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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제목 IMAGE ACTE
전시기간 2017. 9. 16 ~ 10. 26
전시장소 Art District_p(예술지구_ p), Busan
오프닝 2017. 9. 16.Sat. 18:00
갤러리 주소 부산광역시 금정구 개좌로 162 ( 회동동 157-6번지) Tel. 070. 4322. 3113
작가 홈페이지 https://www.lensculture.com/kyunghee-lee-2
갤러리 홈페이지 http://artdp.org
관람시간 OPEN 10:00 a.m. ~ 6:00 p.m. CLOSE Sunday, Holiday
주관 사진 미디어공간 포톤
후원 Art District_p panax
“지금 여기 서 있는 나를 건드리는 빛은 지연되어 방사되는 별빛처럼 나를 건드린다.” 필립 뒤바(Philippe Dubois)는 그의 저서 『사진적 행위』(L'acte photographique)에서 “사진으로 찍는 것, 그것은 사진을 찍는다는 사실이다”라는 드니 로슈(Denis Roche)의 말을 인용하면서 사진을 다음과 같이 정의했다. “사진에서 이미지를 존재하게 하는 행위 밖에서는 더 이상 그 이미지를 생각할 수 없다.” 즉 사진은 이미지(image)인 동시에 이미지-행위(image acte)까지도 포함한다는 의미다. 사진은 대상의 인화물이기도 하지만 이미지의 상황과 그것을 있게 한 원인 밖에서는 생각할 수 없는 무엇이다. 그는 사진을 이미지 생산을 위한 행위뿐만 아니라, 이미지를 응시하고 수용하며 활용하는 모든 이미지-경험까지도 포함하여 정의하고 있다. 이로서 사진에 대한 우리의 시각을 작동자-이미지라는 닫힌 의미 공간에서 이미지-관객이라는 수용자 중심의 열린 공간으로까지 이동시킨다. 사진적 행위는 “어떤 존재론적 실재를 실제의 현실로 이동시키는 실행을 말한다.” 이것이 카메라를 통한 생성의 시각적 재현이다. 사진 이미지의 존재론적 본질은 사진을 생성하는 과정, 즉 사진행위에 있다.
  • ⓒ이경희 Kyunghee Lee
  • ⓒ이경희 Kyunghee Lee
  • ⓒ이경희 Kyunghee Lee
    Image Acte, Pigment print, lamina, 180cm x 120cm, 1/7, 2011
  • ⓒ이경희 Kyunghee Lee
    Image Acte, Pigment print, lamina, 75cm x 50cm, 1/7, 2015
  • ⓒ이경희 Kyunghee Lee
    Image Acte, Pigment print, lamina, 75cm x 50cm, 1/7, 2014
  • ⓒ이경희 Kyunghee Lee
    Image Acte, Pigment print, lamina, 150cm x 100cm, 1/7, 2014
  • ⓒ이경희 Kyunghee Lee
    Image Acte, Pigment print, lamina, 150cm x 100cm, 1/7, 2014
  • ⓒ이경희 Kyunghee Lee
    Image Acte, Pigment print, lamina, 180cm x 120cm, 1/7, 2017

IMAGE ACTE (이마주 악트)


이 경 희


“지금 여기 서 있는 나를 건드리는 빛은 지연되어 방사되는 별빛처럼 나를 건드린다.”

필립 뒤바(Philippe Dubois)는 그의 저서 『사진적 행위』(L'acte photographique)에서 “사진으로 찍는 것, 그것은 사진을 찍는다는 사실이다”라는 드니 로슈(Denis Roche)의 말을 인용하면서 사진을 다음과 같이 정의했다. “사진에서 이미지를 존재하게 하는 행위 밖에서는 더 이상 그 이미지를 생각할 수 없다.”1) 즉 사진은 이미지(image)인 동시에 이미지-행위(image acte)까지도 포함한다는 의미다. 사진은 대상의 인화물이기도 하지만 이미지의 상황과 그것을 있게 한 원인 밖에서는 생각할 수 없는 무엇이다. 그는 사진을 이미지 생산을 위한 행위뿐만 아니라, 이미지를 응시하고 수용하며 활용하는 모든 이미지-경험까지도 포함하여 정의하고 있다. 이로서 사진에 대한 우리의 시각을 작동자-이미지라는 닫힌 의미 공간에서 이미지-관객이라는 수용자 중심의 열린 공간으로까지 이동시킨다. 사진적 행위는 “어떤 존재론적 실재를 실제의 현실로 이동시키는 실행을 말한다.”2) 이것이 카메라를 통한 생성의 시각적 재현이다. 사진 이미지의 존재론적 본질은 사진을 생성하는 과정, 즉 사진행위에 있다.

