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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06
2018.06.11 20:38

이영욱 Youngwook Lee

조회 수 171 추천 수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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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제목 물울타리 갯티길 water fence gate road
전시기간 2018. 6. 18 ~ 6. 30
전시장소 인천아트플랫폼 E1창고갤러리 incheon art platform
오프닝 2018, 6, 18. 오후 6시 30분
갤러리 주소 인천시 중구 제물량로216번길 3
갤러리 홈페이지 http://www.inartplatform.kr
이영욱의 사진전<물울타리 갯티길 water fence gate road>은 2013-2018년 사이 인천의 36개 유인도 섬을 답사한 2만 7천 장의 사진 중에서 선별한 것으로 지금은 사라진 혹은 사라지고 있는 섬 해안가 둘레 길(갯티길)를 중심으로 기록했다. 조수간만의 차가 큰 인천의 섬들은 6시간마다 온전하게 그 모습을 드러내고 해안가 길이 열리는 데, 이 길을 섬 원주민들은 갯티 길(gate road)이라 부른다. 하루에 2번 수면에 잠겼다 드러나는 이 길은 섬사람들의 생업의 터전이자 아이들에게는 놀이의 공간, 이동통로 사용했던 곳이다. 그러나 지금은 군사통제로 접근이 금지되었거나, 새로운 우회도로가 생기면서 거의 이용되지 않는 없어진 길이다. 역설적이게도 길은 막혔지만 신비롭고 숭고한 자연의 현상들을 간직하고 있는 곳이다. 최근 급속한 관광개발에 의해 갯티 길은 다시 열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모습은 인위적으로 박제된 채로 변질될 위기에 놓였다. 나는 이곳을 인간의 개입으로 변화하고 있는 사태에 직면해 그 흔적들을 놓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이를테면 전체적으로 평범한 풍경사진처럼 보이는 장면속에서도 위기의 징후를 발견 할 수 있도록 포착했다. 예를 들면 자연을 보호한다는 구실로 만들어진 관광객 산책로는 오히려 환경을 파괴하는 꼴이 되었고, 개발에 기대어 주민들의 어업활동은 오히려 줄어들었다. 군사목적의 위장된 초소와 교통로는 섬 전체가 마치 요새화되면서 동시에 안보관광으로 변용되는 기현상도 있다. 그런 가 하면 이국적 펜션들의 날입과 안내표지들은 도시의 유원지와 별반 다르지 않다. 이제 전통적인 섬의 고유한 문화와 정서를 느끼는 오래된 집터와 건물들은 이미 폐허가 되었다. 제목[water fence gate road]은 함민복의 시 <섬>에 나오는 표현 ‘물울타리’water fence 와 ‘갯티길’의 발음상 유사한 gate를 합성한 조어다. 따라서 이 제목은 섬의 고립된 낭만 이미지를 탈출하려는 닫히면서 열리는 섬의 욕망 이미지를 상징적으로 내포한다. # 이 전시는 인천광역시(재)인천문화재단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지역협력사업으로 예술표현활동 지원금을 후원받은 전시입니다.
  • ⓒ이영욱 Lee, Youngwook
    Island project_Water fence gate road_대연평도DaYeonpyeong-do_42x62.93cm_ archival pigment print_2016.
  • ⓒ이영욱 Lee, Youngwook
    Island project_Water fence gate road_장봉도Jangbong-do_90x134.85cm_archival pigment print_2015.
  • ⓒ이영욱 Lee, Youngwook
    Island project_Water fence gate road_신도Sin-do_90x134.85cm_archival pigment print_2016.
  • ⓒ이영욱 Lee, Youngwook
    Island project_Water fence gate road_소야도Soya-do_29.7x44.5cm_archival pigment print_2017.
  • ⓒ이영욱 Lee, Youngwook
    Island project_Water fence gate road_소연평도Soyeonpyeong-do_29.7x44.5cm_archival pigment print_2018.
  • ⓒ이영욱 Lee, Youngwook
    Island project_Water fence gate road_울도Uldo-do_29.7x44.5cm_archival pigment print_2017.
  • ⓒ이영욱 Lee, Youngwook
    Island project_Water fence gate road_무의도Daemuui-do, 90x120cm, archival pigment print, 2018.
  • ⓒ이영욱 Lee, Youngwook
    Island project_Water fence gate road_덕적도Deokjeok-do, 42x62.93cm, archival pigment print, 2016.
