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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08
2018.08.02 22:07

임종진 사진전

조회 수 586 추천 수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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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제목 평양의 일상 “사는 거이 다 똑같디요”
전시기간 2018. 7. 31 ~ 8. 26
전시장소 류가헌 Ryugaheon 전시 1, 2관, Seoul
갤러리 주소 서울특별시 종로구 청운동 113-3(자하문로 106) 02-720-2010
갤러리 홈페이지 http://www.ryugaheon.com
“림선생! 사는 것이 뭐 다 똑같디요. 무엇이래 좋아서 그리 찍습네까? 하하.” 수없이 들었던 북측안내원의 웃음 섞인 질문이다. 북녘땅 여기저기를 돌며 그들의 평범한 일상들에 좋아라 사진을 찍어대니 북측안내원의 입장에서 보기에 웃음이 나올만한 일이었다. 속도 모르고 말이다. 연인들이 손을 잡고 데이트를 하고, 학교수업을 마친 아이들은 친구들과 어울려 수다를 떨거나 놀이를 즐기고, 아버지는 휴일에 아이들 손을 잡고 산책을 한다. 어머니는 시장을 보고 노인들은 한데 모여 지나간 삶을 돌아보며 노닥이다. 특별할 것도 없다. 어디에서나 누구에게서나 볼 수 있는 것,. 결국 삶이요 일상이다. 그 모습에 취해 카메라가 춤을 추었다. 그런데 왜, 그 모습들이 특별하게 다가온 것일까. 어린 시절 미술시간에 머리에 뿔이 나고 송곳니를 가진 ‘북한사람’을 그렸다. 본 적도 없는 그들을 상상하며 크레용칠을 했다. 너무도 쉬웠다. 교육받은대로 그리면 되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런 그림을 그린 미술대회에 나가 최우수상을 받기도 했다. 누군가 목청껏 부르짖던 웅변과 구호도 선명하게 기억이 난다. 혹시나 동네 뒷산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간첩이 뿌린다는 삐라를 찾아 헤매던 기억도 있다. 그래야 잘하는 것이라고, 그래야 나라를 지키는 것이라고 생각했고 그렇게 배우던 시절이었다. 시간이 흘렀다. 어느 순간 남과 북의 대표들이 정상회담을 하고 금강산과 개성의 문이 열리는 시대가 되었다. 그 즈음 뿔난 도깨비를 그리던 소년은 여러 차례 북녘 땅을 밟으며 빛을 머금은 카메라로 북한사람을 ‘그리는’ 어른이 되었다. 굶주림과 폭압의 공간이라는 두려움으로 밟은 북녘 땅에서 사람을 보았고 그 사람이 남녘땅 어디에서나 보고 듣는 일상과 다르지 않음을 다시 ‘보고 들었다.’ 없는 것을 알게 된 것이 아니라 이념의 장벽 안에 가려 보이지 않던 삶들이 눈에 든 것이었다. 그것이 새롭고 놀라워 눈물이 났다. 반백년 넘게 한쪽 면만 보고 따져묻던 시선을 거두고보니 그리 되었다. 그들의 말처럼 사는 것이 다 똑같은 우리네 정경이었다. 다시 시간이 흘렀다. 한때 타올랐던 남과 북의 화해무드가 다시 회복되고 철천지 원수처럼 으르렁대던 북한과 미국이 손을 잡았다. 연달아 제 잇속만 차리던 이들이 물러간 뒤 평화와 상생의 기운이 한반도를 달구고 있다. 세상이 온전히 바뀌면서 이제 남과 북이 하나 될 순간이 눈앞에 펼쳐지고 있다. 1998년 가을, 처음 북녘땅을 발을 디뎠을 때 해맑은 웃음을 지닌 여대생을 우연히 만났다. 남녘에서 왔다는 소식에 반가운 설렘으로 얼굴을 붉히던 그의 이름은 ‘장류진’이었다. 20년이 흘러 그의 얼굴을 다시 보니 여전히 반갑고 또한 설레인다. 아이를 둔 중년의 모습이 되었을 여대생은 지금 어떻게 살고 있을까. 다시 대동강변에서 만나 지난 소회를 나눌 기회가 내게 주어질 수 있을까. 그리된다면 나 또한 웃음으로 그를 맞이하고 싶다.
  • ⓒ임종진 LIM Jongjin
  • ⓒ임종진 LIM Jongjin
    평양의 일상
  • ⓒ임종진 LIM Jongjin
    평양의 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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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양의 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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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양의 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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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양의 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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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양의 일상

