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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23 09:37

이향안 Hyang an Lee

조회 수 226 추천 수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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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제목 환상도시 · Illusion City
전시기간 2018. 6. 21 ~ 8. 20
전시장소 갤러리 블랭크 GALLERY BLANK
작가 홈페이지 http://www.hyanganlee.com
갤러리 홈페이지 http://galleryblank.blog.me
갤러리 블랭크는 2018년 6월 21일(목)부터 8월 20일(월)까지 『수집 : Collecting』을 테마로 한두 번째 기획전시 <환상도시 · Illusion City>를 개최한다. 이번 전시에는 이향안 작가의 사진작품 15점과 작품의 이해를 도울 전시서문, 작업노트, 인터뷰, 에피소드 등이 공개된다. 전시기간 중에는 ‘다른 작업소개‘ 및 ’작가의 작업실’ 그리고 이향안의 작품에서 영감 받아 블랭크가 제작하는 ‘인스피레이션’도 순차적으로 선보일 예정이다.
  • ⓒ이향안 Hyang an Lee
  • ⓒ이향안 Hyang an Lee
    일상과 환상 no.10 · 2017 · 인천 창영동 임마누엘교회/ 크리스마스 장식 전구 · Pigment Print · 110×168㎝
  • ⓒ이향안 Hyang an Lee
    일상과 환상 no.11 · 2017 · 영주 148 아트 스퀘어/ 벽시계용 유리 · Pigment Print · 55×80㎝
  • ⓒ이향안 Hyang an Lee
    일상과 환상 no.1 · 2017 · 신길역 부근/ 공예용 철사 · Pigment Print · 24×35㎝
  • ⓒ이향안 Hyang an Lee
    일상과 환상 no.10 · 2017 · 영등포시장/ 유리구슬 · Pigment Print · 80×120㎝
  • ⓒ이향안 Hyang an Lee
    일상과 환상 no.4 · 2017 · 영등포 기계 상가/ 지관, 테잎, 나무막대, 손거울 · Pigment Print · 80×110㎝
  • ⓒ이향안 Hyang an Lee
    일상과 환상 no.9 · 2017 · 문래동/ 아로마 향초 · Pigment Print · 112×175㎝
■ 갤러리 블랭크는 2018년 6월 21일(목)부터 8월 20일(월)까지 『수집 : Collecting』을 테마로 한두 번째 기획전시 <환상도시 · Illusion City>를 개최한다. 이번 전시에는 이향안 작가의 사진작품 15점과 작품의 이해를 도울 전시서문, 작업노트, 인터뷰, 에피소드 등이 공개된다. 전시기간 중에는 ‘다른 작업소개‘ 및 ’작가의 작업실’ 그리고 이향안의 작품에서 영감 받아 블랭크가 제작하는 ‘인스피레이션’도 순차적으로 선보일 예정이다.

■ 이향안 작가가 일상의 권태에서 탈출하기 위해 선택한 방법은 도시의 어설프고 못난 모습들을 낯설게 바라보는 것이었다. 화려한 도시의 이면에 발견된 정리되지 못한 어지러움과 혼돈의 모습은 매일을 살아가는 우리의 속살을 닮은 풍경과도 같았다. 그 무질서의 더미 위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꿈을 꾸며 살아간다. 일상 위에서 자라난 환상을 주제로 사진이라는 매체의 속성과 연결시켜 실험하며 이향안만의 감각이 묻어나는 작품을 소개한다.

■ 사전적으로 ‘현실적인 기초나 가능성이 없는 헛된 생각이나 공상’으로 표기되어 있는 ‘환상’은 고단한 현실을 살아가면서 더 나은 것, 새로운 것을 꿈꾸는 인간에게 필요악과 같이 인식되기도 한다. <일상과 환상>시리즈를 선보이는 이향안에게 환상이란 일탈이자 자유, 꿈으로 작용하지만 그의 작품 자체는 지극히 일상적인 화면으로 드러난다. 그 이유는 작가가 피력하는 환상이미지는 최종 결과물보다 작업과정에서 명확히 드러나는 데 있다. 컴퓨터 그래픽이 활용되었을 것이라는 예상과는 다르게 사진의 배경이 되는 1차 촬영 후 프린트 하고 그 출력물 위에 사물을 올려 이중촬영을 진행하는 차별화된 프로세스를 채택하여 작가의 적극적 개입을 통해 재생산된 이미지는 특이할 것이 없지만 어디에도 없는 환상도시의 풍경으로 완성되었다.