  • ⓒ이영욱 Lee, Youngwook
    Island project_Water fence gate road_덕적도Deokjeok-do, 90x134.85cm, archival pigment print, 2016.
  • ⓒ이영욱 Lee, Youngwook
    Island project_Water fence gate road_굴업도Gureop-do, 29.7x44.5cm, archival pigment print, 2016.
  • ⓒ이영욱 Lee, Youngwook
    Island project_Water fence gate road_백령도Baengnyeong-do_29.7x44.5cm, archival pigment print, 2017.
  • ⓒ이영욱 Lee, Youngwook
    Island project_Water fence gate road_석모도Seongmo-do, 29.7x44.5cm, archival pigment print, 2016.
  • ⓒ이영욱 Lee, Youngwook
    Island project_소청도Socheong-do_Water fence gate road_90x134.85cm, archival pigment print, 2016
  • ⓒ이영욱 Lee, Youngwook
    Island project_소청도Socheong-do_Water fence gate road_90x134.85cm, archival pigment print, 2016
  • ⓒ이영욱 Lee, Youngwook
    Island project_Water fence gate road_자월도Jawol-do, 29.7x44.5cm, archival pigment print, 2017
  • ⓒ이영욱 Lee, Youngwook
    Island project_Water fence gate road_굴업도Gureop-do, 29.7x44.5cm, archival pigment print, 2017
  • ⓒ이영욱 Lee, Youngwook
    Island project_Water fence gate road_영종도Yeongjong-do, 29.5x38.2cm, archival pigment print, 2013.
이영욱의 사진전[물울타리 갯티길 water fence gate road]은 2013-2018년 사이 인천의 36개 유인도 섬을 답사한 2만 7천 장의 사진 중에서 선별한 것으로 지금은 사라진 혹은 사라지고 있는 섬 해안가 둘레 길(갯티길)를 중심으로 기록했다.
조수간만의 차가 큰 인천의 섬들은 6시간마다 온전하게 그 모습을 드러내고 해안가 길이 열리는 데, 이 길을 섬 원주민들은 갯티 길(gate road)이라 부른다. 하루에 2번 수면에 잠겼다 드러나는 이 길은 섬사람들의 생업의 터전이자 아이들에게는 놀이의 공간, 이동통로 사용했던 곳이다. 그러나 지금은 군사통제로 접근이 금지되었거나, 새로운 우회도로가 생기면서 거의 이용되지 않는 없어진 길이다. 역설적이게도 길은 막혔지만 신비롭고 숭고한 자연의 현상들을 간직하고 있는 곳이다. 최근 급속한 관광개발에 의해 갯티 길은 다시 열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모습은 인위적으로 박제된 채로 변질될 위기에 놓였다. 나는 이곳을 인간의 개입으로 변화하고 있는 사태에 직면해 그 흔적들을 놓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이를테면 전체적으로 평범한 풍경사진처럼 보이는 장면속에서도 위기의 징후를 발견 할 수 있도록 포착했다.
예를 들면 자연을 보호한다는 구실로 만들어진 관광객 산책로는 오히려 환경을 파괴하는 꼴이 되었고, 개발에 기대어 주민들의 어업활동은 오히려 줄어들었다. 군사목적의 위장된 초소와 교통로는 섬 전체가 마치 요새화되면서 동시에 안보관광으로 변용되는 기현상도 있다. 그런 가 하면 이국적 펜션들의 날입과 안내표지들은 도시의 유원지와 별반 다르지 않다. 이제 전통적인 섬의 고유한 문화와 정서를 느끼는 오래된 집터와 건물들은 이미 폐허가 되었다. 제목[water fence gate road]은 함민복의 시 [섬]에 나오는 표현 ‘물울타리’water fence 와 ‘갯티길’의 발음상 유사한 gate를 합성한 조어다. 따라서 이 제목은 섬의 고립된 낭만 이미지를 탈출하려는 닫히면서 열리는 섬의 욕망 이미지를 상징적으로 내포한다.

