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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02
2017.02.08 17:28

사진가 김종수 40주년 회고전

조회 수 303 추천 수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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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제목 토지
전시기간 2017. 2. 8 ~ 2. 14
전시장소 갤러리 나우 gallery Now, Seoul
갤러리 주소 서울시 종로구 인사동길 39, 관훈동 성지빌딩 3F T. 02. 725. 2930
갤러리 홈페이지 http://www.gallery-now.com
관람시간 11am - 6pm / 2월 14일은 2pm 까지 관람가능
무한히 아득한 천공과 흘러가는 구름, 무수한 은하계의 성운들과 천체들의 운동, 태양과 지구, 산과 바다, 초목과 동물들, 폭풍우의 소용돌이와 천둥, 안개와 신기루, 만물의 영장이라 불리 우는 인간과 세계, 이 광활한 우주의 삼라만상은 대체 언제 생겨났으며 도시 그것들은 무엇이며, 언제 어디로 사라져 가는 것일까? 우리나라는 참으로 좁은 땅덩어리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처럼 같은 지역에서 같은 혈통끼리 같은 언어로, 같은 제도와 풍습을 지니면서 같은 운명 공동체로서 그토록 오랜 역사를 엮어 온 민족국가는 드물다. 길게는 7, 8천년 줄여 잡아도 5천년의 연륜을 헤아리게 된다. 그 역사의 연륜이 좁은 땅덩이에 쌓이고 보니 우리는 국토의 어디를 가드라도 유형, 무형의 문화유산을 만나게 된다. 그것은 영광의 왕도에서 심심산골 하늘 아래 끝 동네까지 아직도 생명을 잃지 않고 거기에 의연히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들 주위에는 유형․무형의 수많은 대상물들이 있다. 그러나 그것은 단순한 대상물이 아니다. 그 하나하나의 대상물에는 우리들의 선조, 우리 민족이 살아오면서 불어넣은 의미가 숨겨져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현재의 겉모습과 관념에만 집착할 뿐, 본질을 캐내려 하거나 의미 탐구에 몰두하지 않는다. 피상적으로 우리 주위를 스쳐 가는 수많은 유형․무형의 인연 종자(種子)들, 그것을 무심히 스쳐갈 때 우리는 영원히 그것과 만날 수 없다. 그 대상이 무엇이든 그것의 참모습과 의미를 알기 위해서는 먼저 그것에 대한 관심을 가져야 하고 본질을 규명하는 물음표를 던질 줄 알아야 한다. 오늘 우리는 또 묻지 않을 수 없다. 우리 한국인은 누구이며 어디로부터 온 것일까? 이 소박한 물음에 대한 답변은 그리 간단치가 않다. 학계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아직은 시원스레 규명되어 있지 못하다. 다만 여러 가지 연구방법에 의해 어느 정도 옛 모습이 밝혀지고 있을 따름이다. 우리 것에 대한 관심이 나날이 높아져 가고 있고, 자연 보호가 절실한 요즈음 한국, 한국인, 한반도, 한국의 자연에 대한 우리의 뿌리를 찾는 작업은 우리 민족의 영원한 과제인 체 계속 연구되어야 한다. 본 연구자는 1970년대 초반부터 연작으로 작업해 오던 포토에세이 토지 연작의 연장선상으로 한국의 자연환경을 촬영해 오면서 무분별한 개발 정책으로, 개발이라는 미명아래 무참하게 파괴되어 가는 자연을 속절없이 지켜보아 오며, 포토에세이 토지작업을 통해 변천해 가는 한국의 자연 환경을 부분적이나마 체계적으로 정리할 수 있었고 앞으로 언젠가는 사라질지도 모르는 한국의 자연을 생명있는 날 까지 꾸준히 촬영해서 사진영상으로 보존 하고자 한다. 우리는 한국의 자연이 자연 그대로의 모습으로 남아 있기를 바란다. 우리의 선조들은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에도 거룩한 생명의 혼이 숨을 쉬고 한줌의 흙도 살아서 호흡하는 생명체로 인식하고 이 땅의 자연을 하늘처럼 받들어 살아 온 민족이었다. 이제 우리는 하늘과 땅사이 목숨이 붙어있는 모든 것은 한 가족이라는 새로운 생명운동의 깃발을 내 걸 때다. 우리의 후손들이 영원히 뿌리 뻗고 살아가야 할 땅, 이 땅에서, 이 땅의 사람들이 우리의 자연을 아끼고 사랑하여 옛 조상들의 아름다운 도덕과 어질고 슬기롭던 풍속에 한 발 가까이 다가갈 수 있게 되기를 기원해 본다.
  • ⓒ김종수 Jongsoo Kim
    토지, 38.1x25.4cm
  • ⓒ김종수 Jongsoo Kim
    토지, 25.4x38.1cm
  • ⓒ김종수 Jongsoo Kim
    토지, 38.1x25.4cm
  • ⓒ김종수 Jongsoo Kim
    토지, 38.1x25.4cm
  • ⓒ김종수 Jongsoo Kim
    토지, 38.1x25.4cm
  • ⓒ김종수 Jongsoo Kim
    토지, 38.1x25.4cm
  • ⓒ김종수 Jongsoo Kim
    토지, 38.1x25.4cm
  • ⓒ김종수 Jongsoo Kim
    토지, 38.1x25.4cm
  • ⓒ김종수 Jongsoo Kim
    토지, 25.4x38.1cm
  • ⓒ김종수 Jongsoo Kim
    38.1x25.4cm
포토에세이 토지

