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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08
2017.08.15 21:07

이상희 SangHee Lee

조회 수 162 추천 수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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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제목 Heterotopia
전시기간 2017. 8. 17 ~ 8. 29
전시장소 부산프랑스문화원 ART SPACE, ART SPACE - Alliance Française Busan
오프닝 2017. 8. 17 (목) 18:00 / 부산 프랑스문화원 ART SPACE
갤러리 주소 부산광역시 해운대구 해운대로 452번길 16 (051-746-0342)
갤러리 홈페이지 http://artspace-afbusan.kr
관람시간 화요일 – 일요일 10:00-19:00(매주 월요일 휴관)
후원 고은문화재단, 프랑스 명예영사관
부산의 고리에서 거대한 돔을 처음 마주했을 때 느꼈던, 이질감에 더해진 압도되는 위축감은 생경하고 당황스러운 것이었다. 그러나 그 곳에서 붉은 노을에 물든 기억 속 피렌체 두오모를 떠올려 비슷한 감상에 젖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처음 열탕에 들어갈 때는 두려움에 경계하게 되지만, 그 뜨거움에 길들여지면 오히려 개운함마저 느끼게 된다. 이처럼 무엇이든 오래 노출되면 익숙해져 버린다. 아름다운 추억도 때로는 불안하거나 위험한 상황마저도... 원자력 발전의 건설은 낙후한 지역경제에 도움을 줄 뿐만 아니라 그 안전성에 대한 절대적 믿음을 가진 인근 주민들에게는 유토피아의 초석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후쿠시마 원전 폭발사고로 유토피아였던 원자력 발전은 순식간에 많은 사람들의 인식 속에 디스토피아가 되어버렸다. 모두에게 공통된 위상을 지니던 유토피아는 현실적 문제에 봉착한 후 통일성을 상실하고 상대성에 노출됨으로써 타자화 된 공간이 되어버린 것이다. 내 집 앞마당에 선뜻 내려서서 뛰어놀지 못하는 비오는 날 흙탕물 구덩이가 되어버린 앞마당처럼, 익숙하고도 불편한 공간이 되어버린 것이다. 위험 속에서 사는 사람들은 그것이 자신에게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피하지 않고 마주하며 산다. 그것이 그들이 살아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이다. 고리 사람들 역시 드러내지 않는 내면 깊은 속살의 고통과 혼란을 안고, 보통 사람들보다 많은 그리고 더 아픈 이별을 반복하며 살아간다. 익숙해진 풍경 속에 은닉되어 내재하는 불안과 그 불안이 삶의 풍경이 되어버린 고리 사람들의 경계에 선 모습을 그려내고자 했다.
  • ⓒ이상희 SangHee Lee
  • ⓒ이상희 SangHee Lee
    Pigment Print, 50×125cm, 2015
  • ⓒ이상희 SangHee Lee
    Pigment Print, 30×45cm, 2015
  • ⓒ이상희 SangHee Lee
    Pigment Print, 30×45cm, 2017
  • ⓒ이상희 SangHee Lee
    Pigment Print, 50×125cm, 2015
  • ⓒ이상희 SangHee Lee
    Pigment Print, 50×125cm, 2015
  • ⓒ이상희 SangHee Lee
    Pigment Print, 45×30cm, 2017
  • ⓒ이상희 SangHee Lee
    Pigment Print, 45×30cm, 2017
  • ⓒ이상희 SangHee Lee
    Pigment Print, 45×30cm, 2017
  • ⓒ이상희 SangHee Lee
    Pigment Print, 45×30cm, 2017
2016 년 고은사진미술관은 사진작업에 대한 열정을 지닌 사진 애호가들을 대상으로 하는 사진강좌 프로그램인 포트폴리오반을 개설, 진행하였다. 3 인의 멘토 심사를 거쳐 최종 선정된 3 명의 작가 중 그 두 번째로 이상희의 <헤테로토피아>전을 소개한다.
이상희는 기장 고리원전을 바라보며 그 이질감을 드러내는 방식으로 일상의 색을 지우고 거대한 하얀 돔을 부각시킨다. 작가는 은닉된 원전의 위험성을 평범한 사람들의 삶과 함께 기록했으며 그 배경으로 존재하는 사회적 속성을 날카롭게 파헤치고 있다. 익숙해진 풍경 속에 자리 잡은 하얀 돔의 이면에는 물질적 풍요와 편리성에 기댄 채 기장 주민들의 삶 속에 은폐된 문명의 이기가 담겨 있다.