■ 작품의 캡션 또한 전반부에 촬영된 장소와 후반부에 재배치된 사물의 정보를 함께 기재한 점이 눈에 띈다. 작가는 가능하면 조금이라도 더 관객과의 공감대를 형성하고자 사진의 배경이 되는 장소를 표기하였고, 완성된 작업뿐 아니라 작업의 프로세스가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만큼 사물의 정보를 평등하게 기재하여 관람자가 제작과정 일부를 자연스럽게 짐작할 수 있도록 장치하였다. 사진 매체의 성질이나 본질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향안은 사진이 가지는 이미지와 실재를 혼동하게 만드는 재현의 정확성, 자연의 시간적 질서를 무시할 수 있는 부조리와 모호성 등 양립 불가능한 것들을 한 몸체에 담아내는 사진의 매력을 이해하고 활용하고 있다. 유리나 거울을 자주 등장시키는 것도 사진의 분위기가 빛에 많이 좌우되는 만큼 빛의 성질을 이용할 수 있는 것과 무질서해 보이는 배경을 자연스럽게 연결해주는 형태가 원형이기에 해당 사물들을 선택하였다. 감각적인 작품을 뒷받침하는 충분한 사고를 드러내면서 작품은 더욱 설득력을 얻는다.

■ 이향안은 일상으로부터 기인한 환상에 대한 이야기를 도시가 갖는 미완의 풍경을 통해 사진으로 그려내고 있다. 환상에는 자유의지가 내포되어 있으며, 유희를 주기도해 고단한 삶을 지속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작가는 관람자가 자신의 작품을 통해 일상을 돌아보고 그 현실에서 개인의 판타지를 그려볼 기회를 가지기를, 또 나아가 현실의 결핍을 채워주고 위로가 되기를 희망한다. 일상은 지난하지만 환상과 같은 꿈은 누구라도 꿀 수 있는 자유가 우리에게 있는 것이다.

도시의 틈, 환상


일상에서 쉬이 지나치거나 놓치게 되는 아름답지 않는 풍경을 다시 바라보는 행위는 예술가라면 한 번쯤 시도해봐야 할 사명 같은 것이 아닐까. 이향안 역시 아티스트들의 주된 소재가 되는 장면을 다루며 자신만의 고유한 방식과 실험정신을 바탕으로 작업을 풀어내는 작가이다.

화려함 이면에 발견된 도시의 틈. 그곳에는 지저분한 쓰레기 더미, 망가져 방치된 사물 등 무질서한 풍경이 우리의 민낯 같은 모습으로 자리하고 있다. 쓸모를 다해 버려지거나 불필요한 물건은 바닥 구석 어딘가에 내버려두기 마련이듯 그것을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 또한 모두 땅과 낮은 벽, 모퉁이를 향한다. 번듯해 보이지만 실상은 어설프고 모자란 구석을 지닌 개인과 사회구조 속에서도 이와 비슷한 형상이 거울처럼 비춰진다.

그럼에도 매일을 오가는 길목에서 마주하는 도시풍경을 생경하게 바라보는 일은 그 자체로 자신을 일상의 권태에서 벗어나게 해주었다고 작가는 말한다. 그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이향안의 사진은 특별한 제작 과정을 거친다. 이 프로세스는 외부적 경험을 내재화, 자기화하여 사적 환상이나 꿈을 발아하는 과정과 유사하다. 그저 도시 주변부의 폐허를 한 컷에 담거나 일부 컴퓨터그래픽을 거친 것처럼 보이지만 배경을 1차 촬영한 후 프린트하고, 그 위에 사물을 다시 배치하여 이중촬영 된 이미지라는 것을 알게 된 순간 작품을 전혀 새롭게 바라보게 된다. 과정 안에서 도시의 풍경은 어느새 한 장의 출력물로 사유화되고, 개인의 사물 위에 또 다른 사물을 임의로 배치하여 재생산된 이미지는 공적가치에 짓눌린 사적일상에 작은 일탈과 같은 일종의 해방감을 선사하는 것이다.

작가가 본 과정 -실패한 도시의 미적균형을 재정비하는 일- 에 천착하고, 작업 자체가 자신에게 비상구가 될 수 있었던 데에는 쓸모없는 것(일상)들로 하나의 작품을 완성하는 행위(환상)가 마치 꿈의 실현과 같이 느껴지고, 이를 통해 실제 본인의 현실적인 바람도 일부 이루고 있는 과정일지 모르겠다.

