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서문

꼬부랑 寫母曲
굽이굽이 한국 여성의 오랜 풍상이 묻어나는 사진들

‘꼬부랑’ 굽어진 등허리는 온전히 노동 시간의 궤적이다. 들일, 밭일, 노동을 하며 지나 온 세월의 나이테다. 전 생애의 노동이 그려낸 이 포물선은 그 방향이 땅을 향해있다. 오랫동안 땅을 향하며 살아 온 시간의 총합이 그려낸 선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보는 이를 처연하게도 숙연케도 한다. ‘꼬부랑’은 또, 하늘과는 영 등진 형상이다. ‘운’이라거나 ‘복락’이라거나 막연히 하늘에 바라기하고 산 삶이 아니라, 눈앞의 땅바닥과 제 손의 바지런함에 의지해 살아 온 낮고 자그마한 어떤 삶의 풍경이다.
‘꼬부랑’을 그렇게 읽어내는 사람의 눈과 귀에는, ‘꼬부랑 할머니가, 꼬부랑 고갯길을, 꼬부랑 꼬부랑~ 넘어가고 있네.’라는 동요도, 단순히 단어의 음감을 재미삼아 부르는 노래가 아니다. 꼬부랑 고갯길은 험난한 인생길로, 꼬부랑 꼬부랑 넘어간다는 말은 굽이굽이 힘겹게 살아간다는 말로. 물론 꼬부랑 할머니는 그렇게 살아오느라 등허리가 굽어 꼬부라진 할머니로 보이고 읽힌다. 사진가 강재훈이 그네들의 굽은 등허리를 ‘세월봉(歲月峯)’이라 부르듯이.
강재훈이 10번째 개인전으로 선보이는 <꼬부랑 사모곡>은 바로 그 꼬부랑 할머니들, 우리네 농촌 어디서나 쉬이 만날 수 있지만 점차 사라져가는 모습이기도 한 그 어머니들에 대한 사모곡이다. 등허리에 세월로 봉우리를 쌓은 어머니들과 그네들의 삶에 대한 작가의 연민과 애정의 기록이다. 그는 전국을 다니는 동안 사방에서 ‘꼬부랑’ 사연들을 만났다. 경상북도 청도에서 전라남도 청산도, 또 강원도의 횡성에서. 그의 발걸음이 닿는 마을 마을마다 떠나버린 자식을 대신해 집을 지키고 있는 어머니, 갯벌에서 조개를 캐는 어머니, 밭에서 고추를 따거나 짚단을 엮는 어머니, 허리가 휘도록 일해서 허리가 휜 어머니들이 있었고 마치 그 등허리의 포물선이 이끄는 인력처럼 절로 사진기가 그이들을 향했다.
1998년에 선보인 <분교/들꽃 피는 학교>와 2006년 <산골분교 운동회>, 2009년 <산골분교> 등을 통해 ‘분교 사진가’로도 불리는 강재훈은, 2010년 고향의 정감어린 풍경과 고향땅을 지키는 부모님들의 모습을 담아낸 <부모은중(父母恩重)>과 2012년 <100인의 초상>전 그리고 이번 전시 <꼬부랑 사모곡>에 이르기까지 연출되지 않은 자연스럽고 정겨운 사진으로 피사체와 감성적으로 공감하는 작업방식을 이어오고 있다.

글 / 박미경(사진위주 갤러리 류가헌 관장

  작가노트
산과 들 바다 어디를 가더라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는 풍경,
논밭일 바닷일에 평생을 바친 우리 어머니들의 산보다 더 높고 뾰족하게 굽은 허리.
자식들 치다꺼리로 쉴 틈이 없는 그 꼬부랑 모정을 바라본다.
고향을 지키며 살고 있는 우리의 어머니들, 그분들의 소원은 오직 자식들이 잘 되고 잘 사는 것 말고는 다른 게는 없 것 같다.
한평생 살아오신 회한을 여쭤보면 하시는 말씀이
“더 살면 뭐해, 이제 그만 살고 어서 죽어야지. 오래 살아봐야 자식들 고생만 시키는 걸.”
“에이,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세요. 아직도 정정하시고 건강하시니 오래오래 사시면서 자식들 잘되는 것도 보시고주 손주들 시집 장가 드는 것도 보셔야죠.”
“아이고 아녜요, 더 살면 추해! 사지 다 비틀어지고 허리가 아파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데 무슨~~.”
열에 아홉 분은 이렇게 말씀하시는 고향의 어머니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 봄이 오면 볕이 아깝다며 호미를 들고 땅을 일구고 손바닥만한 땅도 놀리질 못하고 모종을 내 씨고를 뿌린다.
굽은 허리에 두른 압박 밴드가 아니면 펴지지도 않는 허리,
코가 땅에 닿을 듯 숙인 허리는 산보다 더 높은 산이 되는 뾰족 봉우리 허리, 한 많은 세월이 만든 그 세월봉(歲月峯).
논두렁 끝, 밭두렁 끝, 들녘에 홀로서서 고향을 지키는 허리 휜 검은 나무 한 그루 한 그루를 내 가슴에 담는다.
가진 게 없어서 자식들 교육을 제대로 못 시킨 것이 평생 한이 된다는 어머니,
농사일에 손은 성한 데가 없고 하루 종일 비탈밭에서 휜 허리 한 번 펴볼 새 없이 일을 하면서도 수확하면 자식들게에 나눠주는 재미로 일을 한다는 어머니.
너무 힘들어 어서 죽었으면 좋겠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지만 그래도 그 마음 속에는 자식들에 대한 사랑만이 가득하다.
그게 바로 우리 어머니들의 마음이다.
산 같고 바다 같고 하늘 같다.
그 깊은 정을
그 깊은 한을
사진으로 작업한다.
나 스스로 뉘우치고 반성하면서 작업하겠다는 마음으로 고향 어머니들을 찾아 나섰다글. / 강재훈

  Profile 작가소개
강재훈

숲과 나무를 가슴에 품고 사는 사진가로
직접적인 관계보다는 내면의 관계를 중시하고, 자타공인 분교 사진 전문가.
연출되지 않은 자연스럽고 정겨운 사진으로 피사체와 감성적으로 공감하려는 사진가.
경기대, 홍익대 대학원, 경민대, 상명대에 출강해
사진사와 포토저널리즘 등을 강의 한 적이 있으며, 한겨레교육문화센터에서
1999년부터 2011년까지 포토저널리즘 강의를 하였고,
현재는 한겨레교육문화센터에서 “강재훈 사진학교”의 강의를 전담하고 있다.
이곳에서 배출된 100여 명의 사진가들로 구성된 사진 집단 <포토청>을 이끌고 있다.

<개인전>
2012년 <‘100인의 초상’ 「이런 내가, 참 좋다」 출판 기념 사진전> 이음아트 갤러리, 서울
2010년 <부모은중 父母恩重> 갤러리 나우, 서울
2010년 <꽃밭에서> 갤러리 M, 서울
2009년 <산골분교> 이음아트 갤러리, 서울
2009년 <부모은중 父母恩重> 나무 갤러리, 서울
2006년 <산골분교 운동회> 갤러리 온, 서울
1998년 <분교/들꽃 피는 학교> 아트스페이스 서울, 서울
1995년 <인터뷰 INTERVIEW> 코닥포토살롱, 서울
1986년 <산과 들에서> 알파와 오메가 화랑, 서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