# 이 전시는 인천광역시(재)인천문화재단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지역협력사업으로 예술표현활동 지원금을 후원받은 전시입니다.

갯팃길을 걷다 이영욱의 갯팃길전에 부쳐


이세기(시인)


섬에 있는 ‘갯티’가 알려지면서 요즘처럼 ‘갯팃길’이 주목을 받을 때도 없다. 오랫동안 생명 바탕인 갯티를 노래한 나로서는 여간 기쁜 일이 아니다. 나는 ‘갯팃길’이라고 이름한 이영욱 사진전이 부디 섬이라는 우주체인 만다라망을 환하게 밝혀주는 기회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가 몸소 걸은 갯팃길을 통해 채집한 이미지는 그래서 더욱 각별하다.
갯티는 섬 둘레에 형성된 ‘갯바탕’으로 섬주민이 붙여진 방언이다. 조석 간만의 차이가 큰 인천의 섬에서 볼 수 있는 갯티는 섬사람에게는 축복의 터다. 흔히 섬사람들은 일상생활에서 ‘개 간다’, ‘갯티 간다’라고 한다. 갯티는 ‘개’, ‘개건너’, ‘갯가’ ‘갯고랑’ ‘갯내음’ ‘갯펄’, ‘갯바위’ 등에서 알 수 있듯 본디 말은 ‘개’와 관련이 깊다. ‘개’란 바닷물이 드나드는 곳, 즉 육지와 해양이 만나는 경계를 지칭하는 말이다. 그러니 갯바위는 개에 있는 바위를 의미하는 것이고, 갯고랑이란 갯가의 고랑을 의미한다. 갯티에서 ‘티’는 ‘터’와 같은 의미이다. 따라서 갯티라는 것은 ‘바닷물이 드나드는 터’인 것이다. 터는 ‘바탕’이라고도 부른다. 섬사람들은 개와 갯벌을 따로 구분하지 않고 ‘갯티’라고 했으며 ‘갯바탕’이라 한다.
섬사람에게 갯티는 생명붙이다. “갯티 간다”, “갯바탕 간다”라고 하면 굴, 고둥, 돌김, 낙지, 파래, 톳, 우뭇가사리, 조개 등을 채취하려 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갯티는 노동의 장소이다. 이곳은 갱, 담치, 굴이 동거하는 장소다. 살아있는 미물의 공동체가 바로 갯티인 것이다. 섬사람들에게 갯티는 부엌 수장고이기도 하다. 갯티에서 채취해 온 갯것으로 갱국, 파래무침을 하고, 돌김, 굴회, 굴젓을 만들어낸다. 먹거리로 말하자면 무궁한 부엌이 바로 갯티다. 동시에 살아 있는 생것들의 생명의 거처라 할 수 있다.
섬사람들에게 갯티는 신성한 터다. 갯티가 오염되거나 함부로 어지럽히는 것을 극도로 싫어한다. 갯돌 하나 흩뜨려 놓거나 뒤집어 놓아서도 안 된다. 먹을 만큼만 가져오고 과잉 채취하지 않는다. 손 하나 타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가장 좋아한다. 섬사람에게 갯티는 그 자체가 텃밭과 같은 곳이기에 망가지거나 더럽혀지는 것을 무엇보다 꺼린다. 이를테면 갯티는 소도(蘇塗)와 같은 신성한 장소인 셈인데, 이곳이야말로 섬사람들에게 혼의 장소(Genius Loci)인 것이다.
갯티의 신성성은 이뿐이 아니다. 아이들에겐 천혜의 놀이터다. 놀이터라고 해서 함부로 한다는 것이 아니다. 갯티에서 돌중게, 갱을 잡고, 갯가 물웅덩이인 둠벙에서 놀이를 한다. 파괴하지 않는 놀이의 자유가 보장된다. 어디 그뿐이랴. 갯티는 영겁을 견뎌온 정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돌의 정원인 석정(石庭)이자 갯티의 돌인 갯바위가 그대로 석정(石亭)이 된다. 나는 갯티에서 시원이 거처한 석기 시대와 마주하곤 한다.