사진은 대상의 빛의 자국이지만 빛이 스며듦으로서 부유하는 이미지가 된다. 사진이 포착되는 그 순간, 대상은 사라진다. 마치 오르페우스처럼 그것을 바라본 대가의 죽음이다. 촬영자는 포착한 대상과 현상되어 나타나는 이미지 사이의 시간적 경과에서 두려움과 불안 같은 환상에 사로잡힌다. 그것은 대상과 이미지 사이의 시간적 편차 때문일까. 혹은 내가 바라보는 순간 대상이 사라졌기 때문일까. 혹은 사진이란 무의식의 작용을 실행하는 것일까. 사진은 지시대상과의 과도한 인접성으로 인해 시간이 흐름에 따라 대상과 더 이상 구별할 수 없는 하나가 되며, 결국 붕괴에 이른다. 이것이 사진-인덱스를 다른 종류의 지표들과 구별시키는 특징이다.

거대한 무질서 속의 무수히 많은 대상들에도 불구하고 촬영자가 선택하는 ‘바로 그 대상, 바로 그 순간’의 의미의 맥락은 심원하다. 그 많은 대상 중, 그 많은 순간들 중 왜 하필 바로 그 대상 ,그 순간일까. 이것은 사진 존재론에 연관된 본질적인 질문이다. 롤랑 바르트에 의하면 “내가 필요로 하는 대상은 내가 바라보는 신체로 항상 귀결시킨다. 사진이 무한히 재현하는 것은 단 한 번 일어난다. 그것은 실존적으로 더 이상 재생될 수 없는 것을 재현한다. 그래서 사진은 절대적으로 고유한 것이고 특수한 것이며 최고의 우연성이다.”3) 라고 했다. 대상과의 우연한 마주침으로 무의식 속에서 잠재되어 있는 잃어버린 대상을 찾는 행위다. 잠재적 대상은 현실의 대상과 만나 위장과 전치의 모습으로서 우리를 만족시킨다. 무의식적으로 셔터를 누르는 행위는 무의식 속에서 강제된 것이다. 대상과의 조우를 통해 자아는 형성되고 수만 가지의 색과 형태를 가진 자아의 원형을 찾아 이동하는 것이다. 셔터를 누르는 것, 사진을 찍는 행위는 끊임없이 자아를 찾아가는 여행이다. 결핍을 메우려고 하는 무의식적 의지의 전개로 맥락지울 수 있다. 그러나 이미 형성된 자아는 다시 결여를 남긴다. 위장된 자아는 진정한 자아를 찾아 간다. 전치된 결과물을 보면서 환상을 통해 만족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환상과 무의식의 구조는 계속해서 조금씩 모습을 바꾸어 가면서 나아가는 힘이 있다. 이것은 삶의 근원적인 힘이요 인간의 근본적인 열정이다. 우리가 경험하는 불충분한 만족 너머에 우리를 채우게 될 그 이상의 어떤 것이 있다. 우리의 삶은 마음속으로 그리는 이상과 가능성으로 지속된다. 이상과 가능성은 지속적으로 스스로에게 요구하고 강요한다. 이것이 우리의 외부다.

