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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01
2017.01.19 19:22

조다소

조회 수 200 추천 수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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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제목 실재의 부재
전시기간 2017. 1. 18 ~ 1. 31
전시장소 갤러리 나우 gallery Now, Seoul
갤러리 주소 서울시 종로구 인사동길 39, 관훈동 성지빌딩 3F T. 02. 725. 2930
갤러리 홈페이지 http://www.gallery-now.com
관람시간 11am - 6pm / 1월 17일은 2pm 까지 관람가능
Description of the concept for L’absence de Réelle (Sub title : L’Homme et Femme) 골목길, 선생님, 할머니, 학교, 고무줄놀이, 첫사랑 여학생, 반장, 시험, 친구, 올림픽, 뽑기, 삐이라, 노을, 필통, 눈사람, 스케이트, 나이키, 뉴망, 소피 마르소, 잠자리, 이소룡, 주윤발, 명동, 백화점, 압구정동, 마이클 잭슨, 마돈나, 이태원, 컬러티비, 림스치킨, 햄버거, 밀탑빙수….. 욕심, 정치욕, 잔인, 이기심, 순환, 비밀, 이기주의, 민족주의, 강요, 존재, 위협, 붕괴, 생각, 꿈, 사랑, 희망, 삶, 남자, 여자, 후회, 반성, 자기합리,몽환, 계산기, 비밀, 기쁨, 좌절, 증오, 권력의지, 죽음, 무의식, 관계, 선, 악, 탐욕, 소유, 고독, 연민, 인종차별, 체제, 한정적, 다양성……
  • ⓒ조다소
    여Femme, 100x100cm, inkjet pigment print, 2012
  • ⓒ조다소
    여Femme, 100x100cm, inkjet pigment print, 2012
  • ⓒ조다소
    여Femme, 100x100cm, inkjet pigment print, 2012
  • ⓒ조다소
    여Femme, 100x100cm, inkjet pigment print, 2012
  • ⓒ조다소
    여Femme, 100x100cm, inkjet pigment print, 2012
Description of the concept for L’absence de Réelle (Sub title : L’Homme et Femme)
골목길, 선생님, 할머니, 학교, 고무줄놀이, 첫사랑 여학생, 반장, 시험, 친구, 올림픽, 뽑기, 삐이라, 노을, 필통, 눈사람, 스케이트, 나이키, 뉴망, 소피 마르소, 잠자리, 이소룡, 주윤발, 명동, 백화점, 압구정동, 마이클 잭슨, 마돈나, 이태원, 컬러티비, 림스치킨, 햄버거, 밀탑빙수…..
욕심, 정치욕, 잔인, 이기심, 순환, 비밀, 이기주의, 민족주의, 강요, 존재, 위협, 붕괴, 생각, 꿈, 사랑, 희망, 삶, 남자, 여자, 후회, 반성, 자기합리,몽환, 계산기, 비밀, 기쁨, 좌절, 증오, 권력의지, 죽음, 무의식, 관계, 선, 악, 탐욕, 소유, 고독, 연민, 인종차별, 체제, 한정적, 다양성……

과거와 현재의 추억을 달리 생각하게 만드는 많은 단어들 중의 일부이다. 추억은 현재를 기반으로 형성되는 기억의 단편 일 것이다. 하지만 현실의 추억이란 지극히 현실과 상황적 추억을 요구 할 뿐이다.

