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안공간 SPACE22의 ‘창작지원 전시’ 두 번째로 지난 해 박지나 작가에 이어, 이건영 개인전 [PL.a.net] 을 개최합니다. [흰 그늘진 마당](2009~2014)으로 풍경의 새로운 이면을 제시했던 이건영이 신작 [PL.a.net]에서는 자연과 인간의 원환 고리를 환상적인 이미지로 보여줍니다. 전시 타이틀인 ‘PL.a.net’은 ‘PL’과 ‘net’의 조어로 행성(Planet)을 뜻하는 단어이기도 합니다. 또는 ‘생산물 책임’으로 번역되는 ‘product liability’(PL)이기도 합니다. 이것은 일반적으로 제품을 제조하는 업자가 그 제품을 사용, 소비에 의해서 일으킨 생명, 신체의 피해나 손해에 대해서 배상하는 책임을 뜻하기도 합니다. 여기에 ‘그물’을 상징하는 ‘net’이 합쳐진 표제가 [PL.a.net]입니다.
대안공간 SPACE22의 ‘창작지원 전시’ 두 번째로 지난 해 박지나 작가에 이어, 이건영 개인전 [PL.a.net] 을 개최합니다. [흰 그늘진 마당](2009~2014)으로 풍경의 새로운 이면을 제시했던 이건영이 신작 [PL.a.net]에서는 자연과 인간의 원환 고리를 환상적인 이미지로 보여줍니다. 전시 타이틀인 ‘PL.a.net’은 ‘PL’과 ‘net’의 조어로 행성(Planet)을 뜻하는 단어이기도 합니다. 또는 ‘생산물 책임’으로 번역되는 ‘product liability’(PL)이기도 합니다. 이것은 일반적으로 제품을 제조하는 업자가 그 제품을 사용, 소비에 의해서 일으킨 생명, 신체의 피해나 손해에 대해서 배상하는 책임을 뜻하기도 합니다. 여기에 ‘그물’을 상징하는 ‘net’이 합쳐진 표제가 [PL.a.net]입니다.
그동안 ‘환경’을 주제로 한 사진들이 오염의 심각성과 훼손된 풍경을 직접적으로 제시한 사진들이 주를 이루었다면, 이건영의 사진은 영화 인터스텔라의 우주공간에 떠도는 행성들처럼 신비롭고 아름답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들여다보면 썩어가는 물과 생명을 다한 동물이 화석처럼 굳어 있습니다. 사진은 사실을 재현하기도 하지만, 분명히 있었던 것의 흔적이기도 하고, 흔적을 재현함으로써 상징을 코드화하기도 합니다. 이건영의 [PL.a.net]은 환경문제가 한 지역이나 국가의 문제가 아니라 전 지구적 문제임을 암시하며 조형예술로서의 사진의 가능성을 확장하고 있습니다.
이번 전시는 이건영의 신작으로 구성되며, 오는 10월 16일(금)에는 작가의 작업 여정에 함께 할 수 있는 ‘작가와의 만남’이 기획되어 있습니다. 오직 사진적인 프로세스를 견지하며 꾸준히 작품 활동을 개진하고 있는 이건영의 다섯 번 째 개인전, [PL.a.net]에 주목해주세요.
그동안 ‘환경’을 주제로 한 사진들이 오염의 심각성과 훼손된 풍경을 직접적으로 제시한 사진들이 주를 이루었다면, 이건영의 사진은 영화 인터스텔라의 우주공간에 떠도는 행성들처럼 신비롭고 아름답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들여다보면 썩어가는 물과 생명을 다한 동물이 화석처럼 굳어 있습니다. 사진은 사실을 재현하기도 하지만, 분명히 있었던 것의 흔적이기도 하고, 흔적을 재현함으로써 상징을 코드화하기도 합니다. 이건영의 [PL.a.net]은 환경문제가 한 지역이나 국가의 문제가 아니라 전 지구적 문제임을 암시하며 조형예술로서의 사진의 가능성을 확장하고 있습니다.
