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소개

사진으로 만든, 당신과 나 사이의 ‘미적 거리’

- 오인숙 사진전 <서울 염소> 9월 23일 ~ 28일 갤러리 류가헌

어떤 대상을 보고 순수한 미적 경험을 느낄 수 있는 심리적 거리를 ‘미적 거리’라고 한다. 미적 거리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대상에 무심해져야 한다. 대상과의 사이에서 감정이 생기면 그 감정에 눈이 멀어 거리의 균형감을 잃기 때문이다. 사진가도 마찬가지다. 대상과 자신 사이에 놓인 카메라를 통해 미적 거리를 만들어 낸다. 그리고 끊임없이 그 간격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한다.

사진가 오인숙에게 간격을 유지해야하는 대상은 ‘가족’이었다. 그중에서도 쌍둥이 두 딸이었다. 100일간 하루도 빠짐없이 아이들을 카메라 너머로 관찰하고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 작업들을 한데 묶어 첫 번째 개인전을 열었다. 그러던 중 문득 두 딸 옆에 ‘남편’이 눈에 들어왔다. 남편은 자신이 ‘염소’같다고 했다, 풀밭 가운데서 자기 목에 매인 목줄 반경만큼의 회색 동그라미 안에 있는 한 마리 염소. 작가는 이제 남편과 거리두기를 시작해야할 때라고 생각했다.

아이들이 초등학생에서 고등학생이 되어가는 동안 오인숙은 남편과의 사이에 카메라를 두었다. 남편에게 무심하려고 노력했다. 처음에는 이미 오랜 시간동안 밀착될 만큼 밀착된 남편에게 거리를 두는 것이 어려웠다. 하지만 이내 그와 남편이 무릎을 맞닿아 앉은 사이에 항상 카메라가 놓이는 것이 익숙해졌다. 비로소 ‘사진 찍을 수 있을 만큼의 거리’가 생긴 것이다.

다만 그 거리가 생겼을 뿐인데 오인숙의 눈에는 남편이 아닌 온전한 한 사람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거리는 그와 남편사이에 방황과 불안을 해소시켰다. 오인숙은 “내 ‘사진기’가 내 눈보다, 내 마음보다, 그를 좀 더 자유롭게 놔주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그의 말처럼 작품 속 인물은 점차 자유롭게 변해간다. 수평 혹은 수직을 이루는 딱딱하고 굳어진 풍경을 마주한 채 어깨를 늘어뜨린 힘없는 뒷모습에서 점차 유연한 자세로 또렷하게 카메라를 응시하는 모습으로 바뀌어 가는 것이다.

오인숙 작가가 사진으로 남편을 담아내는 동안 남편은 목줄이 매인 염소에서 점차 풀밭을 뛰노는 염소로 변해갔다. 그래서 전시 제목이 <서울 염소>다. 전시장을 찾은 관람객들에게 <서울 염소>의 사진 속 인물은 누군가의 남편, 누군가의 아빠, 어딘가에 소속된 회사원이라기보다는 어떤 낯선 인물이다. 그가 누구인지, 나이는 어떻게 되는지, 또 직업은 무엇인지 알 수 없다. 그저 누군가의 삶의 모습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화했음만을 알 수 있을 뿐이다. 감정이나 이해관계가 얽혀있지 않은 채, 관람객들 역시 또 하나의 ‘미적 거리’를 경험할 수 있다.

전시는 9월 23일부터 28일까지 사진위주 갤러리 류가헌에서 열린다.
전시 문의 : 류가헌 02-720-2010


  작가노트

서울염소

이 이야기는 2005에서 2014년 사이에 있었던 나의 남편 이야기를 사진으로 풀어놓은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사진이 우리 인생을 어떻게 바꾸었는가에 관한 이야기이다.

평범한 맞벌이 부부였던 우리는 소소한 일상의 행복을 소중하게 여기던 사람이었다. 남편은 가정에 충실했고 이른바 대기업에 다니는 잘 나가는 회사원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인가 부터 그에게 이상이 생겼다. 혼자 먼 산을 보는 날이 많이 생겼고 건강에도 여기저기 이상이 생겼다.

당시 나는 쌍둥이 두 딸을 주제로 첫 개인전을 갖기로 하고 아이들을 관찰하고 아이들과 교감하며 사진으로 소통하는 힘을 키워갔다. 아이들을 찍으며 당연히 아빠인 남편도 카메라에 함께 들어오기 시작했다. 비로소 그의 존재를 깊이 깨닫는 계기가 되었다. 본격적으로 사진 작업에 들어가자 내 ‘사진기’는 내 눈보다, 내 마음보다, 그를 좀 더 자유롭게 놔주기 시작했다.