구름 위를 걷는 꿈을 꾸곤 했다. 좋은 기분의 꿈이었다.
“구름을 뚫고 떨어지면 어쩌지?”라는 불안의 심리에 서둘러 잠에서 깨곤 했다.
작업실의 낡고 불안한 의자에 앉아 오랜 시간을 보낸다.
오랜 시간 함께한 의자다. 최근 좀더 편안하게 앉아 작업을 할 수 있을만한 의자를 찾아보고 있다. 오랫동안 함께한 낡은 의자는 좀더 편안한 의자를 찾는 나에 의해 버려지게 되고, 그 자리를 편안하고 안락한 새 의자가 자리 할 것이다.
즈음, 의자의 “기능적 의미” 보다 “의미적 기능”에 고민을 하게 된다. “의미의 기능” 그것은 나의 행복한 기억에 기인하지 않고, 불편한 현실을 반영하는 매개로서의 의미가 부여된다. 힘들고 피곤할 때 앉게 되므로 얻는 단순한 편안함의 행복 의미는 사라지고, 특히, 권력 의지의 영역으로 의미 확장되어진다.
서지도 눕지도 않은 중간의 형태 “않음” 그것은 불완의 상태이며, 우리는 보다 편안함을 위해 많은 시간과 비용을 지불 하기도 한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기본 욕망이며 합리화 일 것이다. 우리는 늘 최고를 추구하지만 그렇지 못한 현실에 늘 고민 하곤 한다. 그것은 권력에로의 의지로 표현되며, 가치 기준을 높이게 되며, 그로 인해 더 많은 것들을 취하려 한다.
“실재의 부재” 이번 작업에 내가 가지고 있는 권력에의 표현을 “의자”를 통해 묘사해 보고자 한다.

작업에 의자가 자연스레 자리 잡았고, 의식과 무의식 가운데 가장 편안한 오브제로 인지 되었지만, 생각도 못했던 의자의 권력과 그 권력의 암투와 폭력적이고 위협적인 존재로 부각이 되어 재발현 된다. 이는, 일반론의 기능적 의자의 의미는 실재의 의미를 상실하게 되며, 부재된 공간은 강렬하거나 완만한 부드러움의 색으로 묘사하여, 의미론적인 의자의 형태와 최소화 되어진 공간과의 관계를 초현실적의로 묘사하며, 이는 시각적 기호로 존재하되 존재치 않는 것이며, 빛으로 소멸과 재발현 되어진다. 과장과 확대, 단축과 생략 등은 은유의 과정들로 새로운 존재의 의미가 주어진다. 말레비치의 절대주의적 표현 방법과, 그레마스의 “기호학적 사각형”을 기본으로, 의미 작용의 기본 구조를 기표로 의미론적 범주의 논리적 분절을 이미지로 표현 해 본다.

조다소 개인전 [실재의 부재]

-동,서양의 초월사상
시대를 넘어 동양과 서양의 사상이 일맥상통 할 때가 있다는 것을 발견하면 그저 신기할 따름이다. 20세기 초현실주의 화가 “르네 마그리트”의 그림에서 기원전 도가사상을 완성한 송나라의 철학자”장자”의 뜬구름 잡는 이야기는 어딘지 비슷한 메시지의 프레임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특히 마그리트의 “이미지의 배반”이란 파이프 그림에 명시된[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 라는 한 줄의 글과 장자의 제물론 중 [호접몽]에 관한 지리와 시대를 초월한 메시지는 인간계의 세상이 과연 “우리가 보는 것이 모든 것인가?”라는 물음을 던져 주고 있다.

-상징적 해석
작가 조다소의 사진에는 어떠한 해답도 없는 그저 물음이 가득한 사진이다. 왜? 그것은 작가 스스로의 물음이기도 하다.
작가 조다소는 한국에서 태어났지만, 젊은 시절 파리에서 건축학과 미학 등의 학문을 전공하며 그의 인생의 상당한 부분을 프랑스에서 거주한 반한반불(半韓半佛)의 이방인이다. 그에게 대한민국, 한강, 흰 떡보다는 르몽드, 센느, 바게뜨가 어쩌면 더 친근할 수도 있을 것이다. 파리의 작업실에서 작가는 스스로 물음을 던졌을 것이다, 그것은 무엇인가??... 정체성은 집요한 물음으로 이어졌고, 그것은 카메라로 촬영된
사진의 기표(시니피앙/Signifiant)로 프린트 되었고, 다시 물음에 대한 기의(시니피에Signifie)로 회귀하며 동,서양의 철학적 가치들을 은유적 상징으로 완성 하였다. 그레마스(Algirdas Julius Greimas)의 “기호학적 사각형”을 기본으로 그의 사진 속엔 건축학적 구조론이 구석구석에 깔려 있음을 확인하게 되며, 이는 그의 경험적 산물이기도 할 것이다.