이번 전시는 이건영의 신작으로 구성되며, 오는 10월 16일(금)에는 작가의 작업 여정에 함께 할 수 있는 ‘작가와의 만남’이 기획되어 있습니다. 오직 사진적인 프로세스를 견지하며 꾸준히 작품 활동을 개진하고 있는 이건영의 다섯 번 째 개인전, [PL.a.net]에 주목해주세요.
동그란 비밀, 은폐된 흔적
이건영 신작 - [PL.a.net]
글 : 최연하 (전시기획자, 사진비평가)
대안공간 SPACE22의 ‘창작지원 전시’ 두 번째로 이건영 개인전 [PL.a.net] 을 개최한다. [흰 그늘진 마당The white shaded backyard](2009~2014)으로 풍경의 새로운 이면을 제시했던 이건영이 신작 [PL.a.net]에서는 자연과 인간의 원환 고리를 환상적인 이미지로 보여준다. 전시 타이틀인 ‘PL.a.net’은 ‘PL’과 ‘net’의 조어로 행성(Planet)을 뜻하는 단어이자, ‘생산물 책임’으로 번역되는 ‘product liability’(PL)를 뜻하기도 한다. 여기에 ‘그물’을 상징하는 ‘net’이 합쳐져 전시의 표제인 [PL.a.net]이 되었다. ‘net'은 그물이라는 뜻 외에, 명사 앞에 쓰일 때는 ‘최종적인’이라는 의미도 갖고 있다. 매 전시 및 새로운 프로젝트 때마다 작가들은 작품의 타이틀을 작명하는데 어려움을 겪는데, 그것은 곧 작품의 내용을 담보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건영의 신작 [PL.a.net]은 알파벳의 중간에 ‘.(dot)’을 삽입하며 끝남과 단절, 다시 점 조직망으로 연결되어 있는 어떠한 형상을 암시하고 있는 듯하다. 다양하고 복잡하게 얽혀 있는 생태계를 한 단어로 표기하기란 어려운 일일 터, 작가는 있지도 않은 조어를 통해 한 번도 가시화되지 않았던 행성을 만들었다.
보려고 하지 않으면 좀체 보이지 않는 풍경이 있다. 보고 싶지 않아도 눈에 들어오는 것이 있는가 하면, 눈에 잘 띄지만 눈 감아버리면 그만인 풍경이 있다. 작가는 전작, [흰 그늘진 마당]에서 한반도 곳곳의 숨은 풍경들을 낱낱이 호출한 바 있다. 부러 찾아가도 쉽게 발견되지 않을 이 풍경은 폐기된 채 은폐되어 있었고, 작가는 애쓰며 보아야 겨우 드러나는 검은 땅의 그늘을 아득하게 보여주었다. 그런데 [PL.a.net]에서는 일단 화려한 색채와 누구나 호감을 갖게 되는 동그란 원형이 눈에 들어온다. 게다가 원형 속에는 신비로운 무늬도 어려 있다. 형형색색의 동그라미들은 영화 ‘인터스텔라’의 우주공간을 부유하는 행성처럼 펼쳐있다. 작가의 작업노트를 보지 않았다면, 관객은 저마다의 원들을 이어가며 가없는 우주를 생각해낼지도 모를 일이다. [PL.a.net]은 일차적으로 관객의 눈을 사로잡기에 충분한 이미지로 만들어졌다. 이제 무엇을 봐야할 지 관객은 동그라미 속으로 서서히 빠져들 것이고, 다소 무거운 어떤 기운들을 감지해낸다면, 작가의 의도는 일정부분 달성된 셈이다. 거기에서 감상이 끝날 수도 있고, 눈길이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며 물음표를 제시할 수도 있다.