En 2016, le musée Goeun a ouvert un cours de photographie, appelé « Portfolio », destiné aux amateurs de l’art photographique. Un jury de trois mentors a sélectionné trois artistes pour être exposés : le deuxième d’entre eux est LEE Sang Hee; son exposition est intitulée « Hétéropia ». LEE Sang Hee jette un regard lucide sur la centrale nucléaire de Gori, à Gijang. Dans ses photos, les immenses dômes des cuves des réacteurs renvoient de la lumière blanchâtre, en gommant les couleurs quotidiennes.
L’artiste immortalise la dangerosité dissimulée de la centrale, ainsi que les gens du quartier voisin qui mènent leur vie dans ce décor. Il s’agit d’un questionnement à caractère social. On est habitué à ce paysage de dômes à doubles facettes : la face luisante signifie abondance et confort matériels, mais l’envers moins reluisant est dissimulé dans la vie même des habitants.
부산의 고리에서 거대한 돔을 처음 마주했을 때 느꼈던, 이질감에 더해진 압도되는 위축감은 생경하고 당황스러운 것이었다. 그러나 그 곳에서 붉은 노을에 물든 기억 속 피렌체 두오모를 떠올려 비슷한 감상에 젖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처음 열탕에 들어갈 때는 두려움에 경계하게 되지만, 그 뜨거움에 길들여지면 오히려 개운함마저 느끼게 된다. 이처럼 무엇이든 오래 노출되면 익숙해져 버린다. 아름다운 추억도 때로는 불안하거나 위험한 상황마저도...
원자력 발전의 건설은 낙후한 지역경제에 도움을 줄 뿐만 아니라 그 안전성에 대한 절대적 믿음을 가진 인근 주민들에게는 유토피아의 초석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후쿠시마 원전 폭발사고로 유토피아였던 원자력 발전은 순식간에 많은 사람들의 인식 속에 디스토피아가 되어버렸다. 모두에게 공통된 위상을 지니던 유토피아는 현실적 문제에 봉착한 후 통일성을 상실하고 상대성에 노출됨으로써 타자화 된 공간이 되어버린 것이다.
내 집 앞마당에 선뜻 내려서서 뛰어놀지 못하는 비오는 날 흙탕물 구덩이가 되어버린 앞마당처럼, 익숙하고도 불편한 공간이 되어버린 것이다.
위험 속에서 사는 사람들은 그것이 자신에게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피하지 않고 마주하며 산다. 그것이 그들이 살아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이다. 고리 사람들 역시 드러내지 않는 내면 깊은 속살의 고통과 혼란을 안고, 보통 사람들보다 많은 그리고 더 아픈 이별을 반복하며 살아간다. 익숙해진 풍경 속에 은닉되어 내재하는 불안과 그 불안이 삶의 풍경이 되어버린 고리 사람들의 경계에 선 모습을 그려내고자 했다.

이상희

Quand j’ai vu pour la première fois les dômes de Gori, près de Busan, je me suis senti presque intimidé, décontenancé. Mais il ne m’a pas fallu longtemps pour que je me rappelle le dôme de la cathédrale de Florence auréolée des lueurs crépusculaires. C’était comme l’expérience d’un bain très chaud : on craint le premier contact avec l’eau, mais peu de temps après lorsque le corps s’habitue à la température élevée, on s’y sent mieux et on s’y plaît même. C’est ainsi qu’on devient insensible à toutes les choses auxquelles on nous expose suffisamment longtemps : un beau souvenir comme une situation inquiétante, voire dangereuse.
Il est certes vrai que la centrale nucléaire apporte une aide économique à la région, au point que les habitants convaincus de sa sécurité pourraient la tenir pour une base utopique. Mais les explosions à la centrale de Fukushima ont totalement changé la donne : la centrale comme symbole utopique se transforme en dystopie du jour au lendemain. On est moins unanime désormais pour la vision d’utopie généralement admise auparavant, et on se sent aliéné dans cet espace. Un espace si familier devenu si incommode, comme cette cour intérieure de terre battue de mon enfance, qui devenait boueuse les jours de forte pluie en m’interdisant d’y avancer et d’y jouer.
Ceux qui vivent en toute conscience dans une situation dangereuse ne s’enfuient pas, ils y font face au contraire, car ils trouvent qu’il y a pas d’autres issues. Comme les gens de Gori, qui ne dévoilent pas tous les sentiments intimes, douleurs ou confusions, de leur vie marquée par des séparations répétitives plus affligeantes qu’ailleurs. Ce décor familier abrite des angoisses faisant partie intégrante du quotidien des habitants de Gori. J’ai voulu décrire ce quotidien marginalisé.