1) 필립 뒤바, 『사진적 행위』(이경률 역), 서울 마실, 2005, 12쪽.(이하 약어 PD : 12)
2) 롤랑 바르트, 『밝은 방, La chambre Claire』(김응권 역), 서울, 동문선, 2006, 6쪽.(이하 약어 RB : 6)
3) RB : 16

이경희 사진

여기를 지우고 저기-지금을 본다

강 선 학(미술비평)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물들이 순식간에 환영으로 전환된다. 실재의 무게와 현실적 사물성이 환영이나 그림자로 변해버린다면 그 다음 보게 되는 것은 무엇일까. 보는 이를 곤혹스럽게 하는 것이 단순한 카메라의 작동기법이 아니라 메시지임이 분명한데 그 메시지의 내용이 만만하지 않다. 이경희의 작업에서 일견되는 인상이다.

보는 이에게 사물들의 실재감이 가장 뚜렷하게 부각될 수 있는 근거리의 사물들이 그 속성을 거부당하고 하나의 환영으로 전환된다는 것은 현실경의 원근을 부정하는 것이다. 단도직입 말하면 눈앞에 다가온 현재의 존재에서 자유로워진다는 것이다. 내게 다가오는 하나의 사실이라는 위협이 사라진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것은 내가 만지고 보고 느끼게 되는 피할 수 없는 실재로서 현실이다. 그런 현실, 사실의 질감을 통어하는 것이야말로 주체가 해 왔던 일이다. 그런데 주체가 할 일을 환수조처 해버리듯 화면에는 근경이 희미하게 지워지거나 사라져 가고 있다. 마땅히 주체가 담당해야 할 지각과 인식, 판단과 반성의 기능이 제거당하고 만 것이다. 주체가 소외되고 있는 정황이다. 역으로 현실의 실재감이 사라지는, 현실이 주체의 시각에서 벗어나는 순간이기도 하다. 가장 가까이 있는 것들에 대한 시선을 지움으로써 드러나는 애매모호함 혹은 사라지는 흔적은 현실적으로 사라질 수 없기에 그것은 환영일 뿐이다. 근경 없이 전개되는 풍경, 중경과 원경의 탐색은 무엇일까.

알 것 같은 눈앞의 인물이나 풍경, 혹은 사물들이 느닷없이 시야를 흐리고 내가 바라보는 순간에 끼어들어 바라보기를 방해한다. 보기를 방해하면서 또 다른 시선으로 놓아둔다. 보이지 않게, 보기 힘들게 하면서 본다는 의식 없이 드러나는 중경과 원경으로 시선을 돌리게 한다.
갈매기가 가까이 다가오는 순간 초점 거리를 놓친 그것은 흐리게 잡히고 초점으로 잡힌 것은 분명하게 드러난다. 바닷가에서 남녀가 포옹하면서 키스를 하고 있다. 그들 앞에 한 남자의 뒷모습이 잡혀 있지만 그 남자의 모습은 그저 흐릿하게 잡혀 실제로 그들을 보고 있는지 어떤지 알 수 없다. 포옹한 자신들조차 그렇게 선명하지 않다. 그들 뒤편으로 펼쳐지는 작은 파도만이 그 질감을 드러내며 선명하게 보일 뿐이다. 자신이 보는, 또는 보이고 있다는 시선마저 부정해버린 장면이다. 한 남자가 파도를 바라보는 장면 역시 뒷모습이 잡혔지만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기보다 그 앞으로 전개되는 파도의 디테일만 시야에 들어온다.
가장 가까이 다가오는 그것은 자신의 존재감을 내게 드러내지만 주체로서 지각하지 못하거나 제어할 수 없다면 하나의 위협이 될 수 있다. 다행히 그 순간 그것은 흐려지고 존재감을 상실하고 만다. 위협적인 실재감이 위험에서 한 걸음 물러서게 처리된 셈이다. 가장 가까이, 실재의 존재로서 촉감을 가진 그것이 환영으로 변해버리는 것이다. 질감도 형상도 시간과 공간도 그저 희미하게 한 순간 바뀌어버린 셈이다. 초점 거리로 조절하는 피사체 흐리기라고 하기에는 일관되게 시선을 유도한다.