사진은 세계의 재현이기도 하지만 세계의 해석이기도 하다. 또한 그것은 기본적으로 분명히 있었던 것의 흔적-기록이기 때문에, 말하자면 사진은 세계의 재현이자, 해석이고, 흔적이라 할만하다. 이건영은 풍경의 흔적들을 채집하여 원 안으로 가두었다. 그것이 이 작업의 전부이다. 그 외에 무늬를 새겨 넣거나, 칼라를 덧입히지도 않았다. 분명한 사실을 환영처럼 제시하기 위해 사각이 아닌, 원을 선택했을 뿐이다. 사실을 곧이곧대로 보여주는 것은 사진의 기계적 특성상 너무 쉬운 일이고, 현대인들은 사실을 날것으로 제시할 때 눈을 감거나 쓰윽 보고 곧장 망각하기에, 에둘러 표현하거나 역으로 신비로운 포장을 해야 한다. 그래야만 본다. 그동안 ‘환경’을 주제로 한 사진들이 ‘보여주기’에서 실패를 거듭한 이유이기도 하다. 오염의 심각성과 자연․자원의 훼손과 고갈 정도를 직접적으로 제시하니 시각적으로 고급화 된 관객들은 사진 보기를 꺼려했을 것이고, 더구나 나와 직접적으로 연결되지 않는 일이니 눈감으면 그만이었을 것이었다. 우리가 자연과 ‘자연스럽게’ 만나는 일이 얼마나 되는가를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이다. 물은 수도꼭지를 틀면 나오는 것이고, 쓰레기는 종량제봉투에 담아 놓으면 누군가 가져갈 것이고, 상한 음식은 버리면 그만이다. 사대강의 오염도는 직접 보지 못했으니 잘 모르겠고, 지구의 어딘가 에서는 식수난으로 몸살을 앓고 있지만, 지금 내가 마실 수 있는 물은 충분하기에 나와는 무관한 일이다. 우리를 늘 둘러싸고(environ)있기에 그 존재를 보지 못하는 것이 ‘환경environment’ 문제인 것이다.
본다는 것은 이처럼 보고 싶은 것만 보거나, 생각하는 것만 보이기에 이미지가 쓰레기처럼 범람하는 시대에는 맹독의 위험을 스스로 감지할 수 있는 시각-장치를 새롭게 마련하지 않으면 안 된다. 작가가 ‘Planet'이라는 단어를 ‘PL.a.net’으로 분절하고 다시 연결한 것처럼, 자동적으로 지각하는 우리의 시각을 일단 의심해보자는 것이다. 이건영의 사진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동그란 원 속에는 썩은 물 위에 떠있는 부유물과 기름기와 폐수, 죽은 동물이 무덤처럼 박혀 있다. 이 아름다운 행성의 배면에 도대체 무엇이, 어떠한 형태로 사라지거나 살아짐을 다하고 있는가. 무엇이 사라지고, 살아남은 것은 어떠한가. 그렇다면 파괴하는 자는 누구이고, 피해자는 누구인가. 자연이 파괴되는 것은 (유아적인 질문을 던지자면) 좋은 일인가? 나쁜 일인가. 동시대에 발생하는 문제들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일은 예술가의 가장 기본적인 몫이자, 작품을 통해 공동체와 동시대성의 (불)가능성을 드러내려는 것은 작가의 윤리라고 생각한다. 재현의 불가능속에서 가능성의 실재를 자꾸만 찾아나서는 장님처럼 말이다. 특히 공동체에 대한 질문이 사라지고 있는 이 시대에는 더욱 작가의 예술실천을 주문하게 된다. 보이지는 않아도 몸살을 알고 있는 이 땅을 새롭게 ‘발견’하고 있는 이건영의 시선이 중요해지는 이유이다. 단지 보았다가 아니라, 무엇을 왜, 어떻게 봐야하는지를 그는 알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은 카메라의 섬광처럼 충격적인 상황을 보존하거나 동결시킬 때 목하 인쇄(Now Print)라는 뇌 메커니즘을 활성화한다고 한다. 이러한 섬광기억(flashbulb memory)은 강력한 기억의 자장을 형성한다. 집(서식지)을 뜻하는 ‘에코(eco)’를 공통된 어원으로 갖고 있는 에콜로지(생태ecology)와 이코노미(경제economy)가 보이지는 않지만 피 흘리는 참상을 벌이고 있는 지금순간에, 사진가의 역할로 섬광기억의 화석화를 자꾸 주문하게 되는 것도 자본주의는 강력하고 인류는 소멸을 향해 가기 때문이다. 사라지는 것들의 기록에 사진은 양보할 수 없고, 이건영의 사진은 기록적 가치와 미학적 가능성을 획득하면서도, 지극히 동그란 목소리로 사진의 윤리를 모색하고 있기에 귀하다. 단지 데이터들의 현란한 조합에 그칠 수도 있었을 것을, 난삽하지 않고 통일성 있게 사진적 메시지에 도달하기 위해 ‘경제적’으로 배치되어 있는 고유하면서 보편적인 [PL.a.net]展을 옹호하게 된다.