그곳에 우리가 있다. 평양에서 만난 ‘우리’


‘가장 많이 북한을 방문한 사진기자’
김정일 위원장이 유일하게 기억한 ‘남녘사진가’
사진가 임종진을 수식하는 말이다. 그는 1998년부터 2003년까지 사진기자의 자격으로 여섯 차례에 걸쳐 북녘 땅을 밟았다. 당시가 남북정상회담 등으로 인해 평화로운 분위기였다고는 해도, 북은 사진에 민감했다. 임종진은 처음부터 “나는, 우리가 서로 공감할 만한 무엇을 찍고 싶다.”고 밝혔다. 전 세계적으로 이질적이거나 낙후된 북한의 좋지 않은 이미지들만이 보도되던 시절이었다. 평양의 일상과 그 속에 담긴 ‘우리네, 우리 것’을 사진에 담으려는 그에게 유례없이 자유로운 촬영 허가가 떨어졌다. 평양 시내 곳곳을 별다른 제지 없이 다니며, 정치나 이념에 의해 삭제되거나 왜곡되지 않은 그들의 민낯을 만나고 사진으로 기록했다.

그는 고무줄 놀이하는 아이들, 장을 보는 어머니, 자전거에 아이를 태우고 가는 아버지 등 특별할 것 없는 모습들에 취해 ‘카메라가 춤을 추었다’고 회고한다. 그동안 볼 수 없었던 북녘동포들의 일상을 따뜻하고 섬세한 시선으로 담아낸 수백 점의 사진이 이렇게 해서 얻어졌다. 사진마다 이미 우리는 잃어버린 듯 한 어떤 정서와 순정한 빛이 20년 전의 버내큘러와 함께 가득하다. 갓 결혼식을 올린 신부가 상기된 얼굴로 카메라를 바라보고, 젊은 연인이 손을 잡은 채 강변을 걷고, 가방끈을 비스듬히 맨 여자아이가 아빠 손을 잡고 계단을 내려간다. 어디에나 있을법한 흔한 광경이다. 다만 다른 것은 아이 손을 잡고 계단을 내려가는 아빠가 군복 차림의 ‘북한군’이라는 것이다. 우리가 그동안 생각했던 북한의 ‘이미지’를 전복시키는 사진이다.

어제의 사진이 아니라 이제야 만나는 ‘오늘의 사진’