-움직이는 언어
작가 조다소에게 사진은 언어의 한 종류에 불과하다. 젊은 날 모국어로의 삶, 30대 이후의 삶은 프랑스어가 그가 사용하던 주 언어이다. 건축철학과 미학을 전공하고 다년간 건축가로의 삶을 지내다, 갑자기 사진으로 작업의 방향을 바꿨다.
작가 조다소에게 이러한 혼란스러움들이 차라리 모호한 모티브로 작용을 했을 것이다.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고, 춤을 추는 등의 모든 행위들처럼 그는 단지 사진기를 들고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사진가]로 불리우기 보다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으로 불리우길 원 하기도 한다. 작가 조다소의 사진에서는 전혀 다른 형태의 언어가 존재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은 사진을 단지 언어적 도구의 관점으로 한정되어 활용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도구는 필요에 의해 사용하는 기표적 의미에 불과 하지만 그의 사진에는 과장과 확대, 단축과 생략, 실재와 부재 등의 은유적 과정들로 새로이 존재의 의미를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이다.
대상은 존재하되 존재하지 않는 것이며, 빛으로 소멸 또는 재발현 되는 동양의 “道”의 언어와 서양의 초현실적 가치가 연결되고 혼합되어 새로운 알고리즘 형식으로 멈추어 있지 않고, 움직이고 변화하는 언어로 표현 되어지는 것이다. 그 변화하는 질문에 대한 해답은 작가의 사진을 바라보는 관객의 몫이 될 것이다

신동아 출판사진부 박해윤
언어와 사물 사이의 파사쥬

심은록 (철학박사, 미술비평 및 미술기획가)

파사쥬 1. 탈구획적 중립공간
지베르니(프랑스)의 정원을 그린 모네의 회화를 떠올리면, 저절로 미소가 지어지며 따스하고 밝아진다. 거기에는 어떤 어두운 구석도 없으며, 하물며 그림자마저도 빛의 리듬에 따라 춤을 춘다. 모네의 지베르니 정원이 폐관하는 겨울을 이용하여, 조다소 작가는 수 개월간 사진 작업을 했다. 그 작업이 바로 [환상](Illusion)이라는 ‘흑백’ 작품이다. 아니 흑백 작업이 아닌데, 필자가 지베르니의 찬란하고 화려한 빛의 유희를 기대했다가, [환상]을 보자 순간적인 충격으로 흑백 같은 인상을 받았다. [환상]은 지베르니에 지천인 꽃잎이나 연못가에 무성한 나뭇잎 하나도 없는, 단지 어두운 터널과 몇 개의 불빛이 있는 사진이다. 터널을 밝히는 불빛은 주밍(zooming)으로 인해, 침묵하고 있던 시공간성을 활성화 시킨다. 지베르니에 이런 어두운 곳이 있었던가? 조다소 작가는 모네가 직접 꽃을 심어가며 만든 아름다움을 발산하는 정원도, 그리고 수련으로 유명한 일본풍 정원도 아니고, 바로 이 두 아름다움을 연결하기 위한 통로일 뿐인 지하도를 찍었다. 지금까지 어떤 예술가도 이 어두운 통로를 예술의 대상으로 삼지는 않았다. 모든 관람객이 이 지하도를 건넜음에도, 마치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그렇게 빨리 기억에서 지워 버렸다. 마치 보티첼리의 [봄](1480)에서 헤르메스(머큐리)가 자신의 지팡이로 [봄]의 향연에 어울리지 않은 먹구름 조각을 쫓아내는 그 심정처럼, 그렇게 빛의 향연인 모네의 정원에서 지하도를 치워버렸다.
겨울의 존재를 잊게 하며 몽환적인 무릉도원의 환상을 불러일으키는 모네의 꽃밭과 연못과는 달리, 지하도가 유일하게 실재적인 공간인데, 이 작품의 제목은 [환상]이다. 이 지하도, 즉 두 개의 환상 조장적인 공간을 연결하는 어두운 짧은 터널은 그저 단순한 통로, 즉 파사쥬(passage)로, 발터 벤야민식의 판타스마고리아(phantasmagoria)한 장소로 만들 ‘상품’이나 ‘오브제’는 없었다. 그런데 작가는 모네가 이 통로를 수없이 오가며 꿈에 잠겼을 흔적들을 찾아냄으로써, 벤야민이 말한 의미의 "파샤쥬"(passage)에 가깝게 접근시킨다. 벤야민의 중요한 개념 중의 하나인 "파사쥬"는 19세기 파리에서 발전되었다가 20세기엔 잊혀진 건물 사이의 통로이다. "파사쥬"는 문지방처럼 이쪽과 저쪽을 구분 지으면서, 동시에 이쪽에서 저쪽으로 가기 위해 잠깐 지나는 통로이다. 파사쥬는 이쪽도 저쪽도 아닐 수 있고, 반대로 이쪽이고 저쪽일 수도 있다. 또한, 건물 사이의 통로로 지붕이 있는 이 파사쥬는 ‘안도 아니고 밖도 아닌, 또한 안이면서도 밖이기도 한 '탈구획적 중립 공간’이다. 이러한 지리적인 공간이 다음에 소개할 작업인 [여]와 [남]에서는 사유의 통로인 '파사쥬'로 발전된다.