이건영 신작 - [PL.a.net]
글 : 최연하 (전시기획자, 사진비평가)
대안공간 SPACE22의 ‘창작지원 전시’ 두 번째로 이건영 개인전 [PL.a.net] 을 개최한다. [흰 그늘진 마당The white shaded backyard](2009~2014)으로 풍경의 새로운 이면을 제시했던 이건영이 신작 [PL.a.net]에서는 자연과 인간의 원환 고리를 환상적인 이미지로 보여준다. 전시 타이틀인 ‘PL.a.net’은 ‘PL’과 ‘net’의 조어로 행성(Planet)을 뜻하는 단어이자, ‘생산물 책임’으로 번역되는 ‘product liability’(PL)를 뜻하기도 한다. 여기에 ‘그물’을 상징하는 ‘net’이 합쳐져 전시의 표제인 [PL.a.net]이 되었다. ‘net'은 그물이라는 뜻 외에, 명사 앞에 쓰일 때는 ‘최종적인’이라는 의미도 갖고 있다. 매 전시 및 새로운 프로젝트 때마다 작가들은 작품의 타이틀을 작명하는데 어려움을 겪는데, 그것은 곧 작품의 내용을 담보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건영의 신작 [PL.a.net]은 알파벳의 중간에 ‘.(dot)’을 삽입하며 끝남과 단절, 다시 점 조직망으로 연결되어 있는 어떠한 형상을 암시하고 있는 듯하다. 다양하고 복잡하게 얽혀 있는 생태계를 한 단어로 표기하기란 어려운 일일 터, 작가는 있지도 않은 조어를 통해 한 번도 가시화되지 않았던 행성을 만들었다.
보려고 하지 않으면 좀체 보이지 않는 풍경이 있다. 보고 싶지 않아도 눈에 들어오는 것이 있는가 하면, 눈에 잘 띄지만 눈 감아버리면 그만인 풍경이 있다. 작가는 전작, [흰 그늘진 마당]에서 한반도 곳곳의 숨은 풍경들을 낱낱이 호출한 바 있다. 부러 찾아가도 쉽게 발견되지 않을 이 풍경은 폐기된 채 은폐되어 있었고, 작가는 애쓰며 보아야 겨우 드러나는 검은 땅의 그늘을 아득하게 보여주었다. 그런데 [PL.a.net]에서는 일단 화려한 색채와 누구나 호감을 갖게 되는 동그란 원형이 눈에 들어온다. 게다가 원형 속에는 신비로운 무늬도 어려 있다. 형형색색의 동그라미들은 영화 ‘인터스텔라’의 우주공간을 부유하는 행성처럼 펼쳐있다. 작가의 작업노트를 보지 않았다면, 관객은 저마다의 원들을 이어가며 가없는 우주를 생각해낼지도 모를 일이다. [PL.a.net]은 일차적으로 관객의 눈을 사로잡기에 충분한 이미지로 만들어졌다. 이제 무엇을 봐야할 지 관객은 동그라미 속으로 서서히 빠져들 것이고, 다소 무거운 어떤 기운들을 감지해낸다면, 작가의 의도는 일정부분 달성된 셈이다. 거기에서 감상이 끝날 수도 있고, 눈길이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며 물음표를 제시할 수도 있다.