때로는 근경이 잘 잡혀 있다. 그런데 역광에 의해 근경의 인물들은 어떤 실재감도 가지지 못한 상태다. 실재와 그림자가 하나의 틀로 묶이면서 삼차원이 인물이 이차원의 평면으로 바뀌고 만다. 배경만 분명하게 현실의 공간임을 보여준다. 역광으로 인해 근경의 구체적 인물이 평면이 되고 중경과 원경만 실재로 다가온다. 상대적으로 하늘이 화면의 구십 퍼센트를 차지하고 인물이 십 정도를 차지하는 구도 속에 한 여자의 머리가 잘린 듯 화면 아래 가장자리에 놓여 있다. 예사롭지 않은 구도로 드러난 인물이지만 인물에 시선이 가는 것이 아니라 아무 것도 없는 하늘에 시선을 보내고 만다. 근경이 분명한 작업들은 대부분 이런 구도의 변주로 이어진다. 사실적인 포착조차 초현실의 어떤 정황으로 바뀐다. 왠지 ‘금정산 하늘빛 땅으로’ 하는 플래카드를 걸고 산신제를 지내는 사진이 맴돈다. 춤꾼들의 연출된 모습이 분명한 억새밭의 장면이나 느닷없이 인물이 개입해 들어와 잡힌 생경한 숲 속의 한 장면도 하나의 질문이 되고 만다. 현실이면서 현실이 아닌 것처럼 다가오는 이 장면들의 정체가 무엇인지를. 사진이라는 매체의 속성이 가지는 묘사를 부정할 수 없다면 “객관의 우선성의 바탕에서 대상과 가까이 가려는 대상경험이며 개념으로 포착될 수 없는 대상의 그 ‘어떤 것’ 혹은 ‘다른 것’에 대한 관심” 1) 이다. 아도르노가 지적하듯 미메시스적 태도에 다르지 않다.