김종수

무한히 아득한 천공과 흘러가는 구름, 무수한 은하계의 성운들과 천체들의 운동, 태양과 지구, 산과 바다, 초목과 동물들, 폭풍우의 소용돌이와 천둥, 안개와 신기루, 만물의 영장이라 불리 우는 인간과 세계, 이 광활한 우주의 삼라만상은 대체 언제 생겨났으며 도시 그것들은 무엇이며, 언제 어디로 사라져 가는 것일까?
우리나라는 참으로 좁은 땅덩어리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처럼 같은 지역에서 같은 혈통끼리 같은 언어로, 같은 제도와 풍습을 지니면서 같은 운명 공동체로서 그토록 오랜 역사를 엮어 온 민족국가는 드물다. 길게는 7, 8천년 줄여 잡아도 5천년의 연륜을 헤아리게 된다.
그 역사의 연륜이 좁은 땅덩이에 쌓이고 보니 우리는 국토의 어디를 가드라도 유형, 무형의 문화유산을 만나게 된다. 그것은 영광의 왕도에서 심심산골 하늘 아래 끝 동네까지 아직도 생명을 잃지 않고 거기에 의연히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들 주위에는 유형․무형의 수많은 대상물들이 있다. 그러나 그것은 단순한 대상물이 아니다. 그 하나하나의 대상물에는 우리들의 선조, 우리 민족이 살아오면서 불어넣은 의미가 숨겨져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현재의 겉모습과 관념에만 집착할 뿐, 본질을 캐내려 하거나 의미 탐구에 몰두하지 않는다.
피상적으로 우리 주위를 스쳐 가는 수많은 유형․무형의 인연 종자(種子)들, 그것을 무심히 스쳐갈 때 우리는 영원히 그것과 만날 수 없다. 그 대상이 무엇이든 그것의 참모습과 의미를 알기 위해서는 먼저 그것에 대한 관심을 가져야 하고 본질을 규명하는 물음표를 던질 줄 알아야 한다.
오늘 우리는 또 묻지 않을 수 없다.
우리 한국인은 누구이며 어디로부터 온 것일까? 이 소박한 물음에 대한 답변은 그리 간단치가 않다. 학계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아직은 시원스레 규명되어 있지 못하다. 다만 여러 가지 연구방법에 의해 어느 정도 옛 모습이 밝혀지고 있을 따름이다. 우리 것에 대한 관심이 나날이 높아져 가고 있고, 자연 보호가 절실한 요즈음 한국, 한국인, 한반도, 한국의 자연에 대한 우리의 뿌리를 찾는 작업은 우리 민족의 영원한 과제인 체 계속 연구되어야 한다.
본 연구자는 1970년대 초반부터 연작으로 작업해 오던 포토에세이 토지 연작의 연장선상으로 한국의 자연환경을 촬영해 오면서 무분별한 개발 정책으로, 개발이라는 미명아래 무참하게 파괴되어 가는 자연을 속절없이 지켜보아 오며, 포토에세이 토지작업을 통해 변천해 가는 한국의 자연 환경을 부분적이나마 체계적으로 정리할 수 있었고 앞으로 언젠가는 사라질지도 모르는 한국의 자연을 생명있는 날 까지 꾸준히 촬영해서 사진영상으로 보존 하고자 한다.
우리는 한국의 자연이 자연 그대로의 모습으로 남아 있기를 바란다. 우리의 선조들은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에도 거룩한 생명의 혼이 숨을 쉬고 한줌의 흙도 살아서 호흡하는 생명체로 인식하고 이 땅의 자연을 하늘처럼 받들어 살아 온 민족이었다. 이제 우리는 하늘과 땅사이 목숨이 붙어있는 모든 것은 한 가족이라는 새로운 생명운동의 깃발을 내 걸 때다. 우리의 후손들이 영원히 뿌리 뻗고 살아가야 할 땅, 이 땅에서, 이 땅의 사람들이 우리의 자연을 아끼고 사랑하여 옛 조상들의 아름다운 도덕과 어질고 슬기롭던 풍속에 한 발 가까이 다가갈 수 있게 되기를 기원해 본다.