환상이란 가상의 것, 비현실적 사고에 불가한 헛된 꿈과 같이 인식되는 게 보편적이지만 매일 마주하는 풍경에 자신의 환상을 접목한 이향안의 <일상과 환상>시리즈는 그 어떤 풍경보다 일상적인 모습이다. 일상과 환상은 분리되어야 마땅한가. 인간이 각기 다른 환상의 세계를 갖는 것은 그 기저에 개별적 현실이 자리하고 있으며, 그에 따른 무의식의 일탈이나 꿈이 곧 환상으로 드러나는 것이 아닐까. 이향안이 표현하는 환상은 가능성 있는 현실, 손에 쥘 수 있는 바람이자 의미 있는 사유, 그리고 자유함이다.

실험실의 한 장면 같은 작가의 작업실을 상상해본다. 배경이 되는 프린트를 내려놓고 전면에 빛이 고르게 퍼지도록 조명을 설치한 후 출력된 배경과 어우러지는 사물을 조심스럽게 감각적으로 배치한다. 초록 구슬 속에는 직사각의 소프트 박스가 비치지만 작업에 자주 등장하는 둥근 손거울에는 하늘의 구름 같은 형상이 반사되기도 한다. 재촬영의 과정에서 사용한 프린트의 크기는 명시되어 있지 않지만 사물에 비례해서 짐작해볼 수 있다.

재배치된 사물은 원형의 유리와 거울이 주를 이룬다. 작가의 시선에서 배경이 되는 풍경은 미완의 모습이었기에 장치되는 사물은 부드러운 곡선의 형태를 사용하여 풍경과 자연스럽게 연결되게 하였다. 무엇보다 빛에 의해 전체적인 분위기가 좌우되는 사진의 특성상 그것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거울과 유리가 작가에게는 매력적인 오브제가 되어주었다. 사진은 흔히 빛으로 그린 그림이라고 하지 않던가. 이향안의 사진 위에 올려진 주요한 사물들은 빛을 모아 거울과 렌즈를 통해 상을 이루는 카메라의 메커니즘과도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프로세스를 인식하고 나면 출력물에 속해있는 것, 즉 배경과 그 위에 놓인 사물의 경계를 유심히 살피게 된다. 그러한 반응 속에는 진짜와 가짜를 구분해내려는, 가령 이것이 회화인지 사진인지, 실재인지 가상인지 등 쉽게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 현대미술을 대하며 생긴 습관적 사고가 반영된다. 감상자로부터 비슷한 호기심을 일으키는 것만으로도 작품은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둔 것이라 본다.

부조화와 혼돈의 소재를 바라보고 유희하듯 사진과 사물의 겹쳐 보여주기를 반복하는 이미지의 환상이 무엇을 향하고 있는 것인지, 시각적인 흥미로움이나 모던한 이미지로써의 가치를 지니는지, 사유를 유발하는 매개체로 어떠한 역할을 하고 있는지에 대한 답은 감상자의 몫으로 던져진다.

보다 진실된 사물의 이면을 발견하기 위해 미술은 오랫동안 실험을 해왔다. 이향안이 말하는 환상도 어딘가 존재하고 있을 진실, 실재를 향한 몸짓이 아닐까. 프린트와 사물, 일상과 환상이 포개어진 방법을 대입해서 뉴스 헤드라인의 한 장면 위에 일상을 덧입혀 나만의 오늘을 남겨보는 상상을 해본다. 수많은 사람이 동시에 같은 정보를 공유하고, 그것을 배경으로 살아가고 있지만 개개인이 지닌 삶은 공적인 일상의 거대한 부피가 무색할 만큼 저마다 다른 모습이다. 아무렇게나 던져진 일상 속에서 리듬과 긴장이 있는 질서를 찾아내고, 고유한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것, 환상을 발견하고 실현하는 것은 작가에게 뿐만 아니라 모든 이에게 주어진 특별한 축복이다. 이향안의 말처럼 이 지겨운 일상의 틀 안에서 그래도 나날이 새로운 꿈을 좆는 나의, 우리의 모습이 여기에 있는 것이다.