사진은 세계의 재현이기도 하지만 세계의 해석이기도 하다. 또한 그것은 기본적으로 분명히 있었던 것의 흔적-기록이기 때문에, 말하자면 사진은 세계의 재현이자, 해석이고, 흔적이라 할만하다. 이건영은 풍경의 흔적들을 채집하여 원 안으로 가두었다. 그것이 이 작업의 전부이다. 그 외에 무늬를 새겨 넣거나, 칼라를 덧입히지도 않았다. 분명한 사실을 환영처럼 제시하기 위해 사각이 아닌, 원을 선택했을 뿐이다. 사실을 곧이곧대로 보여주는 것은 사진의 기계적 특성상 너무 쉬운 일이고, 현대인들은 사실을 날것으로 제시할 때 눈을 감거나 쓰윽 보고 곧장 망각하기에, 에둘러 표현하거나 역으로 신비로운 포장을 해야 한다. 그래야만 본다. 그동안 ‘환경’을 주제로 한 사진들이 ‘보여주기’에서 실패를 거듭한 이유이기도 하다. 오염의 심각성과 자연․자원의 훼손과 고갈 정도를 직접적으로 제시하니 시각적으로 고급화 된 관객들은 사진 보기를 꺼려했을 것이고, 더구나 나와 직접적으로 연결되지 않는 일이니 눈감으면 그만이었을 것이었다. 우리가 자연과 ‘자연스럽게’ 만나는 일이 얼마나 되는가를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이다. 물은 수도꼭지를 틀면 나오는 것이고, 쓰레기는 종량제봉투에 담아 놓으면 누군가 가져갈 것이고, 상한 음식은 버리면 그만이다. 사대강의 오염도는 직접 보지 못했으니 잘 모르겠고, 지구의 어딘가 에서는 식수난으로 몸살을 앓고 있지만, 지금 내가 마실 수 있는 물은 충분하기에 나와는 무관한 일이다. 우리를 늘 둘러싸고(environ)있기에 그 존재를 보지 못하는 것이 ‘환경environment’ 문제인 것이다.
본다는 것은 이처럼 보고 싶은 것만 보거나, 생각하는 것만 보이기에 이미지가 쓰레기처럼 범람하는 시대에는 맹독의 위험을 스스로 감지할 수 있는 시각-장치를 새롭게 마련하지 않으면 안 된다. 작가가 ‘Planet'이라는 단어를 ‘PL.a.net’으로 분절하고 다시 연결한 것처럼, 자동적으로 지각하는 우리의 시각을 일단 의심해보자는 것이다. 이건영의 사진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동그란 원 속에는 썩은 물 위에 떠있는 부유물과 기름기와 폐수, 죽은 동물이 무덤처럼 박혀 있다. 이 아름다운 행성의 배면에 도대체 무엇이, 어떠한 형태로 사라지거나 살아짐을 다하고 있는가. 무엇이 사라지고, 살아남은 것은 어떠한가. 그렇다면 파괴하는 자는 누구이고, 피해자는 누구인가. 자연이 파괴되는 것은 (유아적인 질문을 던지자면) 좋은 일인가? 나쁜 일인가. 동시대에 발생하는 문제들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일은 예술가의 가장 기본적인 몫이자, 작품을 통해 공동체와 동시대성의 (불)가능성을 드러내려는 것은 작가의 윤리라고 생각한다. 재현의 불가능속에서 가능성의 실재를 자꾸만 찾아나서는 장님처럼 말이다. 특히 공동체에 대한 질문이 사라지고 있는 이 시대에는 더욱 작가의 예술실천을 주문하게 된다. 보이지는 않아도 몸살을 알고 있는 이 땅을 새롭게 ‘발견’하고 있는 이건영의 시선이 중요해지는 이유이다. 단지 보았다가 아니라, 무엇을 왜, 어떻게 봐야하는지를 그는 알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은 카메라의 섬광처럼 충격적인 상황을 보존하거나 동결시킬 때 목하 인쇄(Now Print)라는 뇌 메커니즘을 활성화한다고 한다. 이러한 섬광기억(flashbulb memory)은 강력한 기억의 자장을 형성한다. 집(서식지)을 뜻하는 ‘에코(eco)’를 공통된 어원으로 갖고 있는 에콜로지(생태ecology)와 이코노미(경제economy)가 보이지는 않지만 피 흘리는 참상을 벌이고 있는 지금순간에, 사진가의 역할로 섬광기억의 화석화를 자꾸 주문하게 되는 것도 자본주의는 강력하고 인류는 소멸을 향해 가기 때문이다. 사라지는 것들의 기록에 사진은 양보할 수 없고, 이건영의 사진은 기록적 가치와 미학적 가능성을 획득하면서도, 지극히 동그란 목소리로 사진의 윤리를 모색하고 있기에 귀하다. 단지 데이터들의 현란한 조합에 그칠 수도 있었을 것을, 난삽하지 않고 통일성 있게 사진적 메시지에 도달하기 위해 ‘경제적’으로 배치되어 있는 고유하면서 보편적인 [PL.a.net]展을 옹호하게 된다.