이 회고 사진집은 대구 매일신문사 매일화랑에서 발표했던 포토에세이 토지 발표 40주년인 2017년을 맞아 옛 제자들인 영남대학교 사우회 졸업동문들이 뜻을 모아 기획에서 출판까지 힘든 일을 맡아서 정성으로 진행해준 이 상훈 동문과 사우회 졸업 동문인 사동회 손성락회장과 뜻있는 여러 동문들이 마음을 모으고 정성을 모아 제작해준 기념비적인 작업이고 월간 사진예술에서 사진집을 출판하고 이기명 대표께서 갤러리 나우 초대전까지 기획해 주셔서 이런 은혜는 남은 기간 포토에세이 토지 작업을 마무리해 나가라는 격려의 뜻으로 알고 남은 생도 생이 다하는 날까지 사진작업에 정진하겠음을 마음으로 다짐하며 지면을 통해 오늘이 있기까지 여러 고마운 은혜로운 분들게 감사 인사드립니다.
김종수의 땅에 대한 생각

김승곤(사진평론가)

지상의 모든 살아있는 것이 생명활동을 멈추는 겨울에 찍은 사진이 많다. 마당 가운데 서서 커다란 눈을 껌벅이고 있는 소 등을 덮은 천이 흘러내리지 않도록 새끼줄로 묶어놓은 사진도 겨울에 찍었다. 얼핏 어디에나 있는 평범한 농촌풍경으로 보인다. 짚으로 지붕을 이은 낮은 토담이 기와집과 초가집을 갈라놓고 있고, 흰둥이 한 마리가 멀찌감치 떨어진 거리에서 낯선 사진가를 향해서 건성으로 짖는 시늉을 한다. 빨랫줄에 널린 기저귀, 처마 끝에 매달린 짚신, 타작이 끝난 마당에 떨어진 곡식을 쪼아 먹는 암탉과 강아지, 사립짝, 요강, 지게, 물레방아, 메밀꽃과 해바라기, 기다랗게 뻗은 눈 덮인 신작로길…, 그런데 서정으로 보기엔 어딘가 조금 이상하다. 사람의 기척이 없는 폐허처럼 을씨년스런 초가집들, 밑동에서 날카롭게 잘린 콩밭에 팔을 벌리고 서있는 하수아비 곁을 가로지르며 검은 개가 어디론가 가고 있다. 잎을 모두 떨군 앙상한 미루나무 머리 위로 높이 뜬 프로펠러 비행기가 새처럼 날아간다. 동구 밖 느티나무에 매어 이쪽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소, 자동차 고무바퀴를 단 달구지, 얇게 바른 시멘트가 벗겨져서 맨땅이 드러난 장독대 위에 늘어선 깨진 옹기 항아리, 건조한 대기와 중간 톤이 제거된 차가운 그림자….
마치 ‘경제개발’과 ‘조국근대화’의 거센 물결이 휩쓸던 70년대의 농촌에서 떠올릴 수 있는 단어의 긴 목록 같은 흑백의 이미지들이 이어진다. 둥글고 나지막한 산을 배경으로 납작 엎드린 초가지붕에서 시작되어 푸석푸석한 불모의 땅과 신경처럼 앙상하게 노출되어 뒤엉킨 잡초 줄기, 눈으로 덮인 뽕나무 밭, 금속 빛으로 번들거리는 개울물로 느릿하게 이어지던 『토지』는 급한 각도로 소실점을 향해서 달려가는 콘크리트 관개수로와 검은 하늘에 솟아오른 전신주, TV안테나가 향한 끝을 알 수 없는 어딘가를 향해서 팔을 뻗친다. 이들이 지시하고 있는 지점은 어디인가? 1970년부터 8년 동안 매달렸던 김종수의 연작사진 1부인 『토지』는 그런 질문과 함께 마무리된다. 전체 흐름으로 보아 적어도 감상적인 회고주의나 단순한 복고 취향에서 찍은 사진이 아니라는 것을 누가 보아도 알 수 있다.
수천 년 동안 농경민족으로 살아온 우리에게 어떤 변화가 있었는가. 김종수가 『토지』에 매달리기 시작한 1970년대 중반은 경제개발과 ‘조국근대화’의 거센 물결이 일던 격동의 시기였다. 정부 주도의 자본주의 산업화와 수출 중심의 고도의 경제성장 정책으로 수출과 국민소득이 크게 신장되었다. 3차 경제개발이 추진되던 1972~76년 사이의 연평균 경제성장률은 10.1%, 수출증가율은 무려 47%에 달했다. 그러나 한편으로 도시, 산업 중심의 발전 전략은 도·농간의 불균형과 빈부 격차의 심화, 경제의 대외 의존 심화, 과도한 재벌 중심 경제구조의 출현이라고 하는 부작용도 나타나게 되었으며, 그 영향을 가장 크게 받은 것은 농촌이었다. 비대해지는 도시 부로 농촌의 인적 자원이 빨려 들어가면서 노동인구의 고령화, 낮은 농산물 가격으로 농가소득 감소 등 농촌 위기의 구조적인 조건이 만들어졌다.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본격적으로 추진되기 시작한 196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전체 경제활동 인구의 63%가 농업에 종사하고 있었으나 그 이후 계속된 농촌 인구의 감소와 노령화로 농업의 위기와 농촌 사회의 붕괴가 진행되기 시작했다. 1960년대 247만 명이던 이농자의 수는 1970년대에 428만 명, 그리고 1980년대에는 476만 명으로 늘어났다. 