갤러리 블랭크 (GALLERY BLANK)
블랭크: 촬영장소가 영등포 인근에 집중된 것은 본인의 행동반경이 그 지역인 것으로 추측됩니다. 이것이 일상과 연결된 지점이 될 수 있지만 버려진 물건은 개인의 일상과는 거리가 있어 보이기도 합니다. 본인이 말하고자 하는 ‘일상’에 대해 설명해주세요.

이향안: 맞습니다. 집과 작업실이 위치한 목동과 영등포 일대를 주로 걸어다니며 작업했어요. 그 외의 장소에서 촬영된 것들도 출사를 따로 특별히 나갔다기보다는 사실 제가 일을 하러 나간 곳에서 일 외적으로 포착했던 장면들이에요. 이 부분은 다음 질문인 ‘일상’의 의미와도 연결이 되는데, 집과 작업실을 오가는 것, 때때로 일을 하는 곳에서 만나는 풍경들이라는 것이라는 것이 제목 속 ‘일상’의 규정적 의미가 되겠네요. 이와 연결된 맥락으로서, 작품 속 개별적 풍경이나 사물들의 구체적인 형태를 굳이 일상의 서사와 일대일로 연결시키거나 표현하려 한 건 아닙니다. 사물이나 풍경의 구체적인 형태는 어떻게 보면, 사진적인 푼크툼에 의해 즉흥적으로 포착한 행위의 흔적이라고 말하는 게 더 솔직할 것 같아요. 하지만 시리즈에 쓰일 사진을 고를 때 그러한 무의식적 풍경들이 만들어진 원인이 도시민의 일상적 삶으로부터 비롯된 것인가, 또 그렇기 때문에 너무나 평범해서 흔히 지나치고도 놀라지 않는 일상성을 띠고 있는 장면인가에 기준을 두고 선택했습니다.

블랭크: 작업과정에 대해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작품 전반은 자연스럽게 보이기 때문에 굳이 재배치가 필요한 장면인지에 대해 의문이 들었습니다. 이것이 작업 의도가 될 수도 있겠죠. 어떠한 부분에 초점을 두고 작업하며, 최종적으로 보여주고자 하는 사진의 분위기는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이향안: 작업을 하는 과정은 사진을 찍는 전반부 과정과 사진 위에 물건을 배치하여 그 조형성을 다시 정비하는 후반부 과정으로 나누어집니다. 전반부 과정에서 저는 자연스럽게 도시적 일상에서 마주할 수밖에 없는 미완의 풍경을 관조적으로 촬영하는 태도를 취했습니다. 이 풍경은 제가 인위적으로 구성한 풍경이 아니기 때문에 저에게 완벽한 상태로 보이지는 않았죠. 물론 그 점 때문에 풍경의 수집이 시작된 것이고요.

그런데 이런 풍경이 개인의 ‘작업실’이라는 사적 공간에 들어와 한 장의 출력물로서 개인 소장품(사물)이 되고, 그러한 상태로 그 곳에 이미 존재하는 다른 개인화된 사물과 관계를 맺으면서 이전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가 더해집니다. 각각의 원 풍경은 각자가 가진 에너지대로 저와 서로 다른 영향을 주고받기 때문에 최종 결과물에서 원래의 분위기는 180도 바뀌기도, 아주 약간만 달라지기도 했지요. 그러나 정도차가 있더라도 어찌됐건 사유화된 채 보다 적극적으로 한 사람의 개입을 받아들인 풍경이 이전과 같을 수는 없다는 것만은 분명합니다.

저에게는 이러한 일련의 작업 과정이, 공적인 일상을 살아가는 개인이 자신이 보고 들은 외부적 경험의 일부를 내재화, 자기화하여 사적 환상이나 꿈을 발아하는 과정과 유사하다고 느꼈습니다. 따라서 재배치의 과정이 없다면 <일상과 환상>의 주제로 묶일 수 있는 종류의 작품이 아니게 되겠죠. 그러므로 이 과정은 필수입니다.

최종적으로 보여주고자 했던 사진의 분위기는 하나로 통일하고자 했던 마음보다는 각 이미지가 가진 미완의 형을 토대로 각각의 완성도를 저의 감각을 더해 찾아내고자 했습니다.

블랭크: 이번 전시는 배경과 재배치된 사물이 자연스럽게 연결된 작품으로 구성이 되었지만 작품을 전체적으로 봤을 때는 제법 인위적이라고 할 만한 장면도 있었습니다.