‘PL.a.net' 시리즈는 인간이 살아가기 위해 만들어진 생산물들의 나머지, 즉 찌꺼기 혹은 결과물이라고도 부를 수도 있는 것들을 촬영한 것이며, 그 결과물들이 만들어지는 당연함으로 인해 우리에게 망각 되어버린 자연과 인간의 밀접한 관계를 시각화한 작업이다.
오랫동안 인간은 자연을 유용한 도구로 인식해왔으며 공업화, 근대화, 경제성장, 발전이라는 거대한 흐름 속에 자연을 의존하지 않고 지배하며 살아왔다. 그 결과 현재 인간은 스스로를 심각한 생존위기에 처하게 만들었다. 본래 우주 속에 자연은 변화와 운동, 생명 창조과정을 통해 생명활동과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는 무한히 순환하는 시간적인 존재이며 동시에 살아있는 존재이다. 그러한 자연 속에 인간은 일체를 이루고 있는 유기체이고, 그 속에 태어나고 살고 있다. 또 어느 날 우리는 다시 돌아갈 것이다.
본인은 자연과 인간의 유기적인 관계가 망각 되어버린 이유는 사실 우리가 한 번도 자연에서 벗어난 적이 없으며 동시에 너무나 가까이 항상 존재하기 때문이라 생각하였다. 그래서 그 관계를 함축적으로 드러낼 수 있는 PL과 net의 합성어로서 행성(Planet)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였다. ‘생산물 책임’으로 번역되는 product liability(PL)는 일반적으로 제품을 제조하는 업자가 그 제품을 사용, 소비에 의해서 일으킨 생명, 신체의 피해나 손해에 대해서 배상하는 책임을 의미하며, ‘그물’을 뜻하는 net을 더하여 자연과 인간의 인접성을 심플한 형태로 시각화하여 그 관계가 일체를 이루고 있음을 보여주고자 하였다.
오랫동안 인간은 자연을 유용한 도구로 인식해왔으며 공업화, 근대화, 경제성장, 발전이라는 거대한 흐름 속에 자연을 의존하지 않고 지배하며 살아왔다. 그 결과 현재 인간은 스스로를 심각한 생존위기에 처하게 만들었다. 본래 우주 속에 자연은 변화와 운동, 생명 창조과정을 통해 생명활동과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는 무한히 순환하는 시간적인 존재이며 동시에 살아있는 존재이다. 그러한 자연 속에 인간은 일체를 이루고 있는 유기체이고, 그 속에 태어나고 살고 있다. 또 어느 날 우리는 다시 돌아갈 것이다.
본인은 자연과 인간의 유기적인 관계가 망각 되어버린 이유는 사실 우리가 한 번도 자연에서 벗어난 적이 없으며 동시에 너무나 가까이 항상 존재하기 때문이라 생각하였다. 그래서 그 관계를 함축적으로 드러낼 수 있는 PL과 net의 합성어로서 행성(Planet)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였다. ‘생산물 책임’으로 번역되는 product liability(PL)는 일반적으로 제품을 제조하는 업자가 그 제품을 사용, 소비에 의해서 일으킨 생명, 신체의 피해나 손해에 대해서 배상하는 책임을 의미하며, ‘그물’을 뜻하는 net을 더하여 자연과 인간의 인접성을 심플한 형태로 시각화하여 그 관계가 일체를 이루고 있음을 보여주고자 하였다.