이에 따라 농촌의 심각한 과소화와 도시부의 인구 과잉현상이 빚어지게 된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한국학중앙연구원). 보다 나은 일자리와 삶을 찾아 젊은이가 도시로 떠나면서 일손이 부족해지고, 그에 따라 농촌인구의 노령화가 진행되는 악순환이 이어지면서 농촌에 빈집이 점점 늘어갔다.
1970년 이래 김종수는 그런 농촌의 잃어버린, 또는 버려진 토지의 모습을 수십 년째 기록해오고 있다. 우리에게 토지는 무엇이며 농촌은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 그런 질문을 통해서 대답을 얻으려고 하는 것이리라. 한 집에 식구가 칠팔 명씩 되는 것은 옛날 농촌에서는 흔한 일이었다. 어른들은 이른 새벽부터 해질 때까지 논밭에서 일했고 아이들도 밭일을 도왔다. 밤이 되면 완전히 지친 가족들은 좁은 방안에서 한 이불에 발을 집어넣고 쓰러지듯 잠을 잤다, 수백, 수천 년 동안 그렇게 살아왔다. 더없이 궁핍한 삶이었고 더 나은 삶을 원했지만, 그럼에도 가족의 체취에 싸여서 살아가던 그 시절이 나름대로 행복했다고 그리움을 느끼는 것은 어쩌면 지금의 현실에 대한 박탈감이나 미래에 대한 불안감 때문인지도 모른다. 이미 시간의 뒤안길로 사라져버린 과거로 되돌아간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고향’이라는 단어에서 아련한 향수 같은 감정을 일으키는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다. 김종수의 사진에 떠도는 일종의 상실감 같은 것은 되돌릴 수 없는 그런 과거에 대한 감상과 무상(無常)한 시간의 흐름에 대한 체념에서 오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리얼리즘의 문제와 포토에세이라고 하는 표현형식
김종수의 『토지』를 읽기 위해서는 당시의 한국사진의 상황을 잠시 살펴볼 필요가 있다. 1950년대 중후반, 6·25전쟁을 전후한 시기에 활동했던 몇 개의 사진가 그룹이 통폐합되어 예총 산하단체인 사협으로 편입된다. 그리고 이후 오랜 기간 한국사진의 중요한 장면의 한 축은 그 사협과 신문사에서 주최하는 콘테스트에 의해서 주도되었다. 1960년대 중반에는 국전에 사진부문이 신설되고 대학에 사진전공 학과가 창설됨으로써, 사진이 학문과 예술로서의 입지를 굳히는 계기가 만들어지게 되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이들의 ‘예술’과 ‘학문’의 수준을 가름하는 기준은 여전히 아름답거나 신기하고 감동적인 소재와 직인적인 기술에 맞춰져 있었다. 그런 아마추어리즘적인 사진과 다른 하나의 축을 이룬 것은 이른바 ‘생활주의 리얼리즘’을 표방한 일군의 사진가 그룹의 움직임이었다. 리얼리즘이란 원래 현실을 이상화하거나 미화하려 하지 않고 스트레이트하게 그려내는 일에 가치를 두는 표현을 말하는 것으로, 미술이나 문학에서 사물과 현상을 있는 그대로 정확하고 객관적으로 서술하거나 재현하려고 하는 태도를 말하는 것이지만, 사진에서는 일반적으로 회화주의사진이나 살롱사진에 대립하는 개념으로 쓰이는 것이 보통이다. 패전의 혼란기에 놓인 1950년대 초의 일본에서 ‘리얼리즘사진’이라고 하는 사진운동이 전개되었는데, 그것은 ‘카메라와 모티프의 직결’과 ‘절대 비연출의 절대스냅’ 등을 방법론으로 전후의 생활상을 기록한 스냅샷으로 정형화되어 갔다. ‘거지사진’으로 비판을 받기도 했던 그들의 방법론은 전후의 현실에 대한 인식과 함께, 예술 지상주의적인 사진에 대한 안티테제로서 필연적으로 나온 태도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런 일본 사진의 영향이나 이른바 ‘생활주의 리얼리즘’이라고 하는 아리송한 용어가 정확하게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를 가리는 일은 차치하더라도, 6·25전쟁이 끝난 직후인 1950년대 중반 노동자와 실직자, 고아, 빈민 등 시대적 상황에서 사진의 소재를 구해야 한다고 하는 의식이 한국의 사진가 사이에 일어났다고 해도 부자연스러운 일은 아닐 것이다. 