놀이와 노동이 어우러지고, 자연과 인간이 혼연히 성기(性起)되어 하나의 우주가 되는 예가 있던가. 내가 아는 한 세계적으로 드물다. 나는 갯티야말로 인천 섬이 갖고 있는 갯문화의 보배로 ‘오래된 미래’의 보고라고 생각한다. 이 길은 사방 사위의 바다와 통하고 섬과 섬으로 통하며 마을과 통한다. 섬의 모든 길은 갯티로 가는 길이기 때문에 섬의 모든 길은 갯팃길이다. 이 길에서 부끄러움을 타는 섬사람과 만나고 낮은 돌담과 만난다. 섬분꽃나무를 만나고 뗏부르나무를 만나고, 물때 이는 소리인 해조음(海潮音)과 만난다. 눈은 씻긴 듯 고요하다. 귀는 물때 리듬으로 즐겁다. 코는 온갖 생것에서 풍겨 나오는 내음과 만난다. 혀는 달작지근하고 짭조름하다. 온몸이 열리고 온 정신이 아침 바다 위에 빛나는 바다 무늬인 해인(海印) 화엄이 따로 없다. 생명력이 넘치는 장소가 바로 갯티이다. 갯티가 존재의 근원적 거주지가 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
노동과 놀이, 생명이 거처하는 갯티라는 신성한 장소를 이영욱은 산책하며 탐색한다. 그는 갯팃길을 따라 걸으며 이미지를 채집했다. 채집된 풍경은 말이 없지만, 풍경이 때로는 말을 걸 때가 있다. 이 때 풍경은 ‘사물’이 아니라, ‘존재의 말과 거처’가 되곤 한다. 그런데 뻔한 아름다움이 아니다. 무참한 이미지가 형형하다. 심지어 무심(無心)하기까지 하다. 이미지는 스스로 있는 그대로를 품되, 담고 있는 뜻은 높다.
이영욱의 이미지 채집은 어제 오늘만의 일이 아니다. 나는 작가를 오랫동안 먼발치에서 지켜본 독자 중 하나다. 오래전 그가 짠물전(1997)을 기획 전시를 한적 있었는데 그 때가 그와의 초면이었다. 철조망으로 둘러쳐진 해변을 푸른 색조로 포착한 그의 시선이 아직도 내 심상에 몽롱하게 부조되어 있다. 바다라는 푸른빛을 가둔 인천이라는 도시를 상상했으니, 그게 벌써 20년 전의 일이 아닌가.
비교적 최근인 이 도시가 꿈꾸었던 그 꿈은 무엇인가(2012)전에서도 그의 세계를 엿볼 수 있었다. 그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작품에 제목 붙이는 작업을 하지 않는다. 여전히 그는 자신이 발 딛고 있는 도시의 산책자이자 탐구자이자 고발자로 살아가고 있다. 이동하는 자이며 포착하는 자이자 머물지 않는 자이다. 그의 사진은 일관되게 생명이 파괴되는 현장을 무심하게 맥락으로 잇고, 그것을 이미지 문법을 통해 발화시킨다. 만만치 않은 여력을 이끌고 여기까지 온 작가가 인천에 있다는 것은 축복이 아닐 수 없다. 나는 생각한다. 예술가란 모름지기 자기가 발 딛고 서 있는 땅을 사랑해야 한다. 자기가 발 딛고 서 있는 땅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것이야말로 예술의 혼이 아닌가. 그런 이영욱에게서 나는 공생의 르포르타주를 읽는다.
이번 갯팃길전만 하더라도 그의 작품에서 나는 묵언하는 어떤 불성(佛性)과 마주한다. 이미지를 통해서 무엇을 말하려는 뚜렷한 주장을 내세우지 않으면서도 그는 사물이 스스로 말하는 방식으로 존재를 드러낸다. 마르틴 하이데거(Martin Heidegger)식으로 말하자면 사물이 본디 갖고 있는 진성(眞性)이 ‘드러남/숨음’을 통해 현현(顯現)된다.
그것은 곧 들물과 밀물의 원리마냥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고 숨기는 방식으로 나타난다. 갯팃길을 걸어 온/걸어 갈 사람들이, 걸어 온/ 걸어 갈 사람들에게 말하는 것 같다. 이영욱은 갯팃길을 걸으면서 궁구한다. 갯티에서 때론 사람도 자연의 풍경이 된다. 그도 그럴 것이 사람만을 위한 천국은 이 지상에 없다. 사람도 하나의 자연일 뿐이다. 하지만 갯팃길이 무참히 파괴되고 찢겨지는 것은 인간의 욕망이 아닐 수 없다. 그 길을 따라 가다보면 오랜 삶의 터가 무너지고 시멘트로 포장되고, 심지어 군사통제로 갯팃길이 끊기거나 막혀 있다. 토목 공사는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물론 그것은 ‘고립시키고 분열시켜라’는 신자유주의의 길이자 분단으로 찢겨진 이 시대의 자화상에 다름 아니다. 동시에 우리 자신의 찢겨진 영혼이자 상처라 할 수 있다.