이건영 (李建英, Lee gun young)
학력
2010 홍익 대학교 일반대학원 사진학과 졸업
2007 경일 대학교 사진영상학과 졸업
개인전
2014 흰 그늘진 마당, 배다리, 인천, 한국
2014 흰 그늘진 마당, 송은 아트큐브, 서울, 한국
2011 PHOTO BELT Exhibition, Gallerie PICI, 서울, 한국
2009 흰 그늘진 마당,Gallery IS,서울, 한국
그룹전
2015 Summer Love : 송은 아트큐브 그룹전, 송은 아트스페이스, 서울, 한국
2015 Visual point (권용래, 이건영, 하명은 그룹전), 갤러리 모던플러스, 일산, 한국
2015 다른 관찰 (민성식, 사윤택, 이건영 그룹전), 갤러리 모던플러스, 일산, 한국
2014 창작의 내:일, 시도문화재단 창작공간 통합페스티벌, 서울시청 시민청, 서울, 한국
2014 사진의 정의, 1839갤러리, 순천, 한국
2014 ‘바깥 / 풍경’, SPACE22, 서울, 한국
2013 역대 사진비평상 수상자전 ‘이어지다’, 토포하우스, 서울, 한국
2012 대구사진비엔날레, 도시의 비밀전, 대구예술발전소, 대구, 한국
2012 동강 국제사진제, 거리 설치전, 여섯 번째 전시 ; 영월의 재발견, 강원도, 한국
2012 사진비평상 수상전, 갤러리이앙, 서울 / 아르토 갤러리, 대구 한국
2010 'Endless Challenge’ Young Artist Exhibition, GaGa Gallery, 서울, 한국
2010 ‘Zam’, 장흥아트센터, 경기도, 한국
2008 Post & Photo The 6th,토포하우스, 서울, 한국
2007 Post & Photo The 5th,토포하우스, 서울,한국
수상
2014 한국사진학회 우수포트폴리오 선정, 한국
2014 서울문화재단 예술창작 지원 사업, 공모 선정, 한국
2014 1839 사진창작 순천 레지던스 입주작가, 순천, 한국
2013 송은 아트큐브 전시지원 작가선정, 송은 문화재단, 한국
2012 제13회 사진 비평상 작가선정, 포토스페이스, 한국
2011 PHOTO BELT 작가선정, 한국판화사진진흥협회, 한국
학력
2010 홍익 대학교 일반대학원 사진학과 졸업
2007 경일 대학교 사진영상학과 졸업
개인전
2014 흰 그늘진 마당, 배다리, 인천, 한국
2014 흰 그늘진 마당, 송은 아트큐브, 서울, 한국
2011 PHOTO BELT Exhibition, Gallerie PICI, 서울, 한국
2009 흰 그늘진 마당,Gallery IS,서울, 한국
그룹전
2015 Summer Love : 송은 아트큐브 그룹전, 송은 아트스페이스, 서울, 한국
2015 Visual point (권용래, 이건영, 하명은 그룹전), 갤러리 모던플러스, 일산, 한국
2015 다른 관찰 (민성식, 사윤택, 이건영 그룹전), 갤러리 모던플러스, 일산, 한국
2014 창작의 내:일, 시도문화재단 창작공간 통합페스티벌, 서울시청 시민청, 서울, 한국
2014 사진의 정의, 1839갤러리, 순천, 한국
2014 ‘바깥 / 풍경’, SPACE22, 서울, 한국
2013 역대 사진비평상 수상자전 ‘이어지다’, 토포하우스, 서울, 한국
2012 대구사진비엔날레, 도시의 비밀전, 대구예술발전소, 대구, 한국
2012 동강 국제사진제, 거리 설치전, 여섯 번째 전시 ; 영월의 재발견, 강원도, 한국
2012 사진비평상 수상전, 갤러리이앙, 서울 / 아르토 갤러리, 대구 한국
2010 'Endless Challenge’ Young Artist Exhibition, GaGa Gallery, 서울, 한국
2010 ‘Zam’, 장흥아트센터, 경기도, 한국
2008 Post & Photo The 6th,토포하우스, 서울, 한국
2007 Post & Photo The 5th,토포하우스, 서울,한국
수상
2014 한국사진학회 우수포트폴리오 선정, 한국
2014 서울문화재단 예술창작 지원 사업, 공모 선정, 한국
2014 1839 사진창작 순천 레지던스 입주작가, 순천, 한국
2013 송은 아트큐브 전시지원 작가선정, 송은 문화재단, 한국
2012 제13회 사진 비평상 작가선정, 포토스페이스, 한국
2011 PHOTO BELT 작가선정, 한국판화사진진흥협회, 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