파사쥬 2. 사유의 통로
빨간색 배경에 고급스러운 검은 가죽 의자 하나만이 주제인 사진이 있다. 의자의 인상이나 품어져 나오는 강한 느낌이 남성적인데, 작품 제목은 [여](女 une femme)이다. '이미지의 배반'을 일으키려는 작가의 고의적인 의도이다. 그렇게 '이미지'(사물)과 '제목'(말)에 거리감을 두게 함으로써, 관람객으로 하여금 사유하도록 유도한다. 사진 속의 '의자'는 [환상]의 지하도의 불빛처럼 주밍으로 시공간성을 끌어낸다. 그런데 ‘지하도’ 사진에서는 겨울의 지하통로라는 시공간이 주어졌고, 빛이라는 특성 때문에 주밍으로 끌어낸 시공간적 움직임이 자연스럽다. 그런데, [여]의 배경은 시공간이 사라진 듯한 상태에서, 의자가 홀로 시공간적인 움직임[주밍 영역]을 만들어 내고 있다.
작가는 5년째 의자 작업을 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계속할 예정이다. 그가 의자에, 그것도 빈[사람이 부재하는] 의자에 지속적인 관심을 갖는 이유는 무엇일까? 근현대 미술사에서는, 여러 작가가 각각 다른 이유로 빈 의자의 상징을 재현하고 있다. 고흐의 담배주머니와 [파이프 담뱃대가 있는 고흐 의자] (1888년 12월), 역시 고흐가 그렸지만, 책과 촛불이 놓여있는 세련되고 [팔걸이가 있는 고갱의 의자](1888, 12월)는 각각 고흐의 자화상과 고갱의 초상화 같다. 조셉 보이스의 [지방 의자](Fat chair, 1964)는 의자처럼 견고한 사상 혹은 몸과 그 위의 지방(버터)은 주술적 치유제를 상징한다. 또한 2500년간 지배해 왔던 플라톤의 개념 시스템을 비판적으로 시각화한 조셉 코수스의 [하나이자 세 개인 의자] (One & Three Chairs, 1965), 현재의 정치 문화에 대해 비판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아이 웨이웨이의 수많은 의자들(Bang, 2013년 베니스 비엔날레 독일관), 등 그 의미가 다양하다.
조다소의 의자는 위에 언급한 요소들, 즉 현재 권력의 초상, 예술을 통한 치유의 문제, 근대까지 지속된 플라톤의 이원론(예를 들어, 남/여, 정신/몸, 등)에 대한 문제 제기, "현재 진단학"(미셀 푸코)으로서의 미술, 등과 다 종합적으로 관계가 된다.