갯티의 죽임은 인간이 저지르는 만행일 터인데, 생지옥의 통곡이 아닐 수 없다. 인간은 욕망하는 존재이자 동시에 고통 받는 자, 아픈 자, 상처 받는 자이다. 파괴되는 갯팃길을 따라 걷다보면 단순히 상처 받는 풍경을 넘어 인간의 욕망과 조응되지 않는 자연의 비극을 상기시킨다. 그리고 말을 한다. 여기야말로 신자유주의의 무덤이다! 당장 중지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문명은 희망이 없다! 나는 그의 작품 곳곳에 배어든 자연에서, 인간 삶의 ‘생채기’를 엿본다. 그것은 곧 이영욱이 바라보는 시선일 터인데, 이 시선은 풍경에 취해 경시된 이미지가 아님은 물론이다. 이미지가 내 뿜는 외침은 절규에 가깝다.
이영욱은 이미지를 통해서 더 나아간다. 현재라는 시공간의 희망 없음은 그가 채집한 이미지들 –사물화된 인간, 여행가방, 암벽, 벼랑, 철조망, 바다 새와 상괭이 사체 등을 통해서 현시된다. 바닷가 갯팃길에서의 죽음-새와 상쾡이의 죽음을 통해 포획된다. 이미지와 이미지가 불연속적인 기호로 이어진 불가분리적인 관계는 마치 오늘날 파괴와 전쟁과 이데올로기로 욕망화된 인간의 시간을 보는 것 같다. 그리하여 이영욱은 인간의 욕망과 시대를 장례(葬禮)라는 제의를 통해 고발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것은 곧 마치 저 너머 세상을 꿈꾸며 걷는 자의 무심한 눈빛으로 빛난다.
우리는 이제 우리의 현재 문명이 희망 없음을 선언해야 하지 않을까? 갯팃길에게 묻는 의미는 바로 이런 ‘드러남’이 아닌가 한다. 진상(眞相)의 드러남을 통해 갯티의 본성이 이 세계에 나타나는 것과 다르지 않다.
그렇다면 갯티의 본성이란 무엇인가? 갯티는 극단적인 경계에서 다양성을 품고 있다. 갯바위 마냥 거칠거칠하고 음이자 양이며, 틈새이자 생이자 멸이며 하나이자 전체이다. 그것은 들숨과 날숨처럼 드러남이며 숨음의 원리로 작동된다. 생명의 원리가 이와 다르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갯티야말로 생명이 숨을 쉬는 곳이며, 태어나는 곳이며 죽는 곳이기도 하다. 비록 극단적인 환경일지라도 그 어느 곳 보다도 생물다양성이 풍부한 장소가 되는 것은 극과 극을 지향하는 경계에 놓여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갯티는 극단을 품고 있되, 극단이 아니다. 극단은 길이 아니다. 비생명적이다. 갯티는 존재가 ‘그곳으로 가고자 하는 터’이자 ‘생명의 자리’이다.
나는 감히 이영욱을 존재의 시간을 묻는 르포르타주 작가라 말하고 싶다. 갯팃길을 걸으면서 본디 생명의 자리를 걸어오고/걸어갈 자라고 명명한다. 그의 ‘갯팃길’은 ‘생멸’이라는 태어남과 죽음 앞에 묵상하듯 가장 찰나의 순간에 던져져 있다.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존재의 드러냄을 통해 스스로 사물이 생명을 찾아 길을 떠나는 자의 모습으로 형형된다.
이 시대는 무수한 ‘갯티’의 파괴로 존립한다. 신성은 갯티를 떠났다. 파괴되는 것은 갯티가 아니라 우리 자신이다. 고립되고 단절된 것은 섬이 아니라 우리 자신이 아닌가? 섬이 고립된 것은 육지이지 섬이 아니다. 그리하여 다음과 같은 생고(生苦)의 언어/회복의 언어가 정작 이영욱이 하고자 하는 말이라 할 수 있다. 그것은 두말할 나위 없이 파편화로 전락한 이 시대의 구원의 외침이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생지옥이오! 그러니 제발 내버려 두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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