이향안: 초기 작업의 경우 촬영된 원본 이미지와 별개로 촬영을 위해 제가 수집했던 사물들이 구하기 어렵지는 않으나 빛에 반응하거나 빛을 다룬다는 점에서 비교적 쉽게 ‘시각적 환영성’에 이르게 하는 것들이 많았어요. 놓여질 사물 자체가 환상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지만 원본 이미지의 성격을 바꾸는 오브제로서의 임팩트를 생각했기 때문에 원 이미지와 강하게 또는 인위적으로 맞닥뜨리는 경우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작업 중반을 넘어서면서부터는 사진을 찍으면서 자연스럽게 최종 작업에 대한 아이디어가 떠오르는 경우가 있었는데, 그런 경우 제가 가진 사물에 대해 미리 염두에 둔 채로 화각을 구성한다던지 하기도 했죠. 두 가지 경우의 성격이 조금 다르기는 하지만 올려지는 사물 자체가 환상의 직접적인 구현물이 아니라 환상의 매개체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문제될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두 가지의 경우를 함께 보여줘도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블랭크: 캡션에 타이틀 외 촬영장소와 재배치된 사물을 함께 쓰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이향안: 장소나 사물의 정보를 캡션에 기재한 가장 큰 이유는 관객과의 공통분모를 향유하고자 한 일종의 노력이었던 것 같아요. 작업의 밑바탕이 되는 원본 사진을 찍고 고를 때, 한 도시의 특정성을 배제하고 되도록이면 ‘도시’라는 큰 주제안의 보편적 풍경을 담고자 했어요. 그러나 제 일상의 바운더리 안에 함께 하면서, 이 작품을 보는 사람들에게는 가능하다면 조금 더 공감대를 형성하고 싶었어요. 완성된 작품에는 저의 개성이 드러났다고 말할 수 있겠지만, 작품 이전의 내 일상에서 마주한 풍경이나 감정들은 사실 그렇게 특별하거나 혼자만이 느낄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거든요. 실제로 개인전 당시 관객들 중에서 함께 보러 온 아이나 친구에게, “여기 우리가 사는 동네지?, 이거 주변에서 많이 보던 거지?”하시는 분들이 꽤 있었고 이런 반응들이 제게 반갑게 다가왔어요.

한편으로는, 완성된 작업뿐 아니라 작업의 프로세스가 저에게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데, 재료로서의 사진과 사물 정보를 평등하게 기재하는 것으로 정보 열람자가 작품의 프로세스 일부를 자연스럽게 짐작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즉, 제 작품에서는 원사진이 여타 사진 작품처럼 오롯이 혼자서 작품자체로 기능했다기보다는 하나의 작업재료로서 사용되었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서, 촬영장소가 기재된 ‘사진’, 그리고 다른 재료인 사물의 정보를 함께 기재한 것입니다.

블랭크: 1차 촬영을 할 때 2차 촬영 시 재배치할 사물을 어느 정도 미리 염두하고 촬영을 진행하는지 궁금합니다.

이향안: 작업이 계획되기 이전에 촬영된 1차 촬영물의 경우에는 재배치할 사물이 물론 고려되지 않았지만, 작업이 진행되면서 추가로 생산된 이미지 중 몇몇 원본 이미지는 다른 이미지에 설치가 시도되었던, 혹은 설치하려고 미리 수집해 두었던 오브제를 염두에 둔 채로 촬영한 경우도 있습니다. 이 경우 원본 이미지와 오브제의 배치가 실제로도 잘 맞아떨어지는 경우가 많아서 아무래도 최종 작품으로까지 선택되는 경우가 많은 편인데요. 위 작품의 경우, 촬영 현장에서 배관통이 설치된 광경을 보았을 때, 다른 이미지(최종 선택에서 배제된)에 이미 쓰였던 ‘매직 스프링’이라는 이름의 오색 장난감 용수철 오브제의 형태가 떠올랐고, 그것과 맞는 사이즈를 찾기 위해 크기를 고려하여 1차 촬영물을 출력해 작업한 케이스입니다. 질문 중에 어떤 것들은 배경과 자연스럽게 연결되기도 하고, 어떤 것들은 꽤 이질감이 느껴지기도 하다고 하신 게 있었는데, 대체로 관객들이 보았을 때 배경과 자연스럽게 연결된다고 여겨지는 작품들은 재배치한 사물을 미리 연상한 경우가 많지 않을까 생각이 되네요.