이 사진들을 보기까지, 아니 그들을 이런 눈으로 보기까지 참으로 오랜 세월이 걸렸다.
두 번째 방북 시절 북측 안내원들의 “왜 우리 늠름한 장교 동무를 동네 아저씨처럼 찍었느냐”는 투정과 웃음이 섞인 항의를 받기도 했다. 빈곤과 폭압적 체제라는 단면적 시선을 거두고 한 민족의 정서적 일치점을 찾고자하는 임종진의 한결같은 관점은 이어지는 방북취재를 통해 신뢰의 연장선으로 이어졌다. 후에 자신들의 삶을 ‘민족적 입장에서 바라본 사진가’로, “김정일위원장이 남녘사진기자로서는 유일하게 림선생의 이름을 기억한다”는 이야기도 북측 기관원들의 입으로 전해지기도 했다.
엄정한 군복 안에서 ‘동네 아저씨’ 같은 사람냄새를 읽어낼 수 있었던 것은, ‘임종진’이기에 가능했다. 월간 <말>지와 <한겨레신문> 등 언론사 기자로 사진을 시작한 그는 취재활동 틈틈이 여러 나라의 빈민촌과 시골마을에 머물며 ‘작아 보여도 가치 있는 삶’들을 사진으로 기록했다. 언론사를 그만두고 캄보디아에서 NGO 자원활동가로 일하기도 했다. 현재는 국가폭력이나 부실한 사회안전망으로 인해 정신적 내상을 입은 사람들과 사회적 약자들을 위한 사진치유기관이자 국제개발협력 분야 내 생명중심 대안적 이미지 창출기관인 (주)<공감아이>를 운영하며 ‘인간의 존엄성 회복을 위한 도구’로서 사진의 쓰임을 탐색 중이다.

그동안 사진이 일조해 온 어떤 ‘이미지’를 사진으로 다시 바꾸는 작업 또한 임종진이 추구하는 새로운 사진의 역할이자 작업 방향이다. ‘북한의 이미지를 바꾸는 북한 이미지’로서, 사진전 <사는 거이 다 똑같디요>는 바로 그 첫 신호탄이 될 것이다.

“정책적인 통일은 위에서 정치가 한다면, 정서적인 통일은 밑에서 민간이, 예술이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제라도 이 사진들이, 그렇게 쓰이기를 바랍니다.”

20년 전 평양의 일상을 담은 이 사진들은 시간의 개념을 뛰어 넘어 남과 북 사이 가로놓인 ‘닫힌 정서의 길’을 열어준다. 그런 점에서 ‘어제의 사진’이 아니라 이제야 만나는 ‘오늘의 사진’이다. 가려져서 보지 못했던 것을 보여주고 왜곡된 인상들을 바꾸는 데서 더 나아가 미래지향적인 한반도를 꿈꾸는 지금의 시점에서 남과 북, 서로를 정서적으로 보다 가깝게 이을 사진들인 것이다.

사진가 임종진은 언젠가 평양에서도 이 사진들이 전시되어지기를 꿈꾼다. 먼저 서울에서 열리는 임종진 사진전 <사는 거이 다 똑같디요>는 7월 31일부터 종로구 청운동에 자리한 갤러리 류가헌에서 열린다.

“림선생! 사는 것이 뭐 다 똑같디요. 무엇이래 좋아서 그리 찍습네까? 하하.”
수없이 들었던 북측안내원의 웃음 섞인 질문이다. 북녘땅 여기저기를 돌며 그들의 평범한 일상들에 좋아라 사진을 찍어대니 북측안내원의 입장에서 보기에 웃음이 나올만한 일이었다. 속도 모르고 말이다. 연인들이 손을 잡고 데이트를 하고, 학교수업을 마친 아이들은 친구들과 어울려 수다를 떨거나 놀이를 즐기고, 아버지는 휴일에 아이들 손을 잡고 산책을 한다. 어머니는 시장을 보고 노인들은 한데 모여 지나간 삶을 돌아보며 노닥이다. 특별할 것도 없다. 어디에서나 누구에게서나 볼 수 있는 것,. 결국 삶이요 일상이다.
그 모습에 취해 카메라가 춤을 추었다. 그런데 왜, 그 모습들이 특별하게 다가온 것일까.

어린 시절 미술시간에 머리에 뿔이 나고 송곳니를 가진 ‘북한사람’을 그렸다.
본 적도 없는 그들을 상상하며 크레용칠을 했다. 너무도 쉬웠다. 교육받은대로 그리면 되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런 그림을 그린 미술대회에 나가 최우수상을 받기도 했다. 누군가 목청껏 부르짖던 웅변과 구호도 선명하게 기억이 난다. 혹시나 동네 뒷산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간첩이 뿌린다는 삐라를 찾아 헤매던 기억도 있다. 그래야 잘하는 것이라고, 그래야 나라를 지키는 것이라고 생각했고 그렇게 배우던 시절이었다.