또다른 사진 작품에는 성인 어른의 키와 비슷한 가로 1m 80으로 만들어진 직사각형의 상자가 네모난 공간에 놓여있다. [여]라는 작품보다 더 여성스러운 느낌인데, [남](homme)이라는 제목을 가지고 있다. 작품 [남]도 [여]와 마찬가지로 사유하는 사진의 역할을 하고 있다. [남]은 공간과 오브제가 같은 톤이라, 공간과 오브제의 관계가 더욱 미묘하게 작동한다. 주밍으로 인해, 투명한 상자 안에 원래의 상자가 있는 것 같기도, 주밍된 효과가 마치 이 상자의 아우라나 상자의 환영처럼 보이기도, 혹은 오브제가 움직인 시공간을 시각화하는 것도 같다.

중첩된 시공간적 모호함을 가지고, 언어적인 유희와 상징성 때문에 [각각의 작품 제목이 ‘남’과 ‘여’이므로], 아무 상관도 없는 ‘의자’와 ‘상자’라는 오브제가 서로 연관을 갖게 된다. 작가는 "권력을 상징하는 의자는 원래 남성적인데 ‘여’라고 제목을 붙였고, 박스는 여성적인데 '남'이라고 제목을 붙였다"고 한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이미지' (사물)와 '제목'(말)은 이렇게 서로 배반하면서, 사유의 통로인 '파사쥬'를 제공하고 있다. 그런데, 사실 ‘의자’ 작품을 [남]이라고 하고, ‘상자’를 [여]라고 지칭했더라도, '주밍에 의해 만들어진 시공간성'은 말과 사물이 서로 일치하지 않고 계속 미끄러지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미셸 푸코의 사상은 ‘말’과 ‘사물’이 일치하지 않는 것을 보여주고, 자크 라캉은 ‘의미하는 것’ (signifiant 기표)과 ‘의미되는 것’ (signifié 기의)은 영원히 미끄러지면서 분리됨을 말했다. “부유하는 기표”(“signifiant flottant”)와 “미끄러지는 기의”처럼, 그리고 푸코의 ‘말’과 ‘사물’처럼, 자아와 타자와의 사이도 끊임없이 미끄러지며 분리되기에 그리고 어떤 이유로도 타자는 동일화될 수 없기에 ‘절대적 타자’로 남는다 (cf. 엠마누엘 레비나스). 조다소 작가의 사진에서, 주밍된 시공간은 이처럼 주체와 타자 사이에, 말과 사물 사이에, 기의처럼 영원히 미끄러지거나 기표처럼 부유하는 ‘파사쥬’를 시각화한다.
조다소

학력 L’Ecole Nationale Superieure D’Architecture de Paris Lavillette (ENSAPLV)

개인전 2017 “실재의 부재“ 갤러리나우, 서울, 대한민국
2013 “ L’illusion” 파리 1대학 Phantheon Sorbonne Souffoulot Museum, 파리, 프랑스
2011 “ Le Songe d’une d’été ” Galerie 89, 파리, 프랑스

외 단체전
2012 "Arles photo festival 17eme" 아를, 프랑스
2011 "tout en couleurs", Crédac, centre contemporain d'ivry sur seine, Ivry-sur-Seine, 프랑스
외 다수

작품 소장
파리 1대학 Phantheon Sorbonne Souffoulot Museum, Paris , Fra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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