블랭크: 촬영할 때 해당 배경에서 직접 원하는 사물을 배치하여 촬영하는 방법을 시도해본 적이 있는지, 1차 촬영 컷을 프린트 한 후 그 위에 사물을 올려놓고 이중촬영을 선택한 것은 어떠한 차이 혹은 다른 의도가 있다고 생각하나요?

이향안: 처음 풍경을 촬영할 때는 단순한 취미로서의 사진 찍기 행위에 가깝다가 후에 이 사진들을 보면서 시선의 공통점을 발견하고는 작업으로 보여줘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그렇지만 저는 사진성의 강조를 각 시리즈의 주제 의식보다 우선순위에 두기 때문에 이 사진들을 그냥 보여줄 수는 없었고, 이전 시리즈에서 사용해온 재촬영 기법을 도입해 보여주자는 결론을 내린 후 작업을 진행했습니다. 따라서 직접적인 배치는 처음부터 시도한 적이 없습니다.

특정 매체를 주로 다루는 여러 작가들이 그렇겠지만 저는 특히나 제가 다루는 매체의 성질이나 본질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는 편이에요. 각 시리즈의 주제를 관통하는 맥을 사진적 태도로 집결하고자 합니다. -매체의 최종 결과물을 사진의 형태로 제한하겠다는 것과는 다른 이야기입니다만 이것은 뒤에 이어지는 답변으로 대체하겠습니다- 이렇게 사진의 특성을 강조하는 하나의 방식으로서 이전부터 즐겨 사용해왔던 것이 재촬영 기법입니다. 실제 풍경에 어떤 설치를 가미했을 때 그 위에 배치되는 사물은 자신의 원 크기대로 풍경 안에 녹아들지만, 본 시리즈에서는 그렇지 않죠. 각목 구조물의 크기에 꼭 맞는 테이프라던가, 전신주 구조물을 능가하는 크기의 수정구슬 같은 것들은 자유자재로 크기를 달리해 평면으로 변이된 입체, 즉 사진이기 때문에 가능한 시도라고 여겨집니다.

블랭크: 재배치된 사물은 유리, 손거울이나 원형의 것들이 주를 이루는데, 관련해서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이향안: 유리나 거울의 성질이 묘하게 이질감을 부각시키는 면이 있어 즐겨 사용했습니다. 투명해 존재감이 미미한 듯 하면서도 두께나 결에 따라 표면에 생기는 섬세한 굴곡 효과도 재미있었고요. 결국 사진은 빛의 활용이 분위기를 많이 좌우하기 때문에, 빛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거울이나 유리가 매력적으로 느껴졌던 것 같습니다. 원형은 그 자체로 완성도가 있고 부드러운 곡선이라 미완의 형태를 가진 풍경들을 자연스럽게 연결시켜주어서 자주 사용했고요.

블랭크: 작업방식은 어디에서 영감을 얻었는지요?

이향안: 2011년, 맨 처음으로 했던 작업이 셀프 포트레이트 작업이었는데요. 그 때, 한 사람의 생각이나 태도가 진화하는 과정과 나무가 성장하는 과정이 유사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한 그루의 나무는 시간에 따라 나이테를 덧입으며 성장하되, 심재는 죽을 때까지 중심부에 견고히 자리하고, 외부의 여러 가지 요인과 내부의 화학 작용이 맞물리면서 다양한 방향으로 가지를 뻗죠. 사람 역시 쉽게 변할 수 없는 본성을 가진 채 태어나지만 환경과 본인의 경험들에 의해 자신도 예상치 못한 여러 방향으로 가지를 뻗쳐 나가면서 성장하고, 그 완성형은 고목이 그렇듯이 죽음 이후에나 정의 내려질 수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이 작업을 할 때, 나무가 나이테를 겹치는 방식을 은유하고자 저의 초상을 촬영한 뒤 이것을 프린트해 나뭇가지를 설치하고 촬영, 그 프린트 위에 나뭇가지를 설치하고 촬영하는 과정을 수 차례 반복하는 프로세스를 창안했어요. 후에 다시 작업을 하게 되면서 이 때 창안한 프로세스가 사진의 특성을 잘 드러내는 하나의 방법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결국 지금 하는 작업방식의 기반이 되었습니다.