사진기 너머의 남편을 바라보면서 온갖 감정이 교차했다. 처음 1~2년은 세상살이를 힘들어하는 남편을 보면서 짜증이 나기도 하고, 화가 치밀기도 하고, 불안감에 휩싸이기도 했다. 실제로 많이 싸우기도 했다. 그러나 나와 그 사이에는 다행히도 사진기가 있어서 아내로서의 불안한 심정을 조금이나마 누그러뜨릴 수 있었다.

그는 어릴 적 큰집에 가다가 풀밭에서 본 염소신세라고 자신을 한탄했다. 풀밭 가운데서 자기 목에 매인 목줄 반경만큼의 회색 동그라미 안에 있던 한 마리 염소. 동그라미 밖 초록 풀밭을 바라보던 그 염소가 참 불쌍했었는데, 커서보니 그 목줄 길이가 딱 자기가 회사를 오가는 반경이라고 한다.

그러나, 무슨 일을 낼 것만 같았던 그는 시간이 흐를수록 오히려 점점 시들해져갔고, 나의 사진기에 담기는 그의 모습은 하루가 다르게 초췌해갔다. 그 사이 아이들은 초등학생에서 고등학생이 되어갔고 세 번의 이사를 했다. 사진을 찍는 나도 변해 갔다. 밀착된 관계를 딱 ‘사진 찍을 수 있을 만큼의 거리’를 내어 떨어져보니, 어느 순간 온전한 한 인간이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자 거짓말처럼 사진 속에서 어느덧 그가 웃기 시작했고 우리의 관계는 급격히 좋아지기 시작했다. 역설적이게도 그의 위로와 격려에 힘입어, 잘 다니던 직장까지 그만두고 자신을 찾아나선 것은 그가 아닌 바로 나였다.

또 몇 년이 흘렀을까? 끝이 없을 것 같던 그의 방황은 엉뚱한 곳에서 끝이 났다. 그가 원하든 원치 않던 세상은 돌아가고, 잘 나가던 회사는 사운이 기울어 결국 회사에 구조조정의 칼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오랫동안 마음의 준비해왔지만, 실직은 생각보다 충격이 컸다. 그는 웃고 있었지만 초라해 보였고, 나는 불안한 마음을 감추고 그를 위로하지 않을 수 없었다. 구조조정 뒤 그가 제일 먼저 한 일은 시골로 내려가 빈집을 고치다가, 학교 다니던 아이들을 데리고 여행을 떠난 일이다. 여행 뒤의 일은 아무 것도 기약하지 않기로 하고, 돈을 아끼기 위해 인천항에서 배를 타고 무작정 중국 청도로 향했다.

우리는 우리의 미래가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모른다. 여행은 끝났고 더 이상 떠밀려 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확고해져 우리는 돌아왔다. 원하는 대로, 생각한 대로, 제대로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우리의 삶을 더이상 나중으로, 내일로, 미래로 유보하지 않을 것이다.

여행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매일 쓰던 노트북이 때마침 갑자기 작동을 멈추었다. 하도 허망하게 가서, 노트북 분해 후 남은 마더보드를 방에 걸어 놓고 가슴으로 찍으리라 다짐하고 다음과 같은 글을 썼다. “사람이 떠날 때도 이러하리라. 떠나면 그 뿐 아무 말도 없는 그대일지니 떠나기 전 살뜰히 사랑해야지.”

콩이 콩임을 부정해야 비로소 새롭게 싹을 틔울 수 있다는 남편. 여행하는 내내 나에게 헨리 데이비드 쏘로우의 월든을 읽어 주었고, 우리는 오늘도 쏘로우의 경고를 되새긴다. ‘오, 맙소사. 죽음에 임박해서야 한 번도 제대로 살아 본 적이 없었다는 사실을 깨닫다니!’

이 사진작업을 하면서 깨달은 것은 목적보다 과정이라는 것, 사진보다 관계라는 것이다. 날마다 새롭게 태어나기 위해 이 경고를 이 마더보드의 사진에 부쳐 십년간의 사진 작업을 마감한다.


  작가약력

오인숙

2005 강재훈 사진학교 41기
2008-2014 강재훈 사진사숙 연구원

개인전
2014 서울염소, 갤러리 류가헌
2010 내딸 둘, 갤러리 M

단체전
2014 다시 서울의 경계에 서다. 갤러리 류가헌
2009 필부필부, 문화일보 갤러리
2007 여의도 바라보기, 서울 메트로 미술관
2006 우리 사회의 틈에 대한 사진적 해석, 세종문화회관 미술관 별관 광화문 갤러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