근거리의 사물들을 희미하게 잡아내는, 혹은 흐리기로 드러내는 화면은 근경을 무시하는 것이지만, 원근법이라는 일상의 사실성을 무력화하는 것이다. 원근을 무시한다는 것은 현실을 공간과 시간의 중첩으로 바라보게 하는 일상적인 시각 속성에 대한 거부이기도 하다. 가장 가까이 있는 사물은 무엇보다 자세하게 들여다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부각시키고, 사물의 표면을 덮고 있는 재질감은 현실의 존재, 촉감으로서 세계를 보여준다. 만져지고 느껴지는 현실 그 자체, 왜곡되지 않은 무엇이다. 그리고 분명하게 그것들을 바라보고 만지는 자신을 일깨워준다. 그런데 근거리의 사물들을 무시하고 보이지 않게 하고 공간적 거리를 없앰으로 사물로서 존재감을 희미하게 만들어버린 것이다. 내가 바라보고 있다는, 내가 여기 있다는 존재감의 부정이다. 바라보는 정경에서 바라보는 나를 지워버리고 현실의 질감을 부정해버리면 무엇이 남을까. 가장 가까이 있는 것, 나라고 하는 주체의 자리를 지우고 나면 그곳에는 무엇이 남으며 무엇이 보일까.
질감의 현재성을 지우고 나면 그곳에는 시간의 거리, 주체가 사라진 곳으로 풍경이 남는다. 주체가 사라진 풍경이란 내가 보는 세계가 아니라 그것이 그곳에 있는 그 자체로 드러나는 것이다. 내가 없는 그곳, 내가 어떻게 해볼 수 없는 거리에 있는 그곳은 나의 개입이 불가능한 지점, 주체가 이해하는 것이 아닌 무엇이 있게 된다.
중경과 원경은 존재하는, 그것으로 거기 있는 ‘어떤 것’으로 공간을 확보하지만 시간과 무관한, 내 시선과 무관한 그곳이다. 주체의 시각이 아닌 있는 그대로의 ‘다른 것’이다. 주체가 없는 그곳은 규정될 수 없는 곳이자 지각되지 않은 곳이며 인식되지 않는 곳이다. 그런데 그곳에 내가 아닌 채로 내 시선이 닿는다. 그렇게 만나지는 공간과 시간이다. 그곳은 주체의 자리 없이 자아와 타자가 만나지는 곳이다. 그것은 순간이며 다가오는 그대로의 만남이다. “있는 그대로와 인공적이라고 하는 것은 현재 있음의 두 양식이다.2) 사진의 피사체로 있기 전 그곳에 있던 그곳과 사진으로 드러난 그곳의 차이다. 피사체의 근경보다 원경이나 중경으로 펼쳐지는 자연의 모습은 ‘금정산 하늘빛 땅으로’ 하는 산신제의 플래카드 문구처럼 언제나 현실 밖과 연결된 일종의 통과지점이다. “적극적인 의미의 자연에 대한 기억은 사유를 통해 자연지배가 가능하기 이전의 상태에 대한 기억, 즉 내적 자연에 대한 억압이 발생하기 이전의 자연동화적, 자연친화적 내적 자연의 상태에 대한 기억”3) 이라 하지 않는가. 적어도 그에게서 중경과 원경은 주체가 관여하는 현실이 아니라 그 자체로 우리에게 다가오는 것임에 분명하다.
실로 풍경은 한꺼번에 보인다. 근거리와 원거리가 함께 보이지 근거리보고 중거리 보고 원거리를 보면서 하나의 풍경이 완성되는 것이 아니다. 보는 순간 그 삼경이 하나로 종합되어 인식된다. 그러나 엄밀하게 말하면 시선이 움직이는 시간 단위로 보이는 것으로 생각해야 한다. ‘갑자기’의 다른 말은 홀연(忽然)인데 10의 마이너스 5승 정도의 시간을 말한다. 그보다 짧은 시간으로 수유(須臾), 순식(瞬息), 탄지(彈指)와 찰나(刹那)로 나눈다. 찰나는 10의 마이너스 17승이다. 왜 이런 나눔이 생겼는지 그 배경이나 정당성의 논리를 따지기 전에 짧은 순간조차 나누어 말하려 했던 적실함을 상기한다면 사물을 보거나 풍경을 바라보고 인식되는 순서가 없지 않을 것이다. 더구나 카메라로 풍경을 볼 때는 조리개와 시간조절에 의해 다르게 보이고 다르게 잡힌다. 말하자면 한꺼번에 지각되는 것이라 해도 인식의 정도는 근거리가 현재라면 중경과 원경은 다음, 그 다음으로 선차성을 가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 근거리가 부정되면서 공간이 시간지각으로 바뀐다. 근거리를 지각하기 전에 근거리의 풍경이나 사물을 마치 유령처럼 보이게 하고 중경과 원경을 있는 그대로 보게 만드는 순간, 거리로서의 공간이 시간 차이를 만들어내면서 다른 시선을 인식하게 한다. 근거리의 시간이 부정되면 현재가 아니라 가까운 중경이 현재가 된다. 현재의 나를 부정함으로써 미래의 내가 들어설 자리를 드러나게 하는 것이다. 현재란 과거와 미래가 함께 시간의 속성을 구성하는데, 현재가 빠지고 미래가 현재를 구성한다면, 시제성의 시간에서 벗어난다는 것으로 현재라는 시간을 벗어난다는 말이다. 현재-있음이 아니라 미래-있음으로 파악되는 풍경이다. 현재는 단정이다. 현재는 과거로서 사건이며 시간이 아니다. 시간이란 미래다. 지속성이지만 현재, 지금은 여기 있지 않고 저기 있다는 구조로서 풍경이다. “공간에서의 여기(즉 점)는 시간의 ‘지금’이다”4) 이경희의 사진적 장치는 여기-지금을 지우고 저기-지금을 보려는 것이다.