블랭크: 사진이라는 장르, 매체가 가지는 매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이향안: 사진은 그 재현의 정확성 때문에 자주 이미지와 실재를 혼동하게 할 뿐 아니라 모든 사물의 본질이라고 할 수 있는 입체성, 고정성을 단번에 가변 크기의 평면으로 치환해 버리죠. 또 연속선상에 있는 시간을 분절하여 파편화하기 때문에 자연의 시간적 질서를 손쉽게 파괴합니다. 그 뿐 아니라 사진은 사실을 증명하는 객관적 단초가 될 수 있지만 그것이 진실인가 하면 그것과는 크게 관계가 없기도 해요. 사용자의 주관 개입이 불가피한 까닭입니다. 충동적 행위의 결과물이 장시간의 사유를 유발하는 매개체가 되기도 하고요.
결국 사진은 외양의 탁월한 모사 능력을 갖춘 기계-카메라와 그를 사용하는 개별자의 만남이 빚어낸 결과물이라는 태생적 조건에 의해 이러한 부조리와 모호성, 공격성을 함께 지니게 된 것인데, 저는 이것이 다양하고 입체적인 내면을 가진 인간과, 특히 모순적인 면이 많은 채로 표면상 밸런스를 그럴듯하게 유지하며 살아가는 저 자신과 비슷한 점이 많다고 생각했어요. 이런 성향은 언뜻 부정적인 것으로 치부되기 쉽지만, 달리 보면 이렇게 양립 불가능하고 부조리한 것들을 스스럼없이 한 몸체에 담아내는 ‘사진’이라는 매체의 존립방식이 인간에게 어찌 매력적으로 보이지 않을 수 있겠어요.

블랭크: 사진 외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분야가 있나요?

이향안: 설치나 영상 등 여러 분야에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진이 개념적, 혹은 속성적으로 제게 잘 들어맞는 매체라면 입체나 설치 분야는 본능적인 관심 분야인 것 같아요. 영상 쪽은 제가 대학 시절 조금 다루어 본 경험이 있기도 하고, 원래가 사진을 기반으로 발전된 장르이기도 해서, 현재 작업 주제와 동일한 맥락 하에 확장시켜 나가고 싶은 분야입니다.

블랭크: 영향을 받은 작가가 있는지, 혹은 평소 관심을 가지고 있는 작가라도 좋습니다.

이향안: 매우 많은 작가들의 작품을 보고 영향을 받습니다. 우선 이 시리즈의 사물 선택 등에 가장 직접적으로 영향을 많이 받았던 작가는 올라퍼 엘리아슨이었어요. 한창 작업과 작업 계획 중이던 2017년 초중반에는 리움과 PKM갤러리 등에서 연달아 올라퍼 엘리아슨의 대형 기획전을 개최했었거든요. 이 때 본 작품들이 작업을 하는 내내 꽤 뇌리에 많이 남았던 것 같아요.

가브리엘 오로즈코나 리차드 웬트워스 등 도시와 일상의 형태를 연구하는 작가들의 사진과 조각 작품에도 관심이 많습니다. 펠릭스 곤잘레스 토레스처럼 개념과 과정을 시각화하는 작업들도 눈여겨 보는 편이고, 동시에 텀블러나 인스타그램 등에서 이름 모를 작가들의 감각적인 작품들도 자주 접하는 편입니다.

국내 작가 중에서는 유현미 작가, 권오상 작가 등의 작품을 재미있게 보고 있고, 안규철 선생님이 사유를 시각화하는 방식에도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다만 국내 또래작가들의 작업은 되도록 참고용으로 대하지 않으려 노력해요. 동시대 동년배 작가들과 작업적으로 너무 많은 것들을 공유하다 보면 제가 가진 감각이나 집중력이 둔해질 것 같아 일부러 조금은 거리를 두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블랭크: 앞으로 어떤 작업을 이어가고 싶은지 계획을 알려주세요.

이향안: 앞으로는 평면으로서만 작품의 최종 결과물을 제한하지 않고, 조각이나 영상 등 연구자의 다른 관심 분야에 사진적 태도를 적용하는 방식을 다방면으로 실험해보고 싶어요. 올 들어 설치 작업을 통해 그 확장 가능성을 조금이나마 엿보았고, 앞으로 보여질 전시에서도 다양한 장르로 태도에 관한 실험을 지속할 예정입니다.
또 그와 반대로 아직까지는 스트레이트 사진 작업을 보여준 적이 없는데, 저에게는 정면 돌파격인 순수 사진 작업도 언젠가는 꼭 해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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