하나로 수렴되는 세 갈래 길


다큐멘터리 사진이 단지 재현에만 미덕이 있다고 판단한다면, 사진사에 대한 이해 부족이거나 사실이라는 미망에 갇힌 오해일 수도 있다. 다큐멘터리 사진은 기계적인 사실 재현으로 출발했지만, 곧 그것이 전부도 아니며 진실 그 자체도 아님을 사진 스스로가 깨달았다. 대신 인류는 다큐멘터리 사진을 통해 세계를 이야기하는 언어를 획득했고, 사진은 찍는 이 자신과 사회가 어떻게 소통할 수 있는지를 가르쳤다. 따라서 다큐멘터리 사진은 당대의 기록인 동시에 미래의 예술이라는 함께 드러나지 않는 정체의 상보성을 띠게 된 것이다.
이상희의 사진은 기장에 소재한 고리원전에 대한 시각적 보고서다. 원전과 인간이 어떻게 공존하고 있는지를 매우 비판적인 언어로 기술한다. 일관된 흑백톤은 일상의 색을 지우고, 거대한 하얀 돔을 부각시킨다. 이는 자연스레 히로시마 원폭 돔을 연상시킨다. 사실 원전은 자체가 폭탄인 것을 후쿠시마 원전이 증명했다. 주변 백사장과 마을은 불길한 공기에 감염된 듯 침묵한다. 사진은 말이 없으니 더욱 고요하다. 내용 뿐 아니라 형식에 있어서도 대형 파노라마와 36mm의 소형 카메라 포맷을 교차함으로써 원전으로 확대된 공간과 일상의 공간을 적절히 배분한다. 어디서든 보인다면 어디에도 숨을 곳은 없다는 반증일까?
사실 이상희 사진에는 세 가지 형식이 공존한다. 하나는 20세기 초 독일에서 나타난 신즉물주의 풍의 객관적 사실 접근이다. 두 번째는 독일의 아우구스트 잔더로부터 시작된 유형학적 접근이다. 또 하나는 우리가 늘상 접하는 포토저널리즘이다. 6x15 포맷의 파노라마 사진에는 멀리 고리원전의 거대한 돔이 늘상 보인다. 늘 있었던 곳에 원전은 있고, 바람과 파도와 날씨만이 이 사진들을 변주한다. 사진은 깊은 심도와 차분한 앵글 속에서 존재하는 물체의 객관성을 부여한다. 특별히 해석하려하지도 않으며, 과도한 의미부여를 하지도 않는다. 우리는 이런 사진에서 사실적이면서 약간은 초현실적인 알베르트 랭거-파취의 사진을 떠올릴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사진만으로 다큐멘터리의 본질 자체를 드러내긴 힘들지도 모르겠다. 과연 원전과 바로 인접해 살고 있는 저 사람들의 실체는 무엇인가? 의외로 그들은 평범한 반농-반어부들이다. 남녀노소 다양한 사람들이 원전의 주변을 채운다. 그들은 한 사람 한 사람이 사진으로 담겨 큰 범주의 원전 사람들이 된다. 잔더의 그림자를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이 둘로써 이미 사진은 기장의 고리원자력발전소에 대한 기록을 다하지만, 사진가는 더 나아가 이것이 어떤 사회적 의미로서 가치있는 행위인가를 고민한 듯하다. 이해 가능한 인간과 마을의 일상적인 원전 공포를 포토저널리즘 스타일로 재차 내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일면 이것이 불필요한 배려라 생각하는 이들도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이는 보는 이로 하여금 오해의 소지를 남기지 않으려는 사진가의 이념적 소산일 수도 있다.
하긴 그저 제시하고 알아서들 해석하라는 요즘의 불성실한 태도의 작가들은 또 얼마나 많은가? 그렇게 유희를 벌이기에는 부산 사람들이 고리원전에 갖는 공포에 대해 멀리 떨어져 살면서 피부로 실감할 수 없는 외지 작가들의 염치없는 짓이거나, 그 진실에 함부로 대면할 수 없는 무엇이기도 하다. 다행히도 이상희의 다른 세 갈래 길은 하나의 길로 수렴되어 기록과 변화라는 다큐멘터리 사진의 미덕을 충분히 소화하고 있다.

이상엽 / 사진가

이상희


1961 부산 출생

경력
2017 고은사진아카데미 작품연구반 수료
2016 고은사진아카데미 포트폴리오반 수료
2015 고은사진아카데미 작품연구반 수료
2013 부산대학교 사진예술아카데미 수료
2012 부산대학교 디지털사진아카데미 수료

개인전
2017 [헤테로토피아], 부산 프랑스문화원 ART SPACE, 부산

단체전
2017 [길 밖에도 길이 있다], 스페이스 닻 갤러리, 부산
2015 [리뷰하기], 부산문화회관, 부산
2015 [International Photography], 후쿠오카 아시안 아트 뮤지엄, 후쿠오카, 일본 [도시 路], 티엘 갤러리, 부산
2014 [빛과 사람들 두 번째], 금정문화회관, 부산
2014 [BIEAF부산국제환경예술제], 동아대학교 석당미술관, 부산
2013 [부산, 다시 보기], 금정문화회관, 부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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