시간이 흘렀다.
어느 순간 남과 북의 대표들이 정상회담을 하고 금강산과 개성의 문이 열리는 시대가 되었다. 그 즈음 뿔난 도깨비를 그리던 소년은 여러 차례 북녘 땅을 밟으며 빛을 머금은 카메라로 북한사람을 ‘그리는’ 어른이 되었다. 굶주림과 폭압의 공간이라는 두려움으로 밟은 북녘 땅에서 사람을 보았고 그 사람이 남녘땅 어디에서나 보고 듣는 일상과 다르지 않음을 다시 ‘보고 들었다.’ 없는 것을 알게 된 것이 아니라 이념의 장벽 안에 가려 보이지 않던 삶들이 눈에 든 것이었다. 그것이 새롭고 놀라워 눈물이 났다. 반백년 넘게 한쪽 면만 보고 따져묻던 시선을 거두고보니 그리 되었다. 그들의 말처럼 사는 것이 다 똑같은 우리네 정경이었다.

다시 시간이 흘렀다.
한때 타올랐던 남과 북의 화해무드가 다시 회복되고 철천지 원수처럼 으르렁대던 북한과 미국이 손을 잡았다. 연달아 제 잇속만 차리던 이들이 물러간 뒤 평화와 상생의 기운이 한반도를 달구고 있다. 세상이 온전히 바뀌면서 이제 남과 북이 하나 될 순간이 눈앞에 펼쳐지고 있다.
1998년 가을, 처음 북녘땅을 발을 디뎠을 때 해맑은 웃음을 지닌 여대생을 우연히 만났다. 남녘에서 왔다는 소식에 반가운 설렘으로 얼굴을 붉히던 그의 이름은 ‘장류진’이었다. 20년이 흘러 그의 얼굴을 다시 보니 여전히 반갑고 또한 설레인다. 아이를 둔 중년의 모습이 되었을 여대생은 지금 어떻게 살고 있을까.

다시 대동강변에서 만나 지난 소회를 나눌 기회가 내게 주어질 수 있을까. 그리된다면 나 또한 웃음으로 그를 맞이하고 싶다.

사진가 임종진


임종진은 한겨레신문 사진기자, 한국사진치료학회 이사를 지내고 현재 다큐멘터리 사진가이자 1급 사진심리상담사로 활동하고 있다. <광주트라우마센터> <국가인권위원회> 등의 사진치유 전문위원으로서 5.18광주민주화항쟁 고문피해자, 7·80년대 조작간첩 고문피해자, 발달장애인, 가정폭력피해 청소년 그리고 일반 시민들을 위한 사진치유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또한 이라크 전쟁, 북한 등을 포함해 언론사를 그만 둔 후 2년 동안 NGO 활동가로 일했던 캄보디아를 포함한 수많은 현장 경험을 바탕으로, ‘인간의 존엄성을 최우선으로 하는 사진이미지’ 활용에 대한 여러 대안들을 꾸준히 제시하고 있는 중이다.

경력]
현 주식회사<공감 아이> 대표
광주트라우마센터 5·18사진치유 전문위원
서울시립청소녀건강센터 나는 봄 사진치유 전문위원
경찰교육원 사진치유 외래강사
한국보건복지인력교육개발원 사진치유 외래강사
국가인권위원회 인권감수성 교육 강사
만풀상담아카데미 포토테라피 강사
한국언론진흥재단 언론인전문연수-포토저널리즘 전임강사
이화여대 평생교육원 발달장애인 지역생활아카데미 사진치유 강사
한겨레신문 <찾아가는 지식나눔> 강사
한국일보 연재 <임종진의 삶이 있는 풍경> 고정 컬럼니스트
고려대학교 교육대학원 상담심리교육 석사 수료
네이버 오늘의 포토 심사위원