몇 개의 선도적인 그룹의 사진가들의 관심은 주로 노동자나 빈민계층 등 사회적 현실을 다루는 소재나 테마에 집중되었고, 그런 사회적 현실을 기록하는 것이 자신들의 역할이라는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의 사고 가운데 전제되어 있는 생각은 관념적인 사고에 대립해서 현실 그 자체를 중시하는 입장이다. 그러나 이런 입장에서의 리얼리즘이란 개념은 초점이 잘못 맞춰진 것이다. 카메라를 매개로 한 표현의 결과물이 현실 그 자체와 완전히 일치한다고 한다면 그것은 현실과 동일한 것이 되어버려서 더 이상 ‘표현’으로 부를 수 없게 된다. 표현이란 개인의 내면에 일어나는 정동을 살아 있는 현실 그 자체와는 다른 무엇인가로 나타내는 것을 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오래 동안 한국의 사진을 주도해온 아마추어리즘도 리얼리즘의 사진가들도 아름다움에 대한 이상을 실현시키거나 현실의 모습을 ‘스트레이트’하게 기록하는 것을 자신들의 사명으로 인식했을 뿐, 당시 한국의 사진을 둘러볼 때 사진 자체가 가진 이미지로서의 잠재적인 가능성에 대해서 시선을 보낸 사진가는 지극히 드물었던 것으로 보인다. 사진의 리얼리즘의 문제는 현실의 외관 그 자체의 기록이나 집단적인 미의식에서가 아니라 사진가와 현실과의 직접적이고 깊은 관계와 인식 가운데에서 찾아지고 구현되어야 하는 것임은 말할 필요도 없다.
지극히 담담하고 어찌 보면 진부하게 보일 수도 있지만, 조금만 참을성 있게 들여다보면 김종수의 사진들이 주관적인 현실 인식과 개성적인 영상 미학에 뒷받침되어 있다는 것을 읽어낼 수 있다. 그의 사진에서 광각렌즈에 의한 원근감의 강조나 중간 톤이 생략된 것이 많이 눈에 띄는 것은 대상과의 일정한 거리 두기와 서정을 배제하려는 태도를 보여주는 것으로, 그렇게 함으로써 현실의 외관에 대한 유사성이 아니라 그 뒤쪽에 있는 어떤 종류의 리얼리티를 보여주려고 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의 사진에서는 적어도 현실과의 일의적인 대응관계가 아닌, 사진가의 의식의 수준에서 어떤 종류의 리얼리티를 파악하려고 하는 태도를 읽어낼 수 있다. 한 순간의 ‘결정적’인 순간을 포착한 한 장의 사진 이미지에서 읽어낼 수 있는 메시지는 발신자나 수신자의 감성이나 지적 능력의 정도에 따라서 그 깊이와 폭이 제한될 수밖에 없다. 한 장의 사진을 읽을 때의 정신적인 과정이 사진이 내포한 내용을 더욱 풍부한 것으로 만들어주는 경우도 없는 것은 아니지만, 어떤 현상의 전후 맥락관계를 심도 있게 전달하고 싶을 때는 장면과 시간대를 바꿔가며 찍은 복수의 사진을 이용하는 ‘포토에세이’가 더욱 유효한 것임은 말할 필요도 없다. 복수의 사진을 엮어서 하나의 통일된 내용을 보여주는 ‘포토에세이’, 또는 ‘픽처스토리’는 원래 1930년대 구미의 대표적인 그래프 저널리즘들에서 채용된 표현방식이었다. 모호한 메시지의 내용을 사진가나 편집자가 원하는 방향으로 보다 명확하게 전달한다는 점에서 사진을 시각언어로서 다루는 효과적인 방법이었다. 사진이 단순한 현실대상에 대한 도해나 감상주의를 넘어서 그 현실에 대한 깊은 이해와 해석이 추구되었고, 그것을 실현하기 위한 방법으로서 포토에세이라고 하는 형식이 효율적으로 시도되었던 것이다. 포토에세이는 단순한 복수의 사진편성과 캡션에 의한 시각적인 해설 이상으로, 내면적인 리얼리티를 추구하려는 시도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1970~80년대의 한국의 사진의 장면에서 김종수의 작품이 독특한 형식적 위치를 가지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그가 바로 그런 ‘포토에세이’라고 하는 표현의 형식을 오래 동안 일관된 작업의 지표로 삼아왔다는 점이다.