여기 내가 있는 자리를 지운다. 그리고 그 지운 자리 사이로 저기가 지금 다가온다. 현재를 지움으로 여기의 실재성을 무화시키고 여기를 무화시킴으로 시간의 다급함, 현재의 강박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그 자유로움은 저기 있는 시간 밖으로 시선을 가져갈 수 있게 한다. 중경이나 원경이 아니라 현실이면서 현실이 아닌 ‘그 곳’, 언제나 밀려난 시간에서 지금의 시간으로 호명되는 순간이다. 여기를 지움으로 저기가 선명해진다. 지금을 지움으로 다음이 선명해진다. 이곳의 다급함에서 저곳의 느림으로 눈을 옮기는 것이다. 여기의 실재에서 저기의 존재로 옮겨감으로 시간은 공간으로 현시된다. “존재란 현재-있음과 같은 것으로 여겨졌다. 현재-있음, 현존 등은 <현재>를 말하는 것이다. 최근의 설명에 따르면, 현재는 과거와 미래와 함께 시간의 속성을 구성하는 것이다. 존재란 시간에 의해 현존으로써 제한된다.”5) 주체가 의미부여 하기 전의 모습으로, 그저 시간 속에 놓여 있음을 보여줄 뿐 어떤 의미도 들어서기 전의 모습이다. 미래의 시간을 현재-있음으로 불러내는 작업, 그것이 이경희의 풍경이 아닐까.

1) 이종하, 아도르노- 고통의 해석학, 살림, 2012. p.73
2) M. 하이데거, 서울, 문학과 사회연구소 책임기획 번역, 『시간과 존재』, 청하, 1986.p.26
3) 이종하, 아도르노- 고통의 해석학, 살림, 2012. pp.60-61
4) 소광희, 시간의 철학적 성찰, 문예출판사, 200l.p.378
5) M. 하이데거, 서울, 문학과 사회연구소 책임기획 번역, 『시간과 존재』, 청하, 1986.p.19

이경희 Kyunghee Lee


한국 부산 태생의 이경희는 약학을 전공했으며, 2014년 국립부산대학에서 예술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녀는 현재까지 14차례의 개인전과 20여 차례의 그룹전을 가졌다. 2008년 일본 冬靑社 (Toseisha)에서 첫 사진집 『island』를 발간했으며, 그 해 「PARIS PHOTO, 2008」 북 사인회에 초대 받았다. 2012년 11월에는 일본 冬靑社 (Toseisha)에서 두 번째 사진집 『The Seventh Sense』를 발간했다. 그녀의 작품은 중국의 리엔조, 얀쉐이, 따리, 핑야오 등의 국제사진축제에 소개되었으며, 미국 워싱턴DC의 포토위크 DC와 뉴욕의 BURN 갤러리에 전시되었고, 2010년에는 Burn Magazine Print인 『BURN. 01』에 발간되었다. 2015년 3월에는 홍콩 포토북 페어의 북 사인회와 프리젠테이션, 5월에는 호주 시드니의 HEAD ON PHOTO FESTIVAL 전시에 Featured artist로 초대받았다. 2017년에는 눈빛출판사에서 사진집 『Film Map』이 발간되었다. Lisa J. Sutcliffe (Curator of Photography and Media Arts at the Milwaukee Art Museum)가 큐레이팅한 전시[Borders, Boundaries and Edges]와 렌스컬쳐의 LensCulture Network Gallery에 피쳐되었고, 'Life from Time-Space'는 'VASA Front Page Project #33'으로 선정되었다.

Kyunghee Lee, from Busan, Korea, holds BA in Pharmacy and is a Ph.D of Art from Busan National University. She has held 14 private and over 20 group exhibitions, and published her first book 'island' in 2008 (Toseisha, Japan) which was invited for book signing at the Paris Photo 2008 and published her second book 'The seventh sense'in 2012 (Toseisha, Japan). Her work has been shown by the Lianzhou, Yansui, Dali, Pingyao International Photo Festival of China, and Fotoweek DC, Wash. DC, BurnGallery show, NY of USA, etc. And also shown in [burn.01] in print. She had book-signing and presentation in Hong Kong Photobook Fair on March and was invited to the exhibition of Head On Photo Festival in Sydney on May 2015. Her work is featured in the LensCulture Network Gallery and a part of group show [Borders, Boundaries and Edges] curated by Lisa J. Sutcliffe, Curator of Photography and Media Arts at the Milwaukee Art Museum in 2017. And also her work 'Life from Time-Space' is featured as the 'VASA Front Page Project #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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