전 참여연대 아카데미 - 자신에게 사진을 건네다 전임강사
전 카톨릭예수회캄보디아구호기관 JSC(Jesuit Service Cambodia) 자원활동가
전 한겨레 포토 워크샵 강사 및 심사위원
전 한겨레신문 편집국 사진부 기자
전 월간 말 편집국 사진부 기자
전 한남대학교 문과대학 사진예술론 강사
전 한겨레문화센터 임종진사진교실 전임강사
전 KT&G 상상마당 달팽이사진관 전임강사

단행본]
2014. 캄보디아, 흙 물 바람 그리고 삶(사진집) 출간 -오마이북
2008. 천만개의 사람꽃(문화관광부 선정 우수교양도서) - 넥서스
2008. 김광석, 그가 그리운 오후에(네이버 오늘의 책 선정) – 랜덤하우스

공저]
2006. 어디 핀들 꽃이 아니랴 (국가인권위원회 인권사진 프로젝트) - 현실문화연구
2005. 사진, 연감 - 도서출판 가각본
2003. 선이골 외딴집 일곱식구 이야기 - 도서출판 샨티

개인전]
2017. 10. 통일부 주관 평화로2017 평화통일사진전 - 만리동광장. 서울
2016. 7. 내 안의 김광석 展 - 동대문디자인플라자. 서울
2014. 10. 흙 물 그리고 바람 展 - 갤러리 브레송. 서울
2012. 6. 반티에이뿌리웁 展 - 갤러리 류가헌. 서울
2012. 5. 천만개의 사람꽃 展 - 민주공원 기획전시실. 부산
2012. 2. 어머니에 관한 네 개의 기억 展 - 갤러리 류가헌. 서울
2011. 12. A day shared with others Ⅱ 展 - CraftPEACECafe. 프놈펜. 캄보디아
2011. 11. A day shared with othersⅠ 展 - PEACE PALACE. 프놈펜. 캄보디아
2010. 4. 캄보디아. 흙, 물, 바람 展 - 금호아트홀 갤러리
2007. 12. 사는거이 다 똑같디요 - 북한사진 展 국회 의원회관 특별전시장

단체전]
2017. 제주 4·3항쟁 70주년 기념 기획사진전 : 소리없는 침묵 展 - 제주 4·3평화공원
2017. 서울사진축제 - 성찰의 공동체 ; 국가와 개인 그리고 우리 展 - 북서울시립미술관
2010. 동강국제사진축제 - 지구촌의 여성 展 - 영월 동강사진박물관
2010. A4DEMO 展 - 프로젝트 스페이스 LAP39
2009. 꿈꾸는 교실-(The Treasure Within 展) 유네스코 아시아·태평양 국제이해교육원
2009. 아시아의 봄 展 (유네스코 아시아 태평양국제이해교육원 주관) - 광주 M갤러리
2008. 꿈꾸는 부엌-Flavor of Asia 展(유네스코 주관) 한국국제교류재단 문화센터 전시실
2008. Have a dream 展 Gallery Art gate. NEW YORK
2007. Multinational modern art exhibition - BEING 2007 展
.The ArtMuseum of ZhuQuiZhan. SHANG HAI
2006. 달라도 같아요 - 인권사진 展 세종문화회관 광화문갤러리
2004. 사진, 연감 展 경기문화재단아트센터
2001. 서울의 화두는 평양 展 세종문화회관 광화문갤러리
2000. 이주노동자 10년사 - 그 삶의 궤적을 따라 展 철학마당 느티나무

치유사진전 기획]
2016. 11. 조작간첩고문피해자자기회복치유사진전 <기억이 치유를 만나다>
2016. 5. 5.18고문피해자치유사진전 <기억의 회복>
2014. 2015. 5.18치유사진전 광주, 서울, 대구, 부산 순회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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