『토지 그 이후의 토지』
1978년부터 4년여에 걸쳐 진행된 『토지 그 이후의 토지』는 흑백사진인 『토지』와 달리 컬러 작업이다. 1976년, 뉴욕근대미술관에서 윌리엄 에글스턴의 컬러네거티브로 촬영된 작품이 발표되고 2년 뒤의 시점에서다. 김종수의 사진에서는 색채가 과장되거나 강조되지 않은 현장의 공기감을 ‘중립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넝마처럼 찢긴 검은 천이 맨땅 위에 덮여있고, 어디선가 날아온 검은 비닐조각이 앙상한 나뭇가지에 찢겨진 깃발처럼 걸려 있다. 언덕을 가득 메우고 피어있는 노랑꽃도 땅바닥을 덮은 울긋불긋한 은행잎과 단풍잎도 풀도 모두 오염된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것처럼 생기가 없다. 피부병을 앓고 있는 것처럼 검고 흰 반점으로 얼룩진 자갈, 도로 가에 아무렇게나 쌓인 거대한 비닐 무더기, 날카롭게 잘려나간 바위, 포트레인의 발톱으로 할퀸 자국이 선명한 벼랑과 그 위에 덩그라니 서있는 석상, 버려진 듯 남아 있는 무덤…. 그것은 오래 동안 한곳에 정주하며 부모와 조상을 섬기고 살아온 토지가 무참하게 깎이고 무너져나간 그들의 현실을 상징하듯 서있다. 풍경은 인간에 의해서 급속도로 변형되어 왔고 앞으로도 멈추지 않을 것이다. 김종수는 원래의 형태와 존재의 의미를 잃어가는 풍경들을 비분강개하지 않은 담담한 눈길로 그렇게 바라보고 있다.
조악한 컬러로 인쇄된 관광엽서를 보는 듯한 마을의 초가집들은 우리가 그렇게 돌아가고 싶어 했던 ‘고향’의 지금의 모습이다. 그의 풍경에는 예나 지금이나 사람의 기척이 없다. 지금 우리가 눈앞에 보고 있는 풍경은 엄연한 현실인 동시에 기억 속에서 재현된 과거의 환영이다. 두터운 구름 사이로 계시처럼 쏟아지는 빛 내림, 무엇엔가 놀란 듯 갑자기 하늘로 날아오르는 비둘기들의 불안정한 날개 짓, 흉물스럽게 파헤쳐진 공사현장, 오래 전에 가동이 멈춘 정미소의 붉은 함석지붕, 지금이라도 무너져 내릴 듯 날카롭게 깎여진 벼랑 끝에 뿌리를 박고 힘겹게 서있는 앙상한 나무 위의 까치집… 그의 사진에는 온갖 음산하고 불길한 징후들이 떠돌고 있다. 원색의 단청처마와 고층건물, 강 건너 멀리 신기루처럼 떠있는 아파트군 등 과거와 현재의 시간이 섞이고 자연과 인공이 병치된 경관들은 자연풍경의 예찬도 환경파괴에 대한 고발도 아니고, 정서에 호소하려는 신파조의 서사도 아니다. 차가운 얼음과 타오르는 불길에도 불구하고 그의 풍경들에서는 긴장이나 고양된 감정은커녕 무기력할 정도로 방관자적인 거리감이 느껴진다. 그것은 김종수가 극도로 억제된 눈길로 그들을 바라봄으로써 자연과 인공, 과거와 현재에 대한 신화화된 풍경을 탈 신화화시키려 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그의 사진에서 읽을 수 있는 것은 전통적인 풍경사진가들이 추구했던 이상적인 자연의 아름다움이 아니라 인간에 의해서 변형되어가는 일상적인 장소들에 대한 깨어있는 눈길이다. 풍경사진의 모티프인 장소를 심미적인 대상으로서가 아니라 현실의 장소로서 바라보려는 시점을 분명히 보여주는 것이다. 그것은 마치 있는 그대로의 새로운 풍경을 받아들이고 순응하려는 1980년대 미국의 뉴 토포그래픽스의 사진가들의 중립적인 태도를 연상시킨다.

