리브 농부로 살아온 할리드 할아버지는 올리브나무 목을 자르는 이스라엘군을 막다가 구속되고 부러지고 심장을 크게 다쳤다. “올리브나무 아래서 아내와 첫 키스를 했지요. 함께 올리브 열매를 따고 포도를 수확했지요. 그녀를 다시 만나면, ‘우리 아이들은 잘 자랐나요? 올리브나무도 열매를 잘 맺나요? 춤과 노래소리가 올리브나무 사이로 흐르고 있나요?’ 물을 텐데 아… 그녀 앞에 말을 잃을 것만 같아 두렵습니다.”

십자가의 길

Jerusalem, International Regime, 2007.
예수가 십자가를 지고 핏방울을 떨구며 골고다 언덕을 향해 걸었던 최후의 길. 갈릴리 출신의 밑바닥 청년 혁명가가 패배와 배신 속에 고독하게 걸었던 길. 그러나 죽음에 이르러서까지도 그에게는 믿음이 있었으니, 결코 포기하지 않은 희망이 있었으니, 죽음보다 강한 사랑이 있었으니, 오늘 그 고독한 길을 누가 걷고 있는가.

예루살렘 감람산의 묘지

Jerusalem, International Regime, 2007.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 모두의 성지로 ‘평화의 도시’라 불리는 예루살렘. 그러나 예루살렘을 점령한 이스라엘은 이곳을 ‘무기의 도시’로 만들었다. 황금돔 사원 아래 ‘통곡의 벽’과 예루살렘을 굽어보는 ‘감람산’에 길게 뻗은 유대인들의 공동묘지는 이스라엘의 역사를 말없이 전하는데. 이스라엘을 생각하면 눈물이 난다. 그렇게 긴 수난과 고통을 겪고서도 똑같은 죄업을 되풀이하는 자들. 고난과 상처를 승화시키지 못한 자는 자기 영혼과 산 목숨을 잡아먹는다.

헤브론 고원의 봄

Hebron, Palestine, 2008.
헤브론은 해발 930m에 자리한 고원 도시로 물이 넉넉하고 포도와 올리브, 무화과가 풍성하다. 창세기에 나오는 하늘과 아브라함의 ‘언약의 땅’, 다윗이 왕으로 기름부음을 받은 땅이기도 하다. 헤브론 고원의 햇살 아래 어린 양의 울음소리가 봄을 부르면, 아 나는 전쟁의 세상 한가운데서도 새로운 세상의 발자국 소리를 들을 수 있으니.

박노해




1957년 전라남도 함평에서 태어났다. 1984년 현장 노동자로 활동하던 중 첫 시집 『노동의 새벽』을 출간했다. 군사독재의 감시를 피해 사용한 ‘박노해’라는 필명은 ‘노동자의 해방’이라는 뜻으로, 이때부터 ‘얼굴 없는 시인’으로 알려졌다. 금서 조치에도 불구하고 100만 부 가까이 발간된 『노동의 새벽』은 잊혀진 계급이던 천만 노동자의 목소리가 되었고, 대학생들을 노동현장으로 뛰어들게 하면서 한국사회와 문단을 충격으로 뒤흔들었다. 1989년 한국에서 사회주의를 처음 공개적으로 천명한 ‘남한사회주의노동자동맹(사노맹)’을 결성했다. 7년여의 수배생활 끝에 1991년 체포, 사형이 구형되고 무기징역형에 처해졌다. 1993년 옥중에서 두 번째 시집 『참된 시작』과 1997년 옥중 에세이집 『사람만이 희망이다』를 출간했다. 1998년 7년 6개월의 수감 끝에 석방되었다. 이후 민주화운동유공자로 복권되었으나 국가 보상금을 거부했다. “과거를 팔아 오늘을 살지 않겠다” 며 지구 시대의 인간해방을 향한 새로운 사상과 실천에 착수한다. 2000년 생명·평화· 나눔을 기치로 한 사회운동단체 ‘나눔문화’(www.nanum.com)를 설립했다. 2003년 이라크 전쟁터에 뛰어들면서 아프리카, 중동, 아시아, 중남미 등 가난과 분쟁 현장에서 평화활동을 이어왔다. 낡은 흑백 필름 카메라로 기록해온 사진을 모아 2010년 첫 사진전 <라 광야>展과 <나 거기에 그들처럼>展(세종문화회관)을 열었다. 국내외 현장에서 쓴 304편의 시를 엮어 12년 만의 신작 시집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를 출간했다 2012년 나눔문화가 운영하는 좋은 삶의 문화 공간 ‘라 카페 갤러리’에서 글로벌 평화나눔 사진전을 상설 개최하고 있다. 2014년 박노해 아시아 사진전 <다른 길>展(세종문화회관) 개최와 함께 사진집과 사진에세이 『다른 길』을 출간했다. 오늘도 국경 너머 인류의 고통과 슬픔을 끌어안고 새로운 사상과 대안 혁명의 길로 걸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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