고향, 토지는 무엇인가?
그는 우리에게 ‘토지란 무엇인가’를 묻는다. 그것은 생활의 터전으로서의 흙이나 땅 이상이다. 농경민족에게 있어서 토지는 바로 자신이 태어나서 자라고 죽어서 묻혀야 할 불가침의 ‘장소’다. 자신의 뿌리를 내린 토지는 근원적인 공간인 동시에 현실의 고통과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영원한 안식처다. 농민에게 있어서 토지는 삶의 모든 것이며 한 집안을 중심으로 한 공동체를 지지하는 뿌리다. 수천 년 동안 이어져 내려온 가족의 역사가 토지에 새겨져 있으며, 긴 세월의 기억 속에 자리잡아 왔다. 농민들이 그런 토지를 버리고 떠난다는 것은 스스로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어떤 진화론적인 명분이나 이유에 의해서 토지가 사라지고 농지가 불모의 인공의 공간으로 변형된다는 것은 한 인간의 삶이나 토지의 소멸뿐만이 아니라 그 위에서 면면히 이어져 내려온 가치들이 함께 소멸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김종수가 말하려고 하는 것은 그것이 아닐까.
옛날에는 사람들에게 인정미가 있었고, 산자수명한 농촌도 있었다고 말한다. 과거는 세피아조의 추억 속에서 그렇게 미화되는 것이리라. 하지만 지긋지긋하게 어려웠던 옛날을 겪은 사람이라면 거짓말로라도 과거가 좋다고는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과거의 시점은 항상 아련한 노스탤지와 함께 많은 사람들에게 동경심을 불러일으킨다. 사람들은 누구나 ‘그 무렵은 행복했다’고 생각하지만 그렇다고 김종수가 꿈꾸는 회고주의자나 복고주의자가 아닌 것은 분명하다. 상상력이 풍부한 사람이라면 그의 사진에서 역사의 시간 속에서의 하나의 생명으로서, 또 태어나 자란 토지와 풍토로 이어진 문화적 존재로서의 인간, 그리고 자연 속에서 내가 어떤 존재인가라고 하는 물음을 듣게 될지도 모른다.
그가 토지 연작에 매달리던 1970년대는 물론 지금까지 대부분의 사진가들이 절대적인 이상향으로서의 자연을 추구해왔고 그런 자연에 대한 전통적인 미의식은 지금도 여전히 달라진 것이 없다. 그들은 작품에서 ‘한국은 분명한 사계절과 온난한 기후, 아름다운 자연과 풍토를 가지고 있으며, 그런 자연에 순응하며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하는 것 같다. 하지만 김종수는 꿈같은 저녁노을이나 아득한 운해, 이끼 낀 계곡을 찾지 않는다. 유미(唯美)와는 거리가 먼 그의 사진에서는 눈길을 끄는 아름다움도 특별한 감동도 찾아볼 수 없지만, 그의 사진들을 차분히 바라보고 있노라면 ‘우리는 발전하기 위해서 태어난 것은 아니라 행복해지기 위해서 지구에 태어났다.’는 호세 알베르토 무히카의 말이 연상된다. 그의 말처럼, 아무도 ‘토지’의 변형을 멈추게 할 수는 없겠지만 토지에 생각을 바꿀 수는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김종수의 사진들은 인간 누구나가 행복하게 되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고 풍요로운 삶을 목표로 살아가고 있지만, 도대체 그 행복이나 풍요로움이란 무엇인가? 우리가 그토록 매달려온 경제적인 성취가 무엇을 의미하는가에 대해서 생각하게 만든다.
도시는 인류 문명의 증거이며, 그런 도시화는 인류의 진보에 있어서 필연적으로 통과해야 하는 과정이다. 도시화의 정도는 국가나 지역 발전의 수준을 가늠하는 중요한 기준으로 인식되고 있지만, 진보나 도시화의 과정이 많은 문제를 내포하고 있는 것은 누구나가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진보의 속도와 규모에 따른 자연환경의 변형이 그 대표적인 현상 가운데 하나로, 김종수의 사진은 그에 대한 그 나름의 문제의식의 발현이라고 할 수 있다.
일반적인 풍경사진에서 자연은 미적 숭배나 동경의 대상이다. 사진가들은 그 장소에서 경험한 시각적인 내용을 보편적인 ‘아름다움’으로 승화시키는 것을 사명으로 했다. 그리고 대부분의 풍경사진가들은 인간에 의해서 변형된 자연을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 그러나 김종수는 현실을 꾸밈없이 바라본다. 거기서는 전통적인 풍경사진에서 보아온 드라마틱한 광경은 없고, 어디에나 널려있는 진부한 장소, 황량한 공간에 대한 차분한 눈길과 극적인 풍경사진의 미학을 무시한 접근법이 특징적이다.
공업화와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농지의 전용 압력이 높아지는 현상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또한 공업화와 도시화에 수반되는 자연환경 파괴라고 하는 환경문제의 심각성이 지적되고 있다. 김종수의 사진들은 변모를 거듭하는 토지를 통해서 농촌의 다면적인 기능들이 무력화되어 가고 있는 현실에 대한 문제의식을 보여주고 있지만, 결코 모두 알아들을 수 있는 큰 목소리로 격하게 외치는 것이 아니라 거의 들릴까말까 한 작은 목소리로 속삭이듯 말한다. 그는 『토지』를 통해서 1970~1980년대의 한국에서 고향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우리의 미래에 관해서 무엇을 시사하고 있는가를 보여주려고 한다. 그의 사진이 뛰어난 미학적 완성도를 가지고 있다거나 깊은 철학적 내관에 의해서 만들어지고 있다는 근거는 없다. 그의 사진을 무조건 상찬할 생각도 없다. 그러나 그가 적어도 현실에 대한 주관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고 그런 태도를 오래 동안 견지해왔다는 것에 의심할 여지가 없다는 것은 분명히 말할 수 있다.
도선 김 종 수 ( 燾禪 金 宗 洙 )

영남대학교 미술대학 응용미술학과 (시각디자인전공)졸업
대구대학교 대학원 사진영상정보학과 (사진영상전공)졸업
석사학위 논문 변천해가는 한국의 자연환경 연구

현 : 대구대학교 조형예술대학 외래교수, 대구과학대학교 외래교수
전 : 대구예술대학교 사진영상학과 겸임교수, 계명대학교 외래교수

초 대 개 인 전
1977년 포토에세이 토지 Ⅰ(대구 매일신문사 매일화랑)
1978년 포토에세이 토지 Ⅱ(서울 예총회관 예총화랑)
2000년 포스터로 보는 대구현대사진전 초대작가
사진가 김종수의 작품세계 -다시 보는 토지-
슬라이드 작품 발표회(대구 고토 갤러리 초대전)
2001년 변천해 가는 한국의 자연환경
슬라이드 작품 발표회 (대구대학교 미술관 초대전)
2001년 포토에세이 -토지 그 후의 토지-
사진전 및 슬라이드 작품 발표회 (대구 갤러리 환 개관 초대전)
2006년 토지기행 (중국 단동-몽골 울란바타르)
사진전 및 슬라이드 작품 발표회 (대구 갤러리 지혜의 숲 개관 초대전)
2017년 포토에세이 토지 발표 40주년 기념 회고전 (서울 갤러리 나우)
2017년 포토에세이 토지 발표 40주년 기념 회고전 (대구 KBS 방송총국 초대전)

주 요 그 룹 전 및 초 대 전
1974년 제1회 경상북도 미술전람회 특선 (대구 시립도서관화랑)
1976년 제13회 한국사진작가협회 십걸상 수상 (서울국립현대미술관)
1979년 중국 촬영학회 한국사진가초청 초대전 (중국역사박물관)
1990년 디자인 사진작가 초대전 (대구 보루네오 갤러리)
1992년 한국 흑백사진 초대전 (대전 시민회관 전시실)
1995년 광복 50주년 대구 현대사진의 좌표 (대구문화예술회관)
1996년 한국 민족사진가 협의회 맥전 (대구 문화예술회관)
1997년 대구미술 과거 현재 미래의 조명 초대전 (칠곡 동아갤러리)
2000년 포스터로 보는 대구 현대사진전 (대구 고토갤러리)
2001년 현대사진영상학회 의식과 무의식전 (대구문화예술회관)
2002년 대구 경북 미술전람회 초대전 (대구 시민회관전시실)
2006년 한국 몽골 교류전 초원과 무지개 (몽골 국립갤러리)
2007년 대구 달서구 문화원 초대작가전 (대구 푸른방송 갤러리)
2011년 현대사진영상학회 아시아의 삶과 문화전 (경주 세계문화엑스포)
2016년 개관기념 특별전 장소의 탄생 (대구 신세계백화점 전시실)

1970 - 2016년
현대 사진영상학회 운영위원, 중국 촬영학회 회원
대구광역시 달서구문화원 이사
경남 도립미술관 작품심의 위원장
대구 경북 미술전람회 운영위원 심사위원
전국 문화사진공모전 운영위원 심사위원

회원전, 개인전, 초대전 등 500여점 발표
단체전 40여회참가, 신문 잡지 지상발표 100여회
중앙대학교 현대사진아카이브 (DCRC) 웹사이트 수록

영남일보사 영남투데이 칼럼연재
매일신문사 매일춘추 칼럼연재
매일신문사 추억따라 세월따라 “토지” 사진작가 김종수 특집
매일신문사 대구리딩그룹 211인 (문화 예술부문) 선정

KBS 1 TV 다시쓰는 장터일기 “토지” 사진작가 김종수 방영
MBC 휴먼 다큐멘터리 “토지” 사진작가 김종수 그 인간과 예술 방영

국립 현대미술관 작품소장 (토지연작)
영남대학교 사우회 지도고문 (1975 - 현 )
푸른방송 문화학교 사진강좌 (1996 - 길 사우회 창립 )
중앙도서관 문화학교 사진강좌 (1998 - 포토라이프 창립)
달서구문화원 문화학교 사진강과 (2011 - 대구 사진예술아카데미 창립)

출 판
사진예술학 (도선출판사)
건축사진학개론 (배영출판사)
건축사진촬영실무 (도서출판 일일사)

1981 - 2016년 담당 강의과목
사진학개론, 사진사, 사진미학, 사진작화론, 사진의이해와표현
보도사진, 기록사진, 현대사진연구, 조형예술론, 현대예술론, 서양미술사
색채학, 디자인사, 디자인경영, 디자인표현기법, 건축의장론, 사진편집디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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